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평양에서 진행된 최선희 부상의 특별회견
2. 대통령 명의로 작성된 괴이한 공식외교문서
3. 국가안보를 스스로 훼손하는 비극적 사태
4. 마드리드 주재 조선대사관 피습사건
1. 평양에서 진행된 최선희 부상의 특별회견
2019년 3월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평양에 주재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특별회견을 진행하였다. 평양에 지국을 둔 미국 통신사 <AP>와 로씨야 통신사 <따쓰>가 각각 보도한 영문기사를 번역, 정리하면 최선희 부상의 특별회견발언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최고령도자 동지께 우리 인민들, 인민군대 지휘관들, 군수공업부문 일군들이 핵무기사업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 천 건의 편지를 올렸지만,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미국과 신뢰를 조성하고 한 걸음씩 수행해나가는 상호합의를 하기 위해 하노이에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은 조미관계개선이라든가 6.12공동성명의 리행에는 일체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와의 협상에서 그 어떤 결과를 따내서 저들의 정치적 치적으로 만드는 데 리용하려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우리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는 말이 되지 않는 궤변입니다. 우리는 제재를 전부 해제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왜 그처럼 다른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미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폼페오 국무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적대와 불신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괴상한 협상태도를 보였으며, 조미 두 수뇌분들께서 진행하시는 건설적인 협상에 장애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노이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에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하노이를 떠나 평양으로 오시는 길에 우리가 왜 이런 렬차려행을 또 다시 해야 하는가고 수행간부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명백히 말씀드리건대, 지금 같은 미국의 강도적 립장은 사태를 분명 위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미국이 자기의 정치적 타산을 버리고, 조선의 조치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회담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의 협상에 나설 생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요구에 양보할 의사가 없습니다.”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대륙간탄도탄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유예한 조치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조만간 결정하실 것입니다.”
위에 인용된 최선희 부상의 발언 중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9년 3월 15일 평양에서 진행된 특별회견장을 촬영한 것이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특별회견을 진행하였다. 최선희 부상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특별회견에서 사회를 맡아본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소속 인사이고,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통역관이다. 특별회견에는 평양에 주재하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외신기자들이 참석하였다. 최선희 부상은 특별회견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조미협상이 중지된 원인은 미국의 강도적 입장 때문이라고 지적하였고, 미국이 강도적 입장을 버리고 올바른 협상태도를 갖지 않으면 회담하지 않겠다고 단언하였다. 또한 그는 미국이 협상태도를 바꾸어 조미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미국에게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퇴의 협상원칙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유예한 조치를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데, 곧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
(1) 최선희 부상은 미국의 강도적 입장 때문에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었고, 조미협상이 중지되었다고 지적하였다.
(해설 - 미국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부터 조선에게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기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해왔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강도적인 요구”를 문서화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키고 조미협상을 중지시킨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서술한다.)
(2) 최선희 부상은 미국이 “괴상한 협상태도”를 버리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협상태도를 갖지 않으면, 회담하지 않겠다고 단언하였다.
(해설 -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강도적인 요구”를 담은 협상문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였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조선의 핵무력을 포기하라는 “강도적인 요구”가 담긴 그 협상문서를 폐기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야 조미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3) 최선희 부상은 미국이 협상태도를 바꾸어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미국에게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해설 - 미국이 “강도적인 요구”를 버리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제안을 내놓아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조선은 미국에게 전혀 양보하지 않겠다는 불퇴의 협상원칙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양보와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는 조선의 협상원칙은 조선이 보유한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한 발도 폐기하지 않는 것이다.)
(4) 최선희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와 핵시험을 유예한 조치를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데, 곧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해설 - 나는 2019년 3월 11일 <자주시보>에 실린, ‘평양 북쪽에서 나타난 특별한 징후’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정상회담에서 한미연합군의 전쟁지휘예행연습을 중지하겠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언약한 공약을 위반하면서 작전명칭을 ‘동맹’으로 바꾼 전쟁지휘예행연습을 강행하라고 지시하였음을 지적하였고, 그런 공약위반에 대응하여 조선에서는 2019년 1월 초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를 준비하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였다고 서술하였다. 그런데 최선희 부상의 발언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시험발사유예조치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조만간 결정하여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2. 대통령 명의로 작성된 괴이한 공식외교문서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문제의 협상문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1)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협상문서를 직접 전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요구조건을 끝까지 주장하는 바람에 정상회담이 중지되고, 양측이 각기 다른 방에서 긴급대책을 숙의하고 있었던 긴장된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조선특별대표를 통해 최선희 부상에게 협상문서를 건넸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선희 부상을 통해 그 문서를 받아보았다.
