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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23] 북한에만 통하지 않는 상호확증파괴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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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1-18 08: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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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23] 북한에만 통하지 않는 상호확증파괴 이론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1월 17일 서울 

 계속되는 일방적 구애

 

한·미·일 정상이 모두 북한과 만나려고 애씁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15남북공동선언 25주년이 되는 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소모적 적대 행위를 멈추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 “중단된 남북 대화채널부터 신속히 복구하겠다”라고 썼습니다. 취임 30일이 되는 7월 3일 기자회견에서는 “전쟁 중에도 외교와 대화를 한다. 대화를 전면 단절하는 건 정말 바보짓”이라며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또 취임 100일이 되는 9월 11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안 웃는다고 우리도 화내는 표정을 계속하면 우리가 손해”라며 “특별한 진척은 없지만 노력은 끊임없이 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9월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힙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집권 초반 대북 방송 중단 등의 조치를 했지만 남북대화가 생각대로 안 되자 나중에는 ‘선 북미대화 후 남북대화’로 전략을 바꿔 북미대화를 응원하는 데 집중하는 듯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난 듯합니다. 

 

그는 10월 27일 말레이시아를 떠나 일본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위해 순방 일정을 연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며 “(한국이) 마지막 방문국이라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한국에 있으니 바로 그쪽(북한)으로 갈 수도 있다”라고 해 방북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북한에서 반응하지 않자 29일 방한하는 전용기에서는 “우리는 돌아올 것이며 머지않은 시점에 북한과 만날 것”이라고 해 이번에 당장 만나기는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한국과 중국을 향해서는 적대적 발언을 이어가며 지역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면서도 북한에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3일 도쿄에서 열린 한 집회에 참석해 “이미 북한에는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라고 했습니다. 1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지금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경로와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하면서 “상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여러 경로를 끌어당기며 시도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한·미·일 모두 북한과 대화하고자 하는데 정작 북한은 반응하지 않거나 아니면 대놓고 대화하지 않겠다고 거절합니다. 미국은 대통령 친서를 보냈는데 북한이 수령을 거부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한국은 북한에 “허망한 개꿈”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처럼 무시와 수모를 당하면서도 일방적으로 ‘구애’를 하는 모습이 굉장히 특이합니다. 

 

폭탄이 가득한 집

 

최근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두 개 등장했습니다. 하나는 여인형이 작성한 “저강도 드론 분쟁의 일상화”라는 메모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난 10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미국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제목은 ‘폭탄이 가득한 집’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저강도 드론 분쟁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넷플릭스


※ 본문에 영화 내용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두고 약 30분 동안 미국 지휘부 내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영화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부 명칭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실과 일치하는 실감 나는 영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미국의 핵전쟁 전략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누가 발사했는지 끝까지 공개하지 않습니다. 미국 지휘부 내에서는 북한, 러시아, 중국 중 하나라고 추정하는데 다들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어 판단을 못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미사일이 동해 한복판에서 발사되었고 발사 장면을 인공위성이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인공위성이 포착하지 못할 리가 없어서 지휘계통이 해킹을 당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영화에서 미사일 발사국을 추정하면서 가장 논란이 된 게 북한입니다. 일단 동해에서 발사했으니 북한이 쐈을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SLBM을 개발했을 것이라며 끝까지 북한 발사설을 주장합니다. 

 

일단 미국 지휘부는 알래스카 기지에서 발사한 요격미사일 GBI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거라며 지켜봅니다. 그런데 두 발 중 하나는 단 분리에 실패해 불발탄이 되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날아가기는 했지만 요격에 실패합니다. 미국 지휘부는 모두 멘붕(정신 붕괴)에 빠집니다. 이제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시카고를 향해 돌진합니다. 일부 지휘부 성원은 요격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하라고 외치지만 2차, 3차 공격에 대비해 GBI를 아껴야 한다는 주장에 묻힙니다. 

