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212] 최고인민회의 연설과 유엔총회 연설로 본 남 북 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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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9-29 08:2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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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12] 최고인민회의 연설과 유엔총회 연설로 본 남·북·미 관계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9월 26일 서울
북한의 고압적인 대미·대남 정책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대미·대남 정책을 천명했습니다.
먼저 미국을 향해서는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대북 정책을 바꿔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을 향해서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절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로 한국이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며 “정치, 국방을 외세에 맡긴 나라”,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대단히 고압적입니다.
보통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정책에 불만이 있어도 미국이 대화하자고 하면 일단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서 정책 전환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정책 전환을 먼저 해야 대화하겠다며 미국을 압박합니다. 대화를 통해 원하는 걸 얻는 방식이 아니라 원하는 걸 받아낸 다음 대화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원하는 걸 받아냈으니 상대에게 시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대화를 해준다는 것 같습니다. 미국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압적인 모습입니다.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더 고압적입니다. 아예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나라든 이런 태도를 보이면 상대국은 대단한 모욕을 느끼며 외교는 완전히 파탄 날 것입니다. 보통은 “이런 식이면 더 이상 대화를 요구하지 않겠다. 나도 상대하지 않겠다”라고 맞대응하게 됩니다.
한국과 미국의 반응
그런데 북한의 대미·대남 정책이 나오자 한미가 보이는 모습이 꽤 특이합니다. 망신을 당해도 어떻게든 대화를 해보려고 쩔쩔매는 모양새입니다.
일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얘기를 아예 안 꺼냈습니다. 권고 시간인 15분을 한참 넘긴 56분이나 연설을 하면서 온갖 나라들에 독설을 퍼붓고 심지어 유엔에도 욕을 했지만 북한만은 언급하지 않고 몸을 사렸습니다.
![]() ▲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 유엔 |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류와 협력을 계속 시도하겠다고 했습니다.
8월 31일 조현 외교부장관은 10월 말~11월 초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이펙) 정상회의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낮다면서도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북한 비핵화까지 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라며 “그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북미대화가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평론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설을 두고 북한이 대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은 23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남북관계 전환 노력에 북한이 일정하게 호응할 가능성을 작게나마 엿볼 수 있”다며 억지로 희망을 쥐어짜 냈습니다. 경향신문은 23일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에이펙 정상회의 참석에 맞춰 북한이 “북미 정상 대화 의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같은 날 서울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줄곧 과시했는데 북한도 이에 화답했다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깜짝 회동이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라고 전망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북한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 외교 관례에 벗어났다, 대화를 거부하는 건 문제다’는 식으로 북한의 태도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언론과 평론가들도 북한과의 대화에 매달리고 애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고 남북대화를 철저히 거부하는 게 윤석열 정권의 반북 정책 때문이라는 자학적인 분석도 있습니다. 참으로 독특합니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이 북한 앞에 납작 엎드리는 형국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급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만나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열심히 연락하는데 북한이 대응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통령 친서를 보냈는데 북한이 수령을 거부했습니다. 혹시 실무선에서 거절하나 싶었는지 이걸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북한 지도부가 보고 친서를 받으라고 지시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후에도 북한의 반응은 없습니다.
직접 연락이 안 되면 중재자를 찾아야 합니다. 옛날 같으면 한국을 내세울 텐데 지금은 한국이 미국보다 더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북한과 친한 러시아와 중국에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러시아, 중국과 그런 부탁을 주고받을 관계가 아닙니다.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로 껄끄럽고, 중국과는 무역 전쟁으로 대립합니다. 그러니 미국이 중재를 부탁하며 저자세를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시켜 러시아, 중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참 복잡합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중국 전승절 열병식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북한에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마 우원식 국회의장은 혹시라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하려고 준비한 이야기를 푸틴 대통령에게 했을 것입니다.
조현 외교부장관은 17일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에서 크게 반겼습니다. 미국보다 먼저 중국을 간 것도 있고, 조태열 전임 장관이 지난해 5월 방중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할 차례인데 한국이 갑자기 ‘순서나 격식은 따지지 않는다’면서 다시 한국 측에서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조 장관이 관례를 깨고 중국에 먼저 왔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함께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자’고 했습니다.
