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권력의 130년 행태…검수완박이 꼭 필요한 이유
지난 2019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있는 서초동에 검찰개혁을 열망하는 촛불 시민들이 모였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 처음으로 잇달아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검찰개혁”을 외쳤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은 대선 후보가 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죠. 대검하고 서울지검 앞에 수만 명, 얼마나 되는 인원인지 모르겠는데 (중략) 거의 검찰을 상대로 협박을 했습니다. 이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어떤 정권도 이런 정권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무법천지죠. 과거 같으면 다 사법 처리될 일입니다.”
-윤석열이 국힘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월 8일 국힘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 출연해 한 말.
이렇듯 윤석열은 “사법 처리”를 운운하며 촛불 시민들을 겁박하고 나섰다. 윤석열 스스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 민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힌 셈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윤석열로서는 당연한 인식일 수 있다. 애초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이 독재·보수세력에 붙어 시민들을 폭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해온 검찰권력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검찰은 나쁜 권력에 붙어 부정부패와 표적 수사를 일삼는 집단으로 인식돼왔다.
국내에는 검사가 저지르는 부정부패, 정치개입 등 중대범죄를 주제로 다뤄 흥행한 영화가 여럿 있다.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 「검사외전」, 「더킹」 같은 영화에서는 부정부패에 찌든 검사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검찰은 입맛에 따라 집단 내부의 추잡한 성범죄, 부정부패 등 자신들의 치부는 몽땅 덮고 나쁜 권력자들을 편드는 선택·편파적 수사를 벌이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영화의 묘사는 검사 집단을 바라보는 대중의 일반적인 시선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권력을 악용한 검찰의 부정행위는 실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쥔 검찰은 부정부패, 중대범죄임이 명확한 혐의에도 한솥밥 먹는 검찰에게는 줄줄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 2020년 12월 서울남부지검은 라임자산운용에서 수백만 원 넘는 술 접대를 받은 검사들을 ‘99만 9,000원 이하 금액을 대접받았으니 죄가 없다’라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범죄 의혹을 받는 검사가 실제로 기소된 비율은 0.1%에 그친다. 이는 범죄 의혹을 받는 일반 시민 중 40%가 기소되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치다.
고위직으로 눈을 돌려보면 특수강간·뇌물죄 혐의를 받아온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 고발사주·판사사찰의 몸통으로 지목받던 전 검찰총장 윤석열, 검언유착 혐의를 받던 전 검사장이자 윤석열의 최측근 한동훈이 줄줄이 검찰의 불기소·솜방망이 기소 처분을 받았다. 특히 검찰은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에 휩싸인 윤석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이러한 검찰권력의 전횡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수사권·기소권 독점으로 대표되는 검찰권력의 폐해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구한 말 1895년 일제가 갑오개혁에 개입하면서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이 담긴 재판소 구성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1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권·기소권을 잡고 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이 친일파 세력을 비호하면서 친일 검찰의 체계를 그대로 남겨뒀다. 이후 검찰은 군사독재세력의 하수인으로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둘러 숱한 시민들을 반공세력, 빨갱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사형도 구형했다. 한 마디로 검찰은 7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시행령 개악으로 검수완박 무력화…헌법 무너뜨리는 한동훈
불의한 검찰권력은 청산되기는커녕 이제는 전 검찰총장 윤석열을 앞세워 대권까지 집어삼켰다. 대통령 윤석열은 내각, 대통령실, 국정원, 금융감독원 같은 요직에 최측근 검찰 출신 인사들을 앉혔다. 괜히 각계에서 ‘윤석열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검찰은 전 세계를 둘러봐도 사례가 없는 막강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검찰은 수사권에서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자체 수사 인력 ▲검경 조서 증거능력 차이(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보다 우선하는 것), 기소권에서는 ▲수사종결권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공소취소권을 모두 쥐고 있다. (오는 9월 10일로 다가온 검찰개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인 2022년 8월 기준)
윤석열은 광복절 77주년 경축사에서 “공산 세력에 맞서 자유국가 건국”,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노동조합의 투쟁과 관련해)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며 낡아빠진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권력에 맞서는 시민, 노동자, 진보진영을 적으로 간주해 수사와 기소로 찍어누르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로 풀이된다. 이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윤석열만이 아니라 검찰 내부 전반에 깔린 인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부터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이란 말을 줄기차게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불법과 무원칙, 불공정과 몰상식이 가득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을 둘러싼 본부장 비리, 그중에서도 김건희의 주가조작·경력조작 의혹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사조차 되지 않고 묻힌 상황이다.
