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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남북

문화 | - 장편실화 - 인생열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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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4-24 02:4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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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춘기의 한때
 
이 세상 그 어느 부모나 자기 자식을 출발선에서부터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하려는것은 공통된 심정이다.
 
비슈와나스의 부모도 다를바 없었다. 그들에겐 그런 능력이 충분히 갖추어져있었으며 또한 그런 가문이였다.
비슈와나스의 고등학교(6년제)시절은 불밝은 도시에서 흘러갔다.
두르가데비는 자기의 슬하에서 5년간의 소학교신발을 든든히 신긴 다음 그를 프린슬리주의 친정집으로 보냈던것이다.
아이들의 미래의 운명은 어머니의 노력과 갈라놓을수 없다.
당시 프린슬리주는 인디아에서 교육이 가장 발전하고 번성하던 주로 알려져있었다. 이 주의 교육상인 두르가데비의 친정아버지 아워스티는 비슈와나스를 가정교사까지 붙여가며 공부시켰다.
 
소학교시절도 그랬거니와 고등학교시절도 비슈와나스의 생활은 배움속에 부럼없이 흘러갔다.
외할아버지의 집은 도시의 중심에 있는 3층으로 된 독채였다. 매 층에 다 큰 전실이 있고 여러개의 방들이 있었다. 식구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삼촌이 전부였다.
비슈와나스는 2층의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많은것을 보며 많은것을 먹으며 몸과 마음을 튼튼히 자래워갔다.
판도리비비마을의 고향집에는 발전기가 소리를 내며 전기를 일으켰는데 이 집에는 소리없이 어데선가 전기가 흘러오고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주공주를 비롯한 주의 많은 권력자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때로 그는 그들과의 놀음에 령리한 이 어린 외손자를 즐겨 데리고가기도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비슈와나스는 딸의 자식이였지만 첫 손자였던것이다.
영국의 통치하에서의 한개 주의 교육상인 아워스티는 사랑스런 이 외손자를 근대문명에로 이끌어갔다. 그는 윙―윙― 돌아가는 기계의 소음을 노래마냥 들으며 화려한 도시의 거리를 걸어 학교에 오갔다.
거리에는 자그마한 손달구지에 끓는 차가 담긴 커다란 통을 싣고다니면서 건강에 좋다고 선전하며 그것을 그냥 주는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였다. 건강에 좋다는 차를 왜 공짜로 사람들에게 주는것일가. 아마도 영국인들은 그런 모습을 통하여 자기네가 인디아를 현대문명에로 이끌었다는 강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겨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누구나가 차를 마시지만 그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디아에서 끓는 차를 마시는 풍습은 몇백년전의 조상때부터 전해내려오지만 그때에는 사람이 열이 나거나 아플 때에 마시는것으로 되여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어릴 때부터 차를 마시며 자랐다.
그는 근대교육바람을 쏘였다.
아마도 프린슬리주에 대학이 있었다면 아워스티는 그를 그냥 붙잡아두고 손때묻혔을것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대학이 없었다. 하여 두르가데비도 처녀때 고등교육만은 까쁘르탈라주에 가서 받았던것이다.
인디아의 모든 주들이 당시에는 영국의 모자를 쓰고있었다.
500개의 주중에서 그때에는 3개의 주(까쁘르탈라주, 판쟙주, 빠띠알라주)에만 대학이 1개씩 있었다. 그때 인디아에서 고등교육기관이란 이 3개의 대학이 전부였던것이다.
샤르마가문의 장손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비슈와나스도 대학에 가야 했다. 그 가문의 직계에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황금 천냥이 자식교육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교육이 그 인간과 한 가정의 흥망은 물론 민족의 장래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의 하나로 되기때문이다. 하기에 력사적으로 어느 사회에서 어느 계급, 어느 계층이든지 다 교육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려오는것이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아들이 의사가 될것을 바랐다.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라호르에 있는 메요 예술 및 상업대학을 지망하였다. 그것은 그 대학에 프린슬리주의 고등학교 동창들 몇명과 소학교시절의 가장 가까왔던 동무 알따브 후쎄인이 이미 입학시험을 쳐 붙었기때문이였다. 그들이 비슈와나스를 추동하고있었다. 비슈와나스 역시 그 대학에 가면 고향집대문에 부각되여있는 전설속의 두루미가 날개를 휘저으며 멀리 바라보는 무아경의 그 세계에로 끝없이 날아갈것만 같았다.
라호르는 판도리비비마을에서 350키로메터정도 떨어져있는 판쟙주의 소재지이며 공업과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11세기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이 도시에는 당시에도 고대문화의 유적유물이 많이 보존되여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공부하고싶어했고 또 일하고싶어했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맏아들을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 보내여 의학을 공부시켜 자기의 대를 잇게 하고싶었으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자식이지만 이제는 자기딴의 세계관이 어느정도 섰을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의 의향을 존중시하는 바드리 나트 취바였다.
그는 아들에게 네 갈길이 정해져있으면 네 마음대로 하되 일단 정해진 길은 후회하지 말고 곧바로 가라고 하였다.
큰할아버지 라챠만 다스는 어느 대학에 가든지 장차 가문의 령지를 이어받아 관리할 실력을 한껏 배양해서 돌아오기를 바라마지않았다.
때는 1942년 봄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입학시험 마지막날에 응시하여 높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상업학부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독립적인 그의 생활이 시작되였다.
아버지는 집을 떠나 대학공부를 하는 아들에게 매달 25루삐(인디아의 화페단위)의 돈을 주었다. 그때로서는 학비와 기숙사비를 물고도 여유가 있는 돈이였다.
수업은 아침 7시에 시작되였다. 하지만 수업전에 전체 학생들은 매일아침 운동장에 모여 《하느님》을 우러러 기도를 해야 했다.
《주여,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옳은 길로 들어서도록 도와주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는 나의 조국 인디아입니다. 한쪽에는 히말라야산이 있고 다른쪽에는 대양이 있고 나라는 꽃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그것이 나라를 지켜주고있습니다.…》
 
