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레아뉴스 | 북방한계선과 북한의 해상군사분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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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08 09:3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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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과 북한의 해상군사분계선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 등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북방한계선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북한이 생각하는 경계선은 어디까지인 걸까? 북방한계선은 누가 만든 것이고 왜 우리는 합의된 군사분계선과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이번 글에서 북방한계선과 관련된 의문점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한국전쟁과 북방한계선
① 정전협정 발효 후 10일 내에 쌍방은 상대방의 후방 연해도서 및 해변으로부터 병력·장비·물자를 철수한다.
② 이를 이행치 않을 때는 상대방은 그 영역에 대한 치안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보유한다.
③ “연해도서”의 정의는 정전협정의 발효 시에 어느 쪽이 점령하고 있었느냐와는 관계없이 (전쟁 발발 전날인) 1950년 6월 24일에 각기가 통제하고 있던 섬들을 말한다.
④ 다만,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道) 경계선의 서·북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다섯 섬은 유엔군 총사령관의 군사 통제하에 남겨둔다. 그 해역에서 그 밖의 모든 섬은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의 군사 통제하에 둔다.
⑤ 서해안에서 위에서 말한 분계선 남쪽에 있는 섬들은 유엔군 총사령관의 군사 통제하에 둔다
위의 다섯 가지 합의사항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문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다.
해상에 있는 섬들의 통제권은 전쟁 발발 전날(1950년 6월 24일)을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 황해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남한 땅에 가까운 서해안 한강 하구에 산재한 섬들은 유엔군 통제하에, 북한 땅에 가까운 섬들은 북한 통제하에 두기로 한 것이다.
다만 남한보다 북한과 가까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이른바 ‘서해5도’는 유엔군 통제 아래 두기로 합의했다.
이때까지 북방한계선이라는 존재 자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전협정문에 첨부된 지도에 따르면 경계선은 우도 인근에서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외에는 정전협정 상 “쌍방이 인정하고 쌍방의 합의로 설치된 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도에 그려진 경계선 역시 구획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도에는 주석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① (주1) 상기 경계선의 목적은 다만 한국 서부 연해 섬들의 통제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 선은 다른 아무런 의의가 없으며, 또한 이에 다른 의의를 첨부하지 못한다.
② (주2) 각 도서(섬)군을 둘러싼 장방형의 구획의 목적은 다만 유엔군 총사령관의 군사 통제하에 남겨두는 각 도서군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방형의 구획은 아무런 다른 의의가 없으며 또한 이에 다른 의의를 첨부하지도 못한다.
즉 정전협정문 상으로는 양측이 관할하는 서해안 도서군을 단 하나의 단순한 직선인 경기도와 황해도 도계선의 연장으로 구획할 수 없다.
그럼 북방한계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정전협정 발효 1개월 뒤인 1953년 8월 27일 자신의 권위로 설치했던 ‘클라크 라인’을 없앴다. ‘클라크 라인’은 미국이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1952년 9월 27일 설정한 대북 해상봉쇄선이다.
하지만 정전협정이 체결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에 반대해 북진 무력 통일 주장을 고수했고, 해군을 동원해 황해도 연안을 계속 공격했다. 이런 이승만을 막으려고 미국 정부는 유엔군 사령관을 통해 북방한계선(NLL, Nothern\limit Line)을 발표했다.
북방한계선은 대략 서해5도와 북한 옹진반도 남쪽 사이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북방한계선은 당시에도 군사분계선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북방’한계선이라는 명칭 자체가 그 목적을 시사한다. 남한 군사력 행동 범위의 북쪽 한계를 뜻한다. 미국이 이승만 정부에 그 선 위로는 넘어가지 말라고 한계선을 그려준 것이다. 만약 북한 해군이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한계선이라면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북한 해군에 대한 ‘남방’한계선이라고 불러야 한다.
따라서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에는 전혀 합의된 바 없는 일방적인 선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 선을 마치 남북이 합의한 경계선인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사실 미국 정부도 이 선을 해양 국경선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은 1975년 2월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라며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연평도 남북 포격전이 있은지 한 달도 안 된 2010년 12월 12일엔 셀리그 해리슨 당시 미국 국제정책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방한계선을 “유엔군이 북한의 동의 없이 1953년 정전협정 후 서둘러 그은 논쟁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규정했다.
존 쿠시먼 전 한미1군단(한미연합군사령부의 전신) 사령관도 비슷하게 말한 바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부장관이었던 이양호는 1996년 7월 16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우리 측이 임의로 정한 선”이라고 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도 “북방한계선은 유엔사가 남측에 이 선 위로는 더 이상 올라가지 말라며 남측을 통제한 선”이라고 말했다. (「[Why] NLL의 정체는?」, 조선일보, 2007.8.18.)
김현기 전 국방대학원 교수는 “서해에서의 사실상의 상황을 종합해보건대 동해의 경우와는 달리, 북방한계선은 남북한 양측이 사실상 관할해 온 해상 구역의 경계로 기능해왔다고 간단히 판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현기, 「한반도 해상경계선 확정경위 및 유지실태」, 한국군사학회, 『군사논단』, 통권 제16호, 1998년 가을호, 50쪽.)
