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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남북

문화 | 장편실화 - 인생열차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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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6-03 03:3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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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 회) 
 6. 오해에 앞서 리해하라
 
 오해에 앞서 리해하라.
 
생활에서 누구나 이 말을 지킨다면 생활은 보다 화목해질것이며 더욱더 활기를 띨것이다.
누구나 이 말을 할수는 있어도 누구나 이 말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제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제나름의 길을 가고있기때문이다.
리해하지 못하고 오해를 하여 생활에선 얼마나 왕왕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고있는것인가. 그래서 인간생활이란 갈래많고 복잡다단하다고 하는것인지.
 
하지만 이 말을 좌우명처럼 늘 외우며 자식들을 키우고 내세워준 어머니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두르가데비였다.
 
두르가데비는 맏아들이 하는 일을 어렴풋이 가늠하고있었다.
《트리뷴》에 자주 실리는 그 이름의 기사에 류별나게 흐르는 아들의 체취를 그는 감수하고있었던것이다.
어머니들은 보통 자식의 취미와 기호에 대해 잘 알고있다. 자식의 일거일동을 주의깊게 살피고 자식의 앞길에 성공만이 있기를 빌고비는것이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들의 가슴에는 자식의 숨결이 흐르고있다. 하물며 젖먹여 키웠을뿐아니라 소학교교육까지 직접 한 두르가데비에게 있어서야…
하지만 그는 자기의 생각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혹 어떤 사람은 학생이 공부안하고 돈벌이를 한다고 잘못 생각할수도 있기때문이다.
 
자제력이 강한 성격인 두르가데비는 마음속으로 맏자식이 참으로 잘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있었으며 언젠가는 꼭 그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안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고있었을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주말에 집에 왔던 비슈와나스는 떠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학장선생이 한번 만나자고 한다고 하였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 무엇을 잘못했니?》
 
《잘못한것은 없습니다. 학장선생이 몇명의 학생들의 학부형들을 부르는데 나도 그중에 속했습니다. 다음주에 좀 만나주십시오.》
 
바드리 나트 취바는 비슈와나스에게 아무래도 너 뭘 잘못한것 같다며 기분이 좋지 않아했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바드리 나트 취바는 다음날 지체없이 대학에 찾아왔다.
학장과 비슈와나스사이에는 이미 약속이 돼있었다.
며칠전에 학장이 네가 하는 일을 부모들도 알고있는가고 물었을 때 비슈와나스는 모른다고 하면서 학장선생님이 우리 아버지에게 말씀 좀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학장은 네가 직접 말하라고 하였지만 비슈와나스는 선생님이 말해달라고 재삼 부탁하였다. 그래서 학장이 그럼 아버지를 나에게 보내라고 하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바드리 나트 취바는 대학에 오게 되였던것이다.
 
학장으로부터 맏자식의 정열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에 대하여 다 듣고난 바드리 나트 취바는 감동했다.
학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런 학생을 가지고있는것을 긍지로 생각합니다.》
 
학장은 비슈와나스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보라는것이였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처음으로 아들을 인정하게 되였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물었다.
《너 왜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니?》
 
비슈와나스는 솔직하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안사주었기때문에 이런 말을 하면 성낼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그 자리에서 즉시 40루삐를 꺼내주며 말하였다.
 
《이제 당장 가서 제일 좋은 자전거를 사거라.》
 
바드리 나트 취바는 그때까지 자기 자식이 자전거가 있다는것을 전혀 모르고있었던것이다.
부자간의 말을 듣고있던 학장이 서둘러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 대학에서 자전거를 사주겠습니다.》
 
학장도 그때까지 자기의 학생이 자전거가 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던것이다.
비슈와나스는 말하였다.
《자전거는 있습니다. 어머니가 이미 돈을 주어서 샀습니다.》
 
