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9]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5-28 07:05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연재 9]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재미동포전국연합 편집국
김정은위원장이 제14기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된 직후 4월 12일 역사적인 시정연설을 하였다. 온 세계가 이 연설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재미동포들 또한 이 연설내용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하여 더 알고 싶다는 의견을 우리 편집국에 알려왔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김현환회장이 2016년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입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하여 상세히 해설하였기에 편집국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 책의 중요 내용을 다시 연재로 소개한다.
조선혁명의 복잡성과 간고성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인류의 역사발전의 새 시대인 <주체시대>의 시대적 조건과 함께 조선혁명의 조건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김일성주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우리 당의 주체사상은 조선혁명의 실천투쟁 속에서 창시되고 발전풍부화되었으며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 과정에 그 진리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증명되었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조선혁명은 인민대중이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혁명의 앞길을 개척해나갈 것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은 조선혁명의 이러한 실천적 요구에 기초하여 창시되었습니다.”
혁명사상은 당대의 역사발전이 처한 일반적인 시대적 조건과 함께 그 시대의 요구가 집중적으로 체현되어 있는 구체적인 혁명실천의 조건에 기초하여 창시된다. 선행한 혁명사상의 창시와 심화발전 과정만 놓고보아도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역사에서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한 시기에 살며 활동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나라들의 일반적인 사회경제적 관계와 계급적 모순을 분석하면서도 영국과 같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산업노동자들의 대부대가 있는 나라를 전제로 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하였다. 또한,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넘어가고 사회주의혁명의 승리가 일정에 오른 역사적 시기에 살며 활동한 레닌은 자본주의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낙후한 봉건적 관계가 많이 남아있는 그의 조국 러시아의 혁명실천에 토대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심화발전시켰으며 그 계승발전으로 되는 <레닌주의>를 내놓았다. 해당한 시대적 조건에 기초하고 그 요구를 반영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혁명실천과 그 요구에 근거하여 나오는 혁명사상만이 가장 정당하고 생활력있는 혁명사상으로 될 수 있다.
우리 시대, 자주시대의 위력한 혁명사상인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가장 복잡하고 간고한 혁명인 조선혁명의 실천에 기초하고 그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혁명사상이다. 조선혁명이라는 생동한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혁명실천이 제기하는 요구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적 요구도 내다보고 조선혁명의 현실적 조건에 맞으면서도 시대의 근본적 지향과 요구에도 부합되는 새로운 원리와 방법들을 천명한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생명력과 생활력이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나온 사회역사적 조건으로 되는 조선혁명은 역사에 유례없이 복잡하고 간고한 혁명으로 특징지어진다. 원래 <혁명>은 민중의<자주성>을 짓밟는 온갖 낡고 부패한 것을 제거하고 민중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거창한 사업으로서 복잡하고 간고하다.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지금까지 순탄하게만 발전하여온 혁명은 없었다. 하지만 조선혁명과 같이 그처럼 복잡하고 간고한 혁명은 일찌기 없었다. 조선혁명은 어려움, 복잡성과 간고성에 있어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혁명이다.
조선은 지리적으로 볼 때 아시아대륙의 동쪽 가운데 위치한 반도의 나라이다. 북부는 강을 사이에 두고 넓은 아시아대륙과 러시아와 잇닿아 있고 동서남 세 면은 태평양의 북서쪽 연해들인 조선동해, 조선서해, 조선남해로 둘러싸여 있다. 조선은 육지로부터 바다로, 바다로부터 육지로 통하는 길목이라고 볼 수 있다. 대륙으로부터 광대한 바다로 나가려고 하여도 그렇고 바다로부터 광활한 육지로 진출하고자 하여도 조선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 날 광활한 아시아를 지배하려고 꿈꾸던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은 대륙이라는 고기덩어리에 박힌 단검, 비수임으로 아시아를 지배하자면 먼저 조선을 지배하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목적실현을 위해 전력을 다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반도는 전략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는 대국들이 집중되어 있다. 북쪽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으며 바다를 사이에 두고는 일본과 미국이 위치해 있다. 이것은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반도를 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착잡하게 뒤엉킨 대결장으로 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시기에 조선반도를 무대로 하여 벌어진 청일, 러일 사이의 전쟁은 그 뚜렷한 실례로 된다.
