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코레아뉴스 | [아침햇살190]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 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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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8-24 15:4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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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19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며 강력히 규탄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담화에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 “우리와 일절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과 같은 표현들이다.
대화 거부를 넘어 아예 남남으로 지내자는 투다. 상대에게 아무런 기대도 없고, 괜히 말 섞으면 싸움만 날 것 같을 때 하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지난 7월 27일 ‘전승’ 69돌 기념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을 향해 “때 없이 우리를 걸고 들지 말고 더 좋기는 아예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고 하였다. ‘서로 상대하지 않는 것’이 북한의 대남 정책 아닌가 싶은 정도다.
2. 북한의 3단계 변화
사실 북한의 행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이를 크게 3단계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1) 1단계: ‘선대선’
2018년 역사적인 4.27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온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이 시기에 남과 북은 4.27판문점선언, 9월평양공동선언, 판문점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 등 중요한 합의를 채택하였고, 여러 차례 정상 간 친서를 교환했다. 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열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거를 시작했으며, 대규모 민관 공동행사도 진행하는 등 일정한 합의 이행도 있었다.
이 시기를 북한 표현을 빌리면 ‘선대선’ 시기라고 하겠다.
2) 2단계: ‘선대선’과 ‘강대강’의 갈림길
‘선대선’으로 발전하던 남북관계는 1년을 넘기지 못했다. 2018년 하반기로 넘어가면서 남북 사이에는 중대한 갈등이 발생하였다. 그 원인은 미국이 제공했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남북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관광이든 공단이든 재개하려면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하였다. 원래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은 대북 제재와는 무관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스스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대북 제재 영역에 포함하는 바람에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풀어야 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26일 73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행동에 들어갔다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라고 하였다. 대북 제재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또 10월 13~21일 유럽순방 과정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공론에 부치기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10월 10일 국정감사에서 “(대북 제재의 일환인 5.24 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를) 관계부처와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쐐기를 박았다. 10월 11일 백악관에서 한 기자가 “한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할 것을 고려한다는 보도가 있었다”라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의 허락 없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허락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추가 질문을 하려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말을 끊고 “맞다. 그들은 우리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라고 다시 강조했다. 대북 제재 해제 혹은 완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엄포인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도 9월 말 강 장관에게 전화로 격노를 터뜨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2018년 10월 10일 자 보도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9월평양공동선언의 군사 분야 합의와 판문점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에 미군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 이를테면 남북 군사경계선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 대북 정찰기를 띄울 수 없게 한다거나, 한미연합훈련을 제한하는 점 때문에 격분하였다고 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발언이 나오자 각계 국민은 물론 정치권도 명백한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하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모든 사안은 한미 간 협의 속에 진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라며 미국을 옹호하였다.
그리고 11월 들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한미워킹그룹이 출범했다. 말이 ‘조율’이지 미국의 ‘승인’을 받는 기구였다. 이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 하나하나를 한미워킹그룹에서 ‘승인’ 받아 이행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가 시설 점검을 위해 공단을 방문하려다 한미워킹그룹에서 미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된 일은 유명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굴욕적인 ‘승인’ 기구를 한국 정부가 제안해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눈치를 보며 합의 이행을 질질 끌었고 북한은 이에 항의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예를 들어 2018년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동·서해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열렸는데 정작 착공식 이후에는 아무런 공사도 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대북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시간만 보냈다. 보다 못한 중국과 러시아가 1년 후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제재 면제를 담은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할 정도였다.
북한은 201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전제조건과 대가 없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제안했다. 대북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2020년 7월 통일부를 앞세워 대북 제재를 우회할 방법이라며 ‘개별관광’, ‘작은 교역’이라는 이상한 정책을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월 7일 신년사에서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과 북 사이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고 하였다. 마치 이 정도는 미국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개별관광’은 북한에 제안도 하지 않고 미국의 ‘승인’만 기다리다 무산됐고, ‘작은 교역’은 제재 대상이 아님에도 제재 대상이라고 속이고 무산시켜버렸다. (‘개별관광’에 관한 내용은 「[아침햇살68] 미국 경제보복론의 허구」를, ‘작은 교역’에 관한 내용은 「[아침햇살103] 최근 문재인 민주당 정부 세력에서 드러난 문제」 참고.)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면 ‘개별관광’과 ‘작은 교역’은 대국민, 대북 사기극에 가까웠다.
