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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51] 이승만과 젤렌스키의 7가지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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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3-07 09: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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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51] 이승만과 젤렌스키의 7가지 공통점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3월 6일 서울 

2월 28일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동네 술집에서 일어난 말다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하게 대립하는 장면이 생중계로 전 세계에 전해진 것입니다. 대화 내용도 “고맙다고 인사했냐?”, “했다”, “또 해라” 같은 유치한 수준으로 도저히 정상적인 정상회담이라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날 정상회담은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회담에 착수한 이후 열린 것으로 우크라이나는 미국 측에 안전보장을 요구하려 했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광물 협정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양국 사이는 ‘협상’이 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돈도, 무기도, 작전도 철저히 미국에 의존해 전쟁을 해왔기 때문에 미국에 뭘 요구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휴전 협상에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끼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철저히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쟁이었습니다. 

 

활용 가치가 사라진 젤렌스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승만입니다. 이승만과 젤렌스키는 놀랄 만큼 공통점이 많습니다. 이걸 7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전쟁으로 정권 위기를 넘긴 대통령

 

2019년 젤렌스키는 73%라는 우크라이나 대선 사상 최고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2020년 50%대, 2021년 30%대(5월에는 20%대)로 지지율이 급락하며 정권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다 2022년 전쟁이 발발하자 지지율이 90%로 치솟았습니다. 전쟁이 젤렌스키를 살린 셈입니다. 

 

이승만은 집권 2년 만에 민심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1950년 5월 30일 총선 결과 전체 210석 가운데 친 이승만세력이 57석에 불과한 참패를 겪었습니다. 이승만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탄핵 위기까지 몰렸지만 한 달도 안 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위기를 모면했고 이후 1952년 이른바 부산정치파동이라는 친위 쿠데타로 권력을 연장했습니다. 이승만 역시 전쟁 덕에 권력을 유지한 것입니다. 

 

전쟁을 미국에 완전히 의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철저히 미국에 의존했습니다. 틈만 나면 미국에 건너가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미국 돈, 미국 무기, 미국 정보, 미국 작전으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미국은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에이태큼스 미사일, M1A1 에이브럼스 전차, F-16 전투기 등 주요 무기를 제공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3년간 해외에서 받은 군사 지원은 1,300억 달러가 넘는데 이 가운데 미국이 673억 달러로 과반을 차지합니다. 미국 역시 이런 젤렌스키를 이용해 러시아와 대리전쟁을 하면서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승만도 한국전쟁을 철저히 미국에 의존했습니다. 이승만은 아예 전쟁 초기에 국군 작전지휘권을 미군에 넘겨줬습니다. 우리 주권과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미국에 넘겨준 것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198만 4,831명 가운데 미군이 178만 9천 명으로 90%나 차지했으니 유엔군도 사실상 미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실상 한국전쟁은 북한과 미국의 전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휴전 반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할 가망이 안 보이자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려 합니다. 그러자 젤렌스키가 격렬히 저항합니다.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밴스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는 것”이라고 하자 젤렌스키가 발끈하면서 러시아가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무슨 외교냐고 따졌습니다.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고 돈바스지역을 공격한 건 우크라이나인데 그걸 러시아 책임으로 돌린 것도 문제지만 지금 러시아와의 외교를 반대하는 건 전쟁을 계속하자는 말밖에 안 됩니다. 

 

심지어 젤렌스키는 “여러분은 좋은 바다(대서양)가 있고 지금 (위험을) 느끼지 못하지만, 미래에 (위험을) 느낄 것”이라며 미국을 협박하기까지 했습니다. 화가 난 트럼프가 젤렌스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난 휴전을 원치 않는다. 난 휴전을 원치 않는다”라고 비꼬았을 정도입니다. 

 

한국전쟁에서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자 미국은 휴전 협상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휴전을 결사반대합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만일 싸워야 한다면 단독으로도 싸울 것”이라며 한국군을 유엔군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협박’했습니다. 또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게 “휴전을 반대하는 견해에는 변함이 없으며, 내 명령으로 송환 거부 포로들을 석방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휴전 반대 관제 시위를 시키고 심지어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마음대로 포로를 석방하기까지 합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협정을 무시하고 서해안에서 북한을 공격하려고 시도해 미국이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해 국군의 북진을 막는 일도 있었습니다. 

