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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 평양방문 발표회 온라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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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2-13 06: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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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 평양방문 발표회 온라인 행사가 12일 진행되었다.

코레아뉴스 편집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지역 6.15 동포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한 이번 행사는 코로나 비루스 대전염으로 만남이 금지된 상황에서 온라인 줌 링크로 준비하였다.

행사에는 유럽은 물론 한국 일본 미국 중국 카나다 홍콩 베트남 뉴질랜드등 전 세계에 살고있는 동포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 하였다. 

회의는 조인학 운영위원의 사회로 시작하여 이번 행사를 앞장서 준비한 선경석 상임대표가 간략한 개회사와 지구의 여러 곳에서 참여한 동포들을 소개하였다. 

6.15 유럽지역위원회 각 연대 단체를 대표하는 장일중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 회장, 한민족유럽연대 김진향 공동대표,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의장 리준식 공동대표의 간략한 인사말이 있었다. 

이번 회의에는 6,15 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조선오 사무국장이 참석하였다.

화상 회의 제 1부는 김정희 파리 민족의 집 대표의 " 나의 조선방문 " 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35년 동안 살고있는 김정희 대표는 일본과 중동에도 살아본 경험 가진 평범한 사람 있었다 고 자신을 소개 하며 해외에서 항상 의문을 가진 것은 서구언론들의 북조선에 대한 일방적 악마 화였다 하면서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북을 방문한 그는 깨긋한 거리와 친절하고 예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며 금방 친숙해저 만나면 서로 포옹하는 그들을 보며 내가 사는 프랑스나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풍경이었다 하였다. 

아래는 김정희 대표의 강연 전문 이다.   

북조선을 방문하게 된 계기와 첫인상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 설날에 이렇게 뵈면서 인사를 드리게 되어 아주 반갑네요.

615유럽지역위에서 이렇게 귀중한 기회를 만들어 주신 데 감사합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30년 이상을 살고, 미국, 오스트리아, 바레인 쿠웨이트 등 중동에서도 살아 40년이 넘는 기간을 해외에서 생활을 한 김정희 프랑스 동포입니다.

저는 지금 은퇴한 상태라, 아이들 키우고, 직장 다닐 때 보다 시간이 넉넉해서 남과 북을 넘어 북 바로 알고, 북 바로 알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제가 해외에서 살다 보니, 매년 남한에서 한미군사합동훈련을 할 때마다, 해외 언론이 평소때는 북조선에 대한 기사한 줄 안 써주다가 이럴 때 오두 방정을 떨면서 남과 북의 긴박한 갈등을 기사화할 때, 그들이 우리역사를 잘 모르고 북을 일방적으로 악마화 하는게, 저 한테는 답답하고, 큰 불만이었어요. 저의 경우는 조선말 즉 우리말을 아니, 북에서 나오는 발표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 잖아요. 북조선 발표문에는 분명하게 미국이 선제적 침략도발을 한다면 북조선은 불과 화약으로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매번 항상 그렇게 표현했는데 서방의 언론은 북조선에서 발표하는 문장은 싹 빼고, 대대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북조선 코앞인 서해 앞바다에서 진행할 때 북조선이 느끼는 안보위협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없이, 마지막문장에 불바다를 만들겠다는 한마디를 가지고, 북이 당장 전쟁을 하는 것으로 위기로 포장하면서 악마화 하는 것이 서방언론의 상투적이고 의도적으로 북조선을 악마화하는 프레임으로 엮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연례적으로 하는 군사훈련이라고 미국이 발표하는 말로 가볍게 언급하고, 별로 큰 문제가 없는데 NORTH KOREA, DPRK가 전쟁을 하려는 이유로 삼고 있다는 거죠.