윤석열은 아예 검언유착 의혹에 깊숙이 연루된 최측근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소통령 한동훈’은 기존 검찰 소통·인사 검증을 담당하던 민정수석실의 권한까지 넘겨받아 막강해진 법무부의 장관이 됐다.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 국회 청문회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위법 장관’ 한동훈은 검찰총장 추천위원회를 열지 않고 친윤석열 검사들을 고위직에 꽂는 위법을 저질렀다.
이렇게 윤석열이 한동훈을 앞세워 ‘윤석열 앞으로 나란히 섯!’하는 검찰 독주체제가 점점 굳어지고 있다. 윤석열의 최측근이자 검찰 출신 인사가 요직에 앉은 국정원, 대통령실은 2년 전 서해 공무원 사건을 갑자기 끄집어내더니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종북 인사’로 낙인찍으려는 반북 여론몰이까지 벌였다.
그러나 노골적인 반북 색깔론은 민심의 철퇴를 맞았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60%가 넘는 국민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공화국”이라고 답했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나날이 추락해 20%대에 머물고 있고 부정평가는 무려 70%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은 한동훈을 앞세워 또 다른 노림수를 꺼내 들었다. 지난 8월 11일 한동훈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개정안’을 오는 8월 29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발표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 범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기소 권한을 부패·경제범죄로 제한한 검찰개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한동훈은 오는 9월 10일 시행을 앞둔 개정안에 남아있는 검찰의 수사 권한(부패·경제범죄)을 확대하는 편법을 꺼내 들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공직자·선거 범죄를 부패·경제범죄로 넓게 해석해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으로 포함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한동훈 직할 체제로 편성된 검찰이 이재명 의원 같은 야권 유력 인사들을 겨눠 대대적인 표적 수사를 벌이는 것도 손쉬운 일이 된다.
한동훈의 만행은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입법권을 하위 법령인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하려는 작태다.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헌법을 파괴하는 폭거, 쿠데타다.
그런 의미에서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 진짜 민생 챙기기”라는 한동훈의 말은 윤석열과 한동훈이 꿈꾸는 검찰공화국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검찰권력을 철옹성처럼 쌓아 자신들과 적폐 기득권이 저지르는 범죄는 가리고, 방해가 되는 진보진영은 수사와 압수수색·기소로 탄압하는 공포 통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권력을 뿌리 뽑을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실현은 우리 삶 전반을 좌우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 알면서도 눈 뜨고 당한 민주당
문제는 국회에서 윤석열 정권의 시행령 개악을 막아야 할 거대 야당 민주당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이 한동훈을 앞세워 검찰의 수사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무기력했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 같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윤석열 검찰공화국을 견제하려면 서둘러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 흐름을 타고 ‘검수완박 원안 처리 고수’를 주장해온 박홍근 의원이 원내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내부에서는 단독으로 국회 원 구성을 해서라도 검수완박 원안 처리, 검찰을 대체할 수사기구 설치를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결국 말뿐이었고 민주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난 4월 30일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 박병석, 국힘당의 야합으로 누더기가 된 ‘검수덜박(검찰 수사권 덜 박탈) 법안’이 통과됐다. 해당 개정안에는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을 부패·경제범죄로 제한, 수사 검사·기소 검사를 따로 구분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6대 중요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검찰의 수사를 완전히 배제, 검찰에게는 기소만 맡기기로 한 검수완박 원안에서 매우 크게 후퇴한 것이다.
특히 개정안에는 해석에 따라 검찰의 수사 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남겨둬 문제가 됐다. 먼저 어떤 범죄가 부패범죄이고 경제범죄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검찰의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또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로 명시한 원안을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라고 적시했다. 이 역시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검찰의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다. 한동훈은 바로 이런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시행령 개악에 나선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윤석열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170석에 가까운 의석을 가졌고 얼마든지 검수완박 원안을 밀어붙일 수 있던 민주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민주당은 개혁에 철저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보수·적폐세력의 눈치를 보며 타협했다. 그 결과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검찰세력에 정권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우물쭈물 미적대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횡포로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지금처럼 민심에 등 돌리는 헛발질을 계속하는 한 민주당이 대안 정치세력으로 받아들여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