(2) 2019년 3월 3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 언론매체와 진행한 회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협상문서는 우리말과 영어로 각각 한 부씩 작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말 번역본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하노이 정상회담 전에 미리 우리말본과 영어본을 준비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협상문서가 영어로만 작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말과 영어로 작성된 것만 봐도, 그것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회람하기 위해 작성된 내부문서가 아니라 조선에 전달하기 위해 작성된 공식외교문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직접지시에 따라 자신의 명의로 작성된 공식외교문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것이다.
(3) 협상문서 문안은 미국측 실무대표단이 작성하였다. 문안작성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 앨리슨 후커 백악관 코리아담당보좌관, 매튜 포틴저 백악관 아시아담당선임보좌관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현장을 촬영한 언론보도사진을 보면, 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 뒤에 그 세 사람이 배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세 사람은 2019년 2월 6일부터 8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다른 한편, 조선측 실무대표단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혁철 대미특별대표, 김성혜 통일전선부 책략실장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현장사진을 보면, 2019년 2월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 도착하여 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사업정형을 보고받는 자리에 그 세 사람이 참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될 것으로 예상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결렬에 대비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의 명의로 작성된 협상문서를 전하는 씨나리오를 미리 만들어놓았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그 씨나리오대로 행동했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현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팜페오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에도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는데, 그때는 기자회견에 홀로 나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담결렬사태를 의식한 탓에 팜페오 국무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고, 자신이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 나왔을 때는 그가 답변하도록 하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될 것으로 예상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결렬에 대비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의 명의로 작성된 협상문서를 전하는 씨나리오를 미리 만들어놓았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그 씨나리오대로 행동했다. 협상문서는 대통령의 공식외교문서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
(5) 협상문서에는 미국이 제기하는 해결방안이 전부 담겼다. 이것은 미국이 모든 문제를 일괄타결하는 협상방식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2019년 3월 5일 제임스 리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은 비건 특별대표로부터 하노이 정상회담에 관한 비공개 설명을 들은 뒤에 취재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부분적인 합의가 아니라 전반적인 합의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3월 11일 비건 특별대표는 워싱턴에서 진행된,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조미협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든 것을 합의할 때까지 아무 것도 합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협상문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대통령의 외교문서는 1급 비밀이므로 외부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매우 이례적으로 미국 국무부가 그 협상문서의 윤곽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2019년 3월 7일 국무부 고위관리 한 사람이 취재진을 상대로 특별기자회견을 진행하였는데, 그의 답변에서 협상문서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국무부는 특별기자회견을 진행한 국무부 고위관리의 이름을 외부에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이 팜페오 국무장관과 함께 서울과 평양을 몇 차례 방문하였을 뿐 아니라, 2019년 1월 워싱턴을 방문한 조선측 실무대표단을 만나 토의하였다고 밝힌 것을 보면, 그가 비건 특별대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비건 특별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협상문서를 작성한 문안작성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므로, 협상문서의 내용에 관해 그보다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의 발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취재기자 - “당신은 이 모든 것이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비건 - “그렇다. 그것은 아주 방대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충분히 검증된 북조선의 비핵화다. 그것은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에서 주요부분(key parts)을 모두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핵분렬물질를 제거하고, 핵탄두를 제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거 또는 파괴하고, 다른 대량파괴무기프로그램을 영구히 동결시키고, 그 나라가 민간경제발전의 추구에 맞춰 재조정된 항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핵시설용도를 변경하는 것 등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북조선이 얻게 될 것은 세계경제에로의 통합, 변화된 미국과의 관계,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그리고 두 나라 사이에서 적대감과 전쟁상태를 유지해온 70년 관계를 종식시키는 것 등이다.”
위에 인용된 비건 특별대표의 발언에는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한 다섯 가지 요구사항이 열거되었는데,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핵분렬물질 제거
- 핵탄두 제거
- 대륙간탄도미사일 제거
- 생화학무기프로그램 영구동결
- 기존 핵시설을 민수용 원자력시설로 전환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요구사항은 조선에서 쓰이는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조선이 지난 40여 년 동안 자력갱생, 견인불발의 정신으로 땀을 흘리며 건설, 완성한 핵무력을 포기하라는 요구이며, 조선이 미국의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서 8천만 겨레의 운명과 미래를 지켜주는 핵억제력을 포기하라는, 다시 말해서 조선에서 말하는 “정의의 핵보검”을 포기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그런 요구를 강도적이라고 부른다.
