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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65] 북한의 통일 정책 변화 과정과 민족의 동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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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6-29 23: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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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65] 북한의 통일 정책 변화 과정과 민족의 동질성

문 경 환 기자  자부시보 6월 29일 서울  

북한은 지난 3월 22~2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으로 북한의 영역을 규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2023년 12월 26~30일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통일 노선을 폐기한 뒤 진행된 일련의 법, 제도, 기구 정비가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동안 북한이 통일 노선을 폐기한 배경에 관해 많은 추측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통일 정책 변화를 통해 이 문제를 고찰해 봅니다. 

 

총선거 방안(1950년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분단이 됐고 특히 1948년 5월 단독선거로 38선 이남에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북한은 총선거를 통한 통일을 주장했습니다. 1949년 9월, 1950년 6월 7일, 1954년 4월 27일, 1959년 10월 26일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꾸준히 총선거를 제안했습니다. 특히 1954년 4월 27일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남일 부수상 겸 외무상은 남북이 동수의 대표를 뽑아 전조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중립국감시위원회 감독 아래 총선거를 시행해 통일정부를 만들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당시는 분단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만큼 북한은 단일 정부, 단일 체제로 통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1960년대 한국 영화를 보면 말투, 표정, 행동이 북한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고 보면 북한 영화인 줄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남북 사이의 생활문화적 간극은 크지 않았습니다. 

 

과도기 연방제(1960년대)

 

이승만 정부는 북진 통일만 주장하면서 북한의 총선거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1960년 8월 14일 김일성 주석이 광복절 15돌 경축대회 연설에서 ‘남북연방제’를 제안합니다. 한국 정부가 총선거를 받기 어려우면 과도적으로 연방제라도 하자는 것입니다. 

 

남북연방제의 핵심 내용은 남북 정부의 독자적 활동을 보존하면서 정부 대표들로 최고민족위원회를 만들어 경제, 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자는 것입니다. 경제·문화 영역의 교류·협력이 이뤄지면 서로 신뢰가 생기고 그 후 총선거를 통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제시했습니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남북연방제마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남북 기업 대표들이 모여 경제위원회를 만든 뒤 경제협력이라도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950년대 중후반이면 이승만 정권의 실정으로 한국 경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던 시기입니다. 이승만 정권은 악화한 민심을 외면하고 집권 연장을 위한 부정선거를 강행했으며 결국 1960년 4.19혁명으로 쫓겨났습니다.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을 시작해 곳곳에서 협동농장과 국영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체제의 차이와 함께 국민의 생활상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는 미국식 문화가 빠르게 퍼졌습니다. 미군기지 주변에 클럽 문화가 형성되고 여기서 활동한 악단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또 라디오에서는 미군 방송(AFKN)이 흘러나왔고 미국 대중음악이 유행했습니다.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 민족문화를 장려해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봉건적 악습이나 미신을 배격했습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북한은 총선거를 통해 곧바로 단일 체제로 통일하면 부작용이 생길 것으로 본 듯합니다. 그래서 과도적인 연방제를 통해 경제·문화 교류를 해서 남북의 차이를 줄인 뒤에 총선거하자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방제 통일(1970년대 이후)

 

1973년 6월 23일 김일성 주석은 구스타프 후사크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을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조국통일 5대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5대 방침 가운데 네 번째가 고려연방공화국 통일방안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틀 후인 6월 2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 연설을 통해 고려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설하였습니다.

 

이 방안이 남북연방제와 다른 점은 총선거를 위한 과도적 대책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연방제가 완전한 통일은 아니라고 보고 있으나 남북연방제에 비해 연방 단계를 더욱 비중 있게 설정했습니다. 

 

이어 1980년 10월 10일 김일성 주석은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전의 연방제 방안은 완전한 통일로 가기 위한 과도적 조치, 중간단계 정도였는데 이 통일방안은 연방제 자체를 완성된 통일국가의 형태로 제시했다는 데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통일방안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정치, 국방, 대외 영역을 담당하며 나머지는 남북 지방정부가 담당합니다. 

 

1991년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를 통해 잠정적으로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점차 중앙정부의 기능을 높이는 단계적 방식을 제안합니다. 즉,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로 연방제 안을 구분한 것입니다. 이 방안은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을 살리는 통일방안으로 이어집니다. 

 

북한이 과도적 연방제에서 벗어나 연방제 자체를 통일로 삼게 된 배경에는 남북 사이의 체제와 생활문화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는 점이 있습니다. 

