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153] 서방 세계에 유행처럼 퍼지는 정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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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3-12 18:1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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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53] 서방 세계에 유행처럼 퍼지는 정치 혼란
엉망진창 미국 정치
4일 밤 미국 연방 의회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연설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앨 그린 민주당 하원의원이 “당신은 권한이 없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공화당 의원들이 “미국! 미국!”을 외치며 맞섰고 의회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결국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그린을 추방했고 공화당 의원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의회 합동 연설에서 의원이 추방당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날 미국 의회에서 일어난 일은 마치 한국에서 벌어진 ‘입틀막’ 사건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래도 한국은 국회에서 일어난 게 아니니 나은 편일까요?
한편 이날 의회에서는 트럼프가 연설하는 중에 공화당 의원이 모두 일어나 손뼉을 치는데 민주당 의원들은 ‘거짓말’이라는 문구가 써진 피켓을 들고 침묵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트럼프는 아예 민주당 의원들 쪽을 외면하고 공화당 의원들만 보면서 연설했습니다.
![]() ▲ 트럼프가 의회에 입장하자 인사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외면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이 대비된다. © 미국 의회 영상 캡처 |
![]() ▲ 트럼프 연설 도중 민주당의 그린 의원이 소리를 지르자 일어나서 항의하는 공화당 의원들. © 미국 의회 영상 캡처 |
![]() ▲ 추방당하는 그린 의원(사진 아래쪽 지팡이를 든 인물). © 미국 의회 영상 캡처 |
정치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이런 일은 자칭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사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되면서 이미 이런 정치 혼란이 있을 걸 많은 이들이 예상했습니다. 트럼프 1기 때도 그랬으니까요. 미국의 정치 혼란이 극에 달한 건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자 결과에 불복하며 벌인 의사당 점거 폭동 때입니다. 그 이후로 바이든 정부 내내 정치 혼란은 지속됐습니다.
예를 들어 2023년 10월 3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취임 1년도 못 버티고 미국 의회 사상 최초로 해임됐습니다. 놀랍게도 매카시 해임안을 상정한 건 같은 공화당 의원 맷 게이츠였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강경파로 꼽히던 게이츠 의원은 매카시 의장이 너무 온건하다며 해임안을 올렸습니다. 당시 매카시는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게이츠는 그걸로 부족하고 아예 연방정부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황당한 이유로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매카시는 하원의장 선출 때도 무려 15번의 투표 끝에 겨우 당선되는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전까지 미국 하원의장 선출은 9차 투표가 최다였습니다.
매카시 해임 후 하원의장을 다시 뽑는 과정도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 스티브 스컬리스 의원이 후보로 선출됐다가 반대파에 밀려 사퇴했고, 그 뒤에 선출된 짐 조던 의원은 본선 당선 가능성이 적다며 경질됐으며, 세 번째로 선출된 톰 에머 의원은 트럼프의 반대로 4시간 만에 사퇴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마이크 존슨 의원이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어 본선에서도 승리, 하원의장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차라리 트럼프를 하원의장으로 추천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하원의원만 하원의장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주장이 나오는 건 미국 정치가 정말 가볍고 무책임하게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정치 혼란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민주당은 중간에 대선 후보를 바꾸고, 공화당은 후보가 총에 맞았습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대선이었습니다.
지금은 공화당이 대통령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뭐든 밀어붙일 수 있어 보이지만 트럼프의 말도 안 되는 정치 행보가 계속되면 조만간 미국 정치는 더 큰 대혼돈에 빠질 것입니다.
프랑스 대통령과 의회의 개싸움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도 정치 혼란에 빠지긴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프랑스를 봅시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 여당 르네상스가 15.2%로 참패하고 우익정당으로 분류되는 국민연합이 32.5%로 제1야당이 되었습니다. 유럽의회는 말 그대로 유럽연합의 입법기구라서 프랑스 내정과는 별개이지만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습니다. 2017년 취임해 집권 8년 차였던 마크롱은 2023년 중반부터 이미 지지율이 20~30%대를 오가며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기에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습니다.
![]() ▲ 마크롱 지지율 추이. © Chandos |
그런데 7월 조기 총선 결과 좌파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이 182석으로 1위를 차지했고 여당이자 중도연합인 앙상블은 168석, 국민연합은 126석을 차지했습니다. 연합정당이 아닌 단일 정당으로 치면 국민연합이 제1당입니다.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는 대통령이 제1당 출신을 총리로 임명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크롱은 제1당인 신민중전선이 아닌 소수 우익정당인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9월 4일 의회가 개회하자 신민중전선은 곧바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했고 이게 하원 운영위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정부와 의회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말 바르니에 총리가 2025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는데 신민중전선과 국민연합 양쪽의 협공을 받자 헌법상 비상권한을 이용해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나 의회에서 들고 일어나 58% 찬성으로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켰습니다. 196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결국 바르니에는 취임 석 달 만에 물러나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최단명 총리가 되었고 내각 전체도 해산했습니다. 야당들은 내친김에 대통령 하야도 요구하고 나섰지만 마크롱은 버텼습니다.