3. 국가안보를 스스로 훼손하는 비극적 사태
조선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공약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조선이 자기의 핵무력을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반도에 핵전쟁위험을 조성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한다는 뜻이었다. 팜페오 국무장관과 비건 특별대표는 조선과 미국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다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놓으면서, 조미 두 나라가 비핵화개념을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조선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부터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말과 행동으로 명백히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상황을 오판한 미국은 그 해 여름 몇 달에 걸쳐 조선에게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거듭 요구하였었다. 미국의 온라인 언론매체 <봑스> 2018년 8월 8일 보도기사에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팜페오 국무장관은 조선이 6~8개월 안에 핵탄두 보유량의 60~70퍼센트를 포기하고, 제3국이 그 핵탄두들을 조선에서 반출하여 제거하는 방안을 지난 두 달 동안(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후 7월과 8월) 여러 차례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제기하였으나 김영철 부위원장은 그 제안을 번번이 거부했다고 한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핵탄두를 제거하라는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를 여러 차례 거부한 것이야말로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조선의 핵무력을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반도에 핵전쟁위험을 조성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점을 명백히 말해준 것이었다.
더욱이 조선은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를 말로만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실제행동으로도 거부하였다. 2018년 여름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분석한 위성영상정보를 인용한 미국 텔레비전방송 <NBC> 2018년 9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후 3개월 동안 적어도 핵탄두 보관시설 한 군데의 출입구를 은폐하는 공사를 벌였고, 그 시설에 보관하던 핵탄두를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2018년 한 해 동안 핵무기 5~9개를 증산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조선은 이미 2018년 7월 초부터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미국의 “강도적인 요구”를 말과 행동으로 여러 차례 거부해왔으므로, 미국은 마땅히 “조선반도의 비핵화”의 의미를 깨닫고 핵포기라는 말을 더 이상 입 밖에 꺼내지 않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조선의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대통령 명의의 공식외교문서로 작성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하기까지 하였으니, 괴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요즈음 백악관 밖에서는 조선의 핵포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은 2019년 1월 29일에 발표한 ‘세계적 범위에서 조성된 위협에 대한 평가’라는 제목의 연례정보보고서에서 “북조선은 핵무기, 핵무기운반체계, 핵무기생산설비를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하였다.
2019년 2월 12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인디아양-태평양사령관 필립 데이비슨 해군제독은 “북조선이 모든 핵무기와 핵무기생산능력을 포기할 것 같지 않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양보를 얻기 위한 조치로 부분적인 비핵화를 협상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정보실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2019년 2월 23일 “북한이 핵포기를 할 것으로 보느냐?”는 <조선일보> 특파원의 질문을 받고, “북한의 비핵화는 애당초 성공가망성이 없다. 북한은 핵을 생존을 위한 티켓(원래 전표를 뜻하는 외래어인데, 이 문장에서는 수단이라는 말로 의역해야 함-옮긴이)으로 생각하고, 국제사회에서 핵을 지렛대로 사용해 미북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서방의 조선문제 전문가 14명이 지난 1년 동안 진행한 분석과 토론을 종합하여 미국과학자련맹(FAS)이 2019년 3월 7일에 펴낸 보고서는 “북조선의 핵무기를 급속히 해체하려는 비현실적인 목표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정책들을 소모시켰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그런 비현실적인 정책을 지속한다면, “다른 중요한 이익을 지키는 노력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위에 서술한 내용들을 보면, 백악관 밖에서는 조선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목표이고, 조선의 핵동결 또는 부분적인 비핵화가 현실적인 목표라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강도적인 요구라고 맹비난하는 방안이 담긴 협상문서, 미국 각계에서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비판하는 방안이 담긴 협상문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했으니, 괴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보좌관들은 조선의 핵포기라는 망상에 빠져있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강도적인 요구”가 담긴 협상문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한 의도는 무엇일까?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팜페오 국무장관의 발언 속에 들어있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9년 3월 13일 팜페오 국무장관이 국무부 기자회견실에서 '2018년도 인권실행에 관한 국가별 보고서'를 발표하는 장면이다. 그가 발언에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고 모욕한 나라들은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조선, 꾸바, 이란, 수리아, 베네주엘라이고, 미국과 갈등관계에 있는 로씨야와 중국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인권을 짓밟는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국은 미국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보좌관들은 미국이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국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인권공세로 다른 나라를 모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보좌관들은 인권문제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핵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들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인권문제와 핵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비정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비극 중의 비극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
(1) 2019년 3월 3일 팜페오 국무장관은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와 회견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날선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회견진행자가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리용호 외무상이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조선이 제시한 해결방안은 최종적인 것이라고 언명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팜페오 국무장관에게 물었더니, 팜페오 국무장관은 “북조선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말라. 북조선사람들이 그렇게 말한 인용문을 내게 보여달라. 당신은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느닷없는 감정표출에 약간 당황한 회견진행자가 “우리의 방안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대목을 읽어주었더니, 팜페오 국무장관은 할 말을 잃고 약 6초 동안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그는 엉뚱하게도 “그들이 말한 것은 그들이 우리와 대화를 계속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며,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동문서답을 하였다고 한다.
