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세상이 어디서 출발했으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이 원초적인 질문은 고대로부터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의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기원전부터 고대의 철학자들은 이 문제에 천착했는데, 만물의 기본을 물(탈레스)로, 공기(아낙시메네스)로, 흙(크세노파네스)으로, 불(헤라클레이토스)로 인식했고, 엠페도클레스라는 고대 후기 철학자는 이 모두를 종합한 ‘지수화풍’을 우주의 기본요소라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불교도 ‘지수화풍’을 물질계를 구성하는 4대 구성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신화라 할 수 있는 기독교의 성서에도 인간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데, 구약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화)이 있으라 하시니 있었고’로 시작하여, 이른바 지수화풍을 기본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한편, 사람 역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라는 표현에서 읽히듯 ‘지수화풍’의 산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진 오늘이라고 우주의 기원이나 세계와 인간을 이루는 기본 물질이 신화 시절로부터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빅뱅 이론과 초신성 등 우주생성이론을 보면 각 물질을 초초초미립자로 분해하고 생성과정을 보다 과학적으로 해명했을 뿐, 신화와 종교, 고대철학이 얻은 나름의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매시기마다 내놓은 사람의 사색과 연구의 결과물과 시대를 넘나드는 개연성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람은 물론, 지구의 모든 생명은 그 몸이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양질의 미네랄(지), 맑은 물(수), 태양광(화), 깨끗한 공기(풍)’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태초에 창조주(모태)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해서 질과 양이 무한하게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 생명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전지전능한 어떤 존재가 때마다 맑은 물과 양질의 흙을 반죽해 태양광에 구워주고 향기로운 입김을 불어 넣어 주면 얼마나 편리할까요?
그러나 선악을 구분하고 스스로 가치관을 세워 살아갈 지혜를 갖춘 존재인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세상과 삶의 창조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 한 몸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 한 몸을 둘러싼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창조자다운 고민과 실천을 거듭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어 지혜라는 벌을 얻은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표현하는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면서부터 고민이 별나게 많아지고 역사적 책임감이 부단히 높아졌을 인간사를 생각해보면 이해되는 신화적 표현입니다.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지수화풍의 시혜 속에 생명을 유지합니다. 신이 그것을 넣어줄 수 없으니, 지혜로운 자기 인생의 주인은 그것을 스스로 취해야 합니다.
지수화풍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채소와 통곡물입니다.
채소와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한 사람의 변은 또 다시 지수화풍으로 빠르게 회귀합니다. 짐승과 식물,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세상과 사람을 키웁니다.
반면 자연 상태에서 멀어진 음식물일수록 이로움도 적고 몸 밖의 배출물조차 자연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운 물질이기 쉽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지수화풍의 기운을 범하는 것을 최소화해서 먹는 것이 ‘좋은 식사’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 자연산, 제철, 제 지역의 식재료를
• 덜 깎고, 덜 첨가해 통째로 조리해
• 너무 차거나 너무 뜨겁지 않게 섭취하며 오래 씹고 과식하지 말 것.
이렇게 먹으면, 조금씩 먹어도 지수화풍의 영양분을 낭비 없이 취할 수 있다니, 염두에 두고 생활하면 좋을 듯합니다.
사실 매우 단순한 이야기인데, 미각에서도 말초적이고 다양한 유혹이 범람하는 시대라, 이 단순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라와 사회까지 확장할 필요도 없이, 제 한 몸의 안녕과 평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도 원칙이 중요합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의지를 세워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