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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살인강도 악마들의 적반하장 인권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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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06 16:1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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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강도 악마들의 적반하장 인권타령          이인숙(재미동포)

북인권정보센터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10명 중 3명이 연좌제로 수감됐다고 하면서 북의 연좌제는 시대착오적인 인권유린이라고 떠들어댄다.

휴먼 라이트 워치 어용인권단체의 필 로버슨은 연좌제는 말도 안되는 제도이며, 북인권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잘 모여준다”, 북자유연합 대표인 수잔 숄티는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권유린 행위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 “부모가 정치범이란 이유로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야 하는 상황은 북한에만 존재하는 비극”, 북인권단체 조슈아 스탠스 변호사는 연좌제는 명백한 불법으로 국제 규범에 어긋나며 세계인권선언 뿐 아니라 북이 서명한 인권관련 조약들도 연좌제는 분명히 금지하고 있다”, 그렉 스칼라 튜는 연좌제는 조선시대에 있었던 제도로 봉건시대의 유산이 아직북에 남아 있다등등 적반하장의 말들을 인권의 탈을 쓴 인권유린의 왕초들이 쏟아 붓고 있다.

혓바닥만 살아있는 어용인권단체 사기꾼들아, 정녕 너희들이 연좌제가 무엇인지나 알고 지껄이는가?

남녘땅 대한민국에서 연좌제로 인해 살아도 죽은 목숨 같이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들을 니들이 감히 손톱 만큼이라도 알고나 하는 말인가?

전쟁광 미국과 한국 매국노들이 행한 모든 범죄행위를 고스란히 북에 뒤집어 씌우는것에 숙달된 달인들인 것은 알고 있지만 어찌 연좌제까지 뒤집어 씌우는지 기가막힌다.

휴먼 라이트 워치 똥개들아, 남한의 식민지 독재하에서 연좌제로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있을 때 니놈년들이 방금 말한 연좌제는 말도 안되는 인권유린제도라고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봤느냐, 돈에 영혼을 팔아 먹은 기생충들아!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투쟁하던 분들을 기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숭고한 삶의 가치이며 지속 계승해야 할 민족의 얼이다.

보수 목사 빌리그레함도 북에 예수가 와도 할 일이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북은 정의와 사랑 양심이 충만한 사회라는 말이다. 이런 숭고한 가치에 반하여 일부 탈북자들같이 강간 강도질 횡령 도적질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해대는 것들을 가두는 것이 연좌제라고?

남과 북은 근본 부터가 다르니 죄의 잣대 마저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북은 우리민족’ ‘이웃을 위한 희생’ ‘자존심’ ‘자주라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지만,

남은 ’ ‘아부아첨’ ‘자존심이 밥먹여주냐?’ 가 무엇보다 먼저 앞서는 잣대이다.

남녘에서는 무조건 강한 힘에 기생하여 온갖 영화를 누리면서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개 돼지주의이다.

이들에게 공의 진리 양심 정의를 말하는 것은 멍멍이와 꿀꿀이에게 말하는 것과 별반다르지 않다.

일제의 하수인에서 미국의 하수인으로 바뀐 남녘땅 매국노들은 양심과 정의와 사랑이충만한 항일독립투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죽였다. 빨갱이라고 낙인을 찍으면서 말이다.

미국과 그 식민지 매국노들의 가장 무서운 적들이 바로 자주 정신이 가장 강한 독립투사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관하여서는 철저히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일제독립투쟁혁명가들은 조선이 일제의 손아귀에서 미국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도 조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제치하에서의 투쟁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 일제시대에 불량불순분자라고 매도했던 표딱지가 미국시대에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애비 맥아더의 치하에서 필리핀의 민간인들이 80만명(20~ 150만 추정; 민간인 학살은 정확한 숫자를 알기가 어렵다)이 학살 당하였고,

아들 맥아더의 통치하에서 그리고 미국의 고문관 정치(총독정치)에 의해서 남녘땅에서는 민간인들이 대략 100만명이 학살당하였다.

(한국전쟁에서는 민간인들 527만명 희생<정대화 박사님>)

그 살인마 맥아더를 존경하여 동상을 만들고 영화로 왜곡 선전하는 한국이 제 정신일까?

