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2]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이민위천>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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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6-13 19:5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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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2]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이민위천>의 사상
<이민위천>의 사상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재미동포전국연합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된 것은 다음으로 김일성주석이 일찍부터 철석의 신념과 의지로 간직하여온 <이민위천의 사상>이었다. 김주석은80평생의 혁명생애를 회고한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었다.”
<이민위천>, 이것은 김일성주석이 일찍부터 간직하고 다져온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 김주석의 <이민위천>의 사상은 민중을 하늘같이 믿고 숭배하는 철학사상이며 혁명정신이다. 이민위천의 사상에는 민중을 세상에서 가장 힘있고 지혜롭고 귀중한 존재, 전지전능한 존재로 여기는 주석의 민중에 대한 견해와 관점, 세상만사를 민중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며 세상의 모든 것을 민중을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 것을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 내세우는 민중에 대한 주석의 입장과 태도가 집대성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주석이 지닌 이민위천의 사상은 역사상에 있었던 그 어떤 사상가나 정치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숭고한 사상정신적 특질이었고, 또 혁명가, 정치가들이 지니는 민중에 대한 관점과 입장으로서는 그 이상 더 보탤 것이 없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행한 노동계급의 수령들 가운데는 “민중을 믿으며 민중의 생동하는 힘의 샘 속에 잠겨있는 자만이 승리하며 정권을 유지할 것이다”라는 명언을 내놓은 위인도 있었다. 물론 이것은 지난 날 봉건사회의 위정자들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가들이 표방한 기만적인 <민중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민중에 대한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관점과 입장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창조자는 민중이라는 유물사관의 원리로부터 출발한 것이었지 민중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에 기초하여 나온 것은 아니었으며 더우기 그것은 그들이 혁명을 영도하면서 얻은 경험과 교훈에 기초하여 찾은 사상과 이론이지 이미 유년시절 세계관의 형성시기부터 생활체험을 통하여 간직되고 다져진 하나의 정치신앙으로까지 승화된 것은 아니었다.
혁명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년시기 세계관이 형성되는 그때부터 뇌리에 새기고 마음 속에 간직되는 삶과 투쟁의 좌우명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선행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것일 수도 있고 이론적 사유의 결과로 얻어진 것일 수도 있으며 또 그 자신이 실지 생활체험을 통하여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혁명가가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게 되는 사상과 정신이 어떤 경우에도 변색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의지로 되자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유년시기부터 자신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형성되고 굳어지고 체질화된 의식, 다시말하여, 세계관화된 것이어야 한다.
김일성주석이 지닌 이민위천의 사상은 그 어떤 선행 세대의 사상가나 정치가들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고요한 서재에서 이론적 사유의 결과로 얻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명실공히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 태어나 아버님 김형직선생과 어머님 강반석여사의 직접적인 혁명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나날에 주석이 실지 생활체험을 통하여 지니게 된 사상이며 세계관이다.
김주석의 뇌리에 이민위천의 사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벌써10대에도 이르지 못한 유년기였다. 이 시기 어린 주석이 특히 큰 사상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은 3.1민중봉기였다. 이 시기로 말하면 조선을 강점한 일제의 중세기적인 공포정치의 총검밑에서 우리 민족이 모든 사회적 권리와 재부는 물론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고 끝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해온 수난과 암흑의 시기, 기아와 도탄의 시기였다. 일제의 조선강점 이후 비밀결사운동과 독립군운동, 애국문화계몽운동으로 부단히 힘을 축적하여온 조선민중은 이 암흑의 시대, 폭압의 시대를 그대로 감수할 수가 없어 1919년 3월1일 분연히 반일봉기에 떨쳐나섰다. 3.1민중봉기를 통하여 조선민중은 마침내 자주독립을 부르짖으며 자기의 민족정신을 화산처럼 분출시켰던 것이다.
일제는 봉기에 궐기한 조선민중을 침략군대까지 동원하여 야수적으로 탄압 학살하며 온 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었지만 시위자들은 결사적인 시위를 벌리면서 앞 대열이 쓸어지면 그 뒷 대열이, 뒷 대열이 쓸어지면 또 다음 대열이 앞장에 나가면서 영웅적으로 싸웠다. 봉기가 시작된 후 1-2개월 동안 온 나라는 독립만세의 메아리로 진동하였다. 3.1민중봉기는 일제의 야수적인 탄압과 이 운동을 주도할 강력한 지도역량의 결핍으로 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3.1민중봉기를 통하여 조선민중은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민중이며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가진 민중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그때 8세의 어린 나이에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대열에 참가했던 김주석이 받은 사상정신적 충격은 참으로 컸다. 김주석은 그때를 감회깊이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비운의 조국강산을 뒤흔들며 세계만방에 울려가던 독립만세소리는 온 여름내 귓전에서 살아지지 않았다. 그 만세소리는 나로 하여금 나이보다 일찍 철들게 하였다. 시위군중과 무장경찰의 격투로 불꽃을 일으키던 보통문 앞거리에서 나의 세계관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3.1인민봉기는 나를 인민의 대오 속에 세워주고 나의 망막에 우리 민족의 참다운 영상을 새겨준 첫 계기였다. 내 마음 속에 우뢰가 되어 오래도록 살아지지 않던 독립만세의 메아리에 귀를 기우릴 때마다 나는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과 영웅성을 두고 다함없는 자부심을 느끼군 하였다.”
