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아서] 경북도당위원장이자 제3유격지대 사령관인 박종근과 지춘란

전쟁을 『철학대사전』(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동녘, 1989)에서는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 ‘반동적’ 전쟁과 ‘혁명적’ 전쟁으로 구분한다. 

 

전쟁을 절대적으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교조주의적 견해와는 반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 ‘반동적’ 전쟁과 ‘혁명적’ 전쟁을 구분한다. 한 나라의 지배 계급이 자기 나라 국민과 다른 나라 국민을 무장 투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치에 이용되는 전쟁과, 착취 계급의 지배 영역을 폭력적으로 확장하고 반동 세력의 역량을 폭력적으로 유지하는 데 봉사하는 전쟁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에 반해 인민이 국가적, 식민지적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피억압, 피착취 계급이 계급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롭다. 

 

“내전 또한 전쟁이다.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자는 내전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전은 모든 계급 사회에서 계급투쟁이 연속, 발전, 격화함에 따라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레닌 23, 74).

 

지춘란에게 한국전쟁은 중국 국공내전과 마찬가지로 ‘정의의 전쟁’이었다.

 

그가 참전한 2개의 전쟁, 중국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은 그에게 미국의 개입으로 인한 계급·민족적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성을 쟁취하기 위한 혁명전쟁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춘란은 철저한 공산주의 사상과 신념에 의해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을 위해 2개의 전선에서 미국과 싸웠다.

 

그러나 지춘란이 참전한 한국전쟁은 미군의 참전으로 난관에 부딪히자 전략적 후퇴를 하면서 유격전을 배합한다.

 

제2전선 유격전으로 방향 전환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한 노동당은 이른바 9.28전략적 후퇴를 하면서 제2전선 유격전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장기 항전 태세로 들어간다.

 

김남식은 『남로당 연구I』(돌베개, 1984)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당은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 강점지역으로부터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인민군 전선사령부(前線司令部)에 후퇴 명령을 내리는 한편 각 지방당에 9월 중순께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①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한다. ② 당을 비합법적인 지하당으로 개편할 것. ③ 유엔군 상륙 때 지주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시킬 것. ④ 군사시설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파괴할 것. ⑤ 산간지대 부락을 접수하여 식량을 비축할 것. ⑥ 입산 경험자 및 입산 활동이 가능한 자는 입산시키고 기타 간부들은 일시 남강원도까지 후퇴케 할 것”이라고 유격전을 강조했다.

 

지춘란은 1952년 2월 15일경 횡성에서 조선 경북도당위원장이자 제3유격지대 사령관인 박종근 부대에 배속된다.

 

그녀가 빨치산에 배속되기 전, 박종근에 대해서는 2001년 제3지대 사령관 남도부의 유품 발굴 참여와 일제강점하 독립운동을 한 빨치산 주요 인사 연구에 정통한 임경석 교수의 자문을 인용한다. 

 

다시 한번 자료와 조언해 주신 임경석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임경석 교수는 『독립운동 열전』(푸른역사, 2022)에서 박종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인물평을 했다. 

 

“러시아 유학에서 되돌아온 박종근에게 주어진 보직은 경북도당 위원장직이었다. 29세였다.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경력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열일곱 살부터 반일운동에 참가했던 만큼 혁명운동 경력이 벌써 13년째였다. 사상범으로 투옥된 기간만 3년 7개월이나 됐다. 대중운동의 현장 경험도 갖추고 있었다. 농촌지대인 경북 의성군에서 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군당 선전부장·조직부장을 지냈다. 해방 직후 합법 활동이 일시적으로 가능했던 조건에서 대중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중앙당 간부 활동도 했다. 서울 시내에서 비합법 조건 아래 당중앙 선전부 소속의 중간 간부로 1년간 일했다. 그뿐이랴. 해외 유학도 다녀왔다. 모스크바 조선당학교 2년간의 유학을 통해 견문을 넓혔고,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배웠다. 실천과 이론, 어느 방면에서 보더라도 잘 준비된 간부였다.

 

발령 시기는 1950년 7월 하순쯤이었다. 평시가 아니었다. 한국전쟁 바랄 직후 전시 상황이었다. 박종근은 즉시 임지로 향했다. 짐작건대 8월 초에 경북 경계를 넘어 진군하는 북한군을 따라서 임지에 도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당 박영발도 비슷한 사례다. 그 역시 박종근과 함께 모스크바 조선당학교를 수료한 간부였다.”

 

▲ 박종근, 아내 이숙의, 딸 박소은.  © 임경석

경북도당위원장이자 제3유격지대 사령관 박종근

 

박종근은 경북 임지에서 도당 집행부를 편제하고, 행정 단위별로 군·면당 조직을 구축하지만, 활동은 제한이 있었다.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조직을 확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미군의 인천 상륙으로 전황(戰況)이 일거에 뒤집혀 퇴각해야 했다. 9월 25일 당중앙으로부터 특별 지시가 하달됐다.

