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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조선 - 황해도의 역사유적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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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3-21 13:1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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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의 역사유적들 사진

                                                                                                         재미동포전국연합 편집국

황해도에는 통일국가였던 고려(918-1392 AD)의 수도 개성을 중심으로 많은 문화역사유적들이 있다. 2013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위원회 제37차 회의에서 개성의 왕건왕릉, 공민왕릉, 개성남대문, 개성성, 숭양서원, 표충비, 선죽교, 고려성균관, 만월대, 개성첨성대, 칠릉떼(7기), 명릉떼(3기)에 대한 유산등록을 결정하였다. 이에 사진으로 본 황해도의 유적들을 게재한다.

 

▲ 만월대는 고려의 왕궁터로서 개성시 송악동에 있다. 

919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설되었고 면적은 125만㎡에 달한다.

   

개성성은 고려시기 수도 방위를 위해 쌓은 성으로서 외성과 내성으로 축성되다.

성의 둘레는 약 23㎞이고 성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생동하게 보존되어 전해오고 있다.

  

개성 남대문은 고려 시기의 성문이다. 화강석을 곱게 다듬어 쌓은 장방형 평면의 축대와 그 위에 세운 문루로 이루어졌다. 축대의 복판에는 무지개 문길을 냈다. 축대 위에는 적을 쏠 수 있게 성가퀴를 돌리고 쏘는 구멍을 뚫어 놓았으며 축대 위 네 모서리에는 비물이 모여서 흘러내릴 수 있는 시설도 해놓았다

 

 

 

▲공민왕릉은 현릉(공민왕의 무덤)과 정릉(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쌍무덤으로서 1365년부터 1372년 사이에 공민왕 자신이 직접 감독하면서 만든 것이다.   왕릉의 규모가 크고 돌조각을 잘하였는데 이것만 보아도 고려 시기에 조각예술이 발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균관은 고려 시기의 최고 교육 기관인 대학으로서 그 역사가 거의 천 년이 되어온다.

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있다.

 

 

 

▲숭양서원은 고려 말기 관료이며 유학자였던 정몽주(1337-1392)의 집을

사립교육기관으로 꾸린 것으로서 개성시 선죽동에 있다.

 

 

 

칠릉떼 명릉떼 개성의 고려 시기 왕릉과 무덤유적들에는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조형예술적인 재능이 깃들어있다.

  

량천사의 대웅전 

 

개성 첨성대는 개성시 만월동에 있는 고려 시기의 천문대이다. 지금은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축대 부분만 남아 있다. 축대의 높이는 2. 8m이고 그 한 변의 길이는 2. 6m이다. 기둥돌은 모두 5개인데 매개 기둥의 단면은 40㎝×40㎝의 방형이다.이 축대는 그 변이 동, 서, 남, 북 방위와 일치하고 시공이 정밀하고 견고하게 되으며 돌다듬기 수법으로 보아 당시 건축술이 아주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서사는 임진조국전쟁시기에 불에 타 다시 지었는데 

1651년에 또 화재를 입어 1663년에 다시 지었다

 

 

석왕사 불이문

석왕사 조계문

▲석왕사에는 고려말기에 지은 응진전과 호지문, 이조시기에 지은

대웅전과 팔상전을 비롯하여 50여 채나 되는 웅장하고 호화로운 건축물들이 있었는데

전쟁시기에 미군의 폭격에 불탔다.

 

해주시에 있는 해주다라니석당은 고려시기에 세운 것으로서

높이는 5m가 넘는다. 이 석당은 성동리다라니석당과 함께

고려시기 돌조각술의 발전모습의 일단을 보여주고있다.

 

해주시 부용동에 있는 부용당은 예로부터 '해서8경'의 하나로 일러져 왔다.

  

 

19세기 후반기에 세운 사미정은 비록 크지 않은 누각이지만

산수에 잘 어울리게 조화시킴으로써 건물의 운치를 돋구었다. 

사미정 옆에는 용감하고 억센 기상을 상징하는 돌사자가 있다.

  

 

선죽교는 개성시 선죽동의 로계천에 있는 고려시기의 돌다리이다. 선죽교의 길이는 8. 35m, 너비 3. 36m이다. 선죽교는 고려말기의 관료인 정몽주가 리성계 일파의 자객에 의해 이 다리에서 피살된(1392년)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였으며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났다고 하여 원래의 다리 이름인 선지교를 선죽교로 고쳐불렀다. 다리 옆에는 조선의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선죽교》라는 비석이 있고 1641년에 정몽주의 《충절》을 찬양하여 세운 성인비, 그후에 세운 록사비가 있다. 선죽교는 지금 남은 우리 나라의 돌다리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로서 당시의 건축술과 돌다루기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유적이다.

 

표충비는 고려관료였던 정몽주의 《충절》을 찬양하여

조선봉건국가의 왕들이 세운 비로서 개성시 선죽동에 있다.

 

 

개성시 해선리 만수산 줄기의 서남쪽으로 밋밋하게 뻗은 언덕 가운데에 자리잡은

고려 태조 왕건릉은 1993년 발굴, 1994년에 개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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