팜페오 국무장관이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발언을 읽어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조선의 원칙적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객관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정서불안증세를 드러내보였다. 이런 사례는 조선의 핵문제에 대한 팜페오 국무장관의 판단이 매우 흐려졌음을 보여준다. 그는 조선의 핵문제에 대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 미국 텔레비전방송 <CNN> 2019년 3월 6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고위보좌관들 가운데 몇 사람은 조선의 핵문제에 대해 “사적으로(privately)” 말하는 자리에서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실현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조선이 응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뉴욕타임스> 2018년 7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사적으로(privately) 팜페오 국무장관은 북조선 영도자가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북조선이 핵시설을 해체하기는커녕 핵시설을 미국에게 은폐하면서 핵시설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는 정보보고가 나오자 팜페오 국무장관의 그런 의심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은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조선측과 협상하는 자리에서는 핵포기를 요구한다. 이것은 그들이 조선의 협상원칙에 대해 크게 오판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의 협상원칙에 대해 오판하였던 클린턴 대통령, 부쉬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오판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오판의 함정에서 그가 겪어야 하는 것은 전략적 패배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패배로 미국의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비극적 사태를 자초하고 있다.
다른 한편, 위에 인용된 비건 특별대표의 3월 7일 특별기자회견발언에는 미국이 조선에게 제시한 네 가지 상응조치가 열거되었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미국은 조선의 경제를 세계경제체제로 통합시킨다.
- 미국은 조선과 국교를 수립한다.
- 미국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한다.
- 미국은 대조선적대관계를 종식시킨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상응조치들 가운데 문제로 되는 것은 미국이 조선의 경제를 세계경제체재로 통합시킨다는 첫 번째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보좌관들은 첫 번째 상응조치를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조선에게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고, 조선이 “엄청난 경제번영”을 이룩할 것이며, 조선에게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조선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핵포기를 단행하고 세계경제체제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궤변이다. 조선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택하여 세계자본주의경제체제로 통합될 것이라는 말은 해가 서쪽에서 뜰 것이라는 궤변과 같은 말이다.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이라는 조선의 구호가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처럼, 조선에게 사회주의를 포기하라는 것은 죽음을 택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보좌관들이 기껏 궁리해냈다는 상응조치라는 것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제국주의에게 굴복하는 “죽음의 길”이라면, 그런 상응조치를 제안한 것은 조선의 국가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는 모욕이 아닌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 동안 덧쌓이는 고난과 시련을 피눈물로 헤쳐가며 자기의 사회주의체제를 지키던 조선에게 온갖 압박과 제재, 공갈과 협박을 가했던 미국이 사회주의체제를 버리고 세계자본주의체제로 통합되면 조선의 경제가 번영할 것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어떻게 꺼내놓을 수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모욕을 상응조치로 포장한 협상문서라는 것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4. 마드리드 주재 조선대사관 피습사건
기가 막힐 노릇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닷새 전인 2019년 2월 22일 오후, 정체불명의 괴한 10명이 에스빠냐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조선대사관을 습격하였다. 괴한들은 대사관 직원들을 결박하고 천을 머리에 둘러 두 눈을 가리고 4시간 이상 대사관 청사 내부를 샅샅이 뒤지면서 심문까지 하였다. 그 사이에 허술하게 묶인 결박을 풀어버린 여성 한 사람이 밖으로 뛰쳐나가 이웃집에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구원을 요청하였다. 깜짝 놀란 이웃집 사람은 인근 경찰서에 신고하였다. 에스빠냐 경찰관들이 조선대사관에 달려가 문을 두드리니, 대사관 직원으로 위장한 괴한이 얼굴을 내밀고 아무 일이 없다는 거짓말로 경찰관들을 안심시키고 돌려보냈다. 괴한들은 조선대사관에서 컴퓨터와 손전화를 모조리 강탈한 다음, 대사관 승용차 두 대를 강탈하여 나눠 타고 범행현장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괴한들은 그들이 타고 가던 대사관 승용차 두 대를 대사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그런 소동 중에 부상을 당한 조선대사관 직원 3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괴한들이 조선대사관을 습격한 시각에 맞춰 그 지역에서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고 휴대전화가 불통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들이 조선대사관 부근에 있는 변압기에 고장을 나게 하여 전기를 끊어버리고, 인근 이동통신기지국을 마비시킨 뒤에 조선대사관을 습격하였음을 말해준다.
