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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남북

문화 | -장편실화- 인생열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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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3-25 15:2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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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서   장
 
촬영기에 비쳐진 모습
 
2007년 2월 15일 10시.
 
이 시각 사람들은 다 모르고있었다. 비슈와나스가 어제 오후 뉴델리로부터 어떤 비보를 받았는지, 그가 과연 어떤 사연을 안고 이 자리에 섰는지…
다만 이 자리에는 한없이 경건하고도 숭엄한 환희의 감정만이 흐르고있었다.
이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국제김일성상리사회가 결성되던 1990년대초부터 줄곧 고심해오던 비슈와나스였다. 그는 만수대의사당 넓은 홀에 모인 각국의 주체사상연구
 
조직대표들을 둘러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하여 그는 감격에 젖어드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시작하였다.
 
《친애하는 세계의 벗들!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각하께 세계에서 가장 존엄높은 상인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해드리는 성대한 의식에 참가한 당신들을 열렬히 환영하는바입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는 비슈와나스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는듯싶었다.
그 모습을 촬영하는 나의 눈굽은 왜서인지 자꾸만 희뿌옇게 흐려왔다. 그리하여 나는 참가자들의 시선을 피하며 몇번이고 손수건을 눈에 가져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나는 웬만해서는 촬영기를 손에 들지 않는다. 직업적인 기자들이 있기때문이다. 그들은 항시 우리보다 먼저 행사장을 차지하고 국내외의 모든 사변들을 정확히 세상에 보도하고있는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촬영기를 들고나왔다.
이것은 내가 단지 촬영애호가여서만이 아니였다.
오늘의 화폭만은 내가 직접 촬영하리라. 그리고 내 손으로 편집물을 만들어 인터네트망을 통하여 온 세상에 알리리라.
이것은 비슈와나스의 가슴속진정, 깊고깊은 그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내가 시대앞에, 력사앞에 스스로 걸머진 리성의 자각이였다.
 
그가 어제 오후 뉴델리로부터 받은 비보에 대해 아는 사람은 몇이 안되였다. 그중 한사람인 한찬두 역시 비슈와나스의 말을 통역하면서 여느때없이 감동과 흥분으로 떨고있는듯 하였다.
《…국제김일성상리사회는 21세기의 태양이시며 인류자주위업의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각하께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하여드리는것을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적의무로, 최상의 영광으로 간주하면서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국제김일성상을 정중히 수여하여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국제김일성상리사회 결정을 랑독하겠습니다.》
 
조선어로 통역하는 한찬두의 말을 받아 각 어종의 통역원들이 또한 자기가 맡은 대표단들에게 부지런히 그 나라 말로 통역하고있었다. 참으로 5대륙이 다 모인 자리였다.
비슈와나스의 눈굽에도 감격의 눈물이 맺히는듯싶었다.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된 그 시각부터 제1번을 김정일장군님께 수여해드리는것은 그의 소망이자 전세계 진보적인류의 념원이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부디 만류해오시였다. 국제김일성상리사회는 해마다 그이께 거듭되는 요청을 드리였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15년세월이 흐른 오늘에야 비로소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념원이 이루어진것이였으니 참가자들모두의 가슴이 어찌 감격에 설레이지 않을수 있으랴.
 
언제나 첫자리는 인민에게, 인류에게 모든것을 양보하시는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그리하여 오늘 장군님께 수여해드리는 국제김일성상은 제7번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엄숙한 목소리로 국제김일성상리사회 결정을 랑독하기 시작하였다.
《국제김일성상리사회 결정.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머지않아 인류공동의 명절인 조선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각하께서 탄생하신 2월의 명절을 뜻깊게 맞이하게 된다.…
국제김일성상리사회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고 인류의 자주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숭고한 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것을 높이 평가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각하께 2월의 명절에 즈음하여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해드리기로 결정한다.
 
 국제김일성상리사회 서기장. 박사 비슈와나스
 
2007년 2월 1일. 뉴델리》
 
박수, 박수…
 
터져오르는 그 박수소리는 만수대의사당을 울리며 끝간데없이 멀리멀리 메아리치는듯싶었다.
5대륙에서 온 진보적인사들의 뜨거운 열광속에 김정일장군님께 수여하여드리는 국제김일성상 상장과 금메달, 귀금속공예기념품을 비슈와나스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게 정중히 전달하였다.
뒤이어 축하연설들이 있었다.
김정일장군님께 세계에서 가장 존엄높은 상인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해드린 커다란 기쁨을 안고 연단에 나선 오가미 겡이찌며 알바 챠베스…
 
국제김일성상리사회성원들인 그들모두의 얼굴마다엔 오랜 세월 품고있던 소망을 이룬 감격이 한껏 어려있었다.
얼마나 고대해온 이 순간인가.
 
각 나라 대표단들의 흥분된 모습을 둘러보는 비슈와나스는 자못 감개무량한 표정이다. 나의 촬영기렌즈에 가깝게 들어오는 그의 얼굴에 소망을 이룬 환희의 표정이 력력히 어리는것을 나는 볼수 있었다.
얼마나 뜨거운 인간인가, 얼마나 진실한 인간인가.
 
나의 귀전에는 그가 어제 오후 숙소에서 하던 말이 쟁쟁히 울리여왔다.
《당신들, 이 일을 말하면 두번다시 대상하지 않겠다.》
 
그때 우리는 오늘 행사를 두고 토론하고있었다. 그의 계획을 한참 듣고있는데 전화가 왔다. 한찬두가 전화를 들더니 뉴델리에서 맏아들이 걸어오는 전화라고 하면서 그에게 바꾸어주었다.
 