미국의 전쟁광들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쉽게 죽여버리는데, 그에 기생하여생존하는 식민지 매국노들의 잔인함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브루스 커밍스의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란 책에, 만주의 항일공산혁명군들 때문에 일본 제일의 관동군들이 묶여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고, 결국 일제패망 원인들 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 항일독립운동 공산주의자들을 오카모도 미노루(박정희가 처음 개명을한 이름 다카키 마사오는 조선냄새가 난다하여 또 다시 개명을 함)와 백선엽들은 공비들”(공산 도적놈들)이라 불렀고 그에 협조하는 조선인들을 없앤다고 견벽청야 전술이랍시고 만주의 우리동포 마을들을 싸그리 죽이고 불태웠다.

8.15이후에도 일제에 견마지로를 다하여 멸사봉공하겠다고 왜왕에게 혈서로 맹세한박정희 같은 매국노 관동군 출신들 백선엽 등에 의하여 민간인들이 대학살 당하였다. (, 지리산 함양군 추모공원 - 이곳은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시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상부에서 내려온 견벽청야라는 작전으로 민간인들 700여명을 몰살한 곳이다.<한국농정2011.03.14>)

이 매국노들이 일제가 우리 어린 처녀들을 유괴납치하여 왜군들의 성욕대상 위안부를 만들었던과 똑 같은 위안부 대기소를 만들고 미군들의 성욕을 풀도록한 더러운 犬韓蠻國이다.

조국을 사랑하고 정의와 양심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애국자들이 죽임을 당하고남은 그의 가족들이 한 많은 세상을 눈물과 한숨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 하나의 예로 내 지인 가족의 생활사를 한 부분만이라도 말하고자 한다.

내 지인의 아버지는 소위 지금 유행되는 말로 하자면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었건만 동학란으로 초토화된 그 어머니(지인의 친할머니)집안의 반골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탓인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일제시대에는 항일투쟁으로 갖은 고문을 당하였고 8.15후에도 외세와 매국노들에 쫓기었으며,매국노들이 무서워 가족들이 시신을 찾으러 가는 것 조차도 포기하였다.

다음은 2012.06.17에 이석기 김재연을 종북이라고 마녀사냥하는 것에 분개하여 올렸던글 중에서 연좌제에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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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인의 아버지는 악질적인 집안에서 어머니(지인의 할머니)40세 즈음 약간은 늦동이로 태어 나셨다. 지인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자기가 시집 간지 얼마 안되어 어떤 사람을 잡아다가 멍석말이로 때려 죽였는데도 아무탈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넘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마을 앞을 말 타고 지나가면 감히 고귀한 양반댁 마을을 말에서 내려서 지나가야지 버릇없다고 붙잡아 두들겨 패서 보냈다고 한다. 지인 어머니 말씀은 그렇게 악질이라 벌 받느라고 다 망해먹고 너희가 이렇게 살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집안의 종손 두째 늦동이 아들이니 얼마나 기가 팡팡 살아 모두를 눈 아래로 보고 살았겠는가?

그런 그분의 삶에 큰 영향을 준 분은 그분의 외삼촌이었던 것 같다.

그분의 외갓집은 서당 훈장이었는데 동학란에 가담하여 왜놈들에게 패하고 역적으로 대 학살이 일어 날때, 그분의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시집까지 몰살 될까 봐 우물에 뛰어 내렸는데 풍덩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달려나와 살렸으나 그 뒤로 한쪽 팔을 잘 쓰지 못하고 떤다고 했다.

그 어머니의 오빠는 의병나가서 죽고 큰 동생은 목포에서 일본으로 우리나라 쌀을 실어가지 못해게 사보타지 하고 화순탄광에서 사보타지하다 쫓겨 결국 왜놈 경찰손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친구 할머니는 13(14?)세에 시집와서 친정이 개박살 나고, 그 화가 시집까지 미칠까봐 평생을 죽은 듯이 살았다한다.

한자를 줄줄 읽으시고 중국 고사들을 재미있게 줄줄 말씀하시던 그 할머니의 가슴에는 무슨 한이 또 얼마나 많으셨을까?

 

그 외삼촌의 영향으로 내 지인의 아버지는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것 같다.

기고 만장했던 그분이 멍석말이로 죽었던 집에 찿아가 논밭을 주고, 자기 몫의 땅들을 짓던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 술집여자들에게도 깍듯이 존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라고 난리들이 었다고 한다.

덕분에 지인 어머니는 죄인이 되어 숨도 제대로 못쉬고 살았다 한다.

