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노골적 개입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남미 각국
박 명 훈 기자 자주시보 11월 17일 서울
올해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정부는 친미·우파세력을 지지하며 중남미 전반 상황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남미 각국이 미국에 맞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칠레
칠레에서는 11월 16일(이하 현지 시각) 대선 투표가 진행됐다. 그 결과 칠레공산당의 자네트 하라 후보가 강경 보수 성향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를 제치며 1위를 했다. 다만 과반 득표에는 이르지 못해 12월 중 결선투표가 치러지게 됐다.
하라 후보와 카스트 후보의 정책은 극과 극이다. 하라 후보는 공약에서 리튬 등 광물자원의 국가 관리 강화와 최저임금 인상을 제시한 반면, 카스트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칠레를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내걸고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과 리튬 민영화 등을 제시했다.
칠레 국민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장기 독재 정권(1973~1990년) 시기 대국민 학살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고통을 겪었다.
지난 2022년 반미·좌파 성향 가브리엘 보리치가 당선돼 피노체트 체제의 완전한 종식을 추진했으나 마무리하지 못한 채 임기 말에 이르렀다. 하라 후보가 차기 칠레 대선에서 승리해 피노체트 체제의 완전 종식을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베네수엘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침공 위협을 가하며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흔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 해역에 지난 11월 11일(이하 현지 시각) 미 해군 최정예 제럴드 R. 포드 항모전단이 진입했다. 항모전단뿐만 아니라 미 해군 병력 2만여 명도 집결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정부·국민·군대의 단결을 강조하며 민병대 450만 명과 미국에 맞서 항전을 예고했다. 아울러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 국민을 향해서도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또한 마두로 대통령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민병대에 합류한 베네수엘라 국민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등 기세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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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페이스북 |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베네수엘라 침공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국민·군대가 미국에 맞서 단결한 베네수엘라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와 맞닿은 이웃 국가다. 현재 콜롬비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반미·진보 성향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눈엣가시인’ 페트로 정권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트럼프 정부의 다음 과녁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코카인의 최대 생산지인 콜롬비아의 역대 친미 정권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정책 기조에 맞춰 협력해 왔다.
하지만 페트로 대통령은 집권 뒤 미국에 기대지 않는 독자적인 마약 단속 정책을 강조했고,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도 적극 항의했다. 또한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참가를 공식화했으며, 베네수엘라를 위협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지지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도 높게 규탄했다.
그러자 트럼프 정부는 페트로 대통령과 가족에게 제재를 가했다. 또한 루비오 장관은 현재 콜롬비아는 과거 미국에 협조했던 콜롬비아와는 다르다며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런 미국의 강압에도 페트로 대통령은 미국에 맞선 자신의 정책을 굽히지 않았다.
11월 11일 페트로 대통령은 카리브해에서 베네수엘라 선박을 마약 밀매 운반선이라며 격침시키는 미국과의 정보 협력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미국에 선박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구실로 페트로 정권을 문제 삼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페트로 대통령은 앞으로도 굽힘없이 미국에 계속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 10월 26일 하원 중간선거가 실시됐다. 선거 결과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소속 집권 여당인 자유전진당은 이전보다는 의석을 늘렸다. 하지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으며 여전히 소수 여당에 머물렀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를 표방한 밀레이 대통령은 집권 이후 긴축 재정, 공공지출 예산 삭감 등을 밀어붙였으나 자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트럼프 정부는 밀레이 정권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며, 통화스와프 체결과 대규모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으로선 아르헨티나 선거에 개입해 노골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려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내정 간섭에도 아르헨티나 국민은 끝내 밀레이 정권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개입에도 중남미 민중들은 자신의 주권을 지키고자 행동하고 있다.
앞으로 중남미 각국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눈여겨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