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139] 북미대화의 출발에는 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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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2-01 10:4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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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월 27일 서울
북한은 미국에 제1 위협국
미국의 새 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목됩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장관 지명자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을 마치고 백악관 집무실에서 첫 행정명령들에 서명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기자들과 여러 문답도 주고받았습니다.
![]() © 백악관 |
이때 한 기자가 “4년 전 버락 오바마가 당신에게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조 바이든은 가장 큰 위협이 뭔지 말했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니다. 위협이 되는 나라는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북한 문제는 (당시) 잘 풀렸다고 본다”라며 “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매우 우호적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보유국의 지도자”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지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의 귀환을 반길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나라를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이 따로 얘기한 게 없다고 하면서 곧바로 북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국가 안보 문제에서 러시아나 중국이 아닌 북한을 먼저 언급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북한이 제1 위협국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미국인의 머릿속도 똑같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 때 자기가 북한의 지도자와 우호적이라는 걸 강조하고 유세장 대형 화면에 북미정상회담 사진을 띄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제1 위협국이지만 자기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미대화 시도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공개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북한과 접촉했고 지금은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일 것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만나자고 한다고 해서 북한이 흔쾌히 호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4일 한겨레와 이메일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한 양보를 하기 전까지는 (북한이)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즉각 응하기보다 더 많은 양보를 기다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아마 트럼프는 대북 제재 완화 혹은 해제를 들고 북한 문을 두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내가 대북 제재를 반대한 적은 없지만,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라고 하여 대북 제재에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앞선 기자와의 문답에서 뜬금없이 “북한에는 콘도를 많이 지을 수 있는 해안가가 아주 많다”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말이 대북 제재를 풀 테니 대화에 나오라는 대북 메시지라고 해석합니다.
그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북 제재를 푸는 대신 뭘 요구할까요? 아마 핵·미사일 동결을 요구할 것입니다. 추가 핵시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면 미국인이 느낄 위협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그 정도 선에서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협상에 관심 없다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대북 제재 완화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를 맞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리용호 당시 외무상은 “민수 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 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핵시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구 중지를 문서로 확인해 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영변 핵시설 외에 핵시설 하나를 더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2020년 1월 11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담화를 통해 “평화적 인민이 겪는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일부 유엔 제재와 나라의 중핵적인 핵시설을 통째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걸 보면 원래 북한은 핵과 제재를 바꾸는 식의 협상을 하지 않는데 민생 문제를 위해 특별히 제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최선희 외무성 당시 부상은 “우리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에서 하는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좀 이해하기 힘들어하시지 않는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라면서 “앞으로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이런 느낌을 제가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또 “미국 측이 이번에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나 같다”라고 했습니다.
즉, 북한은 원래 경제와 안보, 제재와 핵을 맞바꾸는 식의 협상을 하지 않는데 민생을 위해 특별히 시도했지만 미국이 받지 않아 앞으로는 이런 식의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2019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그 무슨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정상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고 2019년 연말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도 “미국의 본심을 파헤쳐본 지금에 와서까지 미국에 제재 해제 따위에 목이 매여 그 어떤 기대 같은 것을 가지고 주저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현재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지난해 11월 21일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기념 연설을 통해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 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초대국의 공존 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언제 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대북] 정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즉,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은 변할 수 없기 때문에 협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연말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선언했습니다.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정책은 변화가 없을 것이며 더욱 강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변국의 중재
과거에는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이 북미대화를 중재하려고 이러저러한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법으로 쌍중단-쌍궤병행을 제안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맞바꾸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는 3단계 한반도 긴장 완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1단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연합훈련 중단, 2단계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을 분리하며, 3단계는 동북아 안보체제 수립을 위한 다자협정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재안은 미국의 중재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자체 요구도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동북아의 긴장 완화가 자국 이익에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중재안은 북한이나 미국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고 일정하게 중립성을 갖춘 안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반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다시 악화하면서 이런 중재안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시도하는 북미협상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미국은 다시 중국, 러시아에 중재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지금 미중관계나 미러관계는 그런 요구를 주고받기에 너무 대립이 심합니다. 사실상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그런 요구가 먹힐 리 없습니다. 오히려 중국, 러시아가 북한 편에서 미국을 협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북미대화의 출발점
그럼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대로 북미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북한의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제재와 핵을 바꾸는 식의 협상에는 이제 관심이 없고,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중단하면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대북 적대 정책을 중단하겠다고 말로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 기념 연설에서 “현재까지도 미국의 정객들이 버릇처럼 입에 올리는 미국은 절대로 적대적이지 않다는 그 교설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상한 괴설로 들린 지는 이미 오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나오는 말은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설득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적대 정책은 대북 제재,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훈련입니다. 이 둘을 중지해야 합니다. 이게 북미대화 출발점의 전제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력을 계속 강화하는데 미국이 먼저 나서서 대북 제재를 해제하거나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세계 면전에서 북한에 무릎 꿇는 모양새가 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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