학장은 탄복하였다.
《너의 어머닌 정말 괜찮은 어머니시구나!》
 
그 일이 있은 후 비비마을에서는 경사가 났다.
학장을 만나고 돌아간 바드리 나트 취바가 《트리뷴》에 자주 나는 그 이름이 다름아닌 내 아들 비슈라고 샤르마가문에 소문을 냈던것이다. 그 소문은 가문을 벗어나 온 마을에 퍼졌다.
주말에 집에 간 비슈와나스는 영웅으로 떠받들리웠다.
사람들은 신문에 자주 나는 그 이름이 취바박사의 아들이래, 샤르마가문의 장손이래 하면서 칭찬하였다.
하지만 비슈와나스에게는 그 말들이 그리 달갑지 않게 들리였다.
그는 이 세상에 자기의 이름은 아직 없다고 생각되였다. 보라, 아직까지 자기는 이름에 앞서 누구의 아들 혹은 어느 가문의 몇째로 통용되고있는것이 아닌가.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 없을 때 선친의 이름으로 혹은 가문의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는것이다.
가문의 이름이나 부모의 공로가 결코 자식을 구원하지는 못하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싶었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다고 하여 누구나 그 이름이 사회에 빛나는것은 아니다. 선친들이 지어준 그 이름을 사회에 다 바칠 때 다시말하여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할 때,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될 때 그 이름은 비로소 사람들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나타내며 오직 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는것이다.
비슈와나스는 그렇게 살고싶었다. 사회가 인정하는 그런 이름으로 살고싶었다. 이 세상에 자기의 이름이 떳떳이 불리우게 살고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리우지만 래일은 자기의 부모가 누구의 부모라고 자랑할만큼 큰일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욕망뿐이였다.
 
샤르마가문에서는 그를 축하하는 모임도 열었다. 큰할아버지 라챠만 다스를 비롯하여 모두가 그를 대견해하였다.
 
그날저녁 두르가데비는 말하였다.
《맏이야,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자기의 빈곳을 더 찾아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할수록 오해에 앞서 리해하여라. 그래야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수 있느니라.》
 
어머니의 그 말은 두고두고 비슈와나스의 뇌리에 새겨져 걸음마다에 울리였다.
그는 칭찬을 받을 때에 그리고 그 누구에 대하여 오해가 앞설 때에 항상 어머니의 이 말을 되새기며 자신을 다잡군 하였다.
부모는 가정의 거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거든 가풍을 보라는 말이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교양있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다.
어머니의 그 지성적인 교양이 없었다면 어려서부터 남보다 많이 알고 또 무엇이든 많다는 우월감으로 가득차있던 그가 참인간의 자세에서 탈선되여 어떤 길을 걸었을지 누가 알랴. 하지만 그는 부호의 아들답게, 아니면 부호의 아들답지 않게 원숙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 사람의 주위에는 지지자들이 많아지기마련이다. 그는 더 많은 동료들과 선생들 그리고 기자들과 휩쓸리면서 자기도모르게 애티를 가셔갔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갔다.
당시 인디아에서는 분쟁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있었다. 그것은 종족분쟁, 교리분쟁이였다. 그 분쟁은 식민주의자들의 계책에 의해 더욱 발화되고있었다. 영국식민주의자들은 교파간의 이 분쟁을 리용하여 종내는 나라를 분렬시켰던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나라가 분렬되기 직전이였다.
 
감옥에서 안해를 잃고 옥고를 치르고나온 마하트마 간디가 종교적반목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슬람교도들이 민족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모하메드 알리 지나와 만나 회담하였으나 그 회담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의 사이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기만 하였다.
각 신문들은 이때의 상황을 부지런히 보도하고있었다.
《트리뷴》도 례외가 아니였고 비슈와나스도 례외가 아니였다.
이때의 상황을 보도하는 과정에 《트리뷴》과 비슈와나스가 다같이 일약 명성을 떨치는 계기가 있었다.
그날은 어느 일요일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알따브 후쎄인과 함께 거리에 나왔다가 라호르의 한 공설운동장에서 바로 그 모하메드 알리 지나가 하는 연설을 듣게 되였다.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그의 두리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1시간이 넘는 그의 연설내용은 이슬람교도들은 하나의 이슬람교국가를 세워야 한다는것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군중은 와― 와―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지나가 우르두어로 연설하면 힌두교도들은 영어로 하라고 고아대고 그래서 영어로 연설하면 이슬람교도들이 또 우르두어로 하라고 고아대군 하였다.
우르두란 말은 복합, 혼합이란 뜻으로서 우르두어는 이슬람교도들이 쓰는 페르샤어와 인디아의 힌두교도들이 쓰는 서부힌두어의 한 방언이 혼합되여 이루어진 특수한 언어이다.
오늘 우르두어는 파키스탄의 국가공용어이며 인디아 이슬람교도들이 쓰는 언어로 되고있다.
 