북한은 무상 관광, 무상 공단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끝내 회피하고 ‘개별관광’, ‘작은 교역’이라는 사기극으로 덮어버리는 문재인 정부를 보며 남북합의를 이행할 뜻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선대선’과 ‘강대강’ 중에 선택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볼 때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과 극명하게 대비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 6.15공동선언을 탄생시켰다. 그때도 미국은 자신의 ‘승인’ 없이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과 중대한 합의를 한 것에 분개하였다.
2001년 3월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날아간 김대중 대통령을 부시 미 대통령은 ‘이 양반’(this man)이라고 호칭했다. 정상외교 석상에서 나올 수 없는, 욕설에 가까운 모욕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그만큼 미국은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김대중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다.
훗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은 “미국의 김대중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불신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철도 연결된다는데 위기 왜 계속되나」, 오마이뉴스, 2003.5.27.)
당시 미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이제 막을 수 없다’는 체념의 목소리도 나왔고 증권가에서는 미국의 김대중 암살설이 떠돌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노골적인 압박과 방해가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합의를 과감하게 이행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오는 즉시 정부 각 부처에 6.15공동선언 이행 대책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 임기 내내 남북장관급회담이 꾸준히 열렸으며 여러 분야별 실무회담, 고위급회담도 열렸다. 이 성과로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업무를 재개했으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소득에 관한 이중과세방지 합의서, 남북 사이의 청산결제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상사분쟁해결 절차에 관한 합의서, 철도·도로 연결의 군사적 보장에 관한 합의서, 해운합의서, 통행합의서 등 다양한 실무 합의서들이 나왔다.
또한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하였고 개성공단,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등 굵직한 사업들을 시작하였다. 또한 공동 광산개발, 임가공 협력, 농수산물 반입 등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민간교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민간단체들이 남북을 오가며 다양한 행사와 회의를 진행하였다. 또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곧바로 이루어졌다.
특히 꾸준히 열린 장관급회담들과 부처별 고위급회담, 실무회담들,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은 통일로 가기 위한 기구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국회 상설협의기구, 최고 통수권자들의 협의기구까지 갖추면 곧바로 통일을 선포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1~2년만 더 6.15공동선언을 이행했다면 그대로 통일 선포가 가능했을 정도의 대단한 성과였다.
북한 시각에서 보자면 이런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남북합의를 하나도 이행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요구하는 대북 적대 정책을 앞장에서 이행하는 ‘미국의 연장된 팔’ 역할을 한다고 보였을 것이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승인’을 추종하며 촛불 민심을 배반했다고 할 수 있다.
촛불 민심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판문점선언 직후인 2018년 5월 첫 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83%를 기록했다. KBS가 4월 30일에 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94.1%의 국민이 판문점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해 6월에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전국을 휩쓸었다. 정부가 평화·번영·통일의 길을 갈 때 국민이 얼마나 큰 단결을 이루는지, 그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입증하는 엄청난 결과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촛불 민심과 반대의 길로 갔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자주를 중심에 놔야 한다.
4.27선언 1조 1항에는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한다는 문구가 있다. 또 9월평양공동선언 전문에는 “양 정상은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한다는 문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을 향해 “(우리 두 정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라고 재확인하였다.
말로, 글로 백 번, 천 번을 합의하고 약속한들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약속하고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말이고 사기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남북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둘째, 정부는 국민을 믿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역대 남북합의를 모두 지지하였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 4.27선언, 9월평양공동선언 등 남북의 주요 합의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 국민은 이를 전폭 지지하였다. 국민의 기본 요구가 평화·번영·통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반북대결, 한반도 긴장을 추구하며 한국 정부에도 이를 강요한다. 이는 국민의 요구와 정반대다. 정부는 미국이 아닌 국민의 요구를 실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민의 버림을 받게 된다.
