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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비핵화, 누구를 향한 메시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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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6-25 01:3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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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비핵화, 누구를 향한 메시지인가?

 

[기고] 변학문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평화연구센터 소장



6월 8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부터 제기한 ‘단계적 비핵화’를 다시 언급했다. 며칠 뒤 G7 정상회담 참석차 유럽을 방문하여 채택한 한국-유럽연합(EU)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이를 지원하는 북한에 대한 강한 규탄과 함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핵보유국 불인정’ 원칙을 명시했다.

이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조선은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시했고, 핵 무력을 국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나 목표로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오히려 자신들을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의도라고 간주할 것이다. 

당장 이번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해 조선 외무성 ‘10국’(한국 담당 부서) 대변인이 “한국 집권자가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라고 비난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한 G7의 공동선언문에 대해서도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장이 “비핵화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불퇴의 선”이라고 강조하는 규탄 담화를 발표했다.

필자는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여준 주도면밀한 성실성과 지적 역량을 고려하면, 비핵화 언급이 꽉 막힌 남북(한조) 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그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계속 비핵화를 얘기하는 이유는 무얼까?

비핵화가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이나 양보할 수 없는 외교 원칙이라서? 만약 그렇다면 이는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주의’와 맞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가 말하는 단계적 비핵화(동결→감축→폐기)를 실현하려면 한반도 긴장 완화, 평화의 제도화, 군비통제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조선이 협상장에 나서야만 한다. 그런데 협상 상대가 강렬하게 거부하는 의제를 반복적으로 내세운다?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에 필수 조건이라서? 핵무기가 재래식 무기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기 때문에 비핵화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단순히 핵무기 보유 여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조선이 핵을 포기해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재래식 군사력으로 서로를 끔찍하게 파괴할 수 있다. 반대로 핵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상호 신뢰와 위기관리가 작동한다면 전쟁은 억제될 수 있다. 

결국 평화 체제 구축의 핵심은 비핵화가 아니라 오판을 방지하고 군사적 충돌을 관리하는 제도와 환경 조성에 있다. 현 상황에서 비핵화의 반복적 언급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필자는 이런 점들을 고민하다가 ‘혹시 비핵화 언급이 실용 외교의 방편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외교”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고 시점도 불투명한 남북 화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유럽 등 ‘서방’과 밀착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한국의 입지를 강화(“대체 불가 대한민국”)하려는 외교이다.

미국 패권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미·중 전략 경쟁, 세계정세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켰지만, 그것이 서방 진영 내 한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입지 강화의 기회를 넓혀준 측면이 있다. 게다가 조선도 러시아, 중국과 협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이 당장은 미국, 유럽과 공조를 중시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전면 부인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비핵화 담론의 주요 청중은 조선이 아니라 국제사회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단계적 비핵화’는 꽤 편리한 수사다. ‘단계적’ 비핵화는 과거 보수 정권들의 ‘선’(先) 비핵화보다 유연하고 대화 지향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남북(한조) 관계 개선과 평화공존을 바라는 지지자들이나 정치 세력들에게는 현 정권이 대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에는 한국이 기존 국제질서와 비확산 규범을 존중하는 책임 있는 국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조선이 수용하지 않을 의제임에도 계속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측이다. 만약 이러한 추정이 사실과 다르다면, 즉 정부가 남북(한조) 관계 개선에 진심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행동에 옮길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이 대통령은 G7 참석·유럽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북한이 남북 소통을 완전히 차단한 상태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화해야 하고, 우리는 그런 상황 조성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이런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여러 번 언급했던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 정부가 대북 무인기 침투 재발 방지 조치로 제시한 남북(한조) 접경지역의 비행금지구역 재설정은 대체 언제 이뤄지는가? 원칙을 강조하고 방안을 제시한다 한들 실행되지 않으면 신뢰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필자의 추정이 사실에 가깝다면, 이제부터 대통령과 정부는 좀 더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란다. 

‘현 상황에서 북한의 핵 포기,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래서 남북 대화 재개 가능성도 매우 낮다(유럽 순방 결과 브리핑에서 대통령도 이 점을 직접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큰 대북 유화조치를 취하기보다, 서방 진영 내에서 한국의 입지를 다지고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차라리 한국은 서방 진영 내에서, 조선은 중국・러시아 등과 협력 속에서 각자 정치・경제적 위상을 높인 뒤 대화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 이 칼럼은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이슈 브리프 <현황과 분석> 2026년 12호에도 함께 실립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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