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1 - 브렉시트, 제2의 ‘베를린 장벽’ 붕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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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31 15:4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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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1
- 브렉시트, 제2의 ‘베를린 장벽’ 붕괴인가 민플러스 손정목 운영위원
올해는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동맹질서가 밑뿌리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첫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터키의 러시아 우호관계 전환, EU 독자의 군대 창설안 발표는 기존 중·러 중심의 다극화 흐름과는 구별되는 미국 동맹체계 내부에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지금까지 다극화 흐름은 중·러 주도 아래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확대,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의 등장, 브릭스(BRICS) 부상,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설 등 미국의 관할 밖 영역에서 전개되었다. 물론 세계 일극패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역시도 미국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흐름이긴 하지만 미국이 직접 주도한 동맹체계 내부의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대서양 동맹으로 표현되는 미국과 유럽 간의 공고한 동맹체계는 세계를 서구 중심으로 이끌어온 기본 축이었다. 그런데 이번 브렉시트를 필두로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은 영원할 것 같았던 미국이 만든 질서체계가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곡성(哭聲)’이다.
브렉시트와 터키의 대러 우호정책 전환, 그리고 EU의 독자 군대 창설안을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온 별개의 사안들로 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세 가지 사건은 상호 연결되어 있고 미국의 위기를 반영한다. 브렉시트가 EU의 통합성에 결정적 파열구를 냈다면 터키의 정책 전환과 EU 독자 군대안의 발표는 NATO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뉴스는 지난 7월1일 시진핑 총서기가 중국 공산당 95주년 기념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새로운 세계질서’가 10년 안에 올 것임을 선언하면서 “세계는 급격한 변화의 경계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EU가 미국 경제처럼 서서히 붕괴해 나가고 있는지 보고 있다”고 한 발언을 보도(8.14)하였다.
우리는 기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수립되는 변화의 도상에 서있다. 트럼프의 부상은 그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에 주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낡은 미국 중심의 냉전질서에 사로잡혀 있으면 또 다시 역사의 변방에서 남의 눈치나 보며 굴욕적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과거 중국 명·청(明·靑) 교체기에 다 망해가는 명나라 바짓가랑이나 붙잡고 늘어지다가 결국 청나라에게 치욕스런 항복을 강요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를 기획한 이유이다. 몇 차례 나눠 연재한다.[필자서문]
* 국제문제나 지역문제에 관한 전문가 기고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민플러스 국제팀]
브렉시트, 영국의 전략적 선택
브렉시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많이 엇갈린다. 대량의 난민 유입을 규제하기 위한 영국의 이기적, 극우적 경향의 표출이라는 보수적 평가에서부터 EU의 반민중적 사회경제정책에 대항한 민중의 분노 표출이라는 진보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이들 평가의 공통점은 적어도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탈은 뜻밖의 결과라는 겻이다. 과연 그럴까? 표면적으로 영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만약 영국의 지배층이 진정 브렉시트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투표 결과를 뒤집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브렉시트 국민투표, 법적 구속력 없다> 민플러스 6월24일자) 그러나 이후 보여준 영국 정부의 행태는 이와는 정반대다. 그들은 신속히 내외의 브렉시트 재론 요구를 일축하고, 신정부 구성을 연말로 미뤄달라는 미국의 요구도 무시하곤 곧바로 테레사 메이를 총리로 하는 새 정부를 세워버렸다. 게다가 외무장관에는 브렉시트를 앞장서 주장한 독립당 당수 보리스 존슨에게 맡겼다. 영국은 다시 EU로 돌아갈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보리스 존슨은 여러 튀는 언행으로 구설수에 많이 오른 인물이지만 주목할 점은 그의 대외정책에 관한 입장이다. 그는 지난해 말 “ISIS를 부수기 위해 유럽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과, 아사드를 도와온 러시아에 대한 적대시를 그만두고 아사드와 푸틴과 힘을 합쳐 테러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신문에 싣고, 외무장관이 된 직후 연설에서도 “러시아와 이란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시리아 휴전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해 러시아와 이란의 시리아전쟁 개입을 인정했다. 미국의 대러 적대, 대러 포위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존슨을 영국은 외무장관으로 앉힌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주목할 대외행보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국과의 금융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 직후 영국의 증권거래소는 “런던은 위안화 국제화전략의 핵심 장소”, “런던은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금융 중심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며 중국과 런던의 금융 협력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을 것”(<中 “브렉시트 불구, ‘후룬퉁’ 흔들림없이 추진”> 머니투데이 7.14.)이라고 밝혔다. 즉 런던을 역외 위안화 중심기지(hub)로서 확고히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역외 위안화허브란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위안화 거래를 할 때 그 중심기지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이른바 ‘위안화 세계화’의 첨병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역외 달러거래허브로서 기능해 온 런던(런던시티)의 지위에 비춰볼 때 경제전략의 중대한 변화이다.