 

휴전 협상에서 소외

 

미국은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러시아와 직접 휴전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젤렌스키가 휴전을 반대하니 협상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겠지요. 또 어차피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진행한 대리전쟁이니 우크라이나가 굳이 협상에 끼어들어 얘기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전쟁으로 죽은 건 우크라이나 국민이지만 정작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협상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게 우크라이나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심지어 젤렌스키는 회담이 열리는 것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을 정도입니다. 이건 우크라이나가 약소국이라서가 아니라 자주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미국에 의존해 왔으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이승만도 휴전 협상에서 배제됐습니다. 휴전을 반대하니 당연히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들어갈 명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작전지휘권을 미군에 넘겨줬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미군이 국군을 지휘하기 때문에 미군이 알아서 협상하면 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주권이 없으면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협상 자리에 끼지 못하는 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 반대했다 날아갈 위기

 

젤렌스키는 2024년 5월 20일로 대통령 임기가 끝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이유로 대선을 미루면서 계속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역시 젤렌스키를 걸림돌로 여깁니다. 바이든과 손잡고 전쟁했지만 이기지도 못하고 이제 미국에 부담이 되는 인물로 전락한 것이지요. 그래서 트럼프는 2월 18일 사저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고 사실상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라며 “우크라이나 지도자는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라고 했습니다. 이제라도 대선을 하든 눈치껏 물러나든 알아서 하라는 압박입니다.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 직후 마이클 왈츠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우리에겐 미국과 협상하고, 러시아와도 협상해서 전쟁을 끝낼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도 “젤렌스키가 정신을 차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라며 젤렌스키 퇴진을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제거될 뻔했습니다. 전쟁 와중인 1952년 이승만이 부산정치파동으로 소동을 일으키자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유엔군 사령관에게 한국 정부를 장악할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전쟁 중에 정부가 제 기능을 못 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빠르게 정국을 장악하자 작전을 실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승만이 1953년 휴전 협상을 계속 반대하자 미국은 1952년에 수립한 쿠데타 계획을 다시 꺼내 ‘에버레디 계획’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받고 휴전에 동의하면서 쿠데타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처지에서는 이승만을 대체할 다른 친미 인사가 없었던 것도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파괴와 학살

 

젤렌스키는 나치주의자를 군대와 정부에 들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에 빠졌습니다. 

 

우크라이나에는 많은 러시아계 국민이 있고 이들은 오랜 세월 러시아어를 쓰고 살았습니다. 원래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은 한 뿌리에서 나왔고 두 민족의 언어도 매우 유사합니다.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러시아어를 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가언어법이 강화되어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2022년 하르키우 시장이 방송에서 러시아어를 썼다가 국가언어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젤렌스키는 러시아계 국민이 많아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동부지역 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돈바스 전쟁은 이름만 전쟁이지 실제로는 나치 성향의 부대들을 중심으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돈바스지역을 공격한 것입니다. 당연히 돈바스지역 민병대와 민간인의 피해가 훨씬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젤렌스키는 국정 운영도 엉망이었습니다. 본인이 희극배우 시절 일했던 크바르탈95 스튜디오 출신 36명을 정부 요직과 대통령실 보좌진으로 임명했습니다. 또 일가친척을 등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이들이 고위직을 맡아 국정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지지율이 갈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승만도 마찬가지입니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영구집권을 꿈꿨으며 선거마다 부정선거를 자행하더니 끝내 1960년 3.15부정선거가 촉발한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백골단’이란 정치깡패집단으로 야당 정치인을 테러한 것도 이승만입니다. 한마디로 싹도 트지 않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게 이승만입니다. 

 

이승만은 희대의 살인마 학살자였습니다. 그가 한국전쟁 당시 학살한 민간인 수는 통계조차 낼 수 없는데 보도연맹 사건 하나만 해도 최대 120만 명이 학살됐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부정부패

 

젤렌스키는 부정부패로도 악명이 높습니다. 미국 언론인 시모어 허쉬 기자는 젤렌스키와 측근들이 우크라이나가 받은 전쟁 지원금 가운데 최소 4억 달러를 착복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니콜라이 아자로프 우크라이나 전 총리도 젤렌스키가 속한 집권 여당이 오래된 저질 탄약을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3조 6천억 원 이상을 빼돌렸다고 주장했습니다. 2021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폭로한 금융 기밀문서 ‘판도라 페이퍼스’에는 젤렌스키와 측근들이 조세 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키프로스, 벨리즈에 여러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이승만도 심각한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이승만은 일제강점기 때 이미 독립 자금을 횡령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승만이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기 직전 재산은 5억 환이었는데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110억 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부패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재산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최악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국민방위군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승만이 총애한 신성모 국방부장관과 그의 사위인 김윤근 국민방위군 사령관이 주축이 되어 한국전쟁 기간에 일으킨 최악의 사건입니다. 이들은 군인 보충을 이유로 혹한기에 68만 명을 징집한 뒤 예산을 횡령해 무려 10만 명가량이 행군만 하다가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게 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상당수 손발이 잘리는 등 노동력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국군 수가 14만 명이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인지 알 수 있습니다. 

 

* * *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은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아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미국만 믿고 자국민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어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급기야 국가 붕괴 위기까지 초래한 젤렌스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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