군중은 점점 더 소란을 피웠고 지나는 신경질적으로 내가 영어로 하면 우르두어로 하라고 하고 내가 우르두어로 하면 영어로 하라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것인가 하고 웨쳐댔다.
나중에는 군중속에서도 파가 생겨 서로 엉켜돌아가며 싸움이 붙었다.
우연히 이슬람교도들 뒤에 서있던 비슈와나스에게 힌두교도들이 왁 덮쳐들었다. 이때 알따브가 날래게 그들을 제지시키며 이 사람은 당신들과 같은 힌두교도라고 말하여 싸움의 피해를 입지 않게 되였다. 물론 이때의 알따브는 힌두교도로 보였을것이였다.
다음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알따브를 힌두교도로 보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이때에는 비슈와나스가 막아서서 이들을 또 저지시켰다. 이때 이슬람교도들의 눈에는 비슈와나스가 저들의 교도로 보였을것이다.
비슈와나스와 알따브는 서로가 이렇게 막아주며 겨우 이 란무장을 빠져나올수가 있었다.
비슈와나스는 생각하였다.
왜 종교가 서로 싸우는가? 서로 자기 교를 따르면 그만이지 싸울 근거야 없지 않은가?
동무관계만 봐도 그렇다. 서로 다른 교파인 알따브와 자기는 둘도 없이 친한 사이인데…
 
교리를 믿는것자체가 자기 힘을 믿지 못하기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이 진리를 찾지 못하고 인류는 오랜 세월 헤매이고있었다.
각자가 자기를 믿지 못하는데로부터 교리도 맹목적으로 따르고있으며 또한 서로 싸움을 벌리고있는것이였다.
 
다음날 각 신문에는 지나의 연설내용이 동시에 실리였다.
 
다른 신문들에는 그의 연설내용만이 보도되였지만 《트리뷴》에 실린 기사는 그의 연설내용만이 아니였다.
 
비슈와나스는 그가 연설하던 운동장의 소요와 군중의 여론까지 상세히 서술하였으며 중요하게는 한 나라안에서의 분쟁이 어떤 후과를 초래하게 될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가했다.
또한 그는 다민족국가는 분쟁의 길이 아니라 하나로 뭉치는 길로 나가야 한다는 강한 호소와 함께 그 리치에 대하여 밝혔다.
비슈와나스의 글들에 주목하고있던 피. 엘. 쏜디가 이 기사를 읽고 매우 만족해하였다. 복도에서 부딪쳤던 그 애어린 청년의 얼굴이 방불하게 떠올랐다. 숱진 눈섭밑에서 불길처럼 타오르던 그 눈빛, 그의 기상을 말해주듯 미간에서부터 뻗어내려온 코잔등…
나이는 어리지만 록록치 않아보이던 모습이였다. 그가 한해사이에 이렇게까지 성장하다니…
기대되는 인물이였다.
피. 엘. 쏜디는 흐뭇한 마음으로 비슈와나스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이렇게 되여 비슈와나스는 신문사의 총경영자의 방에 두번째로 들어가게 되였다.
첫번째가 우연이라면 두번째는 필연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 아니다. 정녕코 우연과 필연은 노력하는 사람앞에는 다같이 찾아오는 쌍둥이형제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사이 키도 컸고 정신도 커진 비슈와나스의 손을 잡아주며 피. 엘. 쏜디는 말하였다.
《비슈와나스, 너 훌륭한 기자가 되였어!》
 
비슈와나스는 자기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며 칭찬해주는 그가 고마왔다.
누구든 한번 만나본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있다면 그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될것이다. 항시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있던 비슈와나스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이렇게 일부러 만나주며 고무해주니 황송함이 이를데 없었다.
 
비슈와나스는 무릎을 꿇고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총경영자의 발을 다치며 최대의 례를 표하였다.
《고맙습니다. 다 사장님의 덕분입니다.》
 
피. 엘. 쏜디는 언제나와 같이 좋은 인상을 짓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래 원고료는 얼마를 받았느냐?》
 
《저는 원고료를 받지 않습니다.》
 
피. 엘. 쏜디는 그게 무슨 일인가 하는 눈빛을 지으며 전화로 주필을 찾아 묻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에게 왜 원고료를 주지 않는가?》
 
총경영자의 전화를 받은 주필도 뜻밖이라는듯 놀라와하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도 모르고있었습니다. 본인이 말하지 않아서…》
 
《그렇다?!》
 
주필도 편집부에서 일정한 원고료를 주고있으리라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피. 엘. 쏜디는 그 자리에서 주필에게 이번 기사의 원고액을 정해주는것이였다.
《그럼 이렇게 합세. 75루삐로!》
 
전화기를 놓은 피. 엘. 쏜디는 비슈와나스에게 말하였다.
《이번 기사의 원고료는 75루삐다.》
 
비슈와나스는 서둘러 말하였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배우기 위해…》
 
《그렇다?!》
 
피. 엘. 쏜디는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기를 기대한다며 비슈와나스를 문까지 배웅해주었다.
다음날 비슈와나스는 75루삐의 원고료를 탔다. 그때로서는 높은 급의 원고료였다.
원고료를 받아든 비슈와나스는 눈물이 났다.
여러건의 글들을 발표했지만 원고료를 받기는 일생에 처음이였다. 그것은 사회를 위해 그 무엇을 기여했다는 산증거와도 같은것이였다. 소년시절의 그런 체험은 인간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가장 고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비슈와나스는 오래도록 눈물을 흘리였다.
그 원고료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의 산물이였다. 동시에 그의 가슴속에는 자기도 자기 노력으로 자립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그런 돈을 내가 쓸수 있으랴.
 
