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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38.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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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31 03:4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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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다물흙 림원섭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38.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극소수를 제외하고 국민 전체가 미국이 날조한 것을 믿고 있는 것은 당시 나라를 통치한 미군정의 조직된 공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 전쟁이 김일성의 남침 때문에 시작 됐다고 속인 것처럼 철저하게 속였다. 

당시 신문에는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는 허위 기사를 냈습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야 찬탁을 삼상지지로 바르게 고쳤지만 현재도 미군정의 날조 공작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않고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의 잘못으로 오해가 생겨 반탁과 찬탁으로 갈린 것처럼 기술하고 미국이 속임수를 쓴 사실을 숨겨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자국의 언론 즉, 일본에서 발행되는 태평양성조기 를 통하여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거짓으로 알리고 이것을 동아일보 등의 한국 언론이 받아쓰게 하는 비열한 방법을 썼다. 동아일보는 미군정의 지시를 받고『태평양성조기』지 1945년 12월27일자 한국관련 기사 (랄프 하인젠 기자)의 한국관련 내용을 그대로 번역하여 한국국민에게 알렸다.

랄프 하인젠 기자는 동아시아에 문외한이었다. 즉, 자신이 직접 쓴 기사가 아니고 미군이 넘겨준 원고를 기사화한 것이다. 미국의 공작으로 <태평양성조기> 와 <합동통신>에도 같은 날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미 육군 극동군사령부를 대변하는 <태평양성조기> 와 그리고 서울의 주한미군사령부가 일제식민지의 도메이통신을 접수하여 운영하면서 <합동통신> 으로 간판을 고친 두 기관에서 동시에 같이 보조를 맞췄다는 것은 미국의 정치적 음모였음을 보여준다. 

모스크바에서 이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시각은 12월 28일 오후 6시였다. 그런데 하루 전인 12월 27일에 동아일보에 모스크바 결정에 관한 기사가 났다. 미군 측의 의도된 공작임을 또 한 번 보여주고 있다. 

 미군의 압력으로 동아일보에 이어서 조선일보도 조선인에게 신탁통치라는 굴욕적인 왜곡된 뉴스를 함으로서 양 대신문에 의해서 우리민족의 좌우익 분열로 극심한 좌우대립이 극에 달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우리민족의 분열을 획책하였고 현재도 분열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군정은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 제안자는 미국이라는 <타스통신>의 보도는 사전 검열을 통해 알려지지 않게 통제했다. 그래서 진실은 간헐적으로 알려지는데 그쳤다. 이와 같이 미국은 자신들이 날조한 것을 진실인 것처럼 뉴스로 내보냄으로써 우리 국민을 간교하게 속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북한에 관한 뉴스는 거짓말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온 국민이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식민지 배상금을 지불하는 걸 원하지 않는 일본은 북한 소식인지 북한 모략선동인지 를 구분 하지 않고 마구 하고 있습니다. 인민을 부모로 섬기는 사회주의 북한에서는 절대로 인민을 속이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일본 놈이나 친일파들이 하는 짓입니다. 

일본 놈들은 하루도 안돼서 탄로 날 거짓말을 하는 뻔뻔스런 종족입니다. 2010년2월23일.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은 아래와 같이 거짓말을 뉴스처럼 내보내고도 부족한 느낌이 있어서인지 해설까지 실었습니다. 

지난해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 세습 반대, 핵 포기 등을 요구했다고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내정간섭이 될 수도 있는 이례적인 강경 대응이다. 

신문은 복수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 이 같은 요청은 공산당에 의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고, 경제 상황도 불안해지면서 인접국인 중국이 강한 위기감을 표시한 것으로 아사히는 해석했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5월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3남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설명 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매부 장성택 국방위원을 중국에 파견했다. 그 직후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장 국방위원은 5월 말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이때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인 왕자루이(王家瑞)가 장 위원에게 개혁·개방, 세습 반대, 핵 포기 등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당시 예정됐던 정부 고관과 대표단의 북한 파견을 취소했다. 

아사히는 “중국이 전에 없던 강경 자세로 나오자 북한은 중국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김정은이 장 국방 위원과 함께 6월 10일 중국을 직접 방문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김정은을 보내 세습을 기정 사실화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풀이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00224/26398132/1 

이와 같이 일본 신문이 보도 했으나 하루도 못 되어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 에서 “중국은 내정 불간섭의 원칙하에 결코 다른 국가의 내정 및 사무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정면 부인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2/24/3635163.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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