김주석의 이 감동적인 말은 바로 이 시기에 벌써 그의 마음 속에는 민중에 대한 새로운 관점, 이민위천의 사상이 싹트고 자리잡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심장으로 느끼게 한다. 그는 바로 이러한 분이었기에 소학교 시절에 벌써 한그루의 나무에<일본제국주의 타도, 조선독립>이라는 글발을 새기었고 그것을 본 교장이 어린 학생이 어떻게 강대한 일제를 타도할 수 있겠는가고 묻는 질문에 “인민의 힘을 한데 모으면 능히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할 수 있습니다.”라고 확신에 넘친 대답을 주었던 것이다.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고 마음 속에 자리잡은 민중의 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그가 혁명의 길에 나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앞길을 탐구하고 모색하던 시기에 더욱 다져졌으며 그것은 이민위천의 사상으로 승화되었다.
1920년대 후반기 조선에서 민족해방운동을 한다고 하던 초기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민중과 이탈하여 영도권 싸움과 말공부로 세월을 보냈다. 그들은 일제의 탄압이 무서워 적극적인 투쟁은 벌리지 않고 뒷골방에 앉아서 파벌싸움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심지어 민족주의 운동가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투쟁을 포기하고 일제에 투항변질하였다. 그들은 <애국지사>로부터 일제의 앞잡이로, 민족개량주의자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야수적인 폭압 속에서도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민중은 반일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김일성주석의 대담한 조직지휘아래 청년학생들은 1928년 일제의 길회선 철도 부설공사를 반대하는 대중적인 반일투쟁에 나서 적수공권으로 일제와 맞서 과감한 투쟁을 벌렸으며 마침내 일제의 흉계를 파탄시켰다. 이 시기 국내에서도 신흥탄광 노동자들의 파업과 원산 총파업, 6.10만세 시위투쟁을 비롯하여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의 대중적 반일투쟁이 힘차게 일어났으며 그것은 점차 폭동적인 성격을 띠고 발전하였다.
이처럼 초기 공산주의운동가들이나 민족주의운동가들은 일제의 탄압에 겁을 먹고 꼬리를 사리는데 민중은 생사를 결단하는 피의 결전에 목숨을 내대고 있었다. 김주석은 이러한 판이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소박하고 평범한 근로민중이 혁명적으로 각성되기만 하면 참말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아무리 불리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능히 자체의 힘으로 혁명을 할 수 있다는 것, 혁명에서 믿을 것은 오직 민중밖에 없으며 민중에게 의거하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진리를 절감하였으며 그것은 그대로 김주석의 주체적 민중관, 이민위천의 사상으로 간직되었다.
그리하여 김주석은 혁명의 길에 나선 첫 시기부터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기 위한 간고하고도 시련에 찬 투쟁의 앞길을 민중에게 의거하여 열어나갔다. 민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존재이며 민중을 위하여 바치는 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높고 숭고한 삶이며 따라서 민중을 하늘처럼 여겨야 한다는 사상과 정신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에 주석의 애국, 애족, 애민의 넋은 남달리 강렬하고 뜨겁고 고결한 것이었다. 주석은 민중을 하늘처럼 여기었기에 그러한 자기 민중을 사랑하는 민중애가 남달리 뜨거웠고 그러한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애가 유달리 강렬하였으며 그러한 자기 민중, 자기 민족이 사는 내 나라, 내 조국을 사랑하는 조국애가 누구보다도 고결했다.
김일성주석의 고귀한 혁명생애는 어린 시절부터 이민위천의 사상이 싹트고 승화되어온 과정인 동시에 애국, 애족, 애민의 넋이 움트고 자라온 과정이었다. 조선혁명을 영도하는 전 과정에 혁명의 새로운 지도사상을 마련하기 위한 주석의 사상이론 활동의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이민위천의 사상과 애국, 애족, 애민의 정신이 놓여있었다.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은 그 창시자가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는 사상과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고 창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민위천의 사상과 애국, 애족, 애민의 정신을 구현하여 혁명의 원리들을 탐구해나감으로써 무엇보다 먼저 민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고 귀중한 존재라는 민중에 대한 새로운 견해와 관점을 정립하고 그에 기초하여 민중을 혁명의<주체>로 내세우는 독창적인 혁명사상을 창시할 수 있었다.
