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예감 291]다가오는 조미정상회담, 낙관적 전망의 근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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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3-25 19:2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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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291- 1] 다가오는 조미정상회담, 낙관적 전망의 근거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자주시보
<차례>
1. ‘핵제국의 폭군’을 44년 만에 정상회담으로 끌어낸다
2. 기대하라, ‘역사적인 타결’과 ‘세계를 위한 가장 위대한 타협’을
3. 세 가지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다
4. 한반도 안팎에서 성숙된 최적의 조건들
1. ‘핵제국의 폭군’을 44년 만에 정상회담으로 끌어낸다
1974년 8월 27일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 국무장관은 니꼴라이 차우쎄스꾸(Nicolae Ceausescu) 루마니아 대통령이 워싱턴에 파견한 바실 푼간(Vasile Pungan) 특사를 접견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바실 푼간 - “조선이 비공개접촉(confidential contacts)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미국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우리에게 보내왔다. 포드 대통령이 원한다면, 차우쎄스꾸 대통령은 비공개접촉이 성사되도록 돕고 싶다고 하였다.”
제럴드 포드 - “당신들의 제의에 감사한다. 키씬저 국무장관과 내가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 그런 접촉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조선으로부터) 확고한 양해(firm understandings)가 없으면, 우리는 (조미비공개접촉)에 가고 싶지 않다. 키씬저 장관이 (워싱턴주재) 루마니아 대사를 만날 것이다.”
헨리 키씬저 - “우리가 논의한 뒤에 귀국 대사를 통해 우리 생각을 전하겠다.”
바실 푼간 - “조선에게 이를 전하겠다. 좋은 회답을 기대한다.”
위의 인용문은 원래 1급 비밀로 분류된 대통령 문서철 비망록(Memorandum for the President's File)에 들어있는 대화록의 일부인데, 2008년 6월에 기밀해제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위의 인용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1971년 6월 28일 김일성 주석이 평양을 방문한 니꼴라이 차우세스꾸 루마니아 대통령과 상봉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1970년 10월 26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부처가 백악관을 방문한 차우세스꾸 루마니아 대통령 부처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기록에 의하면, 1974년 8월 김일성 주석은 백악관을 방문한 루마니아 대통령 특사를 통해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에게 비공개접촉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것은 조미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그로부터 44년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제안을 즉석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수락하였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40여 년 동안 추진해온 대미전략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1974년 8월 김일성 주석이 루마니아를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한 비공개접촉은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회담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2년 2월 21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전에 그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회담을 비공개로 진행한 바 있다. 미중예비회담이 성사되기까지 키씬저는 제3자를 통해 베이징과 연락하려고 애썼다. 이를테면, 키씬저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야히야 칸(A. M. Yahya Khan) 파키스탄 대통령, 니꼴라이 차우쎄스꾸 루마니아 대통령, 쟝 쌩뜨니(Jean Sainteny) 프랑스 정치인 등의 중재를 통해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연락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키씬저가 저우언라이로부터 미국 대통령 또는 대통령 특사의 중국방문을 환영한다는 서한을 받은 날은 1971년 4월 21일이었고, 키씬저가 베이징을 처음 방문한 날은 1971년 7월 9일이었다. 닉슨-마오쩌둥 정상회담이 성사된 때로부터 2년 6개월 뒤 김일성 주석은 루마니아를 통해 닉슨 대통령에게 비공개접촉을 제안한 것이다.
(2) 미국은 조선이 미국과 비공개접촉을 하고 싶으면, 조선이 “확고한 양해”를 해야 한다는 선결조건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미국과 대화를 하고 싶으면 미국에게 머리를 숙이라는 뜻이었다. 44년 전, 자기에게 머리를 숙이라는 미국의 오만한 태도는 2018년 2월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에게 머리를 숙이고 대화를 구걸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조선이 “확고한 양해”를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미국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자, 포드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비공개접촉 제안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루마니아를 통해 조선에 보냈다.
