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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19] 한동훈 당원게시판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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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1-19 07:4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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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19]  한동훈 당원게시판 사태


문 경 환 기자 11월 18일 자주시보 서울

 

사태의 전말

 

5일 한 유튜버가 한동훈 대표 일가의 여론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당원게시판은 윤건희를 비난하고 욕하는 글로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당원이 이런 글들을 삭제하고 제한해야 한다고 꾸준히 제기했지만 국힘당은 몇 달 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한동훈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윤건희 비난글을 방치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게다가 한 대표를 비난하는 글을 곧바로 삭제하는 사례가 있어서 더 논란이 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5일 유튜브 채널 이병준TV가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병준TV는 구독자가 7만 5천 명이 넘으며 주로 보수세력 동향을 집중적으로 전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로 국힘당 당원과 지지자 내에서는 상당히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채널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대체로 한 대표를 집중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병준TV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당원게시판에서 ‘한동훈’으로 작성자 검색을 하면 “건희는 개목줄 채워서 가둬놔야되”라는 제목의 게시물 등 윤건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 수백 개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하고 한 대표의 부인, 장인, 장모, 어머니, 딸 이름으로 검색했는데 역시 비슷한 글이 엄청나게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일단 국힘당 당원게시판인 ‘당원Talk’ 운영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국힘당 홈페이지는 휴대전화 본인확인 과정을 거쳐 실명인증을 하면 당원 여부를 확인한 다음 당원만 회원으로 받아줍니다. 그리고 회원만 당원게시판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게시물 작성자 이름이 공개되었는데 논란이 일자 나중에는 ‘한**’처럼 성만 공개되고 이름을 가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게시판 검색 기능에서 작성자 검색으로 이름을 입력하면 그 사람의 게시물이 고스란히 검색이 되었습니다. 즉, 어떤 글을 누가 썼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름을 가리는 수정 작업을 하면서 이름으로 검색하는 기능을 없애야 했지만 실수로 남겨둔 듯합니다. 

 

물론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씨는 희귀 성씨가 아니며 ‘동훈’이라는 이름도 흔합니다. 이병준TV도 그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런데 ‘한동훈’이라는 이름의 작성자가 글을 올린 시기와 내용이 한 대표의 활동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 대표가 공개 활동을 하지 않을 때 글이 한꺼번에 올라오다가 다시 공개 활동을 바쁘게 하면 몇 달 동안 글이 안 올라오는 식입니다. 또 내용도 2023년 1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칭찬하다가 윤-한 갈등이 시작되자 윤 대통령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아가 부인, 장인, 장모, 어머니, 딸 등 일가족이 모두 동명이인이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모두 윤 대통령을 비난하고 한 대표를 지지하는 동일한 정치 성향을 가졌다? 게다가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한 날 한 시에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게시물을 올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또 부인, 장인, 어머니, 딸과 동명인 인물은 ‘당원 게시판 1일 3게시물 제한’이 걸린 9월 10일 이후 처음 등장했습니다. 즉, 그 전에는 혼자서도 게시물을 한꺼번에 많이 올릴 수 있었는데 그게 막히자 가족들 명의를 동원한 것 아닌가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 한동훈 가족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당원게시판에 글을 올린 시각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들은 같은 글을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해서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우연히도 원 글이 좋아서 복붙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힘당은 당원게시판에 같은 글을 연달아 올리는 이른바 ‘도배’를 막기 위해 같은 글을 3시간 이내에 올릴 수 없도록 막아놨습니다. 3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에 다른 글이 많이 올라와서 원 글은 게시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대표의 장모와 동명의 작성자가 글을 올린 후 3시간 28분이 지나고 한 대표와 동명의 작성자가 동일한 글을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상합니다. 

 

이들은 논란이 촉발된 후 게시물을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한 대표 퇴진 집회를 주도하는 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처음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카톡방에서 해당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 중 한 명이 이병준TV에 제보를 해서 유튜브에 공개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방송이 나간 다음 이병준TV 진행자인 이병준 기자가 재직 중인 파이낸스투데이가 6일 이 내용을 보도해 일반 국민에게도 소식이 퍼졌습니다. 당연히 국힘당은 난리가 났습니다. 