한편, 조선의 역사발전 과정은 일정한 특수성을 띠고 있다. 원래 조선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의 나라로서 자체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자기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수천년에 걸치는 오랜 세월 자기의 힘으로 자기 발전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오던 조선은 일제의 군사적 침략과 지배, 식민통치로 하여 자기 발전의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 낙후한 식민지반봉건사회의 처지에 머물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로인하여 조선에서는 단번에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혁명적 이행을 수행한 다른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반제민족해방혁명>의 과업을 전면에 제기하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먼저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 이후에 점차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는 복잡하고 간고한 혁명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혁명의 기본적인 임무와 동력, 투쟁방식과 방도는 자본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한 다른 나라의 경우와 같을 수 없었다. 조선혁명의 복잡성과 간고성은 중요하게 혁명이 그 개척기로부터 시작하여 전 과정에 걸쳐 항상 제국주의 강적과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지배주의 세력과의 결사항전 속에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된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조선혁명이 개척되던 첫 시기에 혁명 앞에 나선 적대세력은<동양의 맹주>로 자처하면서 아시아와 세계를 지배하려고 미친듯이 날뛰던 신흥 군사강국인 군국주의 일본이었다. 일본은 자본주의의 길에 뒤늦게 들어섰지만 저들의 침략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군사력을 증강하고 나라의 정치체제를 파쇼화하면서 사회주의 나라인 소련과 미국을 비롯한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거리낌없이 전면전쟁의 길에 나선 무시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일본과 이웃하고 있던 조선은 일제침략의 첫 희생물이 되어 일찌기 20세기 초에 일제의 독점적인 식민지로 되고 말았다. 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한 일제는 모든 반일적, 혁명적 요소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으며 조선사람들을 철저히 일본인화하여 조선민족과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구상에서 영구히 없애버리기 위하여 피눈이 되어 날뛰었다. 지난 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되었으며 일제와 같이 한 나라, 한 민족을 통채로 말살해버리기 위하여 중세기적인 폭압과 무자비한 착취와 약탈, 야비한 민족동화 정첵에 매어달림으로써 세인의 지탄을 받은 침략자는 더는 없다. 그러기에 레닌도 “일본은 모든 새로운 발명들과 순전한 아시아식 고문을 결합시킨 전대미문의 야수성으로 조선을 약탈하고 있으며 그를 계속 약탈하기 위하여 싸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조선혁명은 우리 나라와 만주를 비롯한 아시아의 넓은 지역, 자기 땅의 몇십배나 되는 광대한 땅을 식민지로 차지한 일제와의 판가리 대결전이었다. 조선의 혁명가들이 일제를 타도한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황도정신>을 타승한다는 것이었으며 세계적으로 공인된 일본의 군사력을 타승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명치유신 후 일본이 근 70년 동안 이룩한 모든 인적, 물적, 재정적 역량과의 소모전에서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나라를 통채로 일제에 빼앗기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남의 땅에서 곁방살이를 하면서 강대한 일본제국주의를 타승한다는 것은 조선민중에게 있어서 참으로 힘겨운 과업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혁명의 주되는 투쟁대상으로 된 또 하나의 강적은 미제이다. 미제는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계기로 하여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졌으며 일약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등장하여 세계 도처에서 침략과 전쟁, 지배와 간섭을 일삼는 교활하고 악랄한 침략자, 약탈자이다. 미제는 핵무기를 비롯한 방대한 현대적인 최신무기들을 가지고 우세한 경제력과 기술력, 딸라에 의한 지배체계에 의거하여 자본주의 세계에서 제왕행세를 하고 있다. 미제는 저들에게 세계를 지배할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면서 세계무대에서 <국제헌병>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제법도, 국제기구도, 세계여론도 무시하고 진보적인 나라와 민중을 반대하여 전복활동과 침략전쟁을 서슴지 않고 감행하고 있다. 지난50년대에 유엔의 이름을 도용하여 수많은 추종국가의 군대들까지 끌어들여 청소한 사회주의 국가인 이북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벌려놓은 하나의 사실만 놓고보아도 미제의 침략성과 약탈성을 잘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저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로부터 일제의 조선강점을 승인하고 조장시켜온 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과 함께<해방자>의 탈을 쓰고 불법적으로 이남을 강점함으로써 조선민중에게 장장70여년 세월 민족분열의 고통을 들씌우고 있으며 이남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 이북에서의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을 악랄하게 가로막고 있다. 미제의 이남 강점과 침략전쟁 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혁명은 일제를 타도한 다음에도 또 다시 멀고도 험한 투쟁의 길을 걸어야만 하였다.