3) 3단계: ‘강대강’
3단계는 ‘선대선’과 ‘강대강’의 갈림길에서 ‘강대강’으로 완전히 넘어간 단계다.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북한은 남북합의에 따라 한국 정부에 한미연합훈련 중단,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대북전단 살포의 경우만 봐도 문재인 정부는 2년 동안 말로만 ‘엄정 대응’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하였다. 그러다가 북한이 2020년 들어 ‘최후통첩’을 하자 그제야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든다고 서둘렀다.
그러나 북한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2020년 6월 12일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은 담화를 통해 “청와대가 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며 꾸며낸 술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고, 그것을 결행할 힘이 없으며, 무맥 무능하였기 때문에 북남관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김여정 부부장도 담화를 내고 “확실하게 남조선(한국)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라고 하였다. 결국 북한은 6월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한편 대북전단금지법은 이듬해 3월 30일에야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탈북자 단체는 대북전단을 살포하였고 이 때문에 처벌받은 사람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에 비해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쉽게 독자적으로 이행할 수 있었던 대북전단 살포 중단조차 이 정도였으니 다른 합의들은 어떠했겠는가.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 문제도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군축’은커녕 이명박(5.3%), 박근혜 정부(3.98%)보다 높은 국방예산 증가율(6.27%)을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3월 27일 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정부는 지난 3년간 국방예산을 대폭 확대해 올해 최초로 국방예산 50조 원 시대를 열었고,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으로 도약했습니다”라고 자랑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에서 한국의 군사력 증강을 비판하며 “계속되는 첨단 공격 장비 반입 목적과 본심을 설득력 있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정부가 남북 군축 약속과 군비 증강이라는, 서로 상충된 행보를 보였다”라고 평가했다. (「[문재인정부 외교 평가]①남북관계 ‘화해-갈등’ 격차 역대급」, 뉴스타파, 2022.2.16.)
한미연합훈련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연합훈련을 할 때마다 ‘방어적 성격이다, 규모와 범위를 축소했다, 로키(언론보도 자제)로 진행한다, 기동훈련을 자제하고 지휘소 훈련 위주로 한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규모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2021년 3월 16일 김여정 부부장은 “말장난에 이골이 난 남조선(한국) 당국자들이 늘 하던 버릇대로 이번 연습의 성격이 ‘연례적’이고 ‘방어적’이며 실기동이 없이 규모와 내용을 대폭 ‘축소’한 컴퓨터 모의 방식의 지휘소훈련이라고 광고해대면서 우리의 ‘유연한 판단’과 ‘이해’를 바라고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유치하고 철면피하며 어리석은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동족을 겨냥한 합동군사연습 자체를 반대했지 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라고 하였다. 훈련의 성격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남북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심 요구는 모두 무시하였다. 대신 본질에서 벗어난 주변부 사안들만 꺼내 들었다. 마치 딴청을 피우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재 남조선(한국) 당국은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 데 대한 북남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시점에서 남조선(한국)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후에도 한미연합훈련, 무기 반입 등의 문제를 외면하고 다른 얘기만 반복했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9월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국내에서도 ‘뜬금없다’는 반응을 불렀다.
그러자 9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얼마 전 남조선(한국)이 제안한 종전선언 문제를 논한다면 북남 사이의 불신과 대결의 불씨로 되고 있는 요인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적대적인 행위들이 계속될 것이고 그로 하여 예상치 않았던 여러 가지 충돌이 재발될 수 있으며 온 겨레와 국제사회에 우려심만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합의를 이행할 의지가 없음은 4.27남북공동선언을 법제화하는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하지 않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4.27선언이 막 나왔을 당시는 여당인 민주당이 과반 의석에 한참 못 미쳤고 야당의 반대가 있어서 국회 비준 동의에 실패했다. 그런데 2020년 구성된 21대 국회는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국회 비준 동의는 식은 죽 먹기였다.