 

영화의 이 장면은 현실의 미국 군부 내에서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미국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GBI 요격 성공률이 60%대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미국 전쟁부는 내부 문건에서 “잘못된 가정에 근거”했다고 이 영화를 평가했습니다. 미사일방어국(MDA)은 미사일 방어 체계가 “10년 이상 시험에서 100%의 정확도를 보였다”라며 “앞으로 10년 후면 더 좋아질 예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00%에서 더 좋아진다는 게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총 21번 시험해서 12번 성공했으니 50%를 조금 넘긴 수준입니다. 다만 2014년 이후 시험은 모두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험과 실전은 엄연히 다릅니다. 영화처럼 미사일 발사를 포착하지 못했고 중간에 궤도도 바뀌는 상황에서는 성공률이 크게 떨어질 것입니다. 다만 실제로는 영화와 달리 대륙간 탄도미사일 1발에 4발의 GBI를 발사한다고 합니다. 

 

GBI를 추가로 발사하거나 다른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는 GBI가 고작 44발밖에 없습니다. 알래스카에 40발, 캘리포니아에 4발 있습니다. 실제로 2차, 3차 공격에 대비해 아껴 써야 합니다. 또 GBI 외에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은 현재 SM-3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용입니다. 그런데 SM-3도 이 미사일을 탑재한 이지스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궤도상에 있을 때만 요격할 수 있습니다. 

 

한편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누가 발사했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누구에게 보복할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핵미사일이 대도시에 떨어져 수백만 명의 국민이 죽는데 누가 쐈는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핵무기를 담당하는 전략사령부 사령관은 시종일관 즉각적인 핵보복을 주장합니다. 북·중·러 모두에게 핵보복을 가해 추가 도발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주저합니다. 옆에 있던 군인은 핵가방에서 두꺼운 책자를 꺼내 펼쳐 보여주며 보복 대상을 선정하라고 재촉합니다. 대통령은 미국이 압도적 핵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적국의 핵공격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자기 생각이 틀렸다며 혼란에 빠집니다. 

 

▲ 전략사령부. [출처: 공군우주사령부]


여기서 미국 대통령의 생각은 냉전 시기 유명한 상호확증파괴 이론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핵보복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면 상대방이 나를 핵공격하지 않는다는 이론입니다. 즉, 핵보유국끼리는 핵보복으로 공멸할 것이 두려워 전쟁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상호확증파괴를 ‘공포의 균형’이라고도 부르는데 공교롭게도 영어 약칭이 MAD라서 미친 듯한 핵무기 경쟁을 꼬집는 대표적인 이론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상호확증파괴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원래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선제 핵공격을 당했으므로 핵보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보복할지 막연합니다. 그래서 미국 본토에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북·중·러 모두에게 핵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일단 전략폭격기에 핵폭탄을 탑재하고 띄웁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세 나라 역시 핵보복을 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미군이 미국 연안에서 추적 중인 러시아의 전략 핵잠수함이 갑자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차하면 러시아가 핵보복을 하려고 준비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국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러시아 외무부장관과 통화하며 러시아가 전략 핵잠수함 위치를 노출해 주면 전략폭격기를 철수하겠다며 협상을 시도하지만 러시아는 사실상 거절합니다. 전략 핵잠수함은 최후의 무기이기 때문에 끝까지 지키려 한 것입니다. 

 

저강도 드론전 일상화

 