 

임경석 교수는 같은 책에서 박종근의 경북도당 활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정리했다.

 

“경북도당 집행부는 산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일월산이었다. 해발고도 1,219m에 달하는 이 산은 영양군의 청기면과 일월면, 수비면에 걸쳐 있었다. 소백산을 제외하면 도내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일찍이 비정규 유격전의 무대로 활용되기도 했던 공간이었다. 대한제국 말기에 신돌석 의병부대가 활동하던 곳도 바로 여기였다. 신돌석을 가리켜 ‘일월산의 호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시기 박종근의 주된 임무는 ‘당 단체들을 지하로 옮기는 것’과 ‘유격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 한다면, 그해 10월 11일 자로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방송을 통해 하달한 지시 사항을 상기해 보라. 당 조직을 비합법적 지하당으로 전환·개편할 것, 산간지대에 식량과 시설·설비를 비축·은닉하고 미군에게는 쌀 한 톨도 넘기지 말 것, 야산대 경험자와 유격전 참여가 가능한 당원들을 모두 입산시켜 유격대를 편성할 것 등의 내용이었다.

 

경북도당은 일월산에 오래 체류하지는 않았다. 한 달쯤 뒤인 10월 31일 그곳을 떠나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멈춘 곳은 ‘남대리’였다. 경북 영주군 부석면 남대리가 도당 집행부의 두 번째 산악 근거지가 됐다. 경북 영주와 충북 영월을 가르는 소백산맥 능선부의 깊은 산골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산악의 해발고도는 1,000미터가 넘었다. 선달산 1,236m, 어래산 1,064m 등이었다. 왜 옮겼을까? 안전과 연락 때문으로 보인다. 토벌대의 압박을 피하고 당 중앙과 연락을 취하는 데 좀 더 유리한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어떻든 간에 경북 행정구역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읽을 수 있다.

 

남대리 지역으로 거점을 옮긴 뒤에도 당 중앙과의 연락이 쉽지 않았다. 박종근은 “오랫동안 중앙과 연결을 가지지 못한 처지”였던 탓에, 정세 분석도 사업 진행도 큰 곤란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귀머거리 같았다고 표현했다. 급변하는 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1951년 1월 13일 곤란이 타개됐다. 중국지원군 참전 후 재반격에 나선 북한군 제2군단 부대들과 남대리 지구에서 조우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1월 20일에는 총사령관의 명령서도 접수할 수 있었다. 제3유격지대를 편성하여 곧 있을 북한군과 중국지원군의 총공격에 호응하는 제2전선을 구축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대장으로는 박종근이 임명됐다. 경북도당 위원장과 제3지대 사령관을 겸하게 됐음을 의미했다.”

 

▲ 제3유격지대장이던 박종근의 친필 서명.   © 임경석

1951년 2월 무렵에 지춘란은 박종근 부대에 배속된 것으로 필자는 추론한다.

 

임경석 교수의 정리로 볼 때 중국 지원군의 참전 이후 제5차 전역(1단계 1951년 4월 22일~30일까지 9일간, 2단계 1951년 5월 16일~22일까지 6일간)까지의 시기는 유격대와 인민군 그리고 중국 지원군과의 배합 작전도 지역에 따라서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 제3유격지대 사령관 박종근의 최후. <빨치산자료집 1>(한림대, 1996)   © 국사편찬위원회

 

 

 

미국의 패배와 국가비상사태 선언 그리고 미 합동참모본부 위기설

 

1950년 10월 19일 중국의 참전으로 미국의 위기감은 1950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은 일련의 패배를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최악의 군사적 패배”라고 규정하고, 맥아더의 성탄절까지 전쟁을 끝내겠다는 호언장담 총공세를 “역사상 최대의 오판”이라며 맥아더를 비난했다. 그러나 맥아더 등 강경파들은 중국과의 한판 전쟁을 불사한다면서 “만주 비행장을 폭격하고, 중국 해안을 봉쇄하면서 대만의 중국인을 활용해 전면전을 벌이자”라고 여전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트루먼 미 대통령 등 정책결정권자들은 전쟁이 중국까지 확대되기를 바라지는 않으면서, 원자탄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1950년 12월 15일 트루먼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이튿날 정식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동원 기관으로 국방동원국(Office of Defense Mobilization)의 창설을 발표했다. 

