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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천출명장 김일성: 미국을 슬프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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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21 13: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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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출명장 김일성: 미국을 슬프게 하다”
 
                                                                                                                                             미주동포연합 위찬미 기자

<로동신문>은 20일 모스크바국립건설종합대학 기관지 <건설인재> 전 책임주필이며 <근로하는 러시아>운동 회원으로 활동하는 러시아인 나딸리야 벨로꼬삐또바가 쓴 “천출명장 김일성: 미국을 슬프게 하다”제목의 글을 소개하였다. 이 글에서 필자는 조선이 미국을 굴복시키고 정전협정을 받아낸 것은 수천 년의 인류역사를 흔들어 놓은 중대사변이며, 김 주석의3대승리철학이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을 이기는 군사적 기적을 가져오게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필자는 1992년 4월 김일성 주석 탄생 80돌 경축행사에 <근로하는 러시아>운동 대표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의 접견을 받았으며, 지금도 김 주석의 걸출한 위인적 풍모에 매혹되어 탄복하던 그 때를 잊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녀는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경축행사 때에도 북을 방문하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조선전쟁시기 전투가 벌어진 곳들을 여러 차례 참관하였다. 그리고 많은 전쟁노병들의 이야기와 조선전쟁에 관한 자료들과 인류전쟁사 연구를 통하여 조선의1950년대의 전승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어 김 주석의 영도로 성취한 조선전승의 세계사적 의미를 세상에 크게 전하고 싶은 충동으로 군사가도, 전쟁사가도 아니며 전쟁에 참가한 적도 없지만 모스크바에서 <7.27-승리하는 조선>이라는 제명의 책을 집필 발행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딸리야 벨로꼬삐또바의 글은 김일성 주석이 조선정전협정조인 문건에 친히 비준을 하던 1953년 7월 27일 22   시로부터 시작된다. 다음은 그녀의 글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72시간 안에 조선을 정복할 것이라고 장담하던 미국은 3년이 되도록 저들이 패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클라크는 정전협정조인문건에 서명한 후 슬피 울었다고 그의 늙은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정전협정조인 후 방송마이크 앞에 나타난 당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구슬픈 어조로 “댓가는 컸다. 이것은 비극적인 것이었고 쓰라린 것이었다.”고 토로하였다.

 

 

 

 


 

 

 

조선의 72시간의 수백 배에 달하는1,129일의 전승이야말로 인류 수천 년 사의 중대 사변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제부터 그렇게 주장하게 되는 세가지 근거에 대하여 서술해 보겠다.

 

중대 사변이라고 하는 첫번째 근거는 조선의 전승은 작은 나라가 대국을 이기는 역사의 서막을 열어놓은 것이다. 인류 역사 수천 년 동안 세계적으로 1만 4,500여 차례의 전쟁이 일어났다. 인류전쟁사는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정치적으로나 군사 경제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 작은 나라들을 침략한 전쟁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류는 이들 전쟁에서 총 36억 4,000여만 명을 잃었다. 전쟁으로 인한 손실의 거의 전부가 작은 나라들의 것이었다. 재난이 이처럼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은 제국들 앞에 정복당하고 굴복당하며 머리숙이고 사는 것을 역사의 숙명처럼 감수하여 왔다. 수천 년이 흐르는 장구한 기간 인류는 작은 나라라도 대국을 이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애타게 기다려 왔다. 이 갈망에 대답한 것이 조선의 전승이었다.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이 대국 정복의 역사가 조선에서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닐가 하는 불안을 마침내 멈춰세운 것이 바로 조선의 전승이었다. 조선의 전승은 비록 나라는 크지 않아도 위대한 영도자를 모시면 대국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 행성에 장엄히 선언한 것이었다.

 

중대 사변이 되는 두번째 근거는 미국의 핵전쟁 기도가 조선의 전승으로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동서방의 언론들은 2차대전 시 트루만이 원자탄을 투하한 목적이 일본을 항복케 하여 전쟁을 매듭지으려는데 있었다고 분석하였다. 허나 나는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아니라 앞으로 미국이 핵으로 조선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핵전쟁 준비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더 강조하고 싶다.