그 왠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다가 한번씩 나타나서 애만 하나씩 만들어 놓고 갔지

라고 지인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1930,40년대에는 자칭 민족주의자들이 전향하여 일제의 앞잡이로 일제를 찬양하고 학도병과 정신대에 나가라고 설쳐댔으며, 박정희 같은 종왜 매국노 개들은 독립군을 때려 잡는 관동군 정보장교가 되었으며, 상징적으로 상해에서 소수의 몇 분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처럼 계셨고, 실제로 일제와 맞서 싸운 분들은 국내 국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해방되고 이승만이 귀국하여 처음 한 소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칭찬해서

악독한 왜적의 압박하에서 지하공작으로 백절 불굴하고 배일 항전한 투사임을 높이 평가한다.” (45.11.23서울신문)고 말했고 (후에 자기가 정권을 잡기위해 정반대로 일제 매국노들과 결탁하고 공산주의자들을 무참하게 짖밟았지만),

미군정청의 여론조사(1946.08.13동아일보)에서도 남한의 77% 국민들이 우리가 이뤄야 할 나라는 인민 공화국이라고 응답했었다 (자본주의14%, 사회주의70%, 공산주의7%).

 

내 지인의 아버지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일어서지고 못하게 두들겨 맞고 갇혀있으면,할아버지와 친척들이 재산을 헌납한뒤 들것에 실려 나왔다 한다.

내 지인의 어머니도 자주 잡혀가서 두들겨 맞았는데, 하시는 말씀은

내가 지금 가슴이 이렇게 아픈것도 그때 그놈들 한테 맞아서 그래, 그때 구두발로 나를 차고 때렸던 놈들은 정작 일본놈들이 아니라 조선놈 앞잡이들이 었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참담한 일제때 내 지인의 빨갱이 아버지가 태극기를 손수 그려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사실은 그 때 그 태극기는 우리민족 우리국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태극기라면 불령조선인이라고 죽이기까지 하며 갖은 고문을 해 대던 자들이,

해방되고 미국의 식민지하에서 다시 권력을 잡게 되자 태극기를 앞세우고 , 독립운동했던 분들을 죽이고 어린애 노인들까지 죽이는 그 개쌍나라의 태극기는 같은 태극기 인지 묻고 싶다.

그분이 그린 태극기는 종왜종미 매국노들의 극성스런 반공 때문에 공포에 질려 지인의 가족들이 없애버렸다.

모든 흔적을 다 지워야 했기에…..

그 태극기, 그 태극기는 비록 그림은 같아도 박정희와 이명박이 경례하는 태극기가 아니었다.

지금 통진당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종북몰이를 시작하고 그에 합세하여 종북몰이 마녀사냥 선동을 하고있는 자들은 일제때 일장기에 경례하며, 태극기를 가지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죽이던 족속들이 그 뿌리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족자주 민중평등을 주장하는 자들을 철저히 죽여 없애고 싶은 자들은, 외세(미일)와 그에 빌붙어 똥빨아 먹는 매국노 개들이다. 왜냐하면 이 사악한 악마들에게 가장 방해가 되니까……. 그래서 이 매국노들이 통진당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일제가 물러난 조국에서 그 가족들은 더욱 참혹 했다.

일제 해방이 되자 사람들은 일제의 앞잡이들을 잡아 죽이려 했다.

그 때 지인의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게 했다.

세상이 바꿔졌으니 그들도 반성하고 새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명은 하늘이 준 귀한 것이라고.

 

보도연맹사건때 (인것같은데 _ 필자 추측) 내 지인을 업고 어머니가 창고에 불려 갔단다.

많은 사람들이 불려와 있었는데 내 지인이 악을 쓰며 울어대니, 일제해방때 아버지 때문에 살아 난 자 중의 하나가 알아보고 너무 시끄러워 밖에 잠간 대려 가서 애기를 달래고 오겠다고 앞에 앉아있던 미군에게 말하고 어머니를 밖에 대리고 나왔다 한다. 그리고는 아주머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읍니다. 빨리 멀리 도망가세요하더란다. 그 길로 어머니는 도망해서 3일간을 길거리에서 산에서 헤맸다 한다.

 

해방 되었다는 조국에서 지인의 아버지는 다시 쫓기고 쫓기는 몸이 되었고 , 그 가족들의 고초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어머님 표현을 옮기면 징글징글한 세상이었지란다. 어떻게 살아 왔는지 기적같아, “사람 목심이 쇠심줄이어…라고 하신다.

야반도주는 예사였고, 고향 떠나 숫가락 하나 없이 이사하기를 몇차례, 길에서 산에서 며칠씩 숨죽여 있어야 했다.

