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이은 낙선
19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가 되살아난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원내 제1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섰지만 연이어 낙선한 사람이 있다. 1997년과 2002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 현대정치의 불운아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재수, 3수 하거나 그 이상 출마한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거대 제1당의 후보로 연속해서 대권에 도전하는 기회를 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기도 하다가 선거에서는 보기좋게 낙선했다.
1997년 15대 대선의 첫 번째 패배는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하고 IMF에게 나라의 경제권을 넘겨준 김영삼정권의 무능과 부패,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대중적 분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50년동안 집권해온 거대여당의 후보인데도 낙선했다는 것은 그에게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는 이 점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못했다.
이회창은 절치부심하여 5년뒤 대선후보로 다시 나섰지만 낙선의 고배를 또 마셔야 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상대였던 집권당의 내홍이 심했고,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막판에 파탄나는 등 그에게 유리한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2. 대형 폭로
경쟁자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고공행진을 하던 그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폭락하기 시작한 것은 아들의 병역비리의혹이 제기되면서 부터였다.
당시 세상에 드러난 사실은 그의 아들이 체중미달이란 이유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 당시 대법관이었던 이회창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었다.
이 사건으로 권력과 외압에 흔들리지 않은 판사, 오직 원칙에만 충실하다는 그의 이미지는 허물어졌다. 세상은 그가 ‘대쪽법관’이 아니라 특권층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던 것이다.
이후 정치에서는 병역비리는 상대를 거꾸러 뜨리기 위한 단골소재가 되었고, 선거때면 형세를 뒤집기위해 대형 폭로에 매달리는 일이 곧잘 벌어졌다.
하지만 병역비리나 폭로 그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것은 부패한 특권층과 비민주적인 권력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사기꾼이건 뭐건 상관하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데’만 관심이 있었던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에게 BBK의혹 등이 제기되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3. 적폐의 대표주자 1
자유한국당에는 자질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여럿있다. 하지만 적폐집단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당에 어울리는 대표적인 인물은 따로 있다.
그 첫 번째 인물은 홍준표 전대표다. 그는 지금 대표직에서 밀려나 특별한 직책 없이 떠도는 신세로 되어 있지만 여전히 자유한국당에 가장 잘 맞는 인물이다.
지난 대선에서 갖은 망언을 해대며 ‘맹활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선과 총선에 연이어 참패해 낙동강에 뛰어들어야 하는 위기를 이겨내고 멀쩡하게 살아있는 끈질긴 생명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폐 정치인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자질인 뻔뻔스러움을 다른 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지고 있으므로 홍준표에게는 당의 중요한 자리를 다시 차지할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유한국당 일각에서는 홍준표가 다시 당대표가 되면 당이 망할거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제법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몰락이 홍준표 한사람 때문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니 반대의 명분으로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4. 적폐의 대표주자 2
두 번째 인물은 얼마전에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가 된 국회의원 나경원이다.
나경원이 원내대표가 되자 자유한국당이 ‘도로 박근혜당’이 되었다는 평이 많았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평가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당에서 한번도 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에 반대했고 박근혜를 사법처리하는데도 반대하는 등 국정농단집단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변함없이 유지해왔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니 꽤나 섭섭할 것이다.
박근혜가 한창 위세를 떨칠 시절에는 ‘친박’으로 분류되지 못했던 나경원에게도 유쾌하지 않은 평가다.
그는 탄핵때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고, 박근혜석방을 요구해야 한다는 ‘태극기부대’의 주장에는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의 아바타’라는 말까지 듣고 있으니 짜증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경원이 ‘도로 박근혜당’의 대표라고 평가받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이 박근혜와 별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경원은 해마다 서울시내에서 열렸던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에 늘 참가하였다. 본인이야 ‘초청받았으니 안갈 수가 없었다’고 둘러대지만 그 행사는 누구에게나 초청이 오는 것도 아니고 초청받는다고 다 가는 것도 아니다.
DNA 어느 구석에 친일매국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면 쉽사리 하기 힘든 행동이다. ‘토착왜구’라는 험악한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그의 이런 행보는 일본국 총리 대신 아베에게 굴욕적인 ‘위안부’야합을 했던 박근혜를 떠올리게 한다.
나경원을 보면 박근혜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또한 유체이탈식 언행에 있다. 자신이 이전에 했던 일과 상반되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고, 연관성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마구 해댄다.