영국의 금융특구 ‘런던시티(City of London)’는 달러 기축통화제를 유지하기 위한 역외의 가장 큰 달러시장 창구로 오늘날 EU 파생상품 거래의 74%, EU내 헤지펀드 거래의 85%를 담당하고, 하루 거래량이 2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시장은 거래액 기준 세계 최고로 성장하였다(<하루 2조 달러 주무르던 금융허브, 이젠 생존 기로에> 경향신문 6.27). 또 런던시티는 국가간 은행 대출, 외환 거래, 장외 파생상품 거래, 국제 채권 거래, 해상보험료 수입 등에서 세계 1위다. 이에 더해 런던시티는 미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금리 상한이 적용되는 미국보다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기에 사우디 등 산유국들의 석유대금(페트로달러), 각국의 국부펀드 등이 몰려들었고 악명 높은 조세피난처 역할까지 더해 가히 신자유주의 금융산업의 메카인 곳이다.
이제 영국은 바로 여기에 위안화와 관련된 모든 금융상품의 중심기지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중국 역시 위안화를 세계적 통화로 만들려는 전략 아래 위안화를 IMF의 5대 특별인출권(SDR)에 편입시켰고 홍콩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런던시티 등에 중국 증시와 교차거래가 가능한 거래소 설립, 해외에서 중국 국채 발행 등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를 강력한 기축통화 후보로 세우기 위해 달러기축통화 운용경험이 풍부한 두 나라(싱가포르와 영국)와 손을 잡은 것이다.
영국은 올해 해외에서 최초로 위안화 표기 중국 국채를 발행하였고, 중국 증시와 교차거래가 가능한 ‘후룬퉁’ 증권거래소 조기 설립을 중국과 합의 추진하고 있다.(7월30일 영국 금융감독청과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합의) ‘후룬퉁’ 증시가 런던시티에 개장된다면 유럽, 중동 등은 중국 투자를 위해 EU 이탈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영국으로 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영국은 미국의 입김이 강한 EU로부터 이탈이 이런 중국과 밀착 협력을 강화하는데 더 도움이 되리라고 본 것이다. 영국은 전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세우는데 앞장섰듯이 이제 다시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는데 앞장서기 위해 구시대의 틀을 깨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써 런던시티는 기존 달러나 유로 이외에 위안화 역외허브가 됨으로써 세계 3대 통화거래의 중심기지가 되려고 한다. 이것은 사실상 달러 기축통화제에 대한 도전이다.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가 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달러의 위상이 심각히 흔들리는 현 상황에서 위안화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영국은 세계경제의 심각한 위기국면에서 달러의 몰락과 위안화의 부상을 내다본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칠콧보고서, 미국과 거리두기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영국의 신임 메이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양국의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러시아의 외무부 대변인은 “러-영 관계에서 양자간 협력 역사를 더 좋은 국면으로 넘길 수 있는 이를 기다려왔다”며 큰 기대감을 표하였다. 두 정상은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에서 별도로 만나기로 하였다. 영국 대외정책의 결정적 변화다.
