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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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2-12 04:0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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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다물흙 림원섭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78.
“전쟁이 나서 대부분 피란 갔지만 폭격이 있기 전에 모두 돌아와 있었어요. 남의 집에 있는 것도 삼사일이잖아요. 인민군이 점령한 뒤 단 한 번도 해코지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예 피란을 가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120가구 600여명의 주민이 모두 살고 있었다고 봐야죠. 하지만 아직까지 원주민 30여 가구에 대한 소식은 없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죠. 5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폭격으로 온가족이 몰살당한 게 분명해요.”
이범기(77)씨는 “미군이 월미도에 있는 사람들을 죽인 뒤 시체를 매장하지도 않고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는 소문은 들었다”고 말했다. 첫 폭격이 있던 10일 미군의 항공공격보고서에 따르면 전폭기들의 폭격대상은 인민군 주둔지가 아니었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집중폭격’ 또는 ‘전소’(burn out)였다. 여기서 ‘집중폭격’(Saturation Bombing)은 적이 있는 일정지역을 목표로 설정해 집중적으로 무차별 폭격한다는 뜻. 혹시 미국은 월미도에 민간인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생존자들은 “미군은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군은 해방 후 월미도 민간인 마을 10m 앞에 있던 일본 해군기지에 미군 기지를 설치했어요. 1949년 일본으로 일시 철수할 때까지 이곳에 진주해 있었지요. 인천상륙작전 후 다시 월미도 해군기지에 들어왔던 미군 부대원들이 당시 철수했던 바로 그 군인들이에요. 미군기지에서 일했던 월미도 주민들이 말해줘서 동네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어요.”
한인덕씨는 폭격 당시 미 해군을 돕는 한국 군인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월미도를 폭격을 할 때 한국 간부급 군인들이 관여했다”면서 “이들이 월미도 지형이나 밀물, 썰물의 조수차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안내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 군인들은 미군이 월미도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인한 것이 된다.
이 같은 정황으로 미뤄볼 때 미군의 월미도 폭격은 인민군 살상이 아니라 월미도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천상륙작전 관련 문서에도 ‘월미도 민간인 거주지에는 군인이 안 보인다’는 단편적인 보고 외에는 적병에 대한 인적 전과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미군은 왜 원주민들까지 학살하면서 월미도를 초토화시키려고 했던 것일까. 정지은씨의 말에서 그 의문의 실마리는 찾을 수있었다.
“미군은 인민군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월미도 모든 지역에 폭격을 했어요. 하지만 민간인 거주 지역 가까이에 있었던 해군해안경비대 시설은 폭격하지 않았지요. 미군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서요. 그 당시갯벌을 건너 몰래 마을에 가보았는데, 미군들이 폭격 희생자들을 가매장해놨던 곳을 모두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기지를 세워놓았더라고요.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 없이 쓰레기처럼 취급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직까지 아버지 묘지도 없이 평생 살아 왔어요.”
한인덕씨도 미군은 월미도에 자신들의 기지를 세우려고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월미도 원주민들을 죽인 건 두 가지 이유에요. 인천상륙작전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다 미군 기지를 만들려고 그런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살아난 사람은 살려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도 모두 다 죽였어요.”
월미도에서 쫓겨나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원주민들의 삶은 비참했다. 판잣집에서 기거하며 풀뿌리와 죽으로 끼니를 연명했다. 미군의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정지은씨는 더욱 그러했다.
“인천상륙작전 뒤 송도에 피란을 갔어요. 이곳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밤이 되면 민간인 마을로 내려와 부녀자들을 강간하러 다녔지요. 우리는 문도 없는 방에서 거적 대기를 걸어놓고 살았는데, 어머니는 밤에 군인들이 나타나면 삼남매를 막 꼬집었어요. 군인들은 애들 셋이 우니까 그냥 돌아가곤 했지요. 머리맡에다가 낫을 갖다놓고 자기도 했고요.”
“월미도 폭격은 미군의 계획적인 살인입니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고요……. 인명피해, 재산피해는 두 번째에요. 한국전쟁 때 우리만 피해본 게 아니니까 보상도 원치 않습니다. 단 한 가지 옛날부터 살아왔던 고향인데 왜 우리가 그곳에서 살 수 없느냐는 겁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도 원주민 거주지에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대토를 내 주었고, 1942년 월미도공원 조성을 위해 원주민 거주지를 철거했을 때도 인근에 2,400평을 마련해 옮겨 살게 했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악랄했다고 해도 우리 정부처럼 이렇지 않았어요. 인천상륙작전의 신화에 감춰진 월미도원주민학살 국제인도 법, 전쟁 법에는 민간인 면제규범이 있다.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규범에 따라 공중폭격을 할 때는 무고한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 작전 실행 전 사전 대피 경고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미군은 아무런 조치 없이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그 땅에 기지를 세웠다.
천인공노할 ‘전쟁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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