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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 특집 - 조선인민군 창건 83돌의 역사와 조 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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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23 03: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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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5일은 조선인민군창건절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1932년 4월 25일  김일성 주석께서  창건 하여 일제와 무장투쟁을 시작하였다. 
 
1932년의 그날로 부터 오늘에 이르는 조선인민군의 80여성상은 탁월한 선군영장들에 의하여 언제나 승리만을 떨쳐온 영광의 노정이였다.

김일성주석의 영도밑에 혁명군대부터 튼튼히 꾸려야 무장한 제국주의를 타승하고 혁명의 승리를 이룩할 수 있으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자주적으

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 김일성주석께서 밝히신 선군혁명의 원리이며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의 핵이였다.

독창적인 선군사상을 제시한 그는 그를 구현하여 조선인민군의 전신인 조선인민혁명군(1932.4.25)을 창건함으로써 선군영도의 시원을 열었다.
그이의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은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간고한 조건에서 일본군대와 맞서싸워 마침내 조선의 해방을 이룩하였다.

해방후 김주석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무력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군건설방침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 1948년 2

월8일 정규적인 조선인민군이 자기의 탄생을 선포할 수 있게 하였다.

그의 탁월한 선군영도가 있었기에 청소한 조선인민군은 지난 6.15전쟁(1950-1953)시기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연합세

력의 침략을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할 수 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영도하 에서

김일성주석의 선군령도를 이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60년 8월25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 류경수제105탱크사단에 대한 현지 지도로 부터 선군

영도를 시작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과 꼭 같이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영활무쌍한 지략을 지닌 희세의 선군영장이시였다. 

그는 노출된 현상에서 은페된 본질을 순간에 꿰뚫어보는 신비로운 통찰력과 아직은 그 누구도 감촉하지 못하는 자그마한 군사정세의 변화에서도 그

것이 빚어낼 앞날의 사태를 멀리 앞질러 내다보며 빈틈없는 대책을 세우는 비범한 선견지명을 지니고 있였다. 

그에 의하여 조선인민군은 강력한 공격수단과 현대적인 방어수단을 다 갖추고 그 어떤 대적도 감히 범점할수 없는 무적의 강군으로 강화발전될수 있

었다.

그이의 지략은 완강성과 결단성, 영활성으로 하여 《초대국》이라 자처하는 미국과의 군사적대결전에서 조선이 언제나 이기는 근본담보로 되여왔다

. 그는 끊임없이 이어가는 군시찰의 길에서 조성된 정황을 명철하게 통찰하고 조선인민군장병들에게 영활무쌍한 작전적 방안들을 펼쳐주였으며 적

들을 일격에 타승할 수 있는 전략전술과 전법을 가르쳐주었다.

지난 6.25전쟁이후 1960년대의 미국무장간첩선《푸에블로》호사건과 미국대형간첩비행기《EC-121》사건, 1970년대의 판문점사건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초의 핵대결 등 준엄한 조미대결전 때마다 조선의 군대와 인민이 이룩한 승리마당에는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으로 조성된 정

세와 정황을 명철하게 꿰뚫어보고 대응책을 세워나가며 비범한 예지와 그 누구도 예측할수 없는 신묘한 수로 적들의 급소를 때려 무릎을 끓게 한 위

대한 선군령장으로서의 그이의 탁월한 지략이 놓여있었다.


김정은최고사령관의 손길아래

오늘 조선인민군은 또 한분의 위대한 선군령장인 김정은최고사령관을 모시고있다. 그의 정력적인 선군령도아래 조선인민군의 위력은 최상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군사적안목으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사상과 군사전략사상을 심화발전시킨 그는 첨예한 반미대결전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고 연전연승을 안아오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군현지시찰의 길에 해당 군종과 병종, 전문병분야의 군사전문가들도 무색케 하

는 기묘한 작전전투 방안들을 밝혀주고 미국과 온갖 적대세력들이 몰아온 압살의 풍파를 길들여 핵보유국으로서의 조선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는 만

능의 영장, 희세의 전략가이다.

오늘 김정은최고사령관은 세계정치무대에서 담력과 배짱이 제일 강한 영도자로 공인되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주, 선군, 사회주의길을 끝

까지 걸어갈 철석의 의지를 선언하신 그는 천만대적도 발아래로 굽어보시며 적들의 강경을 초강경으로 단호히 짓부셔 버린다. 적들의 대규모전쟁연

습이 벌어지고 있던 일촉즉발의 시각에 최전연의 초소들을 현지시찰하고 나라의 영공을 개방한 상태에서 비행사들의 대회합을 성대히 진행하도록 

한것만 보아도 그는 얼마나 담력과 배짱이 강한분인가 하는 것을 잘 알수 있다.

선대수령들의 영군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의 령군술의 근본특징은 숭고한 뜻과 인덕으로 군인대중의 사상과 감정, 마음을 틀어잡고 일심의 대군의 

위력으로 언제나 승리를 이룩해 나가는데 있다. 그의 손길아래 조선인민군군인들 모두가 사상정신적 면에서 보나 군사 기술적면에서 보나 무적의 강

자들로 억세게 준비되게 되였다.

