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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조선 - 100년만에 복원된 북관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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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05 04:2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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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복원된 북관대첩비

 

주체97(2008)년 5월 10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책시 림명땅에 있는 북관대첩비를 찾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강사가 비에 대한 설명을 해드렸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조국전쟁시기 함경도지방 의병들이 우리 나라에 기여든 왜적을쳐물리친 력사적사실들을 기록한 전승기념비로서 높이 1. 8m, 너비 60cm, 두께가15cm인 이 비에는 당시의 전승을 기록한 2천여자의 글자들이 새겨져있다.

리긍익(1736∼1806년)이 쓴 《연려실기술》이라는 책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북관대첩비에는 정문부가 지휘하는 함경도일대 의병들의 조직결성과 확대, 림명전투,쌍포진전투, 단천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에서 왜적을 쳐부신 사실, 국세필을 비롯한 반역자들을 처단한 사실이 기록되여있다고 한다.

1904년 로일전쟁을 구실로 우리 나라에 침입했던 일본침략군 이께다놈은 1905년 함경북도 림명역(오늘의 김책시)에서 이 비를 보고 이런 기념비가 이곳에 있으면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이 높아지고 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예속화책동에 불리하다고 뇌까리면서 1906년에 극비밀리에 배에 실어 일본 도꾜로 빼돌렸다. 북관대첩비를 저들의 손에 넣은 일본침략자들은 그것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나 비의 석재와 조각술 등이 매우 아름답고 우수하다고 하면서 식민지에서 가져온 《전취물》로 간주하고 지금까지 간수하여왔다. 이후 북관대첩비는 근 80년간 흑막속에 묻혀있다가 1983년 8월 일본의 어느 한 신문에 소개되면서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되였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우리 인민의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인 북관대첩비를 《야스구니진쟈》의 한쪽구석에 버린것이였다.

《야스구니진쟈》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시기 우리 인민과 아시아인민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을 들씌운 전범자들의 망령이 떠도는 곳이다. 북관대첩비를 여기에 처박아두는것으로도 모자라 일제는 우리 민족의 얼을 짓뭉개버린다는의미로 비석의 머리우에 커다란 돌을 짓눌러놓았다.

실로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저지른 온갖 죄악은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강사의 해설을 다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에서는 빈일교양과 함께 조선민족제일주의교양을 강화하기 위한데서 력사유적유물을 잘 보존하는것이 중요하기때문에 어떻게 하나 북관대첩비를 찾아오도록 하였다고, 북관대첩비는 일제가 훔쳐간지100년만에 다시 찾아 원상대로 여기 림명땅에 세워지게 되였다고 격정어린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100년만에 복원된 북관대첩비, 그것은 강력한 군력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수 있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도 수호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력사의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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