괴한들의 정체와 범행동기를 알 수 없어 설왕설래하였던 조선대사관 피습사건의 내막은 에스빠냐 국가정보국과 경찰정보국의 합동수사로 세상에 드러났다. 2019년 3월 2일 그 나라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범행계획에 따라 조선대사관을 습격하였으나 돈이나 금품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컴퓨터와 손전화만 강탈해간 괴한들은 놀랍게도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특수요원들이라는 것이다. 범인들 가운데 우리말을 하는 자들도 있었으므로, 그들은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 소속 특수요원들이 분명하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 코리아임무쎈터는 조미협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기관이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에스빠냐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조선대사관을 정문쪽에서 촬영한 것이다. 에스빠냐 경찰차가 정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에스빠냐 경찰관들이 조선대사관 주변을 수색하는 장면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닷새 전인 2019년 5월 22일 오후, 정체불명의 괴한 10명이 마드리드 주재 조선대사관을 습격하였다. 괴한들은 조선대사관 부근에 있는 변압기에 고장을 일으켜 전기를 끊어버리고, 인근 이동통신기지국을 마비시킨 뒤에 조선대사관을 습격하였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범행이었다. 괴한들은 대사관 직원들을 결박하고 천을 머리에 둘러 두 눈을 가린 뒤에 4시간 이상 대사관 내부를 샅샅이 뒤지면서 심문까지 하였다. 괴한들은 조선대사관에서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모조리 강탈한 다음, 대사관 승용차 두 대를 강탈하여 나눠 타고 범행현장을 빠져나갔다. 에스빠냐 국가정보국과 경찰정보국의 합동수사에 의해 조선대사관 습격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범행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선대사관 피습사건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선을 자극하여 조미협상을 파탄시키려고 자행한 전대미문의 범행이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조선이 미국을 어떻게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있으며, 미국을 어떻게 선의로 대할 수 있겠는가!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마드리드 주재 조선대사관 피습사건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조선을 극도로 자극하여 조미협상을 파탄시키려고 자행한 범죄사건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전대미문의 범행을 저지른 미국은 응당 조선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하지만, 자기의 범행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강도적인 요구”를 조선에게 제기하여 하노이 정상회담을 결렬시켰을 뿐 아니라, 회담결렬 직후에는 한미연합군의 전쟁지휘예행연습을 중지하는 공약을 위반하여 정세를 악화시켰고, 에스빠냐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범행내막이 밝혀지면서 정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조선이 미국을 어떻게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있으며, 미국을 어떻게 선의로 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2018년 7월 초부터 조선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제기하면서 조미협상에 난관을 거듭 조성하였지만, 조선은 어떻게 해서든지 순리적으로 협상을 벌이기 위해 온갖 인내와 성의와 노력을 기울이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보좌관들이 올바른 협상태도를 가져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의 협상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으며, 날이 갈수록 되레 더 나빠졌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조선을 압박하여 핵무기를 포기시키겠다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백악관은 괴이한 협상문서로 조선을 모독하였고, 한반도에 핵전쟁위험을 조성한 핵우산에 집착하는 미국 국방부는 조선을 자극하는 전쟁지휘예행연습을 감행하여 공약을 위반하였으며, 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해치려는 비밀공작에 광분하는 중앙정보국은 마드리드 주재 조선대사관을 습격강탈한 전대미문의 범행을 저질렀다. 이 세 가지 사건이 조미협상을 위기에 빠뜨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