 

한국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며 기형적이나마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습니다. 대기업 재벌이 성장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 자본의 현지 지점 역할을 하며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미국의 하청 경제가 되었습니다. 1986년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 등을 통해 1990년대 초 한국은 농업, 지식재산권, 주식시장 등을 개방했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며 미국에 경제가 통째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됐으며, 2000년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완전히 미국에 종속되었습니다.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100% 안팎으로 매우 높은 편입니다. 

 

반면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더 발전시키는 가운데 민족자립경제 노선에 따라 한국과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게다가 미국의 대북 제재,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 무역 시장의 축소, 중국 경제의 자본주의화에 따른 문제, 90년대 중후반 최악의 경제 위기인 ‘고난의 행군’ 등으로 북한의 대외 경제 교류는 더 축소되었습니다. 북한 경제 지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추정치로 계산할 때 2023년 대외의존도는 약 9%로 보입니다. 

 

이렇게 남북의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외 의존 경제와 민족자립경제로 갈라지면서 더 이상 통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더 중요한 건 국민 의식과 생활문화가 급격히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주한미군기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한국을 철저히 친미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놓고 국가보안법을 동원해 반미의식을 철저히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에는 미국을 가장 선진적인 나라로 동경하며 미국식이라면 덮어놓고 추종하는 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미국인 위인전을 읽히고, 극장과 TV는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여주며, 말과 글도 토씨만 빼면 영어로 가득하고, 먹고 마시는 것들도 미국 음식으로 빠르게 전환되었습니다. 미국이 이식한 개신교는 신도들을 앞세워 성조기를 흔들며 광장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또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외설 문화, 퇴폐·향락 문화가 범람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문화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통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지원에는 무관심하고 한류열풍에만 투자합니다. 우리 문화는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천시, 배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11년 4월 12일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는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신라호텔 뷔페 레스토랑의 출입을 제한당했습니다. 당시 호텔 직원은 이 씨에게 “우리 호텔엔 드레스 코드(복장 규정)가 있다. 한복은 출입이 안 된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당황한 이 씨가 한복 출입이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묻자 지배인은 “한복은 위험한 옷이기 때문”이라며 “부피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을 훼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신라호텔은 한복과 운동복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최고급 호텔로 거론되는 신라호텔에서 한복을 금지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는 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편 미국 문화가 급격히 퍼지면서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개인주의 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1990년대 등장한 X세대를 시작으로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Y세대, M세대, Z세대 등으로 갈수록 개인주의가 점점 심해집니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며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장기간 그대로 방치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골목길에서 아이끼리 어울려 노는 문화는 사라지고 어려서부터 혼자 게임을 즐기거나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문화가 굳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사회 문제를 두고도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환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은 제도를 개선하고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개인 능력을 키워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강조하며 사회주의 내용에 민족적 형식을 더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북한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일본, 미국이 자국민을 학살했다며 두 나라를 적대합니다. 그래서 북한 국민 속에서는 반미·반일 감정이 매우 큽니다. 북한 정부는 미국, 일본 문화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또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집단주의를 강화해 사회 전체를 ‘하나의 대가정’으로 인식합니다. 

 

이처럼 남북국민 사이의 의식·정서와 생활문화 간극이 너무 벌어졌습니다. 물론 남북 민간교류 과정에서 북한 사람을 만난 이들은 민족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그동안 한국에서 북한을 악마화한 것의 반작용일 수 있습니다. 머리에 뿔 달린 악마인 줄 알고 경계하며 만났는데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생김새도 비슷하니 안심하는 것이지요. 

 

통일 노선 폐기(2023년~)

 

북한은 2023년 12월 26~30일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하며 통일 노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2개 국가론을 선언했습니다. 선언으로 끝난 게 아니라 정말로 모든 문서에서 ‘우리 민족’, ‘통일’, ‘삼천리’, ‘8천만 겨레’, ‘민족대단결’ 같은 용어들을 삭제했고 통일 기구도 폐지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문재인·윤석열 정권의 반북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정권이 바뀌어 대북 정책도 바뀌면 북한이 다시 통일 노선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남북은 한민족인데 북한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한민족이 다른 민족으로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통일 정책이 변화하는 흐름을 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남북은 체제의 차이를 넘어 국민 의식·정서와 생활문화적 차이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에 따라 북한의 통일 정책도 총선거에서 과도적 연방제,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변하며 점점 단일 체제, 단일 국가에서 사실상의 2개 국가지만 형식만이라도 1개 국가를 유지하자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통일 노선을 폐기한 건 이제 남북 국민은 함께 살기 어려울 정도로 생활문화적 차이가 벌어졌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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