한국 정치 전반이 그렇지만 특히 외교는 미국의 지휘와 통제가 더욱 철저합니다. 따라서 조현 장관의 방중도 아마 미국이 시켰을 것입니다. 조현 장관은 회담에서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한 중국 측의 역할”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몸값이 오르니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이 날 겁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기 뜻대로 일이 안 풀리니 다시 대러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나섭니다. 이번 유엔총회 연설 때도 유럽이 러시아 천연가스를 아직도 수입한다며 분노했습니다. 8월에는 러시아 석유를 수입한다는 이유로 인도에 무려 50%의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중국 압박 강도도 갈수록 올라갑니다. 최신 중거리 미사일 발사 체계인 타이폰을 일본에 배치하고, 틱톡 미국 사업부를 기어이 매각시키고, 미중 간 여객기 운항을 제한하고, 나아가 중국 항공사의 미국 내 착륙권 제한까지 검토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러시아, 중국을 봉쇄하는 데서 동북아를 보면 한국과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인도처럼 자국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 석유를 수입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한국이 러시아, 중국에 중재를 부탁하려면 자연스레 미국의 봉쇄 정책에서 이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130개 우리 기업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음날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서울경제신문과 대담을 통해 북극항로 분야, 조선 분야 협력을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한국 기업이 러시아로 돌아가 공장을 가동해도 여전히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과거 미국이 한창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도 러시아, 중국은 실리를 챙겼습니다. 그때도 미국은 대북 압박이 안 먹히자 러시아, 중국을 통해 북한에 압력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물밑으로 선물도 꽤 주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유엔에서 미국 손을 들어주고 대북 제재에 동참해 주면서 미국에 최혜국대우(MFN)를 받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우대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북한을 압박해 주는 대가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 중국은 미국에게서 실리와 반대급부를 챙기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대화와 통일을 주장하는 이재명 대통령은 3단계 비핵화론으로 북한의 핵폐기를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을 향해 ‘가난하지만 사나운 이웃’이라고 험담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 북한 칭찬을 이재명 대통령은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서방세계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북한과 북한 지도자를 칭찬합니다. 이러니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는 좋은 관계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개인적 친분으로 만나는 게 아닙니다. 국가 대 국가의 만남입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은 좋지만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면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거기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장관도 북한 비핵화를 주장합니다.
북한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 관해서는 대화할 급이 맞지 않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중국 전승절 열병식 때 중국은 북한을 최상급으로 우대했습니다. 러시아도 수차례 북러정상회담에서 북한을 굉장히 깍듯이 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북한 눈치를 보며 쩔쩔맸습니다. 이러니 아마 북한은 자기를 세계의 으뜸으로 여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북한이 볼 때 한국은 미국에 쩔쩔매고 미국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로 보일 것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을 봐도 미국은 한국에 관세 인상을 통보하는 편지를 일방적으로 공개해서 망신을 줬지만 한국은 한 마디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관세를 25%를 올리자 똑같이 미국에 관세 25%를 때리면서 대등한 협상을 하는 게 아니라 3,500억 달러 조공을 바치면서 관세를 깎아달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주러 간 한국인 노동자를 미국이 노예처럼 쇠사슬로 묶어 감금했을 때 한국에서는 한국에 들어와 법을 어기는 미국인을 체포해서 맞대응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와서 불법 취업한 미국인이 꽤 많지만 정부는 단속은커녕 파악도 안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이 소년원에 들어간 적이 있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이른바 ‘중국발 부정선거론’을 선동하고 다닌 모스 탄은 경찰이 7월부터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무슨 수사를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한국 인사가 미국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똑같은 짓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보면 쉽게 비교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최상, 으뜸이라 여기는 북한은 한국을 두고 상대할 급이 안 맞는 나라로 여기는 듯합니다.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눈치를 보면서 비핵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기는 했어도 비핵화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고, 유엔총회 직전에 북한이 최고인민회의에서 강한 어조로 미국을 압박했으니 저항하는 차원에서라도 비핵화 얘기를 할 법도 한데 안 했습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용감하게도 3단계 비핵화론을 제시했습니다. 한·미·일 외교부장관도 22일 회의를 열고 북한 비핵화를 주장했습니다. 이걸 보면 확실히 트럼프 대통령이 대장이고 이재명 대통령과 한·미·일 외교부장관들은 행동대장인 형세입니다. 대장은 좋은 얘기만 하면서 상대의 환심을 사려 하고,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행동대장들을 시키는 것입니다.
![]() ▲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이재명 대통령. © 유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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