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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19.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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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9 03:3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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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다물흙 림원섭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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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하여 미국도서《한국전쟁: 대답 없는 질문》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이상야릇한 일이였다. 미국이 싸운 세 번째로 값비싼 전쟁전야에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대통령과 국무장관 둘 다 외출하였던 것이다. 국무성에 모여온 중간급의 관리들은 정책 작성자들이 아니라 장관급의 명령을 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전날 밤(토요일 밤) 미국은 완전히 해이되어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무장관뿐만 아니라 정책 작성자들 까지도 모두 부재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서방세계의 학자들까지도 이상야릇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될 줄 모르고 해이되어 미 국무성이 텅 비어있었다는 것인데 한 나라가 절대로 그렇게 되었을 수 없으며 만약 그렇게 되였다면 그것은 의식적으로 연출한 것이 분명하다. 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03.02.24일자 <워싱턴포스 트>에 실린 리차드 코엔의 칼럼 '반전과 비논리(Antiwar and Illogical)'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습니다.


'거짓말쟁이'는 워싱턴 정가에서 잘 안 쓰는 말입니다. 그건 워싱턴에 거짓말쟁이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중에 주워 담기 힘든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워싱턴 정가에는 오래 전부터 그 말을 쓰지 말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습니다.


트루먼이나 애치슨뿐 아니고 미 정가에는 거짓말이 일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6.25전쟁당시 내무부장관 김효석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행동개시의 시간은 6월 25일 새벽으로 정했다. 그날은 일요일이다.


일반이 휴일로 생각하고 있는 일요일 새벽을 기해 진격을 개시하면 불의공격의 효과를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그날 서울을 비롯한 전략적 지점들에 예비로 배치한 사단들에서는 하급사관 및 사병들의 외출을 허락했다가 개전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북한에서 공산군이 침입해 왔다고 비상소집을 하라. 그러면 일반시민들도 북한에서 먼저 쳐내려온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일요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요일을 이용하여 불의의 무력침공을 감행하는 것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범죄자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이다.


독소전쟁을 도발한 히틀러 도이칠란트군은 1940년 6월 22일 일요일을 이용하여 소련에 대한 불의의 침공을 감행하였으며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41년 12월 8일 일요일을 이용하여 진주만에 대한 불의의 타격을 감행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를 믿는 미국, 남조선에서 일요일이 안식일이어서 휴식의 한때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려는 틈을 타서 인민군대가 남침 하였다는 것을 널리 선전하기 위하여 전쟁개시날짜를 일요일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당시 한국주재 미 군사고문단 단장이었던 로버트 준장은 전쟁개시날짜를 6월 25일 일요일로 선택하게 된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왜 25일로 택하게 되는가. 여기에는 우리의 심중한 의도가 있다. 25일은 일요일이다. 그리스도 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있다. 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승만은 국군에 북침공격명령을 하달하고서도 6월 25일은 일요일이어서 태평하게 낚시질을 하였다고 선전하여 세상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였다. 워싱턴의 휴가와 괴뢰군의 계속되었던 비상상태의 해제 그리고 이승만의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낚시질 떠난 일 이런 것은


각각 따로따로 생각해봐도 보통 때도 여간해서 일어나기 힘든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것들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의도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런 비상식적인 3가지 일이 모두 6.25에 꼭 맞춰서 하나같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히 취한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밖에 갑작스런 대규모 인사이동도 우연으로 생겼을까요. 후퇴 명령에 거역하고 맞섬으로써 유엔군을 끌어오는데 차질이 생기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예방하는 조치였습니다.


괴뢰군을 초기에 확실하게 후퇴시키기 위하여 괴뢰군 지휘관들의 갑작스런 대규모 인사이동을 전쟁발발 직전에 단행하였습니다. 새로 부임해서 군 지휘관의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인민군에 대해 자체 방어도 담당하기 곤란한 상태가 되어 미 고문단의 지시대로 무질서하게 후퇴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두고 보자는 식으로 그렇게 공산군이라면 지옥까지 쫓아갈 듯이 덤비던 괴뢰군이 총 한발 쏘지 않고 물러나기만 했던 것은 후일을 도모 하는 뭐가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때 유엔군이 합류하는 것은 문학작품에서 수없이 보아온 바로 그거였다.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악당을 물리칠 뛰어난 능력의 초인을 필요하게 만들어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은 20회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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