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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레아뉴스 | 건국절 주창자 측에 보내는 두 가지 공개 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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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9-04 17:5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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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주창자 측에 보내는 두 가지 공개 질의

[기고]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 기자명

    통일뉴스 9월 4일 서울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이래 해묵은 건국절 역사논쟁이 2024년 8.15 광복절에는 정면 충돌하여 광복절 행사를 두 곳에서 별도로 거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더우기 광복 79주년을 맞는 한반도는 핵전쟁의 먹구름이 몰러온 엄중한 시기라 광복절 행사를 둘려싼 국론분열은 더욱 안타까웠다.

국론분열의 윈인 제공자인 건국절 주창자에게 거두절미하고 두 가지를 공개 질의한다.

첫째, 1948년 7월 12일 제정한 제헌 헌법을 인정하는가?
둘째,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강압으로 맺은 한일간 조약 및 합의(1905년 을사늑약 등)를 유효하다고 보는가?

위 두 가지 문제 의식하에서 좀 더 질문의 핵심 내용을 쉽게 풀어서 심층 분석해 본다.

첫째 질문 관련, 제헌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1919.3.1.)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 우리들의 정당 또는 자유로이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1948.7.12) 법을 제정한다. 단기 428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문을 포함한 전체 제헌 헌법은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이름으로 1948년에 최종 제정, 공포하였다. 상기 제헌 헌법에서 대한민국 건립은 1919년 3월 1일 이미 완성하였고. 이를 계승한 민주독립국가를 1948년 8월 15일에 다시 건국(재건)한 것을 공식으로 공포 확인하였다.

이는 대한민국은 1919년 3월 1일 삼일운동으로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공식: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국가를 이미 건국하였다. 이 3.1 독립 정신을 계승한 상해 임시정부가 중심이 되어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국내외 의병들의 독립운동을 거쳐서 일본에 뺏긴 경찰권까지 회복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국가를 재건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는 당시 중국, 프랑스로부터 국가 승인을 받았다. 실제 임시정부 산하의 대한독립군은 일제에 선전포고까지 하였다.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이란 말은 타당하지 않다. 1948년은 일제폭압으로 제한받아온 경찰권까지 회복하여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정부을 세윘다.

다시말해 1919년 3월 1일 삼일운동 정신으로 이미 건립된 대한민국(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독립운동으로 쟁취한 경찰권도 회복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국가(정부)를 더욱 독립적, 민주적 공화제에 충실하게 현재 상태로 재건한 것이다.

둘째 질문 관련,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체결한 한일 간의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강제병탄조약 등은 조약의 성립 및 효력 요건 중에 가장 주요 핵심인 자유의사 표시 및 조약체결권자에 의한 체결이라는 국제법적 관점에서 명백한 하자가 있기에, 조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또 그 효력이 처음부터 무효이다.

권위 있는 국제법 관련 위원회도 상기 한일 강제병탄조약을 조약의 전형적인 무효 사례로 지칭한 바 있다. 부연 설명하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합의하였다.

다만 무효 시점에 대해서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일본정부는 1948년 8월 15일(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부터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까지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한일간에 조약 및 합의는 모두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맺은 한일 간의 조약 및 합의는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일제 식민지배는 불법이고, 그 지배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역대 보혁 모든 한국정부도 일제식민지 침탈기를 불법으로 본다. 조선이 일제에 뺏긴 것은 주권이 아니라. 경찰권을 박탈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일제식민지 기간 조선인은 일본 국적이 아니고 조선 국적을 가진 것으로 본다. 또 국제법상 모든 사람은 국적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특정국이 주퀀을 임의로 박탈할 수가 없다. 그래서 1938년 일제 강제 동원법(일본국내법)에 근거하여 조선인을 강제동원하는 것은 불법이다.