한번은 내 지인이 숨이 끊겨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은 지인을 나무 밑에 버리고 산 깊이 도망 했는데 다음날 해질 무렵 돌아 올때 보니 다시 살아 있더란다. 그래서 내 지인을 보고 죽었던 놈이 살았으니까 오래 살 거라고 했다.

 

어찌나 일제시대때 보다도 더 악랄했는지 일제때 몇일씩 숨겨주던 친척들도 이제는 숨겨주는 것을 무서워해서 눈치보며 있을 수 없었다 한다.

지인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수십일 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시니까 과거의 맺혔던 기억이 자꾸 나오는 것 같았다.

심한 공포와 아픔으로 괴로와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 하실때 입에 손가락을 대고

, 조용히해, 순사들이 엿보고 있어라고 하시며 제발 조용히 하라는 두려움으로 애원하듯 얼굴 표정을 잔뜩 꾸기시던 모습에 가슴이 아팠었다.

지인이 힘이 없어라 하면, 어머님이 내가 몇일 씩 굶고 젖이 안 나와서 저놈이 너무 굶어서 저렇게 약해” “저놈이 너무 고생 많이 했어. 너무너무 불쌍해하시었다.

지인이 온 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나자 즈 애비를 따라 갔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와서 죽었다고 하는 데 무서워서 시체 찾으러 갈 생각도 못했어. 애들하고 살아야 하니까. 꿈에 그 시체에 벌떼들이 꽉 찾었어. 그래서 저놈이 두드러기가 잘 나나 봐, 즈 애비하고 생김새나 하는 짓이 똑 같거든. 즈 애비가 조금 더 잘 생겼지만.” 하고 말씀하셨다.

 

그 후 줄곳 지인의 형제들은 반공에 미친나라 연좌제로 뜻을 펴고 살 수 없었고…

그들의 고통을 누가 알겠는가?

내 지인은 유년기 5년 동안을 고아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 형제들은 그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지금도 욕한다.

 

나는 지인의 아버지께 반문하고 싶다.

아버님, 그 매국노 새끼들을 어쩌자고 살려 두셔서

이 민족이 이렇게 식민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하셨습니까 ?

프랑스 처럼 싸그리 죽였더라면 이 민족의 정기가 바로 서지 않았겠읍니까?

아버님의 희생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함입니까?

식구들이 겪은 그 한 많은 고통은 어떻게 누가 보상합니까?”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 바친 십자가의 삶을 살은 이런 분들이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손자들에게 까지 숨겨야 하는 비정한 땅,

박정희 같은 매국노 개잡놈과 화냥년 같은 그 놈의 딸 년이 추앙 받는 이 개쌍나라가 과연 사람 사는 곳인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는 내 지인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종북이니 빨갱이니 매도하는 쥐박이 박똥 같은 개잡놈들과 비교하는 것 조차 언어 도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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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쓰지않은 연좌제 관련 지인의 개인사 일부를 추가합니다. >

내 지인의 어머니는 본가를 떠나 황산에서 살다가, 또 누군가 염탐을 하여 다시 도망을하고, 동산촌에서 좀 살다가, 또 경찰이 나타나서 삼례로, 이리(지금의 익산시)로… 도망이사를 다녔다. 전주 친정집에 잠시 있는데도 동생(지인의 외삼촌)누님 때문에 우리도 죽겠다는 말을 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 지인 보다 10살이 많은 큰누나는 초등학교 3학년 중퇴를 했다. 큰누나는 성냥공장을 다니다가 은명기 목사님이 알선해 주셔서 남의 호적으로 취직을 할수 있었다. 그래서 후에 내 지인이 있던 선덕고아원이 다른 고아원과 합치는 것을 계기로 고아원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은명기 목사님은 박정희가 구데타를 하자, ‘헌정파괴라고 규탄하시고, 박정희가 군복무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공약을, “부뚜막에 올라가서 생선맛을 본 고양이가 다시 부뚜막에 올라가지 않겠는가?” 라며 규탄하셨다. 당연히 감옥소에 끌려가셨다)

내 지인의 어머니가 그 고초를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고통과 고난을 기독교 하나님에게 맡기고 이 하나님이 어린 자식들을 돌봐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내 지인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하나님이 호주가 되어 이 어린 것들을 지켜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한다.