박근혜야 ‘최순실이 시켜서 그랬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경원은 ‘박근혜 흉내를 내려다보니 그렇게 된다’는 핑계말고는 댈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당을 바꾸겠다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비대위원장은 존재감도, 하는 일도 없이 허송세월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적폐집단의 정체성을 회복시킨 나경원 원내대표의 공이라 할 수 있다. 나경원이 홍준표에 버금가는, 적폐정당을 잘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는 이유다.
5. 적폐정당의 3번 타자
그런데 ‘홍반장’과 ‘박근혜아바타’에 이어 이 반열에 또 들어선 사람이 있다.
▲ 대법원에서 열린 제50주년 법의 날 기념식에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박근혜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황교안씨가 지난 1월 15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언론에서는 그가 자유한국당의 당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내며 그를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로 대접하고 있다.
황교안의 정계진출에 대해서는 자유한국당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꽤나 거세다. 잠시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에 몸을 담았던 전모씨는 황교안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세가지 이유를 말하기도 했는데 황교안이 대한민국대통령이 될 수 없는,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국정농단정권의 국무총리를 지냈다는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두드러기로 병역면제를 받은 희귀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것, 검사 시절에는 국가보안법을 이용하여 민주화운동과 생존권투쟁을 탄압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몰두했다는 것, 최순실과 박근혜 밑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내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등 갖은 국정농단 행위의 돌격대장 노릇을 했다는 것은 따로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누구를 당대표로 뽑는가 하는 것은 자기들 마음이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있으니 세상이 안된다고 한다고 못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박근혜가 국회에서 탄핵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을 받는 동안 대통령권한대행을 하면서 국정농단의 실상을 은폐하는데 애를 많이 썼으니 자유한국당의 대권주자로서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국정을 운영할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드배치문제로 우리 사회가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하던 때에 경북 성주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은 대통령은 커녕 일개 관리의 자질을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그는 중학생들의 야유와 성주 군민들의 분노앞에 당황하여 우왕좌왕하였고 험한 꼴을 한 채 달아나기에 급급하였다.
능력과 무관하게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답게 황교안은 원님행차식의 의전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가 비록 권한대행이긴했으나 대통령자리에 앉았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그는 그 감격에 겨워 세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행세를 하려고 했으며 황제의전에 집착하였다.
따라서 황교안이 주제와 분수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매우 높다.
6. 국정농단의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국무총리 임명에 거듭 실패했던 박근혜는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하자 2016년 6월 법무부장관이었던 황교안을 국무총리에 앉혔다.
▲ 성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피해 급히 차량에 탑승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사진 : 뉴시스] |
박근혜가 황교안에게 국무총리 자리를 준 이유에 대해서는 그는 ‘대권을 넘보지 못할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황교안은 권력이 제 손에 쥐워준 알량한 권한을 휘두르는 데 익숙할 뿐 정권을 운영하는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는 자리에서 황교안은 ‘나라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주장하였다. 국정농단을 자행한 자들의 공통점은 자기집단과 나라, 자기들의 이해관계와 국민의 이익을 혼돈하거나 뒤섞는 것이다. 그렇게 국정을 농단한 자들이 꽤 많이 감옥으로 갔는데도 황교안에게는 그 병의 증상에 차도가 없다.
설령 ‘나라가 난국’이라 하여도 황교안에게는 그것을 해결할 실력이 없다. 적폐집단에게 닥친 위기, 몰락으로 치달아가는 상황을 헤쳐나갈 능력조차 없다.
이처럼 황교안은 적폐집단을 더 빠른 몰락의 구렁텅이로 이끌고 갈 인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황교안이 정치를 하겠다고 대놓고 나서는 것은 국정농단세력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시대와 국민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을 감행하는 것이다.
▲ 성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피해 급히 차량에 탑승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사진 : 뉴시스] |
황교안의 자유한국당 입당은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았으며, 적폐청산은 변함없이 우리 사회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적폐집단과의 싸움이 더욱 격렬해질 것임을, 더 힘있게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국정농단 집단이 또 정권을 잡아보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촛불혁명을 일구어낸 국민들이 이런 저런 이유와 사정때문에 느슨해지고 긴장감이 풀렸다고 생각한 적폐집단이 꿈틀대고 있다.
적폐정당 자유한국당을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 이 일은 더 늦출 수 없다.
미스터 담마진의 정계 진출을 환영한다.
안호국 시사평론가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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