2018년 한국대법원도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강제동원은 일제가 타국 국민을 강제동원했기에 불법이라고 판시. 1인당 1억원 이상 손해배상 판결을 판시한 바 있다. 국제법상 타당한 판결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가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을 주장하는 것은 제헌 헌법을 부정하고,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강압, 불법으로 맺은 무효인 한일조약 및 합의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제헌 헌법을 부정하고,1910년 강제병탄조약에 근거한 일제 식민지배를 합법이라고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헌법상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일본의 부당한 식민지 침탈을 합법화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발상은 민족의 장래와 역사정의 정립 차원에서 대단히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에 둘째 질문 1910년 일제강제병탄조약의 유효성을 일본정부처럼 인정한다면 일제식민지배는 합법화 된다. 1938년 일제강동원법으로 조선인을 강제노동한 일본 국적 조선인은 일본정부에 피해손배를 주장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

그런데 2018년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은 일제강제동원 조선인의 피해손배를 1인당 1억원으로 판시한 바있다. 대법원은 일제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기 때문에 그 기간에 제정된 1938년 일제 강제동원법의 조선인 적용을 불법으로 본다. 1938년 강제동원법은 일본이 1932년에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협약 제29호, 즉 강제노동금지조약에도 위반된다.

뿐만아니라 1935년 국제연맹이 이끈 조약의 법전화 작업인 “조약법 보고서”는 효력을 발생할수 없는 국제적으로 세 가지 조약 사례 중에 1905년 일제 을사늑약을 포함시켰다. 이어 1963년 유엔의 조약법 보고서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면 1905년 을사늑약에 근거한 1910년 한일강제병탄조약은 당연 무효이다.

그래서 일본의 한국강제병탄 100년 되던 2010년 한일지식인 공동선언도 1910년 일제강제병탄조약 무효를 선언하였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국권은 일본의 무력적 강제로 침해는 되어도 국제법상 소멸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승만 대통령조차도 이미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으로써 건국은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건국절 주창자들은 첫째, 1919년 제정한 제헌 헌법을 인정하는가? 둘째, 조약의 성립 및 효력 요건의 핵심인 “자유로운 의사표시”로 체결되지 않은 1905년 을사늑약 및 1910년 일제 강제 병탄조약를 유효하다고 보는가?

만약에 1919년 제헌 헌법 전문을 인정하지 않고, 1910년 한일 강제병탄조약을 유효하다고 본다면, 건국절 주창자들은 일제식민지침탈 36년을 모두 합법으로 주장하는 일본 정부 대변자이다.

그러므로 건국절 주창자들의 입장을 1919년 기미독립운동으로 건국했다는 제헌 헌법과 조약의 무효 사유에 기초한 국제법 및 국제연맹, 유엔 같은 보편적 국제기구의 유권해석의 관점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다.

정리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미 건국하였고,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경찰권까지 완전 회복한 대한민국를 국내외적으로 독립적으로 대표하고 이끌어갈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8월 15일 출범한 것이다.

이러한 건국론자들의 오류는 편향된 이념적 몰입과 제헌 헌법의 기본 철학 그리고 국제법상 국가와 정부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데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건국절 주창자들은 위 두 가지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주길 정중히 공개 요청한다.

 

이장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KIEL) 대학 법학박사(국제법)
- 미국 Yale Law School Visiting Scholar, Hawaii East-West Center Fellow,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국제공법 막스프랑크 연구소 객원연구위원(역임)
- 한국외대 법과대학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한독법률학회 부회장(역임)

-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 위위회 위원장(역임)
-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장/운영위원장, 통일교육협의회 상임공동대표, 민화협 상임공동의장(역임).
- 대한적십자사국제인도법자문위원장,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영문학술저널),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사NGO포럼 이사장,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통령 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정책기획기위원회 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재단자문위원, 외교부 자문위원(역임)

- 민화협 고문,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6.15남측위 상임공동대표, 6.15남측위서울본부 대표상임의장, 서울시국회의 상임공동의장(현재)
-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ILA 런던본부 “Use of Force”상임위원회 위원(현재)
- 진실화해위원회 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해양경찰청 국제해양법위원회 위원, (사)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 원장(현재)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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