▲ 지난달 6일 영국은 토니 블레어 정권의 지난 2003년 이라크전 참전에 대해 조사한 ‘칠콧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011년 이미 조사가 완료됐지만 그동안 미국의 반대로 발표를 보류했다가 이제야 공개된 것이다.
브렉시트에 묻혀 언론의 조명을 잘 받지 못했지만 지난달 6일 영국은 토니 블레어 정권의 지난 2003년 이라크전 참전에 대해 조사한 ‘칠콧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2011년 이미 조사가 완료됐지만 그동안 미국의 반대로 발표를 보류했다가 이제야 공개된 것이다. 바로 EU탈퇴 결정 직후에.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은 ‘총체적으로 부적절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블레어 총리는 부시 정권에 바짝 붙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는 비밀메모를 보내 ‘푸들’을 자처하고,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이 근거 없음을 알면서도 정보 내용을 조작해 참전했다는 것이다. 이라크조사위원회는 “당시 군사적 행동이 최후의 수단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블레어를 전범으로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기 시작했다.
영국이 이 보고서를 브렉시트 결정 직후에 공개한 것은 더 이상 ‘미국의 푸들’ 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할 것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에게 “미국에 바짝 붙어 동맹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면, 영국처럼 전쟁 범죄에 손을 담그게 된 끝에 미국에게 계속 냉대 받아 큰 손해를 볼 뿐”이라는 교훈을 알리고 있다(<산산이 떨어져 나가는 미 패권의 부챗살> ‘다나까뉴스’ 7.12). 영국은 지금까지 친미 일변도 대외정책의 근간을 바꾸려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과 협력강화, 러시아와 관계개선이 시도되고 있다(그러나 미국은 견제할 것이고 영국은 ‘직선’으로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영국은 미국에게 특별한 동맹이었다. 영국은 백년의 세계운영 경험을 살려 전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짜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나라다. 대소(對蘇) 적대정책과 EU로 발전한 유럽통합 구상의 설계자는 영국이다. 1946년 영국 수상 처칠은 냉전을 알린 유명한 ‘철의 장막’ 연설에서 유럽에서도 유엔과 같은 통합적 국제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구상이 이른바 미국의 유럽 내 사회주의화를 막고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를 세우기 위한 ‘마샬플랜(유럽부흥계획)’의 실행과 연계되어 EEC(유럽경제공동체) 등을 거쳐 오늘날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한 것이다.
영국은 유럽의 집단안보체계인 NATO 내에 미국 다음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유지비의 20% 이상을 분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본격화된 대러시아 적대정책의 유럽 선봉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유럽의 중재자로서 독일과 프랑스 등을 견제하거나 다독이면서 항시 미국의 대러 포위정책에 보조를 맞추었다. 그러던 영국이 이제 독자적으로 러시아와 화해협력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터키의 친러 정책전환과 맞물려 미국 주도 NATO의 대러 적대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존 브래넌 미 CIA국장이 브렉시트는 “미국 안보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라고 한 이유이다.
영국의 중국 주도 AIIB 참여의 함의
EU 내에서 영국은 독특한 지위에 있었다. 영국이 EU의 일원이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국)에는 가입하지 않아 파운드화 통화주권을 유지하면서도 유로 거래에서 1위의 금융국가가 된 데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특별한 동맹국이란 지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불 등 EU 주요국들은 영국을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영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영국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지난해 영국의 중국 주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여이다.
▲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례 이사회가 지난 6월25일 베이징에서 열렸다.
중국의 AIIB 설립은 미국 주도의 IMF에 대항하는 세계 다극화의 대표적 흐름이디. 미국은 자기 동맹국들에게 여기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고 특히 영국에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전화까지 걸어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끝내 이를 거부하고 유럽에서 제일 먼저 참여를 선언하였다. 그러자 눈치만 보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들이 너도나도 뒤질세라 AIIB 가입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유럽 내 지위다. 이를 미국은 ‘외교적 참사’(<美 싱크탱크 소장 “美·日 AIIB 반대는 최악의 외교실패”> 조선일보 2015.4.3.)라 한탄하였지만, 사실상 미국의 동맹질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였다.