나라의 크기나 인구수,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대비조차 할 수 없는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를 상대로 해야하는 조선혁명은 참으로 간고하고 복잡한 혁명이었다. 조선혁명의 복잡성과 간고성은 혁명의 전진을 막아보려는 적대세력이 제국주의 뿐 아니라는 데도 있다. 조선혁명은 제국주의자들과 함께 나라의 자주적인 발전을 달가와 하지 않는 대국주의자들, 민족배타주의자들, 현대 수정주의자들을 비롯한 온갖 반혁명세력과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자기의 앞길을 개척해야만 하였다. 조선혁명은 이처럼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는 제국주의 강적들과 직접 단독으로 맞서고 <혁명가>의 탈을 쓰고 덤벼드는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의 끈질긴 방해와 간섭, 지배책동을 짓부시면서 한치한치 피흘려 전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간고한 혁명이었다.
또한, 조선혁명의 복잡성과 간고성은 특히 사대주의가 뿌리깊이 남아있으면서 혁명발전을 집요하게 가로막아나선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대주의는 큰 나라, 발전된 나라를 숭배하고 섬기는 노예굴종 사상이며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스스로 낮추보고 멸시하는 민족허무주의 사상이다. 사대주의에 물젖게 되면 큰 나라를 덮어놓고 우상화하면서 외세의존의 길로 줄달음치게 되며 자기 나라의 자주성과 민족의 존엄도 서슴없이 저버리게 된다.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며, 당이 사대주의를 하면 혁명과 건설을 망쳐먹게 된다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철리이다.
사대주의는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조선 역사에서 사대주의가 큰 해독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기 말기인 7세기 중엽부터였다. 이 시기에 부패한 신라의 봉건통치배들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의 나라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차지하려고 시도하면서 큰 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를 하였다. 신라의 봉건통치배들은 결코 나라의 통일을 실현한 애국 명장도 영웅도 아니었으며 수치스러운 사대주의의 첫 조상들이었다. 사대주의는 그후 조선의 봉건왕조시기 유교가 지배적인 사상으로 되면서 다시 되살아나게 되었으며 그 말기에 이르러 더욱 더 심해졌다. 유교는 <이소사대>(작은 것이 큰 것을 섬기는 것>를 마땅한 도리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내세운 정치사상, 도덕이념으로서 조선의 봉건왕조의 통치배들이 큰 나라를 무턱대고 섬기고 그에 순종하며 의탁하도록 만든 사상적 독소였다.
조선의 봉건왕조 말기에 이르러 사대주의의 해독적 후과는 참으로 막심하였다. 사대주의가 골수에 찬 봉건통치배들은 저들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안중에도 없이 저마다 큰 나라 세력을 끌어들이는 매국배족적인 행동도 섬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늘 친일파가 득세하면 일본군대가 황궁을 지키고 내일 친러파가 득세하면 러시아군대가 임금을 호위하며, 모래 친청파가 득세하면 청나라 군대가 대궐의 파수를 서는 판이었다. 한 나라의 황비가 궁궐 안에서 외국 테로단의 칼에 맞아 죽고(1895년 을미사변), 황제가 다른 나라 공사관에 가서 1년 동안이나 갇혀있는가 하면(1896년 아관파천), 임금의 친 아버지가 외국에 납치되어 귀양살이를 하여도 오히려 사죄를 해야 되는 판국이었다.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결국 사대주의었다.
사대주의는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굴러떨어진 다음에도 없어지지 않고 민족주의 운동과 초기 공산주의 운동 안에 침습하여 민족해방혁명의 발전을 각방으로 가로막았다. 나라가 망한 다음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투쟁의 길에 나섰지만 그들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큰 나라의 지지와 도움을 받아 나라의 독립을 성취해보려고 헛된 노력만 하였다. 또한 사대주의에 깊이 물젖은 행세식 혁명가들은 국제당의 승인을 받고 큰 나라의 지도와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여 혁명을 해보려고 하였다. 이렇게 사대주의가 심하다보니 나라와 민족,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이 성과적으로 개척될 수가 없었다.