내란특검은 10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을 외환죄로 기소하면서 휴대전화 메모를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여기에는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여인형이 2024년 10월 18일 작성한 메모를 보면 “최종 상태는 저강도 드론 분쟁의 일상화 (정찰 및 전단 작전, 그러나 영공 침범시 물리적 격추)”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또 23일 작성한 ‘목적과 최종상태’라는 제목의 메모에는 “미니멈: 안보 위기 / 맥시멈: 노아의 홍수”라는 문구도 등장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란 최소한의 필수 인원만 보호시설(노아의 방주)에 대피하고 나머지 모든 국민이 죽는 핵전쟁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걸 보면 내란세력은 한반도를 ‘저강도 드론 분쟁’, 즉 남북이 서로 드론을 날리고 상대 드론을 격추하는 드론 분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우크라이나 후방 도시에서 시민들이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드론 때문에 비상 대피를 하는 게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그런 모습이 연상됩니다. 전면전이 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평온한 상태도 아닌 준전시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이러면 계엄을 장기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란세력은 이것이 자칫 핵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반도 전략을 내란세력이 자기들 마음대로 작성한 건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의 승인을 받았거나 미국과 조율을 거쳤을 것입니다. 아니면 미국의 지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미연합훈련 내에는 계엄훈련이 있습니다. 군을 동원하는 계엄을 미국과 평소에 훈련한다는 것인데 이걸 보면 12.3내란도 미국의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강도 드론 분쟁 일상화’도 미국의 한반도 전략인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은 김건희를 위해 계엄을 했고 미국은 한반도에 저강도 드론 분쟁 일상화를 위해 계엄을 한 셈입니다. 물론 저강도 드론 분쟁에 주한미군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철저히 남북끼리만 드론 분쟁을 하는 걸로 구상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일극 패권이 무너지고 다극화 체제로 넘어가고 있다는 건 미국 내에서도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 추세를 지켜만 볼 리는 없습니다. 전쟁으로 확보한 패권을 지키는 길은 전쟁밖에 없습니다. 특히 자신의 패권을 무너뜨린 결정적 작용을 한 북·중·러와 전쟁해 이겨야 패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중·러와 직접 전쟁할 수는 없습니다. 세 나라는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대리전을 추진합니다.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리전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과는 대만을 내세워서, 북한과는 한국을 내세워서 대리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대만과 한국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있기 때문에 대리전을 하려고 해도 주한미군이 전쟁에 자동 개입됩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대리전을 하려는 구상도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주한미군 철수 자체도 동북아에서 미국 패권의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이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대리전을 고민한 끝에 저강도 드론 분쟁을 찾아낸 것입니다. 아마 미국은 한국군 드론사령부를 통해 저강도 드론 분쟁을 지속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에 연락해 자신이 무관함을 강조해 주한미군이 분쟁에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조율할 것입니다.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에서도 미국은 러시아, 중국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협상합니다. 이게 되려면 일단 러시아, 중국과 일정한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합니다. 수교도 하고 긴급 연락망(핫라인)도 개통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북미관계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미국은 빨리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잘 보면 미국, 일본이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는 모습과 이 대통령이 대화를 추진하는 모습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이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특히 활발하게 움직이며 남북대화를 미국에 기댑니다. 선 북미대화 후 남북대화 기조를 철저히 유지하는데 마치 남북대화가 목적이 아니라 북미대화가 최종 목표인 듯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둘째,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는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데 이 대통령은 앞에서 대화하자고 하면서 뒤에서 북한을 비난하고 자극합니다. 북한을 향해 “가난하지만 사나운 이웃”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입니다. 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고 최근에는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하지 않고 윤석열 정부가 했던 것을 따라간 것입니다. 

 

이걸 보면 이 대통령의 의도는 실제 남북대화를 하거나 관계 개선을 하려는 게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식적으로 그럴 의도가 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언행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미대화 성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 역할만 충실히 하자는 게 이 대통령의 목표인 듯합니다. 즉, 이 대통령 자체로는 목적이 없고 그저 미국이 시키는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전쟁이 나면 미국 보다 우리가 더 많이, 더 빨리 핵미사일을 맞을 것이므로 우리가 미국보다 대화에 더 절박하게 매달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반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못 해 안달인데 이 대통령은 대화를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이라는 태도입니다. 그저 북미대화에 도움이 되면 그걸로 족하다는 모양새입니다. 국제질서 변화는 고사하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정세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듯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미국 때문입니다. 미국은 북미대화를 통해 자국 안전을 보장받으면서도 한반도에는 저강도 드론 분쟁 같은 대리전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를 동원해 북미대화를 응원하게 하면서도 정작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을 계속하도록 조종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공격을 두려워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정상회담을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강력히 비난할 거로 여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도 하고 직접 만나 협상도 하면서 얘기가 잘 풀리면 푸틴 대통령을 칭찬했지만 뜻대로 안 되면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8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각회의 도중 “푸틴한테 헛소리(bullshit)를 엄청 많이 듣는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북한도 뜻대로 안 움직이니 트럼프 대통령이 발끈할 거라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끝까지 북한을 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둔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무산의 책임을 북한에 돌렸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매우 잘 안다. 우리는 매우 잘 지낸다. 우리는 정말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라며 북한을 두둔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 편이 된 건 아닙니다. 미국은 최근에도 대북 추가 제재를 했고 한미정상회담 등에서 비핵화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북미대화가 절실한 모양입니다. 