모든것이 영국식이였다. 예속국은 종주국의 모든것을 본따야 하는것이였다.
소학교때부터 기도를 해왔지만 대학에서는 그 문구가 보다 길었고 무조건 암송해야 하였다. 차렷하고 꼿꼿이 서서 기도문을 외우는 비슈와나스의 몸은 언제나 편치 않았다. 하지만 악단이 연주하는 찬송가의 비장하고도 무거운 선률에 눌리우기라도 한듯 그는 꼼짝 못하고 서있어야만 하였다. 기도가 끝난 다음에는 의례히 키가 늘씬하고 얼굴이 새하얀 학장이 학생들앞에 나섰다.
영국사람인 그는 진곤색 제낀옷을 입고 그안에 받쳐입은 조끼에는 금색을 띤 사슬을 늘이였다. 그는 동그란 코안경을 걸치고 그 누구를 보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눈길로 좌우를 둘러보며 혀가 잘 안도는 힌두어로 훈시하군 하였다.
 
대학의 실권자인 그의 말은 매일아침 기도문을 외우는 학생들에게 그 실천여부를 공개하는 《하느님》의 판별과도 같은것이였다. 《하느님》의 의도를 따른 학생들에게는 칭찬이 내렸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벌이 내렸다.
《하느님》을 우러러 속죄하는 기도는 그때도 하고 세기가 바뀌여진 오늘에도 달리되지 않고있다. 소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기도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는것은 그때부터 오늘까지 하나의 법도로 되여있는것이다. 그만큼 《하느님》의 생명은 저 하늘과도 같이 이 세상에서 무한대한한것인지.
 
그 《하느님》의 세상에서 그 누군들 뛰쳐나올수 있으랴.
하지만 비슈와나스는 그 《하느님》의 세상이 답답하였다. 그는 자기의 일생을 《하느님》에게 바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우월감과 자존심으로 부풀어오르던 그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오후 2시에는 수업이 전부 끝났고 그 이후에는 복습시간이였는데 그는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축내여 무엇이든지 새로운것을 즐겨야 하였다. 그가 바라는것은 새로운 거리, 새로운 경치, 새로운 체험이였다.
비교적 온화하고 내성적인 알따브 후쎄인은 기숙사에서 그냥 공부하자고 하였다. 비슈와나스는 이미 외할아버지의 혜택을 받아 많은것을 앞서가며 무르익혀온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활동적인 그에게 있어서 하루종일 앉아있는다는것은 참으로 그자체가 괴로운 중로동으로 되는것이였다.
 
대기에는 훈향이 감돌고있었다.
 
인디아에서 계절은 대체로 3개의 계절로 나뉘여진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남서계절바람이 부는 시기로서 장마철로 되며 12월부터 2월까지는 북동계절바람이 부는 시기로서 비가 적게 내리는 계절이다. 그리고 3월부터 5월까지는 계절바람이 바뀌는 시기로서 제일 더운 때이다.
 