2020년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21대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 “역대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들의 제도화와 사상 최초의 남북 국회회담도 21대 국회에서 꼭 성사되길 기대합니다”라며 4.27선언 국회 비준 동의를 기대했다. 또 2021년 6월 17일 민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180명은 국내외 25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기자회견을 열고 4.27선언 국회 비준 동의를 하겠다며 비준안을 서둘러 제출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제 아무런 걸림돌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별다른 해명도 없이 끝까지 4.27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이 누적되며 북한은 ‘이런 식이면 남북합의를 파기할 것’, ‘남북관계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등의 경고를 반복하였다.
2021년 10월 11일 국방발전전람회 개막식 기념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조선(한국)이 한사코 우리를 걸고 들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주권 행사까지 건드리지 않는다면 장담하건대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이 유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것만 아니라면 우리가 남조선과 설전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며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연설은 북한의 대남 정책이 바뀌었다고 느끼게 하였다.
그전까지 북한은 한국 정부가 남북합의를 이행하면 남북관계가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을 주로 하였다. 그런데 위의 연설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시비’를 걸지 않으면 남북 사이에 ‘설전’이 없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북한이 한국 정부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고 그냥 서로 건드리지 말자는 뜻이다.
그리고 북한은 올해 3월 24일 신형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을 발사하였다. ICBM 발사는 2017년 이후 처음인데 이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 이전으로 모든 관계가 되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즉, 남북관계가 3단계인 ‘강대강’으로 확실히 넘어간 것이다.
3단계의 의미는 이렇다.
첫째, 서로 상관 말고 각자 자기 갈 길을 가자는 것이다.
이는 통일을 포기하고 영구 분단으로 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북한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 즉 한미연합훈련 중단, 미국산 첨단무기 반입 중단, 대북전단 살포 중단 등을 이미 얘기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를 자세히 설명까지 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계속 못 알아들은 것처럼 엉뚱한 제안을 하였다. 북한 처지에선 더 이상 할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위의 과제를 이행하기 전까지는 그냥 무시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보면 한국 정부가 위의 남북합의를 이행하면 다시 ‘선대선’으로 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서로 자극하지 말되, 만약 자극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것이다.
북한 처지에서 한미연합훈련, 무기 증강, 대북전단 살포 등은 모두 북한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지난 7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승’ 69돌 기념연설에서 윤석열 정권을 향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지금 같은 작태를 이어간다면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선제타격과 같은)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지난 10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여정 부부장은 “만약 적들이 우리 공화국에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는 위험한 짓거리를 계속 행하는 경우 우리는 바이러스는 물론 남조선 당국 것들도 박멸해버리는 것으로 대답할 것”, “남조선 괴뢰들이야말로 우리의 불변의 주적”, “우리는 반드시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윤석열 정권을 두고 “동족보다 동맹을 먼저 쳐다보는 것들, 동족 대결에 환장이 된 저 남쪽의 혐오스러운 것들”이라며 “동족”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셋째, ‘선대선’은 없으며 ‘강대강’을 순도 100%로 올린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와 말을 섞어봐야 딴소리만 하니 입만 아프다는 투다. 김여정 부부장의 19일 담화는 윤석열 정권에게 새로 집권했으니 한번은 설명해 준다는 식으로 보인다. 더 이상의 요구, 주장은 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북한이 올해 들어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그간 미사일 실험이나 시험발사, 훈련 차 발사할 경우 그 내용을 약식으로나마 공개해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미사일을 발사하고도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실전 차원이라서 침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심각한 상황이다.