그렇지만 내용면에서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얼마나 많은 미군과 한국군이 동원되고 전략 무기를 동원하고 죽음의 백조라는 B1, B2, B26등 폭격기가 북상공에 근접한 남한 동해지역을 비행하고 조선의 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북조선 정권을 몰락시키는 참수작전을 하는 훈련내용이 있다는 언급은 없고 오직 북의 발표문 단어에 집중을 하는 불공평한 악의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리고 서방언론이 북조선을 남한의 위험한 이웃나라라고 표현을 쓰는 것이 잘못된 표현인 것을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남과 북은 형제 자매나라지 이웃나라가 아니라는 설명을 내가 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거죠. 남한에나, 북조선에게 이웃나라는 중국, 러시아,일본이지 남한과 북조선의 관계는 형제 자매지 이웃이 아니라는 거죠. 

물론 국제법적으로는 서로가 다른 나라로 인정하는 것은 확실 하지만, 남과 북의 갈등을 설명할 때나 원인을 안다면 이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남과 북의 문제를 서방사람들도 이해하게 설명해 줘야할 필요성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보고 체험하고 느끼는 실행적, 현장 검증적 공부를 해야만 저도 북의 체제를 이해하고 알고 옳을 것은 옳다고 말 해야 할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북조선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조선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낌은 -저는 적어도 50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을 한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첫인상은 깨끗하고 정돈된 나라입니다. 북조선은 아주 정갈하게 정리 정돈이 된 나라로 보였어요. 물론 평양 순안 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갈 때 많은 사람들이부지런히 걸어 다니고, 옷모습이 좀 다르지만, 만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냥 금방 친해지는 아줌마나 아저씨였고 귀여워 보이는 아이들이 였습니다.

그리고 북조선 사람들이 남한사람들과 같이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너무 같은 점이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호텔 책방이나 커피점에서 봉사원여성들과 친해지니 저한테선생님하면서 팔장을 끼더라고요. 유럽에서는 물론 이렇게 빨리 친해 질 수도 없지만 남의 팔장은 친구라도 잘 안끼는데, 북조선 봉사원아가씨들이 팔장을 끼는게 남한에서 나도 많이 해본일 인 거죠.

북조선사람들의 행동, 남자들이 술을 좋아하고, 노래방에 가는 거 좋아하는 피상적인 것 외에도 말속에 묻어나는 일상얘기, 예를 들어 자식이야기 할 때의 운전기사 아저씨가 아들이 김일성대학을 다닌다고 자랑하듯이 말하는 게 마치 이웃아저씨가 아들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남자 안내원 동무가 전화로 동료들과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북의 억양이 섞인 말들도 남한의 남자들 사회에서 흔히 듣는 말이었어요. 이런 공통된 부분들이 75년이 넘은 분단의 세월 속에서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생활 습관이라고 봅니다.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나오는 일란성 쌍둥이들이 하는 행동인 거죠.

북조선의 음식문화나 우리의 음식문화가 너무 같기 때문에 북조선의 토장국(배추 된장국)이 아침식사로 나올 때는 외국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거로 느껴지지 않는 거죠. 김치는 물론이고요. 그렇지만 다른 건 북조선 사람들은 우리 남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 보다 균형이 잡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보였어요. 농담을 해도 그렇고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인 거죠. 이들의 생활방식이 공평 평등이 우선이니 훨씬 직설적인 농담도 재치있게 잘하는 모습으로 보였어요.

