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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리아뉴스 | <사회문화비평> 2015년 부근에, 전단 그리고 시가 선택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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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2 04:2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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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 탄저균보다 더 맹독적인 것?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연기되는 등 메르스 사태가 한국사회를 급격히 공포를 몰아넣는 가운데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아울러, 최근 주한미군이 한국에 들여온 탄저균 보다 보다 더 맹독적인 것이 있다는 말 역시도 그것과 함께 돌고 있다.

 

지난 2013년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으로 한해 내내 시끄러웠다. 2014년은 세월호 참사가 온 나라를 뒤엎었다. 이어 지금 2015년 중반기는 메르스와 탄저균이 온 나라를 덮고 있는 모양새다.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지목당한 것은 대통령이었다.

 

연합뉴스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10일 오후 5시께 부산시 부산진구 일대에 전단 1천여 장이 뿌려진다.

 

'메르스 보다 대통령이 더 무섭다’


그 전단이 달고 있는 제목이었다. 

전단에는 "세월호로 아이들이 죽고 메르스로 어른들이 죽어도 대통령은 책임지려 하지 않고 국민들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이라는 내용도 덧붙혀져 있었다.

 

한국사회는 그렇지만 메르스 사태로 인한 공포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오산미군기지가 미국으로부터 탄저균을 배송 받는 사건 역시 사람들을 얼마든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는 것으로 된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한국에 들어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한국에서 탄저균 실험실을 오랫동안 그리고 여러 곳에서 운영해왔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메르스 보다 더 무서운 것이 탄저균이라고 했다. 메르스가 45%의 치사율을 보이는데 반해 탄저균은 95%의 치사율을 보인다는 것을 그 가장 쉬운 근거로 들었다.

 

그렇지만 뉴스는 탄저균보다 더 무서운 것이 더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보툴리눔이 그것이다. 미군이 한국에서 보툴리눔 실험도 했다는 것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놀랄 수 밖에, 무서워 할 수 밖에 없었다. 탄저균이 100kg으로 최대 300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생물무기인 것에 비해 100만명을 단 1g으로 죽일 수 있는 것이 보툴리눔이라는 생물무기인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세균전 실험장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무서움만큼의 비중으로 커져가고 있을 즈음, 그 한 가운데를 누군가 스윽, 하고 지나간다.

시인이었다.

 

“탄저균보다 보툴리눔 보다 더/지독한 맹독성 폐기물/바로 ‘주한미군’이다“

당연하게도, 말이 아니라 시였다.



경찰은 '메르스 보다 대통령이 더 무섭다’는 제목의 전단을 뿌린 사람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메르스 보다 대통령이 더 무섭다는 전단을 뿌린 사람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인 것에 비해 탄저균보다 보툴리눔 보다 더 맹독적인 것이 주한미군이라고 한 시인은 다 드러나 있다.


그 시인은 인터넷 블로그인 <길 위의 시>에 있다.

 




악의 축, 미제

 

                   권말선

 

 

악마를 보았는가

'주한미군' 이라는 이름의

악마를 보았는가

 

남의 땅에 기어 들어와

찌르고

쏘고

짓이기고 부수며

음습한 눈으로 피를 찾는

교활한 흡혈귀 본능

탄저균보다 보툴리눔보다 더

지독한 맹독성 폐기물

바로 ‘주한미군’이다

미 제국주의자들이다 

 

동맹이니 평화니

외쳐대지만

전쟁과 탈취와 협잡으로

일그러진 얼굴

가면은 벗겨졌다

 

미제야말로 괴물임을

악마임을

온 세계 악의 축임을

가리키는 무수한

손가락들 있다

눈초리들 있다

저벅저벅 조여 가는

발걸음, 발걸음들이 있다!

 

어떻게 몰아낼지

보라!

어디까지 쫓아낼지

보라!

 

정의의 불화살

바다에서 솟아오르고

의로운 눈

우주에서 빛을 뿌리며

미제의 심장을 노린다

 

잿더미처럼 바스라져

연기처럼 사라져

영영 없어져 버려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리라


악의 축, 미제여



<길 위의 시>는 동인지다. 
우리사회의 자주와 민주 그리고 통일을 노래하는 시인들로 구성되어있다. 민통선의 평화교회 이적 목사가 이끌고 있는 <분단과 통일시>에 이어 현 시대의 살아있는 또 하나의 동인지로 평가받고 있다.

뉴스는 경찰이 '메르스 보다 대통령이 더 무섭다’는 제목의 전단을 뿌린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에 대해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등을 토대로 추적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보도했다.
 
신원이 밝혀지면 그는 대통령 명예훼손죄를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사례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에 대해 ‘탄저균 보다 보툴리눔보다 더 지독한 맹독성 폐기물’로 묘사한 시인에 대해서는 공안당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시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내놓고 있는 걱정의 자락들이다. 현실을 직시하면 그러한 걱정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황교안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 현실의 한 축이다.
황교안 총리 내정자는 이른바 ‘공안통’으로 알려져 있다. ‘공안검사’ ‘공안장관’ 이라는 말이 수시로 그 곁을 따라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황교안 총리내정자가 낙마하지 않는다면 ‘공안총리’로서의 위상에 걸 맞는 일을 얼마든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이유다.
 
주한미군 명예훼손죄를 들고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더 쉽거나 혹은 더 간단한 것이 있어서다. 국가보안법이다.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했다고 하면 되는 것이어서 국가보안법이 제격일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적 목사가 지난 7일 보안수사대에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내용에서도 이는 잘 확인된다.
 
“애기봉 성탄트리 반대 발언을 대중선동으로 몰며 북측과 동조 발언을 한 것으로 몰았습니다”

그 페이스 북에는 아울러, 공안기관이 이적 목사가 동인지 <분단과 통일시>에 발표한 시 중에서 <해적선>에 대해 ‘반미선동’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시 ‘유신공주’를 ‘대통령모독죄’로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보고 있다는 것도 곁들여져 있었다.  

전단을 뿌린 사람이 경찰의 추적을 받고 주한미군의 악행에 대해 고발하는 시인에 대해 걱정을 해야하는 이러한 현실은 왜 생겨난 것일까?
 
그동안 전단은 사실,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 
수년 동안 그랬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맞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작동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었다.

시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저 책속에서만 있는 것이 그 동안의 시였다. 혹은 약간의 짙고 심하게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흐느적 거리는 음악과 함께 고상한 취미의 영역정도로 존재했던 것이 시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전단 그리고 시들이 이렇듯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 많은 현실은 전단과 시의 존재방식을 이렇게 바꾸어진 것이 지금의 이 시대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또렷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전단과 시가 알려주는 것은 무섭기도 하지만 차라리 준열하다. 비극적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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