역사에는 민중에 대한 진보적인 관점을 세우고 민중이 역사의 창조자, 사회발전의 동력이라는 사상을 제기한 선진적인 혁명사상은 있지만 민중을 혁명의 <주체>로 내세우고 민중에게 의거하여 혁명을 하는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전개된 혁명사상은 일찌기 없었다. 민중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하늘로 여기는 사상과 정신은 김주석이 민중을 역사의 창조자라고 하면서도 그가 사회적, 객관적 환경의 영향을 받고 그에 의거하여 제약되는 면만을 강조하던 기성의 견해와 관점에 구애되지 않고 민중이 객관적 환경과 조건에 제약받는 면보다도 그것을 주동적으로 조성, 또는 개조하고 이용하면서 혁명을 일으키고 발전시켜나가는 <주체>라는 것을 기본으로 보는 민중중심의 독창적인 혁명원리를 발견하게 된 근본원천이었다.
이민위천의 사상과 정신에 기초함으로써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처음부터 민중을 혁명의 주인으로 보고 민중에 의거하여 세상만사를 풀어나가는 <주체의 혁명철학>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또한, 김주석은 이민위천의 사상과 애국, 애족, 애민의 정신에 기초하여 혁명의 원리들을 탐구해나감으로써 민중을 민족적 및 계급적 예속에서 해방하고 그들에게 자주성을 실현해주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최상의 목표이며 최고의 원칙이라는 혁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입장을 확립하고 민중의 운명개척의 근본방도를 밝혀주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독창적인 혁명학설을 창조할 수 있었다.
민중은 세상에서 가장 힘있고 지혜롭고 귀중한 존재이며 역사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주체이기 때문에 마땅히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의 최고의 향유자로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이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해주는 것을 혁명의 근본목적으로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한 근본방도를 밝혀주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응당한 이치이다. 그러나 선행한 시대에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의 조건을 밝혀주는 혁명사상만이 있었을 뿐이다. 민중을 역사의 창조자로 볼 뿐 아니라 현실세계의 <최고의 존재>, 즉 <주체>로 보는 관점과 입장에 의해서만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에 맞게 세계를 혁명적으로 개조하고 그들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완전히 보장해주기 위한 혁명의 원리를 밝혀주는 사상이 나올 수 있다.
김일성주석은 이 세상에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견해와 민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민중의 의사와 요구를 실현해주는데 복종시켜야 한다는 관점에 기초하여 혁명의 원리들을 탐구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시켜주는 것을 혁명의 최상의 목적으로, 민중에 대한 최대의 사랑으로 내세우는 혁명사상, 민중의 운명개척의 근본방도를 밝히는데 바쳐진<주체의 철학>을 창시할 수 있었다. 또한, 김주석은 이민위천의 사상과 애국, 애족, 애민의 정신을 구현하여 혁명의 원리들을 탐구해나감으로써 자기 민중, 자기 민족의 이익, 자기 나라의 실정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고 그에 맞게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식대로 풀어나가는 원칙과 방도를 밝혀주는 <자주적인 혁명사상>을 창시할 수 있었다.
민중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민중, 자기 민족과 자기 조국을 위하고 사랑하는 데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상감정이다. 이민위천의 사상은 모든 것을 민중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민중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는 애민의 사상인 동시에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기고 그 존엄과 영예를 빛내이며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하여 투쟁하는 애국, 애족, 애민의 사상이다. 김주석은 이민위천의 사상과 애국, 애족, 애민의 사상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생활의 원칙으로 내세우고 혁명의 지도사상을 마련하기 위한 사상이론활동을 별려나감으로써 민중의 자주성,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으로 여기고 그 운명을 책임적으로 개척하고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해나갈 수 있게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창시할 수 있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처럼 처음부터 민중애와 민족애, 조국애를 가장 높은 경지에서 체현한 참다운 애국주의 사상과 자기 민중의 자주성, 자기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철저히 실현함으로써 혁명의 국제적 임무도 훌륭히 수행하는 진정한 국제주의사상을 결합시킨 혁명사상으로 창시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은 일찌기 없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이처럼 주석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하고 한평생 생활의 원칙으로 삼아온 이민위천의 사상, 애국, 애족, 애민의 사상을 그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여 창시되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불패의 위력은 곧 이민위천의 사상과 애국, 애족, 애민의 정신의 위력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진리성과 불멸의 생명력은 다름아닌 이민위천의 사상과 민중애, 민족애, 조국애의 생명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향기와 아름다움은 바로 이민위천의 좌우명의 향기와 아름다움이다.
김형직선생의 숭고한 지원의 사상이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원리들을 발견하는데서 사상정신적 전제로, 그 연원으로 되었다면 김주석이 지닌 이민위천의 좌우명과 애국, 애족, 애민의 넋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원리들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한 근본적인 사상정신적 바탕이었고 내적 요인이었다. 숭고한 지원의 사상에 그 연원을 두고 이민위천의 사상을 근본바탕으로 창시된 것으로 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명실공히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자주성을 위한 불멸의 혁명학설로, 민중의 운명개척의 근본방도를 밝혀주는 위력한 혁명철학으로, 민중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존중의 최고정화로 세기와 더불어 길이 빛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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