(3) 비록 미국의 거듭되는 거부와 외면으로 성사되지는 못했으나, 김일성 주석은 1974년부터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대미전략을 추진하였다. 조선은 미국을 상대로 최후결전을 벌이려는 대미전략과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대미전략을 병행적으로 추진하였다.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대미전략의 목표는, 조선의 어법을 빌리면,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와 화친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미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남조선 강점 미제침략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2018년 5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은 김일성 주석이 시작하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계승되었던 대미전략을 44년 만에 실현하는 역사적 사변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44년 동안 정세가 변화하였고, 세대가 바뀌었고, 세월이 흘러갔어도 조선의 대미전략이 드팀없이 일관되게 추진되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미전략의 불변성과 일관성은 오는 5월 말에 열릴 조미정상회담에서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비공개접촉 제안을 거부하였으나,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조선의 대미전략은 중단되지 않았다. 1982년 봄 어느 날, 스위스 제네바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관들이 한 자리에 모인 회합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제네바주재 조선 대사가 제네바주재 미국 대사에게 다가가더니 불쑥 서류봉투를 내밀면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조선과 미국의 제반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김일성 주석의 제안이 이 문서에 들었으니, 이 문서를 백악관에 전해 주기 바란다.” 미국 대사는 엉겁결에 그 서류봉투를 받고 즉시 미국 국무부에 보고하였는데, 국무부는 서류봉투를 개봉하지 말고 이튿날 제네바주재 조선대표부에 곧바로 돌려보내라고 지시하였다. 미국 대사는 상부의 지시대로 행동하였다.
1982년 6월, 미국 뉴욕에 유엔본부 청사에서 유엔주재 조선대표부 차석대사가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외교관에게 서류봉투를 전달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미국대표부 외교관은 국무부의 지침에 따라 그 서류봉투를 받지 않고 돌아섰다. 당시 미국 국무부가 정해놓은 지침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이 조선 외교관을 접촉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제3국 행사에서 조선 외교관과 우연히 조우하는 경우에도 간단한 인사말 이외에 대화는 나누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지난 시기 미국이 그처럼 제3국에서 조선 외교관과 우연히 만나는 접촉마저 금하면서,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고집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아직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세계의 지배자’라고 자처하는 오만방자한 핵제국은 핵을 갖지 못한 조선을 대등한 지위에서 상대하지 않고 무시하였던 것이다. <사진 2>
▲ <사진 2>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3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파견한 방북특사단을 조선로동당 본부 청사에서 접견하고, 그들과 함께 동해 하늘에 떠오르는 눈부신 아침해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접견에서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조미관계개선과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로써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충격을 받고 파열되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은 오만방자한 '핵제국의 폭군'을 44년 만에 조미정상회담으로 끌어내게 되었다. 이 놀라운 사변은 장장 25년 동안 벌어진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이룩한 승리가 가져온 놀라운 성과이다. 위의 사진에 나타난 동해 하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조국통일의 밝은 미래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만방자한 ‘핵제국의 폭군’을 44년 만에 마침내 조미정상회담으로 끌어내게 되었다. 이 놀라운 사변은 장장 25년 동안 벌어진 조미핵대결에서 조선이 이룩한 승리가 가져온 성과이다. 그 성과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5년 동안 조선을 고립, 압살하려는 적대관계에 매달려온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을 파열시키기 시작하였다. 얼마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과 워싱턴을 순차적으로 방문한 정의용 특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에게 “조미정상회담에서 조미관계개선과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하여 미국의 대조선적대정책은 충격을 받고 파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보였던 대조선적대정책에 파열충격을 가하여 ‘핵제국의 폭군’을 44년 만에 정상회담으로 끌어낸다는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승리한 것이다.
2. 기대하라, ‘역사적인 타결’과 ‘세계를 위한 가장 위대한 타협’을
승리 뒤에 더 큰 승리가 따라올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정세급변과정에서 대승을 거두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서술하면,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조미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낙관적 견해에는 다음과 같은 논거들이 안받침될 수 있다.