브렉시트 이후 EU 회원국 내의 정치동향은 복합적이다. 특히 유로존 19개국 상당수에서 EU 탈퇴 여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음은 주목할 사안이다. 유로화에 의해 통화주권을 잃은 각국이 경제위기 심화 속에서도 제 실정에 맞는 통화정책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클리츠 교수는 지난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유로화를 쪼개는 것이 유럽 단일통화 문제의 해결책>이란 칼럼에서 “유럽 단일통화 체제 속에 편입되면서 유로존의 회원국들은 개별적인 금리와 환율 정책을 펼 수 없게 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제정책이 적합하지 않은 나라들 역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유로존은 단순하게 유럽의 경제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예컨대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이 경기부양책을 펴고 싶어도 재정 적자폭을 엄하게 제한하는 ECB의 틀에 갇혀 이를 시행하기 어렵다. 결국 실업률은 오르고 국내총생산(GDP)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 역시 “유로화 체제는 무너질 것이다. 그런 조짐이 여러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블룸버그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밝혔다.(<유럽 살리려면 유로화 깨라… 석학들 잇단 ‘합의이혼’ 권고> 뉴시스 8.19.) 처음 유로화를 만들 때 이런 문제를 몰랐던 것인가. 각국의 경제실정이 상이한 조건에서 단일한 통화정책의 강제는 필연적으로 경제발전이 뒤쳐진 동유럽, 남유럽 국가들에 심각한 손실과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새삼스레 이 문제가 다시 부각돼 미국의 주류에서조차 유로존이 깨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것은 브렉시트의 후폭풍이 유럽 각국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업화가 발달된 독일 등의 제품들이 별 규제 없이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로 들어가면 그 나라 공업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영국, 독일 등에서 논란거리인 이주민 문제는 시리아, 리비아 난민만이 아니라 폴란드, 헝가리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들어간 데도 영향이 있다. ‘이주의 자유’란 미명 아래 실업상태인 저임금노동력의 ‘유입의 자유’를 만든 EU 경제정책이 영국, 독일에선 그 나라 민중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노동자간 경쟁을 유발시키는 한편 폴란드, 불가리아는 청년들이 없는 노인의 나라가 돼 자국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브렉시트는 이들의 분노가 타오르게 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유러피언 드림>(제레미 러프킨저, 2004)은 문자 그대로 그냥 꿈일 뿐이었음을 오늘의 유럽이 보여주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대선, 총선 등 국가적 운명을 결정하는 주요 선거를 치른다. 오는 10월2일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대선과 EU 난민정책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국민투표, 체코 지방의회 선거,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총선 등이 진행된다. 내년엔 EU의 쌍두마차인 프랑스에서 대선이 4~5월에, 총리와 집권당이 결정될 독일 연방의회 선거가 9월에 예정돼있다. 특히 프랑스는 EU 탈퇴 여론이 과반을 넘고 EU 탈퇴를 공언하는 마린 르펜 국민전선 당수가 대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프랑스 대선은 EU의 운명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향후 2년은 브렉시트 이후 EU와 영국의 관계를 결정하는 기간이라기보다 EU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브렉시트는 BBC의 예언처럼 미국의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또 미국의 대선 결과는 EU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정책, 터키의 NATO와 관계 설정, 시리아 전쟁 및 우크라이나 분쟁의 해결과정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코메콘(소련권 경제상호원조회의)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까지는 불과 1년8개월여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1991년) 12월 소련마저 해체되었다. 42년간 유지돼온 국제적 동맹이 일단 무너지기 시작하자 2년여란 짧은 기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지만 똑같은 형태와 수준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또 직선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우는 이치는 같다. EU는 새로운 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브렉시트가 미국의 세기를 끝내는 새 세계질서 형성의 시발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손정목 운영위원은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운영위원회 위원이며, 사회학자로 국제문제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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