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116] 북한군 파병설을, 둘러싼 남 북 러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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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1-03 11:5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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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16] ‘북한군 파병설’을 둘러싼 남·북·러 반응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1월 3일 서울
북러가 ‘북한군 파병설’을 시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브릭스 정상회담 결산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자가 ‘북한군 파병설’을 묻자 부인하지 않아 사실상 시인한 것이라는 보도가 한동안 쏟아졌습니다. 또 북한 외무성 부상이 25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파병설에 관해) 따로 확인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하여 마찬가지로 사실상 시인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상황을 따져보면 ‘사실상 시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 답변부터 살펴봅시다.
먼저 키어 시몬스 미국 NBC 기자가 “위성 사진에 따르면 북한군이 러시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이 러시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심각한’ 확전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위성사진이야말로 ‘심각한’ 것이다. 만약 사진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언가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즉, 푸틴 대통령은 미국 기자의 질문이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투로 한숨을 쉰 다음 ‘심각한’이라는 단어를 받아서 조롱한 것입니다. 러시아 출신인 벨랴코프 일리야 교수는 10월 25일 유튜브 채널 ‘뉴스토마토’에 출연해 “개인적으로 항상 답답한 게 언론에서 푸틴의 말을 항상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오역이 되게 많다. 이걸 러시아 말로 들어보면 푸틴이 굉장히 조롱하면서 한 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서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참전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북러 군사 협력은 북러조약에 따라 이제 논의해야 하는 단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파병’ 같은 건 아직 논의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시인’이 아니라 ‘사실상 부인’한 것인데 언론은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해 왜곡 보도를 한 셈입니다.
김정규 북한 외무성 러시아 담당 부상의 발언도 살펴봅시다.
김 부상은 “우리 외무성은 국방성이 하는 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며 또한 이에 대하여 따로 확인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하여 명시적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파병하더라도 그건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파병은 국방성 소관이라 확인해 줄 수 없고 국제법적인 해석만 한 것인데 언론은 이 발언을 가지고 파병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단정합니다.
그러면 거꾸로 북한이 ‘파병한 적 없다’라고 발표했으면 정부나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우리가 오해했다’라고 사과하면서 더 이상 북한군 파병설을 언급하지 않을까요? 그럴 리는 없습니다. 아마 ‘파병을 해놓고 북한이 거짓말을 한다’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즉, 북한이 파병을 부정한다고 해서 한국과 서방이 믿어줄 것도 아니고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면서 북한 악마화의 소재로 쓸 것입니다. 그러니 북한이 굳이 파병을 부정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러시아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북한군 파병설이 처음 나왔을 때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우크라이나, 미국, 서방은 러시아 해명을 수용하지 않고 온갖 이상한 증거들을 들이밀면서 북한군 파병설을 더 강력하게 유포했습니다. 마치 서방이 수사관이고 러시아가 피의자가 되어 취조하고 해명하는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차츰 러시아도 북한군 파병설에 관해 해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북러관계 발전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라는 원론적인 반응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한때 국내에서 미국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유행했습니다.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프레임에 갇히면 진실을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하면 오히려 상대는 코끼리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아무리 해명해도 이는 상대가 짠 프레임에 더 깊이 들어가는 꼴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의 프레임에 끌려다니며 해명하지 말고 자신의 프레임을 짜야 합니다.
아마도 북한과 러시아는 ‘파병을 했냐 안 했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북러군사협력은 정당한가 아닌가’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짠 듯합니다. 만약 서방이 ‘북러군사협력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하면 ‘그럼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도 부당하다’는 논리로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은 정당한가 아닌가’라는 프레임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가망 없는 우크라이나에 더 지원하지 말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프레임은 서방에 불리합니다.
이렇게 보면 북러는 북한군 파병설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고, 한국과 서방 언론은 이를 어떻게든 왜곡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의 카드 돌려막기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설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의도는 뭘까요?
일단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보내고 파병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이념을 굉장히 강조하면서 미국을 위해서라면 나라마저도 팔 것 같았습니다. 미국과 대립하는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을 적으로 대하면서 미국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를 거의 한국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에 유럽보다 더 많은 포탄도 지원한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의도도 있습니다. 당면한 탄핵 위기를 모면하자는 것이지요. 윤 대통령 지지율은 이제 급기야 10%대로 떨어졌습니다. 김건희를 지키겠다고 버티다가 이 모양이 됐습니다. 당장 탄핵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정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야당 탄압, 전쟁 위기, 계엄, 공안 탄압 등 이것저것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국을 뒤집을 소재로 파병설을 꺼내 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조차 윤 대통령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꽃이 10월 28일 발표한 정례여론조사(전화면접조사) 결과 우크라이나 파병 반대가 83.7%나 나왔습니다. 살상 무기 지원 반대도 74.2%가 나왔습니다. 한동훈 국힘당 대표가 김건희 특검법에 찬성해야 한다는 응답이 68.5%인데 이것보다도 높게 나온 것입니다. 김건희 특검을 피하려고 파병을 꺼냈는데 완전히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파병을 밀어붙이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남의 나라 전쟁에 공격무기를 제공하면 우리가 그 전쟁에 직접 끼어드는 것 아닌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장병 파병 문제도 참관단 이름으로 슬쩍 보낼 생각인 것 같은데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은 북한군을 폭격하자는 한기호 국힘당 의원 문자를 문제 삼으며 한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이 상당히 강하게 나가고 있는데 이는 파병을 반대하는 민심을 읽고 부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파병 얘기를 꺼냈다가 정권 위기에 몰린 사례는 프랑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올해 2~3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앞장서서 우크라이나 파병론에 불을 지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꼬리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하원이 대통령 탄핵 절차를 개시하는 결의안 초안을 승인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습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 지원보다 러시아와 대화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대러 제재를 반대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81석 가운데 30석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급부상했습니다. 또 올해 6월 치른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파병, 탄핵, 여당의 선거 참패 등 한국 정치 상황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 주목됩니다.
한편 10월 30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흥미로운 발언이 있었습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한국을 향해 “귀국의 여론조사 또한 고무적이며 이는 압도적 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라면서 윤석열 정권과 달리 우리 국민이 살상 무기 지원과 파병을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현재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양국 간 전통적으로 좋은 이웃 관계 재개를 위한 전제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여러분이 보여준 자제력에 감사드린다”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고 파병까지 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뻔히 알면서도 “자제력에 감사”한다고 한 것입니다. 상당히 침착하고 점잖은 발언을 한 것인데 한편으로는 조롱을 한 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론 반대가 심한데 무기 지원이나 파병을 과연 할 수 있겠어? 그러다 마크롱 꼴 날 텐데?’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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