 

북미대화가 절박한 이유는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인이 핵공격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잘 묘사합니다. 평소에는 세계대전이라도 지휘할 것처럼 배짱을 부리던 지휘부 성원들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격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사색이 되어 혼비백산하는 모습은 정말 가관입니다. 알래스카 기지의 GBI를 운용하는 군인들은 요격에 실패하자 넋이 나가고 심지어 구토까지 합니다. 국방부장관이 투신자살하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일상적으로 느낍니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매티스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워싱턴 국립 대성당을 여러 번 찾아 기도를 올렸으며 북한이 불시에 미사일을 발사할까 봐 군복을 입고 잤다고 합니다. 2018년 1월 13일에는 미국 하와이주에 실수로 미사일 경보가 발령됐는데 38분 동안 전체 주민이 죽음의 공포에 떨었습니다. 2022년 1월 11일에는 북한이 동해상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자 곧바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미국 서부 해안지역의 공항에 이륙 금지 조처를 내렸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일반 탄도미사일과 궤적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 본토로 날아온다고 혼동한 것입니다. 

 

상호확증파괴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 유독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만 짓눌려 있는 이유가 뭘까요?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의 핵미사일 위협에는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상호확증파괴 이론에 따라 미·러·중은 서로 핵공격을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나라가 보유한 전략 핵잠수함은 상호확증파괴 이론의 핵심 무기입니다. 지상의 모든 핵시설과 군사 시설이 초토화되어도 전략 핵잠수함은 끝까지 살아남아 상대국에 핵보복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략 핵잠수함만 버티고 있다면 상대국은 감히 핵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또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일상적으로 소통하면서 이 문제를 조율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미국은 미사일을 탐지한 직후 러시아와 중국에 연락해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특히 러시아와는 전략폭격기와 전략 핵잠수함을 서로 후퇴시키자는 협상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전략 핵잠수함도 없는 북한을 더 위협적으로 대합니다. 바로 상호확증파괴 이론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대통령이 자괴감에 빠져 중얼거리는 것처럼 미국에 아무리 많은 핵무기가 있어도 북한은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제 핵공격을 할 거라고 미국은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단 1발의 미사일이 날아오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올해 5월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수를 10개 이하로 추정했지만 북한의 각종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만 해도 이미 그보다 많습니다. 영화에서도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이 SLBM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고 규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개발했을 수 있다고 염두에 두고 대응합니다.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북한 미사일 성능이나 개수보다 현실은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미국 지휘부가 판단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단 1발의 미사일에도 시카고 시민 수백만 명이 몰살된다고 하는데 만약 10발의 미사일이 날아와 미국 주요 대도시에 하나씩 떨어진다면 한꺼번에 수천만 명이 몰살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미사일이 다탄두라면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 다탄두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표적에 떨어지는 장면. [출처: David James Paquin]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선제 핵공격을 받고도 쉽사리 핵보복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2차 공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만약 미국이 핵보복을 한다면 미국이 가진 어마어마한 양의 핵무기로 북한이란 나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핵무기는 원래 대도시와 같은 평지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산악지역에서는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또 미국 처지에서는 러시아와 중국도 있기 때문에 북한에 모든 핵무기를 다 쓸 수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 전역에 핵미사일을 발사해 버섯구름이 피어난다고 해 봅시다. 한반도에는 중생대에 풍부하게 생성된 화강암 암반이 넓은 범위에 퍼져 있습니다. 이 암반 속에 보관된 북한의 차량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아무런 피해도 없을 것입니다. 이 미사일들이 터널 밖으로 나와 2차 공격을 가한다면 미국은 지옥이 됩니다. 