(1) 조선이 미국과 맞붙은 핵대결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정세급변과정에서 대승을 거둘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 되돌아보면, 2000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조미정상회담 약속을 받아냈으나, 클린턴 대통령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당시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개발하던 중이었고, 따라서 미국과 맞붙은 핵대결에서 아직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여 조미핵대결을 승리로 이끈 오늘, 조미관계는 뒤집혔다. 만일 이번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는 최악의 경우를 가상해도, 조선의 대미전략은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의 대조선전략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은 국가핵무력을 계속 유지,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면 되지만, 미국은 태평양작전지대와 미국 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조선의 국가핵무력 앞에서 파탄에 빠진 국가안보를 되살릴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는 경우, 미국이 조선에게 ‘군사적 선택방안’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그건 기우다. 조미적대관계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조선의 국가핵무력 실상에 대해 심층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기우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 글의 길이가 제한되어서, 그 문제를 자세히 설명할 수 없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2018년 신년사에 천만마디 설명을 갈음하는 문장이 들어있다.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됩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합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타격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장 우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백악관에 두려움을 주고, 전 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단추 발언은 25년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결속되었음을 명료하게 입증하였다. 핵단추 발언이야말로 오만한 ‘핵제국의 폭군’을 조미정상회담으로 끌어낸 극적인 계기인 것이다. 조선의 견지에서 바라보면, 이번에 열릴 조미정상회담은 조미핵대결의 승리로 44년 만에 만들어낸 기회인데, 그런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으니 ‘조선반도의 근본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또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근거를 가지고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정세급변과정에서 대승을 거두게 될 것으로 낙관한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12월 8일 백두산 정상에 올라 눈으로 뒤덮힌 백두산 영봉들과 백두산 천지의 장엄한 경관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이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1월 대사변>을 이루시고 백두산을 찾으셨다"고 보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11월 대사변'이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린 놀라운 사변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의 국가핵무력이 완성된 직후에 백두산 정상에 오른 것은 '동방의 핵강국'이 '서방의 핵제국'과 벌인 25년 핵대결에서 마침내 승리함으로써 '조선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길이 열렸다는 확신을 표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두산 정상에서 '조선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을 구상하였을 것이다. 지난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역사적인 전환을 앞둔 시점에 백두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2018년 3월 9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방북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례 없는 정상회담에서 자신과 만나면, 두 사람은 역사적인 타결(historic breakthrough)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의 견지에서 바라보면, 올해 2018년은 미국과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정전협정을 체결한 때로부터 65년이 되는 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창건된 때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린 결심은 올해 반드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통일국가건설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으려는 것이고, 그런 결심에 따라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제안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과 조미정상회담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통일국가건설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을 천금 같은 기회로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방북특사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조미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타결’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했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번 조미정상회담은 더없이 중대한 기회이다. 왜냐하면, 조선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것으로 하여 파탄에 빠진 미국의 국가안보를 조미정상회담에서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열거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들은 조미정상회담이 결렬되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내게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안겨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3월 10일 펜실배니아주에서 열린 정치행사에 참석하여 청중들에게 이번 조미정상회담에서 “세계를 위한 가장 위대한 타협(the greatest deal for the world)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장담했다. 또한 그는 2018년 3월 13일 캘리포니아주 쌘디에고에 있는 해병대항공기지에 모인 수 천 명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는 조선과 아주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바라건대, 매우 긍정적인 어떤 것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도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긍정적인 것이 나올 것이라고 정말로 믿는다. 남과 북의 코리아에게 좋을 것이고, 이 나라에게도 좋을 것이다.”
위에 열거한 인용문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에서 실패는 없고, 성공만 있을 것이라고 서로 확신하고 있다. 바로 이런 근거를 가지고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미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정세급변과정에서 대승을 거두게 될 것으로 낙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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