 

사실상 미국은 조선전쟁을 1950년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포성이 멎기 전에 시작하였다. 그 후의 사태발전이 이것을 입증해 준다. 미국이 일본의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투하한 다음 다음 날인 1945년 8월 11일 미 국무성과 육군성, 해군성의 ‘3성조정위원회’가 38°선을 경계로 하여 조선의 이남지역을 강점할 비밀모의를 한 사실, 중요하게는 미국이 1945년 7월 첫 원자탄시험을 한 때로부터 그 생산에 박차를 가하여 왔다는 사실이 큰 무게를 가지고 그것을 실증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전쟁을 개시한 트루만이 원자탄 사용을 내용으로 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는 것과 제3차 세계대전 준비를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사실이다. 이처럼 당시 미국은 조선에서의 원자탄 사용을 공공연히 떠들었다. 러시아 교수 까챠놉스끼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소련의 대도시 20개를 원자탄으로 공격하는 전쟁을 1949년에 시작할 것이라는 극비문건을 만들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소련은 전후 복구사업이 마무리되지 못하였지만 군사 경제적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1949년에 원자탄시험에서 성공하였다. 이 사실은 미국이 조선전쟁을 세계화하고 핵전쟁화 한다면 소련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를 너무나 명백히 해주고 있다.

 

외신들은 트루만이 조선전쟁을 시점으로 조선과 중국, 소련을 핵으로 타격하여 7억의 인구를 전멸시킬 것을 계획하였다고 전하였다. 미 군사기밀 기관들이 공개한 문건들에는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도 조선전쟁에서의 원자탄 즉시사용을 5차례나 주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국은 전쟁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을 때마다 ‘원자탄 즉시사용’이라는 최후통첩장을 내흔들면서 패배의 진펄에서 벗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원자탄 위협 앞에 놀라거나 굴복할 조선이 아니었다. 조선의 전략 전술적 위력과 사상 정신적 위력이라는 두 힘이 미국의 원자탄최후통첩장을 낙엽으로 만들어버렸다.

 

 

 

 

 

중대사변으로 보는 세번째 근거는 조선의 전승은 사상 정신력이 전쟁 승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과시한 위대한 전승이었다. 전쟁에서 무기가 결정권을 가진다는 ‘무기 만능론’이 인류 전쟁사의 수천 년을 지배하여 왔다. 조선의 전승은 전쟁의 운명은 무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 정신력이 결정한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우쳐준 역사적 사변이었다.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안되며 무기도 매우 부족하였지만 사상 정신력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힘이 되어 미국의 대포와 탱크, 함선과 비행기를 짓부셔버리는 군사적 기적을 창조하였다. 결국 조선의 사상정신만능론이 미국의 무기만능론을 무릎꿇게 만들었다. 세계는 조선의 전승에서 사상정신만능론이 승리하는 새시대를 보았다.

 

지금껏 서술한 세가지 근거로 김일성주석이 안아온 조선의 전승이야말로 거대한 정치 군사적 무게를 가지고 인류사의 수천 년을 크게 흔들어 놓은 중대사변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한편, 백악관과 펜타곤은 미국을 슬프게 한 전쟁의 책임을 두고 옥신각신할 때 미국 <뉴욕 타임스>지에 실린 한 서방 군사평론가는 조선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한 이유를 월가의 상인들이 애초에 북조선을 우습게 여긴 것과 군통수 김일성 주석의 풍부한 경험을 갖춘 유격전의 능수라는 점에 응당한 주목을 돌리지 못 한 것이라고 논평하여 매우 타당성있는 주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전쟁에서 탁월한 군사사상을 초석으로 하는 3대승리철학으로 제국주의 대군을 굴복시켰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전쟁에서 기존의 군사이론을 따르지 않고 적들이 감행하는 불의의 침공을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맞받아 나가는 전략으로 대응하였다. 그리고 적후 제2전선 전략도 어느 병법에서 옮겨 놓은 것이 아닌 비범한 것이었다. 김 주석은 조성된 군사정세와 산악이 많은 조선의 조건을 고려하여 최고사령부의 통일적인 지휘 밑에 정규군 연합부대들로 적후에 강력한 제2전선을 형성하도록 하였다. 방어전략 역시 전례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현대전쟁의 특성을 분석한 데 기초하여 산이 많은 조선의 지형에 맞게 갱도를 기본으로 하는 요새화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칠데 대한 적극적인 진지방어전략을 세웠다. 이것 역시 독창적인 전략이었다.

 

김 주석이 승리한 세 전투를 예로 들어보자. 첫번째는 조선해군의 어뢰정 네 척이 미국의 중순양함 볼티모호 함선집단을 기습하여 단 세발의 어뢰로 이 배를 침몰시킨 승리이고, 두번째는 하루사이에 조선의 프로펠러식비행기 2대가 미전략폭격기 B-29들과의 싸움에서 공중요새를 2대나 격추한 승리이다. 세번째는 조선인민군 용사들이 쫓겨가는 적들이 임시수도로 정해놓고 미24보병사단 무력을 진입시켜 방어하고 있던 대전을 하루밤 사이에 완전히 포위하고 적들을 섬멸한 승리였다. 세 전투승리의 군사적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그 승리의 요인은 하나, 김일성 주석의 기묘한 전법의 승리라는 것이다.