그러나 그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빨갱이 집이라고 대문을 발로 차고 가는 자들도 있었다한다. 그러면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떨곤하였는데, 하루는 성질급한 중3이었던 지인이 마루 밑에서 도끼를 꺼내들고 쫓아가려는 것을 식구들이 붙들어 말린 일이 있고 부터는 그런일이 없었다 한다. 그래서 지인은 빨갱이(종북) 타령하는 놈년들은 한결같이비열하고 떳떳하지 못해서, 도끼로 대갈통을 갈겨야 찍소리도 못한다고 말한다.

내 지인이 막내아들 이지만 먹고 사는 것이 급박한 터라 지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소학교를 마치자 마자 철공소에 취직을 시키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큰누님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원서를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논과밭을 갈고 땔나무를 하러 다녀야 했고 농산물들을 리어카에 싣고 시장에 팔고 다녀야 했다. 그 어머니는 머리에 야채 광주리 이고 시장에 나가 팔다가 단속하는 경찰에 발길세례를 받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인은 농사를 짓다 논에 농약을 살포하다가몇번이나 쓰러졌었다 한다. 그는 남들이 하는 과외공부나 수학여행등은 엄두에도 낼수 없었다.

힘들고 장래는 암담하여 고3때는 산에 들어가서 3일 동안을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죽으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너무 억울했다 한다. 그리고 도데체 신은 뭐하고이 따위인지 성경을 좀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리고는 성경을 읽었는데 로마서에서 은혜(?)를 받고 열렬기독교인이 되었다(지금은 야훼신을 유태인들이 믿는 종족신, 아프리카의 무당신과 같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 4복음서를빼고는 다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야훼신을 믿는 서구에 의하여 인류는 악마의 노예가 되었다 라고 까지 생각한다 ).

내 지인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어차피 군대는 가야하는 것이니, 일찍 갔다 와서 학업을 계속하여 사회로 이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당시에 육군 지원제도가 없어졌기 때문에 해병대에 지원하였다 한다.

지능검사 적성검사 체력검사 모두 잘 마치고 모병관이 이런 사람이 해병대에 오면 최고 좋지라며 좋아했다 한다. 그런데 발표날이 지나고 며칠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병무청에 갔더니 그 모병관이 빨갱이 새끼라 안돼라고 했다. “어차피 3년 썩어야 되기에가는 것이지 해병대가 좋아서 지원한 것도 아닌데, 개소리들을 한다라고 생각하며, “이따위에도 연좌제를 들씌운다면 아버지 사망신고를하고 호적을 옳겨 버려야 되겠다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한다.

본적지 면사무소 앞에있는 대서소에 들려, “아버지가 병들어 얼마전에 돌아가셨다라고했더니 그 대서소 사람이 웃으며 내가 이분을 잘 알지. 지금 살아 계신다면 대통령도하실 분인데…라고 말하며 자기가 알아서 다 해주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도장을 찍으라고 하자 그 사람이 이게 뭔지 알아서 도장을 찍소?” 라고 떨떠름하자 내가 잘아는 훌륭한 분 이니까 찍어라고 하고 또 한사람을 더 불러 아버지가사망했다는 증인을 만들고, 면사무소 직원에게 아버지 이름도 다 빼고 호적을 만들어OO로 이전 시켜달라고 했다 한다. 그렇게 본적지를 아버지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하여옮겼는데도 다른 곳에 기록물들이 또 있어 깊이 조사하면 또 들어난다고 한다.

당시 국립대학교는 한번 임용되면 정교수로 늙어 은퇴할 때 까지 쭉 보장되는 철밥통이었다.

내 지인이 국립대학교에 임용될 때, 다른 학과에서 같이 임용되는 두 사람은 한달도 않되어 임용을 받았는데, 내 지인은 신원조회가 되지 않아 3달이 넘도록 임용이 되지 않고있었다 한다. 무슨 이유인지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학과 교수들이 “OO선생, 임용장 받았어?” 라고 묻는 말이 그렇게 착잡하고 난처했다 한다.

결국 지인을 아껴주는 학장님께 아버지 이야기를 했더니 그 학장의 사위가 중앙정보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던 대학동창에게 치안국을 부탁하고, 육군 군종 장교인 국민학교 동창 형에게 방첩대를 알아 봐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그리고 도경 정보과에도 돈을 먹여서, 결국 이상 없는 것으로 신원조회를 만들어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만일 아버지 사망신고가 없고 본적지를 바꿔버리지 않았더라면, 빽줄을 만들어도 명확히 쉬운 문건으로 나와 버리기 때문에 발령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 임용제도가 생겨났다. 박정희에 대하여 비판적인 교수들은 줄줄이 재임용이 거부되고 대학교를 떠나야했다. 내 지인은 암담한 심정이었단다. “재임용 때 마다 신원조회 그 고통을 당해야 하고, 언제나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땅을 떠나자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한다.