오랜 역사적 근원을 가진 사대주의는 새 조국건설과 조선전쟁, 전후 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조선혁명의 단계들 마다에서도 엄중한 해독적 영향을 미치었다. 사대주의가 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으면서 혁명과 건설의 발전을 각방으로 저해하고 있는 조건에서 조선혁명은 남달리 복잡하고 간고한 혁명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례없이 복잡하고 간고한 조선혁명은 그 어느 혁명보다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혁명과 건설을 벌려나갈 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조선혁명이 제기한 이러한 요구는 민중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살아나가는 새시대의 요구의 집중적인 표현이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바로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혁명의 앞길을 개척해나갈 것을 요구하는 조선혁명의 실천적 요구를 반영하여 창시되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무엇보다도 <자주적으로> 혁명할 것을 절실히 바라는 조선혁명의 실천적 요구에 기초하여 창시되었다. 대국들의 전략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제국주의, 지배주의의 전횡이 극도에 달하고 사람들 속에 사대주의가 뿌리깊이 남아있는 나라의 실정에서 초미의 문제로 나선 것은 바로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자주적 대를 세우는 문제였다. 자주적 대를 세우고 자기의 신념과 결심에 따라 자주적으로 살아나가면 혁명의 전도가 열리고 민족이 생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혁명의 운명도, 민족의 운명도 끝장나고야마는 생사기로에 선 것이 바로 조선혁명이었다.
조선혁명은 자주의 길이냐, 아니면 구태의연한 사대와 교조의 길이냐 하는 중대한 역사적 선택을 내릴 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사대와 교조의 길이 망국의 길, 민족자멸의 길이라는 것은 역사가 확증하였으며 조선혁명은 오직 자주적으로만 자기의 앞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바로 이러한 조선혁명의 실천적 요구에 기초하여 창시되고 심화발전되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민중이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확고한 사상관점을 확립하고 자주적인 입장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자기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길, 자주적으로 혁명하는 길을 새롭게 밝혀주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자주성>이 사람, 민중의 생명이며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라는 것을 새롭게 천명하고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혁명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참다운 정신이라는 것을 밝혀주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또한 기성이론이나 남의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혁명의 노선과 정책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남의 도움을 바람이 없이 자기의 힘으로 그것을 관철해나가야 혁명과 건설에서 빛나는 승리와 성과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뚜렸이 밝혀주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자주>를 <생명선>으로 삼고 자주로 일관된<자주의 혁명사상>이며 이것은 바로 자주적으로 혁명할 것을 절실히 바라는 조선혁명의 실천적 요구의 반영이었다.
다음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창조적으로> 혁명할 것을 절실히 바라는 조선혁명의 실천적 요구에 기초하여 탄생하였다. 조선혁명은 <식민지봉건사회>의 낙후한 처지에서부터 출발하여 <반제민족해방혁명>의 과업과 <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며 사회주의건설의 복잡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복잡다단한 혁명이었다. 또한, 조선혁명은 나라가 외세에 의하여 남과 북으로 인위적으로 분열되고 두 지역이 서로 다른 발전의 길을 걸어가는 환경 속에서 작고 분열된 나라가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미제국주의와 직접 대결하면서 전진해나가야 하는 어려운 혁명이었다. 조선혁명은 지난 시기에는 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수많은 문제들을 새롭게 제기하였으며 기성의 이론과 다른 나라의 경험은 여기에 해답을 줄 수 없었다. 조선혁명은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의 구체적 조건과 현실에 맞게 자기 머리로 독자적으로 사고하여 창조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민중이 혁명의 주인이 되어 모든 문제를 창조적으로 풀어나갈 것을 요구하는 조선혁명의 실천적 요구에 기초하여 창시되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창조성>이 사람, 민중의 본질적 특성이고 사회역사적 운동, 혁명운동은<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민중의 <창조적 투쟁>이라는 것을 밝히었으며 창조적 입장이 혁명과 건설에서 구현하여야 할 근본방법이라는 것을 새롭게 천명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진리의 기준은 기성이론과 남의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과 자기 민중의 요구이며 도식과 모방을 배격하고 모든 문제를 자기 머리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혁명과 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고 완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었다.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창조적 입장>에서 독창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어길 수 없는 철칙으로 내세운 것으로 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사람중심의 <철학사상>과 민중중심의 <혁명이론>과<영도방법>의 독특한 구성체계를 갖춘 <민중제일주의>의 창조적인 학설로, 자주로 일관되고<사상중시>와 <총대중시>, <수령중심>으로 특징지어지는 독창적인 혁명사상으로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가장 간고하고 복잡하며 그 어느 혁명보다도 <자주>와 <창조>를 절실히 바라는 조선혁명의 실천 속에서 창시된 것으로 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지도사상으로, 시대를 향도하는 불멸의 전투적 기치로 창시될 수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