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본지가 기사화했듯, 황선 평화이음 이사가 몸에 이상이 생겨 요양 중입니다.
최근 황선 이사가 상당히 효과를 보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몸살림 방법을 개인 SNS를 통해 연재를 시작했기에 협의하여 본지에도 게재하기로 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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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 이사가 단식 이후 집에서 하던 하루 일과표 © 황선 |
“병 주는 사회, 치유하는 삶 2- 단식이라는 수술”
자연치유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 마음이 확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하며 건강해야 하는 것인가? 사람이 꼭 오래 살아야 하는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그 길에서 문득 쓰러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집착 없이 가야지... 라는 생각을 종종 했으나, 자연치유를 실천하는 초반에 들던 생각들은 지금 돌아보면 인생에 대한 특별한 고민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바쁜 시국에 하염없이 쉬고 있는 모양이 민망하고 휴양 중이라는 소식에 멀리서도 전해오는 걱정들 앞에 죄송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 꽉 짜인 일과와 엄한 식단을 견디지 못하는 자유주의 때문에 회피를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 역시 그런 생각을 부르곤 했습니다.
내가 왜 건강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히 선 연후에야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온 마음을 다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후 간단치 않았던 고민과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돌아보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운이 좋아 몇몇 유의미한 사고를 쳤지만 열과 성을 바쳐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에 생각이 이르자, 삶을 대충 살더니, 마무리도 대충하려는 수작으로 여겨졌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민낯이었습니다.
뭐 대단하게 큰일은 못 하더라도 살면서 가장 많이 가장 집중적으로 가장 진심어 리게 받은 인사와 당부라도 지키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인사는 '앓지 말라'와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겨레의 인사였습니다.
이렇게 거창한 포부는 아니지만 건강을 회복해야 할 이유를 찾고 보니 이번엔 방법이 문제였는데 결과적으로 자연치유를 택한 것에는 두 방향의 불신과 두려움이 작용했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 의료시스템에 대한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입니다.
우선 의료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갑을 관계나 다름없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아무런 명쾌한 해답 없이 가해지는 온갖 검사와 처치 등으로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피동에 놓여지는 환자의 처지, 개인적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할 수 없는 병원의 분위기, 사람 중심 철학이 부재한 의료인과 시스템의 문제 등등과 관련된 것입니다. 특히 몇 해 전 친정아버지께서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돌아가시기까지 5개월간 종합병원 세 곳을 전전하며 받았던 마음의 상처와 몸 고생을 생각하면 내 속에 있는 병이 무엇이든, 만일 심각한 것이라면 더더욱 악화 일로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나 자신에 대한 불신입니다. 몸 전체의 컨디션과 그것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종양의 정체와 종양의 크기에 집착하는 순간 나라는 사람은 치유의 목적을 잊고 제멋대로 마음을 놓아버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간단한 검사로 내려지는 역시 간단한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나를 나쁜 방향으로 떠밀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나란 사람은 종양이 양성이면 생활습관을 개선할 의지를 상실할 것이고, 종양이 악성이면 아닌 척하겠지만 이내 삶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화순에 있는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사) '양현당'이라는 수련원에 가서 처음 열흘간 단식을 할 때만 해도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이렇게 지겹도록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일단 단식이라도 해보자는 생각 이상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주변에 건강 단식을 권한 적은 있어도 직접 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숱한 단식의 대부분은 옥중투쟁의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었는데, 밖에서 건강하게 단식하라고 책도 넣어주고 했지만 그땐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고 젊음 하나로 용맹하기만 했었습니다. 단식을 끝내면 그날로 보리밥을 잘도 퍼먹곤 했으니 말입니다.
5월 화순은 이름처럼 온화한 곳이었습니다. 전혀 힘든 줄 모르고 12일 단식을 했습니다. 보통 열흘 교육기간 중 8일이나 9일 단식을 진행하고 복식을 하루 이틀 하다가 귀가하는데, 힘들지만 않다면 한 끼라도 더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이선재 선생님의 말씀에 12일동안 단식을 진행했습니다.
'단식' 이것이 제가 선택한 첫 번째 수술이었습니다.
5월 첫 단식을 마치고 돌아와 보식을 하고 생채식을 기본으로 하며 체력을 회복한 후, 5월 단식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우기 위해 7월에 다시 한번 열흘간 장기 단식을 했습니다. 강연 및 치유기를 듣고 도전해 본 것인데, 5월 단식 이후 죽식이 끝나고 계속 채식을 해서 그런지 7월 단식 때는 현기증이 좀 더 심해졌지만, 전반 다른 상태는 매우 호전되었습니다. 특기할 것은 5월 단식에서 돌아와 7월까지 심각할 정도로 나던 몸의 냄새가 8월 이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 냄새가 '중증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 혹은 '송장 썩는 냄새' 같았다고 그 냄새가 사라진 이후 고백했습니다. 겁이 나서 당시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랬었다고, 그런데 이제 전혀 나지 않는다고 가을 어느 날 기뻐하며 이야기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단식과 채식, 1일 2식, 그리고 하루 3회~6회의 풍욕, 냉온욕, 산책과 왕뜸, 겨자탕 등, 모든 것을 제시간에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하루하루 할 것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표시하며 하다가 그걸로도 강제가 되지 않아서 아예 일과표를 짜서 일일이 O,X 표를 해가며 검사를 맡았습니다. (이후 각 각의 방법이나 효과에 대해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여튼 하루에 산야초 효소를 두 잔 정도 먹으며 단식을 진행한 결과, 몸에서 많은 독소가 빠져나갔습니다. 그것은 숙변, 혹은 냄새(가스), 그리고 하혈이나 피부 발진 등으로 변해서 제 몸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한 번에 나타난 현상도 아니고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해서 저로하여금 때때로 '명현 없이 치유 없다'는 말을 잊고 자꾸 비관에 빠지게도 만들곤 했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독소를 쌓았던지 그것들을 빼내자 몸이 아주 허전해졌는데, 170cm가 넘는 키에 늘 장대한 기골을 하고 있어 장군감이란 소리를 듣던 몸도 드물게 정상 체중을 찾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정도는 공개하겠습니다... 앞자리가 7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50kg대까지 내려갔다가 채식과 현미잡곡밥에 적응하면서 최근 몇 개월은 60kg 초반에서 안정화 되고 있습니다. 늘 과체중 상태를 보아오신 집안 어른들이나 오랜만에 저를 만난 원로 선생님들은 너무 야윈 모습에 걱정을 많이 하시지만, 사실 이제야 만병의 근원인 비만을 벗어나서 생활습관병 치유의 본궤도에 진입한 것일 뿐입니다.
스무 근 남짓 하는 쓸모없는 것을 태워버렸으니 비계와 함께 다른 나쁜 것들도 연소되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는가 생각합니다.
지금도 하루 2식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18시간을 비우는 간헐적 단식(자유한국당도 흉내 내고 싶어 하던)을 실천하고 있는 셈 입니다.
옛날에는 못 먹어서 병이 생겼다면 현대에는 너무 많이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무분별하게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할 때도 먹는 나쁜 습관이 병이 됩니다.
암을 비롯한 현대의 중증질환이 유전적 요인보다 생활습관병이자 대사질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최근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오히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DNA에 새겨진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실천으로 천형 같은 질병도 넘어설 수 있다니, 자주적 존재인 사람으로서 얼마나 기쁜 일인지 말입니다.
황교안 씨 같은 나쁜 의도와 나쁜 정신력만 아니라면, 누구나 단식으로 몸과 마음 건강을 회복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음번엔 먹거리 이야기를 많이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