북한 통항질서와 국제법
한국에선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했었다는 주장, 북한 해군 경비구역선이 북방한계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주장, 북한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북방한계선을 인정했다는 주장 등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서해5도 자체의 유엔사 관할권은 인정했지만 그 섬들 부근 해역의 관할권을 포기한 적이 없다. 북한은 그동안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기에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 수석대표였던 김풍섭 소장은 1973년 12월 1일 제346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정전협정의 어느 조항에도 서해 해면에서 계선이나 정전해역이라는 것이 규정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의 서해 6개 도서를 포괄하는 수역은 북한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수역이다”라며 “해군 함선과 간첩선을 우리 측(북측) 연해에 침입시키는 행위를 당장 그만두어야 하며, 앞으로 서해의 우리 측 연해에 있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에 드나들려 하는 경우에는 우리 측에 신청하고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영구, 「북한이 주장하는 “서해 해상경계선과 통항질서”에 대한 분석」, 서울국제법연구 7권 1호, 2000, 5쪽.)
2005년 2월 9일 조선중앙통신의 ‘북방한계선의 정체’라는 보도문에선 “우리가 인정하지 않은 강도적인 선”이라며 “무장 충돌과 전쟁 발발의 근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북한이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제10조에는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서해상에는 남북이 서로 인정한 상태로 공동으로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이 없다.
이에 북한은 서해에서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1999년 남·북·미 3자가 머리를 맞대고 서해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했었다. 하지만 협상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회피와 한국 보수세력의 반발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북한은 1999년 9월 2일 북방한계선에 대응해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2000년 3월 23일 ‘5개 섬 통항질서’를 발표했다.
북한이 주장한 해상군사분계선은 유엔해양법협약 제15조(대향국간 또는 인접국간의 영해의 경계획정)에 따라 등거리(같은 거리) 원칙을 적용해 설정된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은 두 나라가 인접하거나 대향해 있을 때 “양국의 각각의 영해 기선상의 가장 가까운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점을 연결한 중간선”을 영해 경계획정을 위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황해도와 경기도 경계선부터 강령반도 등산곶과 굴업도 사이 중간지점, 옹도와 서격렬비도, 서엽도 사이 중간지점, 한반도와 중국 간의 해상경계선을 이어 해상군사분계선을 설정했다. 이렇게 되면 서해5도를 둘러싼 바다를 포함해 해상군사분계선 이북의 전 해역이 북한의 영해이자 군사통제수역이 된다.
통항질서에 따르면, 서해5도 출입은 지정된 수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주변 수역을 제1구역, 연평도 주변 수역을 제2구역, 우도 주변 수역을 제3구역으로 구분하고 각 수로를 지정했다.
그리고 해당 구역에선 국제법인 유엔해양법협약에 규정된 “국제항행 규칙들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통항질서 발표 당시 북한 해군사령부는 “우리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준수함에 있어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협상을 통하여 해결할 용의가 있지만 미군 측이 끝내 토의를 거부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제 더 이상 실무 토의에 응하기만을 무한정 기다릴 수 없게 됐다”라고 배경을 밝혔다.
해군사령부는 이어 “제정된 통항질서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라며 “서해 해상 충돌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려는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감히 도전해 나선다면 우리 혁명무력은 경고없는 행동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남북이 서로 서해5도 일대를 자기의 해역이라고 주장하니 이 지역에선 군사 충돌이 빈번했다. 이를 막기 위해 10.4선언에서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기도 했다. 2018년 9.19군사합의에서는 서해 남한 덕적도부터 북한 초도까지 약 80킬로미터 해역을 완충 수역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9.19군사합의가 무력화되면서 완충 수역이 없어졌다. 이젠 서로 충돌이 일어날 경우 전쟁으로 확전될 수도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월 15일 시정연설에서 영토·영공·영해를 정확히 규정하고 이를 헌법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밀리미터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머지않아 서해에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영해선을 선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제법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북방한계선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한국에 불리하다.
북방한계선은 유엔해양법협약으로도 남북 간 경계선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남측이 서해5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해상경계선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백령도 일대와 연평도 일대만 적용할 수 있을 뿐 40해리(약 74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 해역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없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영해를 기선에서 12해리(약 22킬로미터)까지 적용할 경우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는 오히려 북한 수역에 가깝다. 한국은 ‘영해 밎 접속수역법’에서 영해를 인천시 옹진군 덕적군도 소령도까지만 규정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1955년부터 영해 12해리 원칙을 주장해왔고 2007년엔 ‘서해 경비계선’이라는 이름으로 유엔해양법약에서 인정하는 12해리 원칙, 등거리 원칙 등을 기준으로 그은 선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한 나라의 작은 섬과 다른 나라의 큰 육지가 경합할 경우 육지를 우선한다는 국제법 원칙에 따라 서해5도와 더 가까운 북한의 주장이 더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만약 한국군이 북방한계선을 주장하며 서해5도 수역에 진입한다면 북한은 영해 침범을 근거로 무력 행사에 나설 수도 있다. 그렇게 서해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이 더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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