미국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하여 미국유학을 수속하는데 신원조회가 말썽이었다.

몇 달을 기다려도 여권이 나오지 않아 다시 전 처럼 여기저기 부탁을 하여 결국 받아냈는데, 미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아 오히려 이상했다한다. “내나라는 내 목을 조이고 있는데, 남의 나라는 돈 주면서 환영이라?” 기가 막혔다 한다.

신원조회에서 또 다시 어떻게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니까 하루라도 빨리 한국을 떠야겠다고 바로 비행기를 표를 사고 출국 날자를 기다리는데 하루가 여삼추 초조했다 한다.공항에서 어머니가 영영 이별하는 심정이 되어 울고 있는데도 본인은 중안정보부에서나와 곧 잡아 갈 것 같은 심정이 들어 어머니 우는 것도 전혀 마음쓸 여유가 없엇다 한다.

비행기에 탑승하고도 그리고 활주로에 나갈 때 까지도 곧 바로 중정에서 출발을 못하게하고 자기를 끌어 갈 것 같은 생각으로 초조했는데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하자 모든 긴장이 풀리며 이젠 살았다 라는 마음이 들고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겠다하고 결심했다한다.(그러나 광주항쟁 대학살사건이 터지자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싸우겠다고 분노했었다.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핏줄 같은 조국이라 하였다.)

이 연좌제로 인한 고통은 이어져, 중학교 선생을 하는 형에게 정보부 요원들이 빨갱이는 출국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 빨갱이 새끼는 유학을 갈 수 있었느냐?” 라며 공갈 협박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월급날만 되면 정보부원들이 몽땅 몰려와 고급 요정에서 고기 술 색시 파티를 했다한다. 그러면 월급의 절반도 훌쩍 더 날라가는 것이 예사였다.

내 지인이 형과 국제전화를 하는데 형이, “내가 죽겠다. 도저히 못 살겠다라고 말하는것을 듣고 모든 식구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킬 결심을 했다 한다.

그리고 학과장께 형을 불러 주십사 요청했는데, 지인을 사랑한 학과장이 청을 들어 주어서 형이 미국에 오게 되었다 한다. “아마도 미국 대학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렇게엉뚱한 결정을 한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지인은 말하며 학과장님께 정말 감사한다고 지금도 말한다.

형은 막노동으로 거의 40년을 살면서도 중학교 선생을 하던 한국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없고 오히려 속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내 지인과 형은 한국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고 갈마음도 전혀 없다고 한다.(가족들도 방문비자로 미국에 와서 눌러 앉아 지금은 모두 시민권자들이 되었다.)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삶을 일일히 쓰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다.

나는 역사와 국체를 바로 잡기위하여 연좌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녘땅 매국노들이 빨갱이 사냥하는 연좌제 방식으로 매국노들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처형을 한다면 최소 2천만은 죽여야 할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는(ㅎㅎ) 나는 그 매국노들의 방식이 아니라 선별한 연좌제방식을 주장한다.

20세 이하는 그 부모가 어떠한 악질 외세의 앞잡이질을 했어도 불문에 부친다.

20세 이상이라도 그 부모의 잘못을 사과하고, 20세 이상 되어 혜택 받는 것을 거부한사람은 양민과 조금도 다름없이 불문에 부친다.

20세 이상이 되어서도 매국노들과 그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지 혜택을 받은 자들은 연좌제로 처벌한다.

처벌 방법은, 매국노들은 즉결처형하고, 연좌제 관련자들은 실오라기 하나까지도 모조리 압수하고 발가 벗겨 통나무 하나씩 주어 각자 바다를 헤엄쳐 건너 그들의 종주국 -왜국이나 미국으로 알아서 가라고 추방한다. 띵띵거리며 살아온 이 비열한 개들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살아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인권양아치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100% 북에 뒤집어 씌우는데 달인인것을 알지만 이런 연좌제까지도 뒤집어 씌우는 것에 분노한다.

범죄자들의 천국이 된 남한에서 매도당하는 빨갱이들이야 말로 선한 예수가 아니겠는가?

더러운 악마색끼들이 살인강도질을 하고 인권옹호를 떠들며 강도당한 사람이 흉악하다고 덮어 씌운다.

적반하장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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