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 ㅡ 코레아 평화공존,교류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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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4-18 22:4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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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코레아 평화공존,교류협력
연재 1. 알기쉬운 분단 극복 역사 이야기
글 선경석 ( 6.15 유럽지역위원회 상임대표)
1.독일 통일이야기
ㅡ독일의 재통일, 그 과정은 코레아통일에 적용할 수 없다.ㅡ 왜 일까?Deutscher Wiedervereinigung 도이체 비더페어아이니궁 )은 1990년 10월 3일에 과거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 속하던 주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영역을 독일연방(서독)이 기본법 23조에 의해 흡수 통일한 것이기 때문에 코레아 통일에는 참고할 가치가 없다. ‘재통일’이라는 단어는 1871년 독일 제국의 성립(독일의 통일)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1990년 3월 18일 처음으로 실시한 선거로 뽑힌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정부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을 점령했었던 네 나라 사이에,이른바 독일관련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 (2+4 조약) (1990.5월부터 4차례 회의 1990.9.12 모스코바 조약) 을 맺어서 통일 독일의 전작권을 인정받았다.
2.독일 첫 번째 통일 그리고 통일 전쟁
-1862년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임명된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의회와 자유주의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혈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866년 오스트리아 제국을 맞아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크게 이겨 북독일 연방을 성립시켰다.이어서 1871년에 프랑스를 격파하고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은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통해 알자스지방과 로렌지방을 되찾고,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빌헬름 1세가 황제로 즉위하고 독일 제국을 선포함으로써 독일은 통일된다.첫 번째 통일다.이후 카토릭 억압정책을 폈다 철회한다. 1883년 라샬이 주도한 독일 고타 강령을 발표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투쟁에 의해 비스마르크는 처음으로 복지정책을 실행한다.이 때 실행한 복지정책이 현대 복지정책 기초가 된다.ㅡ노동자들에게 국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아프면 병을 고처주고, 노후에 살이갈 수 있게해 주자. 이후 교육과 주거환경으로 확대 발전하여 오늘의 복지국가 가 되었다.
3.베를린 장벽은 왜 설치 ?
-독일 민주공화국(동독) 정부는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금지했으나 재발 되기에 1961년 베를린에 장벽을 세웠다. 이것은 당시 서독과 서방세계의 선전성 언론들이 하는 말이고, 그러나 그 절반은 맞을 수 있다.결정적으로는 1955년 서독의 발터 할슈타인 외무부장관의 '할슈타인 독트린,이 주 원인이다. 당시 서독의 독일통일정책, 그 독트린은 '흡수통일' 이 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동독은 장벽을 세워지게 된다. 이런 '흡수통일' 정책은 조국 코레아가 통일을 하는데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다.당시까지 동독과 조선은 분단, 두 단어 외에는 모두 달랐다.소련군이 주둔하고 생사여탈권을 소련이 주관, 동독 정권자들은 소련이 존재하는 한 절대 동독은 무너지지 않은다는 생각, 자주권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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