비슈와나스는 그 원고료를 들고 울면서 친근한 피. 엘. 쏜디를 찾아갔다.
《사장선생님! 당신이 받아주어 제가 첫 원고료를 탔습니다. 소박하나마 이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피. 엘. 쏜디가 그것을 받을리 없었다.
《아니다. 네가 일한것은 네가 가져야 한다.》
 
피. 엘. 쏜디는 그것을 받지는 않았지만 받은것보다 더 기뻐하였다. 도덕은 돈으로 살수도 계산할수도 없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눈물을 흘리며 주필과 편집부장을 차례차례 찾아갔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받을리 없었다.
그다음.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불쑥 아르. 아르. 샤르마를 보란듯이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깨를 으쓱이며 버젓이 그를 찾아갔다.
《당신은 우리 친척이지만 나를 거절하였습니다. 나도 이제는 당신 비슷하게 돈을 탔습니다.》
 
비슈와나스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깍듯이 인사하고 돌아서나왔다. 그때 아르. 아르. 샤르마의 로임이 100루삐였으니 비슈와나스가 그렇게 말할만도 한것이였다.
아르. 아르. 샤르마는 비슈와나스가 《트리뷴》에 드나드는것을 알고있었다. 드문히 구내에서 마주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비슈와나스는 머리를 돌리군 하였던것이다.
그러던 그가 돌연히 그 삼촌을 찾아가 자기의 존재가치를 선포한것이였다. 역시 비슈와나스였다.
이처럼 그는 소년시절부터 자존심이 보통 아니였다.
그다음 그는 학장을 찾아갔다. 첫 원고료를 학교에 기증하는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학장선생님! 대학에서 저를 도와주어서 첫 원고료를 탔습니다. 저는 이것을 대학에 기증합니다.》
 
안경쟁이학장은 매우 좋아하였다. 그도 비슈와나스의 기사들을 주의깊게 보고있었다. 분쟁문제를 다룬 비슈와나스의 기사가 영국인인 그의 비위에 좀 거슬렸는지는 알수 없는 일이나 그에게는 그런 내색이 전혀 없었다. 하긴 웃으며 보호해주며 그보다 더 큰 리윤을 얻을줄 아는 영국인들이 설사 비위에 좀 거슬렸다 해도 내색을 할리 만무한것이였다. 그는 《알겠다.》 하며 그것을 쾌히 받아들이는것이였다.
다음날 아침 기도시간에 학장은 또다시 비슈와나스를 대렬앞에 내세우고 이 사실을 통보하면서 첫 원고료 기증을 나는 접수한다, 그러나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원고료를 돌려주는것이였다.
《이 얼마나 기특한 소행입니까?! 이것은 우리 대학의 자랑입니다.》
 
비슈와나스는 이번에도 박수갈채를 받았다.
고맙게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례의를 차린 비슈와나스는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감을 느끼였다.
참으로 례의는 사람을 신성하게 만든다.
이렇듯 첫 원고료는 돌고돌아서 두르가데비의 앞에 오게 되였다.
주말에 집에 간 비슈와나스는 첫 원고료를 어머니에게 드렸던것이다.
두르가데비는 매우 기뻐하였다.
돈보다도 자기 아들이 이만한 원고료를 탔다는것이 중요하였다.
또한 부유한 가정이지만 아들이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가치를 가졌다는 그것이 더없이 기뻤다. 그래서 두르가데비는 그 돈으로 연회를 차리고 마을사람들을 초청하였다. 그 자리에서 두르가데비는 아들을 자랑하였다.
물론이다. 자식이 구실 못하면 더없는 창피를 느끼며 어디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자식이 구실하면 더없는 긍지를 느끼며 자랑하고싶어하는것이 모든 어머니들의 하나같은 마음이다.
갑자기 비슈와나스는 사춘기라는 애어린 존재에서 유력한 어른의 존재로 변모되였다.
이렇게 그는 10대에 벌써 관찰과 분석이 정확하고 필력이 있다는 인정을 받으며 기자생활의 문턱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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