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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레아뉴스 | 4.19혁명 64주년, 4월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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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4-19 19:0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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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월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한 찬 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4월 19일 서울


 

오늘은 4월혁명 64주년이다.

 

4월 19일 아침, 조간신문 1면은 18일 이승만 정부가 동원한 정치 깡패들의 ‘고려대 시위대 습격’ 머리기사로 도배되었다. 이를 본 학생과 민중은 경악과 분노로 몸을 떨었다.

 

이미 3.15 ‘마산항쟁’ 때 경찰의 발포로 8명이 희생됐고 80여 명이 다쳤으며 200여 명이 연행된 사실에 학생과 민중은 눈물을 삼키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4월 11일 아침, 3월 15일 시위 때 눈에 최루탄을 맞고 죽은 김주열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학생과 민중은 자연스럽게 곪을 대로 곪은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는 2차 ‘마산항쟁’을 일으켰다. 

 

이를 지켜본 전국의 대학생들은 조직된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의 사주를 받은 정치 깡패들의 ‘고려대 시위대 습격’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다음날 전국의 대학들이 총궐기했다. 

 

4월 19일 서울 도심, 태평로 광화문 시청 앞 광장 일대는 어깨동무한 학생과 민중의 시위로 물결쳤다. 시위대열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심장부 경무대로 향하였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희생자 수는 사망 115명 그리고 부상은 727명에 달하였다.

 

당일이 화요일이었기에 1905년 러시아혁명처럼 ‘피의 화요일’이라고 부른다.

 

4.19 민중봉기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함께했고, 초·중·고생들도 가세했다.

 

특히 한성여중 2학년에 재학 중인 진영숙 학생은 어머니에게 유서를 쓰고 시위 버스를 타고 데모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후 7시경 미아리고개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꽃다운 청춘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친다.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학생 유서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눌러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또한 이 데모에 나서지 않은 딸을 꾸짖는, 광주 학부형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5월 2일)가 조선일보 조간에 실린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이글을 신문에 투고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은 나만이 딸을 가진 애비가 아니고, 또 너와 같이 너의 학교에 딸을 보낸 수천의 부모형제 자매들이 모두 내 심정과 같을 것을 생각하고 이 부끄러움을, 이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울고자 함이로다.

(중략)

신문을 보면서도 눈물이 사뭇 복받쳐 견딜 수가 없는 이 벅찬 역사적 마당에서, 그 젊은 대열 가운데 하필이면 내 딸이 다니는 학교만 빠졌다는 것은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그 숱한 젊은이들 가운데 내 딸의 모습이 끼어있지 않고, 내 딸의 학우도 끼어있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이 수십 년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내 딸의 학교가 홀로 보여준 교풍이었단 말인가?

(중략)

서울의 거리가 온통 너와 같은 젊은 세대의 불길로 거세게 타오를 때, 인옥아!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 ‘피의 폭풍’이 강산을 휩쓸고 마침내 낡고 썩은 것들이 너희들 젊음 앞에 굴복하고만 그 시각에 나의 피를 받은 너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더냐? 그 불덩어리들 속에 타오르는 심장의 핏빛이 네 피와는 다르더란 말이냐? 그 암흑을 밀어나가는 북소리들이 네 목소리와는 다르더란 말이냐? 너는 정녕 그 젊은 기수들 속에 네 생명을 바쳐 사랑하는 애인 한 사람 없었더란 말이냐? 

서글픈 일이다. 분한 일이다. 네 젊음을 스스로 모독한 시대의 고아가 되고 말았구나! 어찌 네 가슴에 배지를 달고 이 태양아래 활보할 수 있으랴! 총탄에 넘어진 아들 딸을 가진 부모들의 비통함보다 털끝 하나 옷자락 한 올 찢기지 않은 너를 딸로 가진 이 애비의 괴로움이 더 깊고 크구나!

인옥아!