대를 이어가며 위대한 선군령장들을 모셔가고있는 조선인민군은 길이 승리만을 떨쳐가게 될것이다.
 
일화


오바마의 《명언》


《실패를 통해 많이 배울수 있다.》

이것은 미국대통령 오바마의 《명언》이다. 하다면 70년에 걸치는 조미대결과정에 선임자들이 당한 실패에서 오바마는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아이젠하워의 실토

1950년 6월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요람기에 타고앉아 저들의 세계제패실현을 위한 교두보를 확대하려는 야망으로부터 조선전쟁을 일으

킨 미국은 이 전쟁에 저들의 육해공군은 물론 15개 추종국가군대들, 남한국군, 구일본군의 잔당들까지 포함하여 200여만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였

다. 하지만 미국은 참패만을 거듭하였다.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트루맨에 이어 1953년초 대통령으로 취임한 아이젠하워는 궁지에 빠진 전쟁상황을 돌려세우기 위해 《신공세》작전을 

벌렸다. 그러나 조선전쟁에서 미국의 최후의 도박이나 같은 《신공세》는 풍지박산 되고 말았다.

1953년 7월27일 미국은 저들의 항복서나 다름없는 정전협정에 조인하였다. 정전협정이 서명된지 59분만에 방송마이크앞에 나타난 아이젠하워는 

《이것은 비극적으로 쓰라린것이다.》라고 실토하였다.

죤슨의 개탄

1968년 1월23일 미국무장간첩선《푸에플로》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해에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벌리다가 나포되였다.

당시 미국대통령 죤슨은 백악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이 사건을 미국에 대한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핵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호를 

포함한 방대한 무력을 한반도 주변에로 전진배치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였다. 미국은 나포된 선원들과 배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보복》을 가하겠다

고 조선에 최후통첩을 보내였다.

조선에서는 미국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는 선언이 울려나왔다.
기기 꺽인 미국은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엄숙히 사죄하는 문서를 바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죤슨은 《미국이 생겨 력사에 남긴 사죄문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라고 개탄하였다.

부쉬의 《공적》

2001년초 부쉬는 집권하자마자 조선을 《악의 축》으로 몰아대면서 이전 행정부가 합의를 본 조미기본합의문을 전면백지화 하였다. 조선에 대한 

정치경제적 및 군사적압박공세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였다. 부쉬행정부는 조선을 핵선제공격대상으로 까지 선포하였다.
부쉬는 이렇게 새로운 핵위기를 몰아옴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공적》을 세웠다.
부쉬행정부의 가증되는 핵압살위협에 대처하여 조선은 자기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는 입장

을 표명하고 핵시험을 단행하였다.
마구잡이로 《유일초대국의 막강한 힘》을 휘두른 부쉬의 경거망동이 세계에 새로운 핵보유국을 출현시킨것이다.

오바마의 교훈

선임자들의 실패는 힘으로는 조선을 어쩔수 없다는 교훈을 새겨주었다.
오바마도 그것을 인식한듯 대통령으로 당선되기전부터 조미적대관계의 《외교적 해결》에 대해 떠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광고는 진심이 아니였다. 그는 당선되기 바쁘게 조미관계개선과는 거리가 먼 《전략적인내》를 정책화하였다.

오바마행정부에서 《전략적인내》정책을 이끈 전 미국무성 부장관 스테인버그는 오바마의 행동이 조선의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파괴하고 이 나라를 

압살할 수 있는 방법이나 묘술이 더이상 없었기때문에 나온것 이라고 실토하였다.
조선은 미국의 《전략적인내》정책이 시간을 끌어 후날에 가서라도 조선을 기어이 압살하기 위한 술책임을 간파하고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

로선을 제시하였다.

미국에서는 오바마의 《전략적인내》정책이 조선으로 하여금 로케트기술을 향상시키고 핵탄두를 소형화하는데 성공하도록 하였고 미국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 증대》되도록 하였다는 강경세력의 분통이 터져 나오게 되였다.

오바마가 지금 대조선《인권》소동에 매달리면서 《강경자세》를 취하고 있는 데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년말년시에 극심한 인종차별만행으로 수라장이 된 국내정사는 돌보지 않고 하와이섬에서의 《골프물의》를 일으켜 내외의 비난속에 허둥거

리던 오바마가 황급히 조선에 대한 추가제재를 노린 《대통령행정명령》을 발동시키고 조선을 자극하는 폭언을 일삼고 있는 것은 미국을 더욱 헤여

날수 없는 궁지에로 몰아넣는 자멸행위일뿐이다.
조선은 미국과는 더는 상종하지 않을것이며 최후결전으로 미국의 종말을 가져올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과연 미국이 지난 70년간 조선에 대하여 힘과 강권을 적게 써봤는가.
그것이 조금이라도 효과를 본적이 있는가.

오바마는 《실패를 통해 많이 배울수 있다.》고 했는데 자기 말대로 선임자들과 자기자신의 선행한 대조선정책에서의 쓰라린 실패에서 똑바로 교훈

을 찾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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