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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41.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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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17 22:3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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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6.25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다물흙 림원섭

글은20109 자료다.

41
1950.6.25 조선(한국)전쟁 발발. 미국의 요구에 의해 유엔 긴급안보이사회가 열려 북을 평화의 파괴자로 단정하는 권고결의안 채택  1950.6.27 트루만 대통령, 극동 해공군의 작전출동 명령. 유엔 안보이 사회, 미국이 제출한 유엔 성원국에 의한 대한군사원조 검토 결의안 채택  1950.7.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군사령부를 구성하고 조선(한국)전쟁 참전 1950.9.15 미군 인천 상륙  1950.10.25 중국 인민지원군이 조선(한국)전쟁 참전  1950.11.30 트루만 대통령,

조선(한국)전쟁에서 원자폭탄 사용을 고려한다고 언명36 동안 일제의 감시 하에서 살아 왔던 우리민족은 해방된 뒤에도 국제연합의 감시 속에서 선거 아닌 선거를 치렀다. 선거라기보다 목숨까지 빼앗는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시행된 강제적 선거연극 이었다.

사람들은 당시의UN 중립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엔에서 이스라엘 문제나자신의 인권은 빠진 상태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을 문제 삼는 중립성의 문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방이 되었으나 친일매국노를 처벌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친일매국노들이 오히려 잘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애국투사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조선이란 나라의 존재를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호소하기도 하고 무장하여 싸우기도 하면서 오직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받쳤습니다.

 

식민지 예속에서 벗어났으면 마땅히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온 애국투사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은 독립투쟁 했던 애국자들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애국자로 우대하지 않고 가난 속에서 어렵게 살게 내버려두었습니다. 오죽하면 독립운동을 하면3대가 망한다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이게 해방을 맞이해서 정상적인 국가로 돌아온 것입니까?
반면에 독립 운동가를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매국노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살며 활개 치며 다니는 것을 여전히 식민치하 상태가 아닙니까? 반역자 매국노를 처단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매국노가 도리어 애국자나 국가 유공자로 추앙받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우리나라가 나라가 아니거나 해방이 상태라는 것입니다. 북한이 남조선 해방시켜 준다고 해도 말이 있겠습니까? 요즘의 신문방송에서는6.25남침이란 말을 거의 들을 없는 것은 지금까지의 남침이란 선전이 거짓일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 김일성이란 말도 북한 괴뢰란 말도 요즘은 안합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뉴스를 멋대로 소설 쓰듯 내보내는 버릇은 아직도 있습니다. 자신이 속국이기 때문에 남한의 괴뢰언론들은 마치 북한도 중국의 속국인양 떠벌입니다. 북한은 제재를 풀기 전에는 6자회담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이미 밝혔음에도 중국이 나가라고 지시하고 북한은 지시받고6자회담에 나가기라도 하는 예속국인 것처럼 멋대로 짓거립니다.

북한을 방문한 중국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오늘(2010.02.08.)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보입니다. 6자회담에 돌아오라는 요구에 위원장이 화답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부장은2004 이후4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고 때마다 방북 사흘이 되는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위와 같이 남조선 언론들은 북한을 중국이 하란대로 하는 속국인양 기사를 멋대로 쓰는 습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주석의 친서를 가지고 왔는데도 위원장은 홀연히 함경남도 함흥시 소재 ‘2·8 비날론 연합기업소 현지지도를 하기위해 떠났다. 남한에서는 워싱턴에서 고위 인사가 오면 대통령이 특사를 맞이하기 위해 그날 지방에 시찰 나가지 못하지만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방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날(2010.02.08.) 저녁에 중국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일 위원장이 현지지도 하는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승용차로5시간 거리인 함흥을 찾아가 면담하고 구두친서와 선물을 전달하는 장면을 사진과 함께 신화통신이 보도하였다.

김정일은 친일친미 세력들이 중병을 앓고 있다고 지껄이는 것과는 달리 왕성하게 현지지도를 하고 사진 모습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정일을 만나려고5시간 거리도 마다 않고 달려간 것이다. 한국 같으면 미국에서 정부인사가 왔다면 부르기 전에 달려가 노비처럼 굽실거릴 것입니다.

외국의 간섭을 물리치고 핵을 만들어 나라를 지킨 나라가 속국이면 외국이 허락 않는다고 핵무기는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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