 

주진우 국힘당 법률자문위원장은 6일 오전 9시 17분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 공지를 보내 이병준TV 내용은 허위 사실이라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김민전 최고위원도 당무감사를 조속히 시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게 지났지만 국힘당은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 위원장은 법적 조치 대상자를 선별하는 중이라며 법적 대응에 시간이 걸린다고 해명했습니다. 당무감사는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아예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면 게시판의 작성자 검색 기능 차단은 방송이 나간 뒤 곧바로 밤새 작업을 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편 논란의 당사자인 한 대표는 조용합니다. 만약 위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가장 억울한 사람인데도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당무감사를 통해 글쓴이의 생년월일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당무감사 과정을 일일이 공개하는 것도 아닌데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니면 고소를 해도 됩니다. 그러면 경찰이 IP 추적 등으로 동일인물이 아님을 확인하고 해당 유튜버를 입건할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논란이 발생하자 “당원들이 개인 의견을 게시판에 올리는 게 무슨 죄냐”라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또 “왜 (작성자 이름이) 검색되는지 (모르겠다).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도 하였습니다. 자기와 자기 가족의 동명 인물들이 윤건희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익명성이 보장 안 된 게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마치 자기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줄 알았는데 왜 들통이 나게 만들었냐고 따지는 듯합니다. 

 

그냥 합리적으로 추정해보면 한 대표 일가가 글을 쓴 게 맞고 윤건희 측에서 자기 편 유튜버에게 이 사실을 제보해 한 대표를 공격했다고 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그럴 듯합니다. 

 

윤-한 갈등 폭발 양상

 

요즘 여의도에 있는 국힘당 당사 앞을 보면 매주 수요일 한동훈 대표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로 소란스럽습니다. 흥미로운 건 진보개혁 성향의 집회가 아니라 극우 유튜버들이 주최한 보수 집회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한 대표를 ‘배신자’, ‘살모사’ 등으로 부르며 인신공격을 포함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냅니다. 

 

지난 10월 25일 한 대표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도 규탄 시위가 벌어지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한 대표 강연장에서 일부 당원이 고함을 지르다 쫓겨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 대표를 공격하는 측은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비판해 보수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점을 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한 대표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이길 수 없다는 걱정이 존재합니다. 

 

최근 몇 달 동안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표와 한 대표의 지지율은 ▲41% 대 23% (8월 29~31일 시사저널) ▲41.2% 대 19.3% (9월 28~29일 뉴시스) ▲45.0% 대 18.6% (10월 26~28일 스트레이트뉴스) ▲29% 대 14% (11월 5~7일 한국갤럽) ▲39.3% 대 12.7% (11월 8~9일 여론조사꽃)로 나타났습니다. 이 대표가 한 대표를 최소 1.8배에서 최대 3.1배나 앞섭니다. 이 상태로는 차기 대선은 해보나 마나입니다. 

 

보수층 안에서 한 대표를 비판하는 내용은 다양하지만 특히 눈에 띄는 건 한 대표 특유의 화법 문제입니다. 상대의 질문에 역질문으로 대답하면서 대화를 막아버리는 화법은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깁니다. 그래서 정치인으로서 최악의 화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검사는 오직 질문만 할 뿐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며 검사 화법이라고도 합니다. 

 

이재오 국힘당 상임고문은 “정치 패널로 나와서 할 만한 수준”이라며 한 대표 화법을 비판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싸우러 오는 사람 같은 느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모든 대화를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는 화법은 종종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올해 7월에 있었던 국힘당 대표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의 범죄 사실을 폭로한 게 대표적입니다. 후보 토론 과정에서 나 후보가 한 대표를 공격하자 한 대표는 나 후보가 공소 취소 청탁을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나 후보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한 분별이 없는 것 같다”라며 울먹이기까지 했지만 한 대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 후보가 불법을 저지른 게 사실이라고 거듭 확인했습니다. 

 

이를 두고 원희룡 전 장관은 “피아 구분을 못 하고 동지 의식이 전혀 없는 걸 보면 정말 더 배워야 한다”라고 했으며 홍준표 대구시장은 “앞으로 자기가 불리하면 무엇을 더 까발릴지 걱정”이라면서 “참으로 비열한 짓”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권성동 의원도 “경쟁은 하더라도 부디 선은 지켜주길 바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반한동훈 측에서는 한 대표를 이상한 화법을 쓰면서 정상적인 대화나 소통이 안 되는 이상한 사람으로 봅니다. 또 자기가 이기기 위해서는 같은 편 등에 언제든 칼을 꽂을 수 있는 인간이라고 여깁니다. 