전화기에서는 함께 사는 그의 맏아들 안일 샤르마(1951년생)의 음성이 확성기를 틀어놓은것처럼 들리고있었다.
내용은 할머니가 금방 사망하였는데 빨리 오라는것이였다. 아들의 할머니이자 비슈와나스의 어머니인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할머니의 마지막에 대하여 전하였다.
《얘야, 네 아버지가 언제 오느냐?》
 
《이달 21일이면 옵니다.》
 
손자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속으로 날자를 세여보더니 《한주일!》 이렇게 내뱉고는 조용히 갔다는것이였다. 조용히 살아온 한생처럼 그는 갈 때에도 조용히 갔던것이다.
《알겠다.》
 
이렇게 대답하며 전화기를 천천히 놓는 비슈와나스는 굳어진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말이 없었다. 주름잡힌 그의 두눈굽에서 주먹같은 눈물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앞에서 한찬두와 나도 굳어졌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 두르가데비(1902년생)를 잘 알고있었다.
자식을 위해, 자손을 위해 말없이 한생을 바친 녀인이였다. 참으로 그는 인자한 어머니, 현숙한 할머니였다.
 
비슈와나스에게 있어서 그의 어머니는 어린시절부터 마음속에 새겨온 미였으며 사랑이였으며 삶이였다. 조용히 살았으나 그 어머니의 이름은 온 마을이, 온 구역이 다 알고있었다. 그만큼 그 어머니는 인디아에서는 보기드문 미덕의 소유자였다.
80고령의 비슈와나스도 어머니앞에서만은 어린애가 되여 집에 들어서면 하루일을 보고하고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고서야 자기 방으로 가군 하였다.
이제는 어머니가 없는 세상이 되였다.
 
아, 어머니!
나를 젖먹여 키워주고 세상에 내세워준 어머니!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끌어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100살을 넘기고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자기자신과 끝없이 말하고있었다.
이 순간 비슈와나스의 머리속에는 잊지 못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화폭들이 주마등같이 흘렀으리라.
언제까지 이어질듯싶은 그의 상념, 그의 심중의 독백을 나는 깨뜨릴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할바를 해야 했다. 빨리 그를 집으로 보내야 하는것이였다.
 
그는 7형제의 맏이였으며 6남매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였으며 또한 줄기줄기 뻗어간 족보의 자손들 100여명을 거느린 샤르마(선조의 성)가문의 가장이였던것이다.
 
실로 그는 대가정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서도 위풍이 당당하였다. 그 나이면 흔히 집안에 앉아 여생을 즐길 나이이다.
 
《리사장선생, 빨리 떠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침묵을 깨뜨리며 우리가 하는 말이였다.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국제김일성상리사회성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는 대답이 없다.
그는 자기가 주관하여야 할 가정의 대사를 생각하고있었다. 또한 그는 응당 자기가 서있어야 할 시대의 위치를 자각하고있었다.
 
어느곳이 더 중요한가.
이윽하여 그는 아무말없이 전화기를 들더니 번호판을 누르는것이였다. 제꺽 안일 샤르마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는 뉴델리의 자기 집을 찾았던것이다.
《나다. 너희들끼리 장례를 치르도록 해라. 나는 나의 일정을 변경시킬수 없다.》
 
그다음 그는 몇마디 더 장례행사와 관련한 지시를 주고 전화를 놓았다.
그의 결심은 이미 확고해진것이였다. 우리의 권고가 이제는 그에게 먹어들리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번 길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국제김일성상을 김정일각하께 수여해드리려고 평양에 간다는것을 말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을 잘하고 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네가 올 때까지 내가 살아있으면 좋고 간다해도 그것은 때가 됐기때문에 가는것이라고 하시였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는 주체의 길을 끝까지 지켜준 〈천사〉였습니다. 내가 할 일을 다하고 돌아가면 나의 어머니도 기뻐하실것입니다.》
 
그는 하던 토론을 계속하자며 미리 말해둘것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이 일을 입밖에 내면 다시는 우리와 상종을 하지 않겠다는것이였다.
우리의 가슴은 뭉클 젖어왔다.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당부를 멀리에서 심장으로 받아안았던것이다. 자식이 주체의 한길을 끝까지 갈것을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속의 그 당부를!
이렇게 되여 오늘 행사는 비슈와나스의 주관하에 계획대로 성대히 진행되고있는것이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을 사람들은 아직 다 모르고있었다.
비슈와나스의 태연자약하고도 침착한 모습이 촬영기의 렌즈에 비껴들수록 나의 가슴에는 만민이 따르는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고사는 민족의 한없는 긍지와 함께 인류의 이런 뜨거운 지향이 반드시 지구우에 자주위업의 승리를 안아오고야말것이라는 확신이 더욱더 강렬하게 심어지는것이였다.
나의 촬영기에는 모든것이 비쳐지고있었다. 5대륙인사들의 활기찬 모습만이 아닌 그들의 가슴속 깊고깊은 사연까지 다 비쳐지고있었다.
 
비슈와나스!
 
오늘의 행사를 주관하는 그의 모습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있으면서도 다는 몰랐던 그의 마음속진정이 력력히 비껴흐르는듯싶었다. 그 모습은 내가 이미 아는 비슈와나스의 모습만이 아닌 더 크고 더 강렬한 거인의 영상으로 나의 가슴에 새겨지는것이였다.
이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그의 인생행로가 화면처럼 흘러가고있었다.
과연 그의 인생렬차는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에로 치달아오르고있는것인가?!
 
무슨 힘이 그를 움직여 80고개를 넘어선 오늘도 그는 모든것을 다 바쳐 주체의 한길만을 쉬임없이 걸어가고있는것인가?!
 
나도 그와 함께 걸으며 지나온 그의 발자취를 세상에 헤쳐보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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