 

바다에서의 승리부터 보자. 김 주석은 밤이면 적함선 집단이 부두나 연해에 정박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깊은 밤에 접근전, 기습전으로 적함선 집단을 타격할 데 대한 명안으로 ‘바다의 움직이는 섬’을 수장시켰다.

 

하늘에서의 승리도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공중전들은 프로펠러식비행기들간의 공중전이었다. 조선전쟁시기 분사식비행기의 대대적인 출현은 새로운 공중전법을 기다렸다. 분사식비행기가 속도가 빠른 반면에 선회반경이 크다는 약점을 통찰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선회반경이 작은 프로펠러식비행기로 분사식비행기를 떨구는 새로운 전법들을 썼다. 이 전법들이 ‘공중요새’들을 태평양 건너의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땅 위에서의 승리도 마찬가지로 분석된다. 김 주석은 기존 병법에 구애되지 않고 우회전법으로 야간에 미24보병사단을 불의에 신속히 완전포위하고 소멸하는 전법으로 ‘상승사단’의 운명을 괴멸로 결정지었다. 이처럼 조선은 자기식의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제국들은 세상 사람들이 깊이 잠든 4시, 이 4시에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다. 미국도 바로 이 4시에 조선침략의 첫 총소리를 냈다. 4시는 인간증오와 인간멸살의 상징이었다. 김 주석은 서울해방을 위한 총공격과 대전해방의 총공격 시간을 5시로 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는 적들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조건에서 밤에 전투를 하게 되면 인민들의 생명 재산에 피해를 끼칠 수 있고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될 수 있다고 하면서 서울해방을 위한 공격을 날이 밝은 시간으로 정하였던 것이다. 이는 인간증오의 4시와 인간사랑의 5시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랑의 5시가 증오의 4시를 이긴 것이다.

 

 

 

 

김일성주석의 사랑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적 비행기 3대를 쏘아 떨군 17살의 한 인민군전사가 부모 형제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김 주석은 적구에 있는 그의 고향마을에 친히 한개 연대를 보내어 영웅의 부모와 다섯 동생을 구출해 오도록 하였다. 이 구출 소식은 온 나라를 눈물로 적시게 하였고 당시 조선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오던 가장 가까운 전우인 김책 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이 뜻하지 않게 서거하였다는 비보에 접한 김주석은 비통함을 금치 못하며 떠나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다. 그는 전우의 영구를 극비리에 지방의 어느 굴 안에 잘 안치해 두고 몇 년 동안 특별위수구역으로 엄격히 봉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에야 굴 속에 안치하였던 전우의 영구를 평양에 옮겨오도록 하였다.

 

김 주석은 이렇게 사랑과 정의 열쇠로 병사들의 심장의 문을 열고 인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준 천출명장이었다. 조선은 또 하나의 승리철학, 사랑과 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또 다른 하나 세번째 승리철학이다. 조선방문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참관하면서 알게 된 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리수복이었고 나이는18세였다. 무명고지탈환전투에서 그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은 육탄영웅이었다. 또 다른 육탄영웅과 그를 취재한 종군기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적의 중기화점을 가슴으로 막고 진격로를 연 영웅은 가슴에 11발의 총탄을 맞고 살아남은 영웅이었다. 그런데 눈과 얼굴에 중상을 입고 온통 붕대를 감고있는 한 종군기자가 이 육탄영웅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고, 전혀 볼 수 없고 담가에 실린 몸이었지만 끝내 영웅을 취재하여 세상에 전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에는 불타는 애국영웅들의 이야기가 무수하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굴하지 않은 섬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인천상륙 작전수행을 위해서는 아주 작은 섬 월미도를 점령하여야 하였다. 싸움은 1개의 해안포병중대와 1개의 보병중대로 이루어진 조선인민군과 5만여명의 병력과 수백척의 함선,1,000여대의 비행기를 가진 미군과의 격전이였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해군용사들의 필사전으로 하여 미군의 월미도 점령 기도는 3일 간이나 좌절되었다고 했다. 이로써 조선은 또 하나의 승리철학, 사상정신력으로 대적을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지금껏 설명한 것을 바탕으로 단언컨대 독창적인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철학과 숭고한 사랑과 정으로 이기는 철학, 불굴의 사상정신력으로 이기는 철학, 이 3대승리철학이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을 이기는 군사적 기적을 가져오게 하였다. 3대승리 철학은 동방조선만이 가지고 있는 보검이며 백승을 담보하는 특허 무기이다.

 

필자는 이어 오늘 세계는 조선전승의 계승을 현실로 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끝끝내 조선땅에서 또다시 총포성을 울린다면 조선의 무서운 타격 앞에 1950년대 전쟁 때보다 더 비통하고 쓰라린 마지막 패전의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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