 

반면 한 대표 지지자는 윤건희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이대로 가면 보수가 공멸하는데 한 대표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아 문제라는 것입니다. 

 

경향신문 7월 14일 자 기사 「“망하게 생겨” 한동훈 지지…“보수 갈라져” 한동훈 반대」를 보면 김 모 당원은 “대구에서도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다”라며 “같이 망하게 생겼으니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한동훈으로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권력이 (한동훈에게) 넘어갈 것 같으니 일부러 저러나, (대통령에게) 너무 실망해서 눈물이 났다”라고 했습니다. 

 

조중동도 이와 비슷한 논조를 보입니다. 심각한 위기에 빠진 윤건희 정권이 몰락하면 국힘당과 보수층 전체가 공멸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대표가 윤건희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한동훈 측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윤건희에게 있다고 봅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신지호 국힘당 전략기획부총장은 “이 상태를 계속 방치해 둔다면 국정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조차 확보하기 힘든 상황으로 가지 않겠나”라고 우려하며 특히 김건희를 두고 “비판적인 평가가 많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종혁 최고위원도 “우리 당원들도 만나면 ‘여사 좀 다니시지 말라 그래’ 얘기를 하더라”라며 “지금 이 시점에서 여사를 등장시키는 게 지지율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정치적으로 너무 초보적”이라고 했습니다. 

 

일반 지지자들은 더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국힘당 당원게시판을 보면 한 대표 일가와 동명인 게시자들 외에도 수많은 당원들이 한 대표를 지지하면서 윤건희를 향해 극언을 퍼붓고 있습니다. ‘한동훈’ 이름으로 쓰인 ‘개목줄’, ‘단두대’ 같은 표현은 애교 수준입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윤건희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우세합니다. 문화일보가 1일 공개한 창간 33주년 특집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권 내부 갈등 책임으로 ‘윤 대통령의 독단 및 소통 미흡’을 꼽은 답변이 60%, ‘김건희 관련 의혹 확산’이 14%인 반면 야당 책임은 13%, ‘한 대표의 리더십 부족’은 5%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지지층은 서로를 향한 불신과 불만, 분노가 큽니다. 이런 깊은 감정의 골이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2의 6.29선언이 실패하는 이유

 

탄핵을 앞두고 공멸의 위기에 빠진 적폐세력이 살아남는 길은 제2의 6.29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한 대표가 적당히 윤건희 정권을 견제하면서 권력을 이양받는 것이지요. 

 

1987년 6월 민주주의를 염원한 수많은 국민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직선제 개헌을 약속했다가 뒤집은 군부독재자 전두환을 끌어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에 전두환은 평소처럼 백골단(시위 진압 전문 경찰 부대)을 투입해 시위를 억누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독재 치하에서 고통 받던 국민의 분노는 전두환 일당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당황한 전두환은 군대 투입까지 고려했으나 군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나올 정도로 항쟁의 기세가 높았습니다. 전두환은 꼼짝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처지가 되었습니다. 

 

만약 전두환이 그대로 물러난다면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야당에게 정권이 넘어갈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게 6.29선언입니다. 당시 전두환의 오른팔이던 노태우가 전두환과 담판 끝에 6.29선언을 발표하는 모양새를 만들면서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급부상하였습니다. 여기에 야권 후보 분열까지 더해 결국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습니다. 

 

지금 국힘당과 적폐세력도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윤건희에서 한동훈으로 자연스러운 권력 이양이 이뤄지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대련’을 해야 할 두 세력이 진짜 개싸움을 하는 바람에 제2의 6.29선언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왜 37년 전에는 성공했던 게 지금은 안 될까요? 

 

바로 지금은 국민주권시대이기 때문입니다. 37년 전에 비해 국민들의 힘이 굉장히 강해졌기 때문에 적폐세력의 뜻대로 정국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1987년 대선을 약 2주 앞둔 11월 29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폭파되는 이른바 ‘칼기 폭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권은 곧바로 김현희라는 ‘북한 공작원’의 테러 사건이라고 발표했으며 선거 하루 전인 12월 15일 김현희를 김포공항으로 압송하는 장면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내보내며 북풍 몰이를 했습니다.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했지만 북한을 규탄하는 압도적인 사회 분위기에 묻혀버렸습니다. 이 과정은 나중에 안기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펼친 ‘무지개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 당시 온 언론을 뒤덮은 영상의 한 장면.