 

그리고 12월 25일, 트루먼은 교통사고로 죽은(북한은 북한군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사망했다고 주장)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후임으로 미 육군 참모차장 리지웨이 중장을 임명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미군과 국방군에게 현 진지를 사수하면서 후퇴하지 말고 가능하다면 공세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리지웨이는 곧바로 일본에 가서 하급 부대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맥아더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아, 병력을 집중하며 방어선을 두껍게 하는 등 작전의 변화를 주었다.

 

소련·러시아사 및 남북한 현대사 등에 정통한 도쿄대 명예교수인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청아출판사, 2023)에 따르면 “이 무렵 맥아더는 12월 30일 한반도에서 철수해 일본 방위에 집중하는 안과 중국 본토를 향해 먼저 제한전에 나서는 안 중 하나를 고르라고 워싱턴을 압박하고 있었다. 후자의 안은 중국 연안의 봉쇄, 중국의 항전을 떠받치는 산업 생산 능력에 대한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에 의한 파괴, 국부군의 한국전쟁 투입, 국부군의 대륙 공격 허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합동참모본부는 1951년 1월 9일 실질적으로 거절 의사를 회신했다”라고 맥아더의 압박을 다루었다.

 

그러나 전황은 실질보다 더 엄중했다.

 

와다 하루키는 『한국전쟁 전사』에서 1951년 1월 11일 미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공산 중국과 한국에 관한 행동 방침’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이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문서는 “(1) 일본-류큐-필리핀으로 이어지는 해안 방어선의 방위를 지속한다, (2) 타이완이 공산 측에 넘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3) 러시아와의 전면전은 군사 동원과 산업 동원이 필요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지연시킨다, (4) 아시아 대륙(특히 인도차이나, 태국, 말라야)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는다, (5) 최대한 한국을 지원하며 부득이한 경우 망명한 한국 정부를 지원한다, (6)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중국에 수립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을 내걸었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조치로 제안된 것은 중국에 대한 경제 봉쇄 시행과 중국은 침략자라는 유엔 결의의 채택 정도였다. 

 

이후 유엔은 미국의 제재론에 안일하게 동조한 결과 전쟁이 확대되었다며 정전을 원했다. 

 

1951년 1월 25일, 성천군 군자리 조·중 양국 군 고급간부연석회의

 

중국 지원군의 제1차 전역(1950년 10월 25일~11월 5일까지 11일간) 승리는 한반도 북부의 전세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제2차 전역(11월 25일~12월 24일까지 약 1개월간) 승리는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켰다. 특히 유엔군을 38선 이남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후퇴하던 북한군은 1950년 12월 초 질서 있게 원대 복귀하여 병력이 3개 군단이 된다. 또한, 전투력과 사기가 회복되자 자연히 북한군과 중국 지원군은 향후 연합작전을 위해 통일된 지휘계통을 만들었다. 

 

당시 조선의 최고사령관은 김일성 수상이며, 중국은 펑더화이 사령관이었다. 그리고 12월 4일 북한군과 중국인민지원군 연합사령부(조중연합사)를 창설했다.

 

그리고 제3차 전역(1950년 12월 31일~1951년 1월 10일까지 10일간)을 끝내고, 북중 양국 군 고급간부연석회의를 1월 25일 오전부터 29일까지 군자리에서 진행했다. 주요 참석자는 김일성 수상과 노동당 중앙정치국 주요 책임자, 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와 지원군 지휘관, 동북인민정부 고강 등 122명이었다.

 

펑더화이는 29일 오후 대회 결론을 내렸다.

 

홍학지의 전쟁회고록 『중국이 본 한국전쟁』에서 “3차례 전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상대가 아무리 우수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해도 우리가 탄력성 있는 부대 운용과 용감무쌍한 보병 작전을 결합해 밀어붙인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는 보장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야간전투와 대담한 우회, 침투를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소수 정예부대로 상대 포병 진지와 전방지휘소를 습격해 혼란에 빠뜨리는 작전이 필요하다. 이 밖에 물자보급의 중요성을 빠뜨릴 수 없다. 한반도의 지형적인 조건으로 보급품 수송이 어렵고 번거로우니만큼 후근작업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제공권이 없는 상황에서 북중 연합군은 야간에만 전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대낮에 맹렬하게 전장에 폭격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주요 보급 도시에도 폭격을 가했다. 

 

홍학지는 전쟁회고록에서 “따라서 공격 개시는 보름달이 떠오를 때를 감안해야 했다. …중략… 가장 좋기로는 보름달 뜨기 며칠 전이다. 이렇게 되면 전역이 최고조에 이를 때(우리의 전역은 평균 7일이다) 달은 바야흐로 보름달이며 가장 밝게 된다”라고 증언하였다.

 

비록 제공권을 미군에 빼앗겼지만,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으로 병참 보급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려 향후 중국인민해방군을 현대화시키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