4월과 5월이 서로 가까이하고있는 계절이였다. 대자연은 어서 오라 날마다 그를 부르고있었다. 그리하여 비슈와나스는 《하느님》의 뜻을 조금씩 거역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짝패들과 어울려 라비강으로 자주 나갔다.원래 그는 운동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특히 수영과 뽀트에 대단한 취미를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대지는 신록으로 눈부실 정도였다.
푸른 옷차림을 한 뽕나무들이 강기슭에 줄지어 서서 새빨간 빛의 갸름한 오디들을 반짝이며 언제나 반겨맞아주고있었다.
비슈와나스는 대자연의 이 향취를 한껏 들이키며 노래를 불렀다.
 
젊어서는 분위기에 의해서만도 노래가 나오는것이다. 그만이 아닌 생명을 가진 만물이 노래를 부르는 좋은 계절이였다.
 
연한 뽕나무향기가 스민 대기속에는 꿀벌의 잉잉거리는 소리며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비슈와나스는 그 모든 음향을 들으며 라비강의 물결을 헤염쳐갔다. 라비강은 인디아에서 시작되여 카슈미르를 지나 오늘의 파키스탄지역으로 흘러가는 유명한 강이였다.
 
판도리마을에서 제일 가깝다고 하는 비아스강은 마을에서 35키로메터정도 떨어져있었으나 라비강은 대학기숙사에서 4키로메터에 불과한 거리였다.
이 강을 헤염쳐갈 때면 몸도 마음도 더 넓어져 저 하늘이 통채로 가슴에 안겨지는듯싶었다.
그렇게 몇달.
뽕나무의 잎새들이 노랗게 물들며 떨어지는 계절이 오면서 강에 뛰여들기가 힘들어지게 되였다.
비슈와나스는 극장과 전람회장 같은데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차 싫증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것이 날마다 있지 않았던것이다.
휩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자기도모르게 어지러운 패당들속에 끼여들게 되였다. 그 패당은 집을 뛰쳐나간 무리였다. 그들은 비슈와나스를 보고 우선 녀선생들에게 걸치라고 하였다. 몇번 그렇게 하니 그들은 너는 이미 잘못을 저질렀으니 우리 패에서 못나간다고 오금을 박았다.
비슈와나스는 그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다니며 놀기 시작하였다.
《비슈, 너 정신을 차려라!》
 
소꿉시절 짝패인 알따브 후쎄인이 하는 말이였다. 비슈와나스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진정으로 충고를 주었다. 하지만 한번 빠진 구멍에서 쉽게 발을 뽑을수가 없었다.
토요일이 왔으나 비슈와나스는 집에 가지 않았다. 패당들과 이미 일요일에 어디에 가서 놀자고 약속이 되여있었던것이다.
비슈와나스의 부모들은 걱정했다. 언제한번 생활질서를 지키지 않은적이 없는 아들이였던것이다. 두르가데비는 빨리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독촉했고 바드리 나트 취바는 무언이였다. 그렇게 또 한주일이 흘렀다.
알따브 후쎄인은 이번에도 혼자 고향마을에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비슈와나스의 부모를 찾아가 알고있는 모든것을 전하였다. 알따브 후쎄인은 자기의 힘으로는 안되니 부모들을 동원하여서라도 동무를 옳은 길로 이끌어야겠다고 결심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바드리 나트 취바가 대학에 찾아왔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비슈와나스는 가슴이 섬찍하였다. 언제한번 아버지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적이 없는 그였던것이다. 아버지가 기숙사에까지 왜 찾아왔는가는 말없이도 뻔한 일이였던것이다.
 
바드리 나트 취바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믿었더니 네 앞날이 걱정되누나. 이번 토요일에는 집에 오도록 해라.》
 
긴말없이 바드리 나트 취바는 돌아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낮으나 근엄한 그 한마디의 말은 비슈와나스의 가슴에 천만마디의 말로 이어져울렸다.
언제한번 큰소리를 친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잘못을 저질렀을 때처럼 그날도 조용히 엄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돌아가는것이였다.
비슈와나스는 자기를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저녁 알따브 후쎄인은 절절히 말하였다.
《비슈! 너는 어디로 가려니?》
 
친구의 그 말이 비슈와나스의 가슴에 칼날처럼 박혔다. 알따브 후쎄인의 말이 이처럼 심금을 울린적은 없었다. 이 순간 비슈와나스는 정신이 버쩍 드는것을 느꼈다.
 
비슈와나스는 밤깊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부모를 두고, 친구를 두고 깊이깊이 되새겨보게 되는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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