마크롱은 곧바로 중도연합의 프랑수아 바이루를 총리로 지명했는데 일부 야당이 올해 1월 또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했다가 부결되는 등 진통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의 2025년도 예산안은 올해 2월 6일에야 가까스로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자민당 음모로 정권이 교체된 독일
독일도 정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독일은 전통적으로 좌파인 사회민주당(사민당)과 우파인 기독민주연합·기독사회연합(아래 기민련)이 번갈아 집권해 왔습니다. 이밖에 좌파인 녹색당, 우파인 자유민주당,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는 독일대안당이 있습니다. 통상 사민당이나 기민련이 단독으로 의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합니다.
2021년 12월 올라프 숄츠 부총리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습니다. 숄츠와 메르켈은 같은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숄츠는 사민당, 메르켈은 기민련으로 엄연히 정권교체입니다. 사민당은 기민련 대신 녹색당,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했습니다. 같은 좌파인 녹색당과 달리 자민당은 우파라서 연정은 매우 불안한 출발을 했습니다. 실제로 연정은 여러 차례 내부 갈등으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한편 독일 경제가 2023~2024년 2년 연속 후퇴하며 극도의 침체에 빠지면서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참패를 겪었습니다. 거기다 2025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숄츠 총리와 자민당 소속인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부장관이 갈등한 끝에 2024년 11월 숄츠가 린트너를 해임해 버렸습니다. 이에 다른 자민당 장관들도 사임하면서 자민당이 연정에서 쫓겨났고 연정이 자동으로 붕괴했습니다.
2024년 12월 16일 숄츠는 독일 의회의 총리 신임 투표에서 패배했습니다. 숄츠는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원래 올해 9월로 예정됐던 총선이 2월로 당겨졌습니다. 독일 역사상 네 번째 의회 해산입니다.
조기 총선 결과 사민당이 16.4%를 득표해 제3당으로 밀려났습니다. 2021년 총선에서 25.7%로 1위를 차지한 것을 떠올리면 4년 만에 크게 추락한 것입니다. 올해 총선 1위는 기민련으로 28.5%를 차지했습니다. 즉, 숄츠 정권은 집권 4년 만에 다시 정권을 뺏긴 것입니다. 메르켈 정권이 무려 16년을 집권한 것과 비교가 되며 사민당, 기민련 통틀어서 가장 빨리 정권교체가 된 정권이 되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는 독일대안당이 2021년 총선에서 10.3%를 득표했는데 올해 총선에서는 무려 20.8%를 득표해 제2당으로 올라섰다는 점입니다. 숄츠의 사민당은 독일대안당에도 밀린 셈입니다.
독일 정치 혼란은 정권교체로 끝나지 않을 듯합니다. 기민련은 정권을 꾸리기 위해 다른 정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극우정당이라는 이유로 독일대안당을 연정에서 배제하고 나니 나머지는 노선이 상반되는 사민당, 녹색당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노선이 비슷한 자민당은 2021년 총선에서 11.5%로 4위를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원외정당으로 밀려났습니다.
자민당의 몰락에는 황당한 사연이 있습니다. 애초에 숄츠 내각 붕괴의 발단이 된 자민당 연정 탈퇴가 사실 자민당의 음모였다는 것입니다. 자민당은 연정을 붕괴시키기 위해 일부러 사민당과 녹색당을 자극해 연정에서 쫓겨나는 모양새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자민당은 국민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래저래 독일 정치 혼란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연합을 이끄는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프랑스와 독일이 모두 정치 혼란에 빠진 것이 주목됩니다.
가장 심각한 나라는 한국
2020년 유럽연합에서 정식 탈퇴한 영국도 정치가 불안합니다. 2022년 9월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는 49일 만에 사임해 영국 최단기 총리로 기록되었고, 2022년 10월 25일 취임한 리시 수낵 총리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낙마, 현재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가 총리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타머 총리도 취임 6개월 만에 지지율이 무려 34%나 떨어지면서 올해 초 지지율이 불과 16%밖에 안 나왔습니다.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큰 지지율 폭락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제1야당인 보수당의 지지율이 더 낮다는 것입니다. 영국 정치세력 전체를 국민이 불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과 친한 나라들이 대체로 정치 혼란을 겪는데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사실 우리나라입니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이 친위 쿠데타로 내란을 일으키고 외환까지 추진했다가 국회에서 탄핵당했는데 내각과 여당은 사죄와 반성은커녕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윤석열을 추종하고 비호하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탄핵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거리에는 조속한 파면을 요구하는 야당과 국민의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이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확정되기도 전에 내란 수괴 윤석열이 풀려나 무장 인원의 호위를 받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황당한 일이 백주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법원은 윤석열에 한해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했고 검찰은 다른 국민에 대해서는 구속기간을 날짜로 계산하기로 했습니다. 정치 후진국에서도 낯 뜨거워 하지 못할 일을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라 자부하는 자들이 마음껏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 정치 혼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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