3. 꼬리 내린 윤석열 정권을 기다리는 것은
이번 김여정 부부장 담화는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수준을 넘어서 조롱, 멸시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여러 언론은 담화 전문을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의 평소 모습으로 예상해보면 북한을 향해 강도 높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자중하고 심사숙고하기를 촉구”한다는 입장만 발표하고 끝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대단히 유감스럽다”라며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북한을 설득하고 또 한편으로 필요하다면 압박도 하고 해서 대화로 유도할 생각”이라고 하였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보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꼬리를 내린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대선 기간 윤석열 후보는 “선제타격”, “버르장머리” 등 북한을 향해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김여정 부부장 담화가 언론에 보도된 후 포털 뉴스에는 ‘한다던 선제타격은 대체 언제 하냐’는 식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 엄포가 먹혔다면 북한이 자세를 낮추고 대화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정반대로 대응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엄포가 안 먹힌 것이다. 국민은 이를 예리하게 보고 있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꼬리를 내리고 있음은 8.15 경축사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이 이미 3월에 신형 ICBM을 쐈고 윤석열 취임 100일에 맞춰 새벽에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하기까지 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북한을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장담했어야 한다. 그러나 8.15 경축사도 그렇고 순항미사일 발사 사실을 숨기고 진행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선제타격’이니 ‘버르장머리’ 같은 내용은 완전히 사라졌다.
잠시 박근혜 정권 시기를 돌아보자.
2014년 1월 초 박근혜는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한반도 통일시대에 대비하자고 하였다.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으로 볼 때 이는 남북 공동번영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흡수통일을 기초로 한 ‘북한 약탈’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할 아무런 조건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마디로 뜬금없는 ‘통일’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직전인 2013년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은 간부 송년회에서 “오는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근혜는 뜬금없이 ‘통일’을 꺼낸 게 아니라 실제 흡수통일을 할 모종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건과 상황에서 흡수통일을 할 유일한 방법은 전쟁밖에 없었다. 즉, 당시 박근혜 정권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5년 8월 4일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폭발, 한국군 부사관 두 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권은 즉각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고 응징을 천명하며 일단 대북 확성기 방송부터 재개했다.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8월 20일에는 포사격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군은 북한이 포사격을 했다며 대응 사격을 했지만 실제 북한의 포사격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었다.
지뢰 사건이 포사격 사건으로 확대되자 북한은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이내에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 행동에 들어간다고 통보했고 실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준전시상태 선포, 전방 부대들이 즉시 작전 진입할 준비 태세를 갖추도록 하였다. 북한은 수십 척의 공기부양정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남하시켰고 육상에서도 특수부대가 이동하였다. 또한 잠수함을 무려 50척이나 동시 기동시켜 미군 감시망에서 벗어났으며, 탄도미사일 발사 차량들이 기동했고 대공레이더를 가동하였다.
전례 없는 북한의 대규모 군사행동에 놀란 미군은 진행 중이던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였고 예정했던 B-52 전략폭격기 무력 시위를 취소했다. 당시 미군 관계자는 기존 한반도 전쟁계획을 폐기하고 다시 짜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미국은 박근혜 정권에게 빨리 협상을 타결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48시간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전격 제안, 다행히도 전쟁 위기가 해소되었다. 한편 박근혜는 협상 타결 당일까지도 북한의 사과를 받아낼 것을 협상단에 지시했지만 남북공동합의문에는 사과가 없어 논란이 되었다. 보수 세력 내에서조차 ‘협상 패배’라며 개탄할 정도였다.
만약 당시 박근혜 정권의 의도대로 통일이 됐다면 박근혜 정권의 입지가 강화되었고 탄핵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이 강하게 나갔고 박근혜 정권이 꼬리를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효과적인 심리전 수단”이라고 극찬한 대북 확성기는 방송을 중단했고 50%까지 올랐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해 결국 탄핵당했다.
윤석열 정권은 어떻게 될까? 북한은 ‘강대강’을 얘기하는데 윤석열 정권은 대북 지원 얘기만 반복한다? 국민은 윤석열 정권이 꼬리를 내리고 있음을 다 안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북한이 꼬리를 내렸다면 윤석열 지지율이 올라갔겠지만 반대로 윤석열 정권이 꼬리를 내리고 있기에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다. 안 그대로 낮은 지지율에 벌써 퇴진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까지 윤석열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정권 퇴진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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