어서 배지를 떼고 교문을 나와 병원으로 달려가거라. 죄인과 같은 부끄러움과 겸손한 태도로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그 젊은 영웅들 앞에 네 피를 아낌없이 쏟아라. 그 젊은이들이 너 같은 여자의 피라도 받아 준다면... 

그리고 그만 시골로 내려오너라. 그 편이 한결 애비 된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생각해 보자. 결코 ‘부잣집 맏며느릿감’을 만들기 위해 너를 대학에 보낸 애비가 아니라는 것. 네가 잘 알 것이다. 

이 찬란하고 장엄한 역사의 아침 앞에서 이렇게 흥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초등학교 학생들도 4.19 데모에 참가해 희생된 학생도 있었다.

 

수송초등학교 강명희

 

4월 26일 수송초등학교 어린이 100여 명은 ‘국군아저씨, 부모형제에게 총부리를 대지 마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했다.

 

참가한 강명희 학생의 시이다.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면은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와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 그리고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대학생들의 민족통일학생연맹(민통련) 건설과 통일운동

 

4월혁명 공간 데모를 주도했던 학생들은 일제 지배하에 신음하던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1945년 일제 패망 후의 해방공간에서는,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사람만 바뀐 미 제국주의에 의한 제2의 신식민지임을 알았다.

 

또한 1948년 이승만과 반민족 세력에 의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고 남쪽만 단독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6.25전쟁 전후 이승만 정부의 부모·형제·친지·이웃들에 대한 백만 민간인 학살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를 삼켜야 했다. 

 

그들은 우리 앞세대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죽어 가는가를 보며 소년·소녀시기를 보낸 학생이었기에, 민족해방·민중해방의 숙명을 지게 된다. 

 

당연히 4.19 민중봉기에 나선 학생들은 3.15부정선거와 부정부패의 배후인 이승만 정권을 타도하자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특히 해방공간과 6.25전쟁을 전후하여 앞세대가 흘린 피의 본질이 통일이었기에, 4월혁명 공간 후반기에 통일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드높았던 것은 필연이었다. 

 

4.19혁명 때 함께 했던 사월혁명회 회원은 당시 대부분 대학교 2, 3학년생으로 ‘민족통일학생연맹(민통련)’에 가입하고 활동한다. 

 

민통련 결성준비대회 선언문은 “세계사적 현 단계의 기본적 특징은 식민지·반식민지의 민족해방투쟁의 승리”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식민지적·반식민지적 반봉건성의 요소”를 척결하고 “민족·대중세력은 매판관료세력을, 통일세력은 반통일세력을, 평화세력은 전쟁세력을 압도”하여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4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조국은 분단 상태이고, 미 제국의 신식민지하에 놓여 있다.

 

윤석열 정권 타도하여 자주통일국가 건설하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주권자인 민중의 승리로 끝났다.

 

천심이었다.

 

그러나 3년은 너무 길다.

 

전 지구적으로 미국은 쇠퇴하고 고립되고 있다. 

 

민중은 변화된 정세와 환경에 맞게 이 땅에 식민과 분단 그리고 예속을 넘어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역사는 지금 대전환의 시대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권 타도하여 자주통일국가 건설하자!

 

4월혁명 64주년 선언 구호다.

 

“4월 전사들은 결연히 떨쳐 일어나 4월 민주애국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사대 매국 친일친미 외세의존 윤석열 정권 타도하자!

 

1.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동족과의 전쟁을 부추기는 반민족 반통일정권 물러가라!

 

1. 미국은 한반도의 영구분단 획책, 전쟁책동 중단하고 주한미군은 즉시 철수하라!

 

1.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공안탄압정권 물러가라!

 

1. 정적탄압, 검찰독재, 언론탄압, 노동탄압 불통정치 중단하라!

 

1. 물가폭등 국가부채 증가를 불러온 경제 파탄 정권 물러가라!

 

4월혁명 만세! 자주 민주 통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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