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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8돐 특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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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2-14 08:5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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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8돐 특집 1. -

 

유럽지역 선군연구회

 

1. 위인에 대한 추억

 

조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서거(2011.12.17.)하신 때로부터 어느덧 8년 세월이 흘렀다.

인간의 추억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진다고 하지만 국방위원장에 대한 조선인민의 그리움과 추억은 날이 갈수록 더해 지고 있다.

 

다정 다감 하신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간적으로 볼 때 무척 다정 다감한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인정이 많고 낙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계시였으며 동무들과 대중속에 있기를 좋아하였다.

 

언제나 남의 사정을 잘 알아주고 사리에 밝으며 이해력이 많아 유년시절부터 동무들이 자기 마음을 터놓고 그를 몹시 따랐다. 그가 있는 집단은 항상 활력에 넘쳐 발랄하고 명랑한 분위기에 있었다고 한다.

 

국방위원장께서는 평시에 음악과 문학을 몹시 좋아하였다. 때로 혼자 있을 때면 음악을 감상하거나 독서로 시간을 보내었다.

 

그는 학생시절에 벌써 《우리 교실》,《우정에 대한 생각》,《축복의 노래》,《나의 어머니》와 같은 여러건의 시작품들과 가요들을 창작하시였는데 그 수준은 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국방위원장의 음악에 대한 애착은 유별한 것이라고 할수있다. 언제인가 그분은 자신의 첫 사랑은 음악이었다고 하엿다. 음악예술에 대한 그의 견해와 조예는 전문가적수준을 뛰여 넘어 천재적이라고 할 만큼 비상한 것이었다. 조선에서 지난 세기 1970년대부터 가극과 연극, 영화와 음악 등 문학예술부문에서 이룩된 비약적인 성과들은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력이 안아온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인물주보》가 《특출한 영화<연출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정일영도자께서 영화창작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신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국방위원장께서 일찍부터 영화에 조예가 깊으시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면서 나라의 영화예술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데 대하여 지적한바있다.

 

정열가

 

유년시절 국방위원장을 가르친 교원이 한 평가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김정일학생의 기질은 세찬 강물의 흐름과 같아 답보와 침체를 모르며 오직 전진만을 지향한다.

-김정일학생은 매사에 끝장을 내는 성미이다.

 

국방위원장은 어릴 때부터 무슨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주위세계를 잊을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였는데 책을 읽으며 밖에서 천둥을 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모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국방위원장께서 지니였던 다방면적인 높은 실력은 그이의 천부적 재능과 함께 지칠줄 모르는 정열과 노력의 산물이였다고 볼수 있다.

 

김일성주석의 혁명이론을 정식화하기 위하여 《주체사상탑의 댓돌높이》보다 더 많은 책을 독파하고 낮에는 방대한 양의 사업을 보고 밤에는 밤대로 늦게까지 문학예술창조사업을 지도하여 주위사람들이 그분께서 언제 주무시고 깨여나는지 몰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볼때 조선에서의 속도전(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사업을 최대한으로 빨리 밀고나가면서 그 질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보장 하는것)은 결국 김정일식 창조방식의 구현이라고 볼수 있으며 그것은 조선의 사회주의건설에서 비약과 빠른 전진을 안아온 강력한 추동력으로 되였다.

 

의리가 깊으신 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인간적면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간적 의리를 매우 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그가 소년시절을 함께 보낸 한사람은 그이는 어디가나 사람들을 단번에 매혹시키고 휘여잡는 특이한 매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동무에 대한 사심없는 사랑과 독특한 성격미와 실력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는 언제나 함께 생활하는 동무들의 신상이나 가족에 일이 생기면 만사를 제쳐놓고 도와주었다. 언제인가 억수로 비오는 날 몸이 약한 동무에게 자기의 비옷을 양보하고 비를 흠뻑 맞으며 집으로 간 일도 있었고 전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동무를 위해 자기는 낡고 작아진 솜옷을 입으면서도 자기의 겨울옷을 가져다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학창시절과 대학시절의 스승들을 못잊어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꼭꼭 안부를 물어주고 인사를 전하며 사제간의 의리에도 충실하었다. 함께 일하던 동지가 세상을 떠나면 못내 가슴아파하며 그 자녀들과 유가족들의 생활을 극진히 관심해주었다.

《인간화원의 나라》, 《하나의 대가정》이라고 불리우는 조선의 사회적 기풍, 이것은 바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도덕의리심이 그대로 정치에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8돐 특집 2. -  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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