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위험을 무릅쓴 판문점 정상회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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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5-02 17:2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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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위험을 무릅쓴 판문점 정상회담 결정
북한 정치 이해, 정치 ⓒNK투데이 편집부
역사적인 3차 남북정상회담 장소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으로 결정되자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였다.
이전의 두 차례 정상회담이 열린 평양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평화의 집'이 대한민국의 행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유엔군 사령부, 사실상 미군의 관할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북한에서 공개한 적은 없지만 북한의 주요 당 간부들은 판문점 회담을 반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은 사회 특성 상 최고지도자의 존재가 절대적이기에 보안 문제를 최우선에 놓기 때문이다.
일단 판문점은 북미 양측 군대가 직접 무기를 들고 대치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고 있다.
불과 반년 전인 2017년 11월 13일에도 판문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을 정도다.
게다가 북한이 볼 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반미국가 요인 암살을 밥 먹듯 해온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예를 들어 미 중앙정보국(CIA)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암살을 끊임없이 시도했는데 1975년 미 상원 특별위원회가 공개한 자료만 봐도 1960~1965년 사이에 8차례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4는 2006년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란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는데 이는 쿠바 비밀정보국(DI)의 수장이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역대 45명의 대통령 중 4명이나 암살당했고, 7차례 이상의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을 정도로 자국 대통령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나라다.
전시에 미군의 지휘를 받는 한국군은 지난해 말 김정은 위원장의 목숨을 노린다는 이른바 '참수부대'를 창설하기도 했다.
그러니 미군 관할지에 김정은 위원장이 가는 걸 당 간부들이 찬성할 리가 없다.
이런저런 불의의 사고로 위장한 테러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3월 7일 여야 5당 대표와의 오찬회동에서 남북정상회담 장소에 대해 "우리가 서울이든, 평양이든, 판문점이든 후보지를 제안하고 북한이 (판문점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런 안전 담보 없이 결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핵무력 완선을 선언한 만큼 미국 본토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이 있으니 미국도 함부로 딴 생각을 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이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자랑하는 일심단결,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결단의 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판문점 방문이 목숨을 건 결단이며 그만큼 정상회담, 그리고 통일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할 시기에 목숨을 걸고 임하는 '사즉생'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김일성 주석은 과거 항일무장운동 시기에 여러 차례 목숨을 건 담판장에 직접 나섰다.
막 유격대를 창설했던 1932년, 김일성 주석은 공산주의자라면 무조건 학살하던 중국 구국군 부대의 하나인 우사령 부대에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당시 유격대원들은 김일성 주석이 직접 나서는 것을 반대했지만 유격대의 존망이 우사령과의 담판에 달려있다면서 본인이 직접 가겠다고 고집한 것이다.
1933년 역시 구국군 부대인 오의성 부대와의 담판도 김일성 주석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나서서 성사시켰다.
당시 국제당파견원이었던 리기동(흔히 반성위라 부름)은 목숨이 위험하다며 극구 말렸으며 다른 유격대원들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오의성 사령의 비서장을 하고 있던 진한장이 자신의 힘으로는 동맹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김일성동지가 와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조직에서 가급적으로 대책을 세워 줄 것을 바란다”는 편지를 받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고난의 행군' 시절 국방력 강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군부대를 찾아다녔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6년 3월 동부 최전방 부대를 찾아가기 위해 강원도 철령을 넘을 때 "최고사령관이 전선길을 알자면 직접 차를 몰아보아야 한다"며 진눈깨비로 미끄러운 낭떠러지 길을 직접 운전했다고 한다.
또 1998년 8월에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3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중부전선 최전방 오성산을 찾았는데 워낙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데다 장마비까지 내려 간부들이 모두 만류했지만 현지지도를 강행했다고 한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차가 진창에 빠지자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차를 밀어 벼랑길을 올랐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의 전쟁 위기가 극심한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며 공세적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런 북한의 전통이 오늘날엔 "나를 따라 앞으로"라는 구호로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12월에 있었던 노동당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연설에서 "우리 당의 세포위원장들은 '돌격 앞으로!'라는 말은 아예 잊어버리고 배우지도 말며 오직 '나를 따라 앞으로!'라는 외침만 외칠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였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목숨을 걸고 최전방을 방문하곤 하였다.
2012년 8월에는 서해 최전방에 있는 무도 방어대를 현지지도했는데 최소 경호인력만 대동한 채 작은 목선을 타고 가서 주목을 받았다.
무도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이 있었던 섬으로 한국군 사격권 내에 있기에 더 놀라움을 주었다.
이뿐 아니라 2012년 3월 판문점 현지지도, 2013년 6월 오성산 현지지도 등이 이어졌다.
최고지도자가 중요한 순간 목숨을 걸고 앞장에 서는 모습은 전체 주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나 비상사태를 선언할 때마다 며칠 사이에 많은 청년들이 입대, 복대를 탄원하는 모습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경쟁적으로 가장 위험한 현장에 뛰어드는 모습을 북한 보도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평생 호의호식하며 돈벌이에 매진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런 차이가 북미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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