 

만약 북미가 서로 다량의 핵미사일을 주고받아 구석기 시대로 돌아간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몇 달 지나 지상의 방사능이 일정하게 사라진 뒤 누군가 대피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북한은 한국전쟁 때부터 미국의 핵공격 위협을 받아왔고 이에 대비해 전 국민이 핵공격에 버틸 수 있는 지하 대피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설만 갖춘 게 아니라 한미연합훈련을 할 때마다 전 국민이 대피 훈련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피해만 남기고 대다수 국민이 대피할 수 있습니다. 

 

그럼 미국은 어떨까요? 영화를 보면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격에 실패하자 곧바로 정부의 운영 연속성(COOP) 계획이 가동됩니다. 사전에 지정된 인물들을 지하 시설로 대피시키는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계획은 실제로 미국에 존재하는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핵전쟁에 대비해 지침을 세운 것입니다. 콜로라도의 샤이엔산, 버지니아의 웨더산, 메릴랜드의 레이븐록산 등에 있는 지하 시설로 정부 주요 인사들을 긴급히 대피시킵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실제로 운영 연속성 계획이 가동된 적이 있습니다. 가동해 보니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대 교수는 이 계획이 “완전히 실패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는 문제 삼지 않지만 사실 여러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일반 국민을 위한 대책이 전혀 없으며 오로지 정부 핵심 인사만 대피한다는 것입니다. 2001년 운영 때는 75~150명의 고위 공무원이 벙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3억 명 가운데 고작 0.00003%만 대피한 셈입니다. 물론 주마다 비슷한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전체 인구 대비 극소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지정 생존자를 데리러 요원들이 오자 주변의 다른 공무원들이 ‘출근도 제대로 안 하는 상관이 왜 지정 생존자냐’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집니다. 

 

영화를 보면 지휘부는 시카고에 경보 발령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경보 발령 얘기를 꺼내지만 모두가 무시합니다. 남은 시간이 채 20분도 안 되는데 발령을 해 봐야 대혼란만 벌어질 뿐 시민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본토 공격에 대비해 대피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피소가 없으니 대피 훈련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경보 발령의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지휘부 성원들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불발탄일 수 있다며 막연한 희망을 걸어봅니다. 

 

한편 지휘부 성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가족들에게 몰래 전화해 대피하라고 합니다. 시카고에 딸이 있는 국방부장관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딸과 통화하면서는 대피하라는 말을 못 합니다.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국방을 책임진 장관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안보회의에 집중하지 않고 딸을 살리기 위해 보좌관과 가까운 군사 기지에 헬리콥터가 있는지 물색하고 딸과 통화하려고 전화통만 붙들고 있는 모습이 참 기괴합니다. 국방부장관은 딸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핵미사일이 날아온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끝내 자살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핵미사일을 주고받는 상황을 비교해 보면 북한은 전 국민이 대피해 전후 복구를 할 수 있지만 미국은 극소수만 대피하고 대도시가 초토화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합니다. 

 

영화에서 대통령이 “보복하지 않으면 항복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하자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보복은 자살 행위”라고 반박합니다. 결국 대통령은 항복이냐 자살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끝내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하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현실이라면 아마도 자살보다는 항복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향해 선제공격이든 보복공격이든 어떠한 공격도 하지 못합니다. 상호확증파괴 이론은 북한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굉장히 절실하게 북미대화를 하려는 이유입니다.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 이유

 

다시 정리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