한번은 평양호텔노래방에서 그때가 7차 당대회가 끝난 2016년 5월 이었습니다. 당의 중요직을 맡은 사람이 그날 아주 좋은 일이 있어서 만취가 되어 노래할 때 콧물 침 물이 나와, 우리가 보기에는 참 딱하게 체면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노래방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는 봉사원여성 동무가 닦아주고 막 흔들면서 정신차리라고 꼬집고 머리를 흔들고 하는 등 우리 일행 앞에서 막 대하더라고요. 저는 놀랬죠. 저 봉사원 여성동무가 어쩌자고 후과를 생각하지 않고 저렇게 하는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봉사원 여성동무는 그 간부의 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또 놀랬어요. 남한에서는 그런 고위층 딸이 호텔노래방 봉사원일을 한다는 자체가 상상이 안가지만, 북조선은 직업이 공평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직업의 귀천이 있다는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한 거죠.평양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2014년이 였습니다. 물론 고난의 행군이 거의 끝날 무렵이라 아직도 고난의 행군의 상처가 보였지만 제가 2016년 두번째 방문 때는 이미 새로운 성장의 길로 들어선 것이 보였습니다. 희망의 시대가 온 거죠. 제 7차 당대회가 끝난 후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더 신나
보였습니다. 평양 길거리에 다니는 분들의 옷 색깔이 다양하고 여성들이 멋 부리고 화장한 모습은 훨씬 경쾌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사람들은 남한 정부를 악의적으로 말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는 게 놀라웠어요.저의 안내원들도 남한이 어떤 지 관심은 갖고 물어보고, 님의 행진곡은 어떤 노래냐, 한번 불러봐라 했지만 남의 정부를 가타부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더라구요. 북조선 사람들은 아주 논리적이에요. 잘 모르는 것은 입다물고 있는 거죠. 이것이야 말로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최고로 높은 예절이고 지적수준이 아닌가 해요.

평양의 건물과 외적인 변화의 모습은 2012년에 세워진 창전거리, 2016년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과학 기술 전당 등이 세워지면서 계속적으로 부드럽고 둥근 곡선의 현대식 유리자재를 사용한 건축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전쟁후에 지여 진 관공서들은 북의
전통적 건축자재로 흰색과 회색의 대리석과 화강암입니다.

건물에 무슨 광고판은 없지만, 학교건물에는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버스에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이라는 문구가 있어 이런 문구를 보면서 놀래기도 하고 감동도 했습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조국의 부국 부강과 직결이 된다면, 누구인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발공장에는 인민을 위해 신발생산을 높이자고, 화장품공장에는 인민을 위하여 더 좋은 화장품을 생산하자 입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를 실천 실행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북을 5번 다녀왔다고 북을 다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계속 북을 다니면서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알릴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상입니다. 김정희 파리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제 2주제 방북 이야기 : 평양의 우리말을 김미선 SOAS대학 (영국)박사가 하였다.

한국어, 조선어 남에서는 한국어가 당연하지만 북에서는 조선어라 하였다. 언어적 분단스트레스라고 이름부친 김미선 박사는 한국어도 조선어도 아닌 우리말이라 하였다.

우리말을 연구하기 위해 북을 방문하여 조선어 학회 학자들과 만났다. 당시만 해도 한국여권 가진사람은 오지 마라하여 한국여권소지자인 나도 해당하였는데 일본 총련의 도움으로 방북하게 되었다.

북에서 우리말을 연구하는 나에게 새로운 말은 남새, 닭알등 이었다, 한국에서 거의 사용 하지않은 단어들이었다. 
건축양식도 특별하였고 백화점의 매점대에는 솔꽃가루(송화가루) 등 순수우리말을 사dud하였다.
북은 해방후 국가건설시 첫재로 문맹퇴치운동을 하였다 한다. 

한자의 폐지와 평양 문화어를 사용하게 하였다.

남에서는 연세많은 분을 어르신이라 부르는데 북에서는 늙은이라하여 놀랐다, 남쪽에서 늙은이라 하면 오해하게 된다.
체제는 사회주의라 다르지만 처음 갔을때 유원지에서 놀이하시는 분들이 같이 밥먹고 가라 하였고 금강산 큰바위에서 노래하고 춤도함께 추었다.

해여질때 작별을 아쉬워 하며 눈물짓던 그 모습을 보며 떠나올때 왜 우리는 만나고 싶어도 마음데로 가고 오기를 못하는지 하는 슬품을 느꼈다. 북은 무서운 곳이 아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평양에 다시 가보려 합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우리 역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김미선 박사의 원고가 도착하연 첨부 하겠습니다.

이번 온라인 행사에는 액 70여명이 참석하여 두 강연자들의 진솔한 방북소감을 감명깊게 들었다.
회의는 약 두시간 이상 진행되었고 질문시간을 가진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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