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37.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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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28 03:2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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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다물흙 림원섭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37.
한국전쟁에서 아몬드 소장이 지휘한 미 10군단은 미 2사단과 7사단 그리고 한국군 5사단 및 8사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군단장은 1950년 크리스마스 공세 때 동부 전선을 지휘했던 에드워드 아몬드 소장이었다. 아몬드 소장은 횡성과 홍천을 잇는 공격로의 좌익에 국군 8사단(사단장 최영희 준장), 그 우익에는 국군 5사단(사단장 민기식 준장)을 앞에 세웠다.
미 2, 7사단은 국군 8, 5사단을 뒤에서 지원하도록 하였다. 아몬드 소장은 한국군을 총알받이로 앞세웠던 것이다. 대포와 전차 등에서 미군과는 큰 수준 차이가 있는, 화력에서 뒤져 있는 국군 사단을 오히려 전면에 배치하였다. 당연히 한국군은 중공군의 막강화력 앞에 전멸 상태가 되었다. 51년도 미 10군단 지휘보고서에 따르면 국군 8사단은 장교 323명, 사병 7142명의 병력 손실을 본 것으로 나와있다. 국군 5, 3사단 역시 부대원을 각각 3000명씩 잃었다.
위의 사실은 국군을 총알받이로 취급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것이다. 미군에게 전시작전권이 있으므로 전쟁 시에는 미군의 작전명령에 따라 국군은 앞에 나가서 싸워 미군에게 갈 총알을 몸으로 막아야 한다.
자기나라 땅에서 전쟁 났는데 자기가 주관해서 싸우지 않고 외국군대에 손에 끌려서 수동적으로 지시받고 싸운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요? 그래도 괴뢰군이 아니냐고요?
한국군은 미군의 명령에 움직이니까 괴뢰군이란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군을 수십 년 동안 괴뢰군이라고 불러왔다. 북한군은 전쟁 나도 소련 중국의 작전명령 없이 홀로 싸운다. 힘세다는 조폭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비겁하게 떼로 덤비니 지원군을 요청한 것이다.
북한으로 봐서는 남조선 땅도 우리나라인데 왜 우리나라를 미제에게 빼앗긴 채로 부모 형제도 못 만나고 참고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미제 침략자를 내쫓으려는데 오히려 침략자가 나눠준 총을 들고 침략자가 지휘 감독하는 대로 하는 남조선 군대를 괴뢰군으로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고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친일친미 세력들은 북한을 괴뢰라고 불렀습니다. 현재는 그것을 남한에서도 잘 알기 때문에 북한이 남한군을 가리켜 괴뢰군이라고 업신여겨 불러도 남측에서는 듣고서도 옛날 같이 괴뢰군이라고 예전처럼 대꾸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정치범 수용소라든지, 인권 침해라든지,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등의 말로 대꾸합니다.
그런데 다 이런 것들이 가짜 김일성이니, 북한 괴뢰니, 좌익이 찬탁으로 돌아섰다느니, 등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던 친일친미 세력들이 하는 얘기이니 온전히 맞을 리가 있겠습니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헐뜯는 버릇 개 줬겠습니까?
무슨, 상호비방 않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온갖 모략 소설로써 비방해 대는 주제에 비방 않기로 했다고 지킨다고요? 북한 지도자를 욕하는 비방 삐라를 풍선에 달아 날려 보내어 북한을 자극하는 짓이나 그만두게 하십시오.
우리 땅에서 미국에게 우리 민중이 죽임을 당하고 또 머나먼 외국에까지 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조국이 분단되어 겪는 치욕입니다. 누가 조국을 분단 시켰습니까? 해방된 조국에서 65년 동안 어머니가 살아있는데도 자식이 만날 수 없는 생이별을 강요한 자가 누구입니까? 누가 통일된 임시정부수립을 결의한 모스크바 삼상결정을 무산시켰습니까?
한민족의 자주통일을 짓밟는 장기적 신탁을 누가 주장하였습니까? 바로 “미국”입니다. 더구나 미국은 신탁통치의 기간은 5년으로 하되 연장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영구적인 신탁통치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 삼상결정은 소련의 강력한 신탁통치 반대에 부딪쳐 미국의 장기적 신탁통치를 통한 한반도의 지배권 확보와는 전혀 다르게 도출이 되었다. 이에 미국은 삼상결정에 참여한 미 국무장관 번즈를 공산주의와 내통한 불순분자로 내몰고 삼상결정을 무산시키기 위하여 회의의 결정내용을 “소련은 신탁통치를 강조하였고 미국은 즉각적인 독립을 옹호하였다”고 정반대로 왜곡하였다.
미 군정청은 동아일보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 이러한 허위사실을 유포시켰다.(동아일보는 미국 발 기사라고 속이며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당시 친일 보수 세력이 모여 있던 한민당을 대변하던
동아일보는 미 군정청의 지시에 적극 가담하여 12월 28일자 1면 머리기사로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소련에 경고한다는 사설까지 실었다. 식민지 후진국에나 있을 법한 신탁통치가 우리나라에 실시된다는 사실이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대중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러한 왜곡된 뉴스에 너나 할 것 없이 신탁통치 반대, 곧 반탁운동을 벌였다. 실제로 당시 반탁운동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의 거짓말에 속아 소련은 신탁통치를,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모스크바 삼상결정 발표 뒤 부분적으로 반탁의사를 나타내던 좌익세력은 곧 삼상회의 결정을 지지하였다. 당시 좌익세력은 찬탁, 곧 신탁통치를 찬성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분단을 막기 위해 임시정부 수립을 먼저 하도록 규정한 삼상회의 결정을 지지했다.
당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지지했던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점차 진실이 알려지니까 우리 민족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삼상회의 결정을 지지 했소. 반탁을 주장 는 사람들이 우리보고 찬탁을 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우리가 왜 신탁통치를 지지해.
우리는 찬탁을 말한 적이 없소. 우리가 외친 것은 삼상결정 지지였고 통일된 임시정부였소" 거짓 내용의 벽보를 제작해 일제히 붙이는 등 미군정은 친일파들을 고용해 반탁운동을 지휘하였다.
이렇게 해방 후 냉대하는 북한 정권을 탈출한 친일세력들은 미군정의 후원에 고무되어 스스로를 애국자라 내세우면서 모스크바 삼상결정을 지지하는 세력을 소련의 사주를 받은 꼭두각시,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로 비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미군정 치하의 이 땅에서 벌어졌다.
친일파들은 이제 반공 반소를 앞세워 하루아침에 애국자로 자신을 둔갑시켰다.
미군정에 고용된 친일 세력들은 돌아다니면서 “신탁통치란 무엇이냐 , 소련이 사주해서 좌익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이다”고 선전하였다. 우리 국민은 미국의 사기 행각에 말려들어 미군의 의도대로 좌우대립이 일어나 미군정 지역만의 단독선거 강행으로 우리나라는 끝내 분단의 길을 가게 됐다.
그러나 사실은 좌우대립이 아니고 미군과 친일세력이 한패가 되에 애국적 민중을 탄압하기 위해 술수를 써 애국을 좌익으로 몰아 분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 그리고 같은 연배의 어르신들은 지금도 물어보면 그 당시 좌익 공산진영은 소련이 제안한 찬탁을, 우익 진영은 미국의 제안인 반탁을 서로 주장해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고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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