당시에는 이런 식의 북풍 공작이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당시 있었던 ‘칼기 폭파 사건’과 비교할 만한 최근 사건은 바로 ‘북한군 파병설’입니다. 북한이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장에 군대를 1만 명 넘게 파병했고 이를 이유로 한국도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나아가 파병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며칠 동안 ‘북한군 파병설’을 열심히 보도하며 북한을 규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통령 지지율을 전혀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10월 중순 ‘북한군 파병설’이 터져나온 후로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시민들은 뉴스를 뒤덮은 ‘북한군 파병설’을 다 보고 나서 ‘그런데 명태균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북한군 파병설’을 떠드는 정권과 언론의 속셈을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북풍 공작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국민 의식이 성장했습니다. 

 

다른 예를 봅시다. 1987년 대선 패배의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야권 분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태우, 김영삼 후보가 영남권을 나눠 갖고, 김종필 후보가 충청권을 가져가면 수도권과 호남권의 지지를 받는 자신이 승리한다는 ‘4자 필승론’을 내세우며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했습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많은 이들이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야에서는 ‘비판적 지지론’과 후보단일화론이 등장했습니다. 후보단일화론자들은 김대중 후보에게 양보를 요구했고, 비판적 지지론자들은 김대중 후보에 힘을 실어주어 대중적 힘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후보 단일화를 성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유명 정치인의 영향력이 커서 국민들의 힘으로 정치인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국민이 유명 정치인 개인을 추종하며 따라다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국민이 선거 때마다 후보 단일화를 시킵니다. 예를 들어 이낙연 전 총리가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도 국민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묻어버려 사실상의 후보 단일화를 시켜버렸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광주 광산을에 출마한 이낙연 후보는 13.84%의 득표에 머물렀습니다. 한때 호남 출신 유력 대선 주자로 이름을 날리던 것에 비해 초라한 성적입니다. 

 

국민들이 나서서 후보를 단일화시켜버리는 것은 매우 놀라운 현상입니다. 지금까지 선거는 정치인의 정치 공학적 판단이 좌지우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인보다 국민이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적폐세력은 마치 이재명 대표 한 명만 제거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지난 15일 재판에서 의원직 상실형이 선고되었을 때 아마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16일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거리에 나온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재판 결과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지금은 국민이 직접 판단하고 직접 정치행동에 나서는 국민주권시대입니다. 

 

과거에 북풍 공작이 잘 먹혔던 이유는 언론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입니다. 칼기 폭파 사건도 그렇고 지금 보면 정말 황당한 ‘금강산댐 사건’도 그렇고 언론이 도배를 하면 국민은 대체로 그걸 믿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금강산댐을 이용해 물을 흘려보내면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도 국민은 성금을 보내고 관변 집회에 나갔습니다. 

 

지금은 이런 공작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국민은 집단 지성을 이뤄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며 어떤 정보가 가짜뉴스인지 파악하고 사건의 배경과 본질까지 간파합니다. 그렇게 하여 북풍 공작 같은 걸 일으켜도 여기에 말려들지 않고 신경도 안 씁니다. 이 과정에서 SNS와 유튜브 같은 대안 매체들이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국민들은 여기서 정보를 얻고 토론을 하고 의견을 모읍니다. 그래서 기존 언론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유명 정치인을 자기 소원을 들어줄 구원자(메시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따랐습니다. 군부독재를 연장하기 위한 3당 합당을 할 때도 상당수의 김영삼 지지자들은 하루아침에 군부독재정당 지지자로 돌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 국민은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참고만 하면서 자기 주견을 만듭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올바른 목소리를 내면 지지하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면 곧바로 지지를 철회해 정신을 차리게 만듭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정신을 못 차린 정치인은 확실히 응징해 정계에서 퇴출시킵니다. 

 

이처럼 국민들의 힘이 막강해진 국민주권시대가 열리면서 과거에 통했던 제2의 6.29선언 공작도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수가 안 먹히니 적폐세력 내에서 감정이 격해져 개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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