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코레아뉴스 | [국가보안법 피해자 사례] 체포, 고문 협박에도 카메라 놓지 않은 감독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7-01 21:15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국가보안법 피해자 사례] 체포, 고문 협박에도 카메라 놓지 않은 감독
제주4.3은 미국과 이승만세력, 서북청년단 등 국내 극우세력이 제주 도민들을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제주 도민은 남한에 단독 정부를 세우려는 이승만세력에 맞서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 반대 투쟁을 지속했다. 1948년 4월 3일부터 제주 도민에 대한 집단학살이 본격화한 가운데, 이승만 정권이 같은 해 12월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미국의 뜻에 따르는 이승만 정권과 극우세력이 4.3의 진실을 은폐하고 분단 체제를 지속하려는 수작이었다.
4.3의 가해자는 당연히 미국 그리고 미국의 지휘를 받은 이승만세력 등 극우세력이었다. 미국의 입김 속 수십 년 동안 피해자인 제주 도민들은 죽어서까지 ‘빨갱이’ 낙인찍기를 당해야 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4.3에 관한 교육도 실시되고 그 실상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4.3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금기시된 주제였다.
그러다가 1997년 한국에서 4.3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헌트1」이 공개됐다.
레드헌트는 미군정이 제주 도민 학살을 언급한 보고서에 담은 표현이며, ‘빨갱이 사냥’이라는 뜻이다. 즉, 영화는 제목부터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제주 도민을 학살한 주범이라는 확고한 진실과 주제 의식을 담았다.
「레드헌트1」을 연출한 조성봉 감독 주변에는 MBC 등에 재직하는 언론인들도 있었으나, 4.3에 관해선 누구도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공안기관의 탄압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송국에선 ‘4.3을 소재로 다큐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소재’라며 조성봉 감독에게 잘해보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 ▲ 조성봉 감독이 2026년 6월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국가보안법 피해자 연속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박명훈 기자 |
「레드헌트1」은 개봉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출품작으로 선정되며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4.3의 진실’을 가로막으려는 일들이 벌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영화에 “이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넣으라고 압박했다. 당시 김영삼 정권과 공안기관의 압박이 미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성봉 감독팀은 굴복하지 않았고, 그 이후 탄압이 이어졌다.
1997년 서울인권영화제의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레드헌트1」을 상영해 국가보안법을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및 반포)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수배를 피해 다니던 조성봉 감독은 1998년 1월 다음 달로 다가온 베를린영화제에 참석하고자 부산시청에서 여권을 신청하려다가 부산시경에 체포당했다.
조성봉 감독에 따르면 시청 공무원이 대기해 달라고 요구했고, 10분 뒤 형사가 와서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및 반포) 혐의로 자신을 체포했다고 한다. 경찰이 인근 건물 8층으로 데려가서 먼저 입구에 욕조가 있는 방을 먼저 보여줬고, 이후 취조실에서 48시간 동안 취조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는 공안기관이 군부 독재정권 시기처럼 대놓고 고문을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안기관은 조성봉 감독을 향해 여차하면 물고문 등 고문을 할 수 있다며 겁박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조성봉 감독은 자택을 압수수색 당해 4.3과 아무 관련도 없는 책과 자료도 빼앗겼다.
그 뒤 서준식 위원장이 재판 6년만인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군정과 이승만 등 극우세력이 제주 도민들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대한민국의 존립과 체제를 위협하는 이적표현물로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레드헌트1」은 ‘빨갱이 작품’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공안기관은 체포와 압수수색, 재판을 통해 영화를 빨갱이 작품으로 낙인찍으려 했다. 영화는 대중의 평가와 입소문이 무척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안기관은 조성봉 감독의 영화 작업뿐만 아니라 생계 자체를 틀어막으려 한 것이다.
이런 공안탄압에도 조성봉 감독이 영화 작업을 계속한 건 광주5.18민중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 가치를 영상을 통해 알려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5.18 이듬해인 1981년, 조성봉 감독은 부산대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조성봉 감독은 노래패 등 문화운동을 하는 학생들과 어울렸고 문화운동에 관심이 컸다. 문화운동의 연장선, 영상 기록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5.18을 알리겠다는 게 조성봉 감독의 생각이었다.
조성봉 감독이 「레드헌트1」을 만들기로 결심한 1995년은 5.18특별법이 제정된 시기이기도 했다. 조성봉 감독은 5.18에 관해서는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있으니, 잘 알려지지 않은 4.3에 관한 다큐를 만들자고 동료 여럿과 의기투합했다. 이후 조성봉 감독팀은 제주도를 오가며 「레드헌트1」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게 된다.
조성봉 감독은 3개월 동안 구속됐다가 풀려난 직후부턴 후속편인 「레드헌트2, 국가범죄」 작업에 공력을 쏟았다. 공안기관의 취조를 받을 당시 수사관이 「레드헌트1」에 관해 ‘이것도 영화냐’라는 식으로 비아냥댔다. 이 얘기를 들은 조성봉 감독은 오히려 출소하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높였다고 한다.
1999년에 개봉한 「레드헌트2, 국가범죄」는 5.18 유족이 자식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레드헌트 2편은 5.18이 4.3의 연장선이라는 시각에서 미국의 개입, 그에 따른 군부 독재세력의 집단학살(국가범죄)의 행태를 집중해서 폭로했다.
이후 조성봉 감독은 2014년 「구럼비-바람이 분다」를 공개했다. 세계적 천연자원인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면서까지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용으로 건설하려 한 강정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제주 도민들의 투쟁을 담았다.
현재 조성봉 감독은 십수 년 동안 지리산 자락에 머물며 빨치산 투쟁을 소재로 한 다큐 영화 「진달래산천」 작업을 진행 중이다.
4.3의 진실을 알리고자 숱한 사람들이 이어 온 투쟁과 기록이 있었기에, 그 바탕 위에서 「레드헌트1」을 만들 수 있었다고 조성봉 감독은 말했다. 「레드헌트2, 국가범죄」, 「구럼비-바람이 분다」, 「진달래산천」으로 이어지는 작업 역시 이러한 바탕 위에 쌓아 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성봉 감독은 4.3을 언급하며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저지른 어마어마한 국가폭력, 불법적 학살, 홀로코스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것, 그것이 역사다”라고 밝혔다.
또한 「진달래산천」을 잘 만들어서 국가보안법 폐지 여론을 높이겠다며 “그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내가 싸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 조성봉 감독. © 박명훈 기자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