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활동을 펼쳐온 권오헌 명예회장을 지난 25일 만났다. 기사제목은 이번에 출간하는 선생의 두 번째 문집 제목이다. ‘평화와 인권,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교과서, <민주화와 통일의 여정에서 만나는 권오헌의 실천적 삶>’이라는 책이다. 출판기념회는 일요일인 29일 오후 4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다.
1937년생인 권오헌 선생은 올해 만으로 여든이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 인권 탄압의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가 보고 느끼고 함께했던 역사적 사실을 육필로 써놓은 것을 모아 펴낸 책이 이번 문집이다. 눈이 나리거나 비가 오거나 민족과 민주, 평화와 인권, 양심수 석방을 호소한 현장을 담은 귀중한 기록물들이다. 선생의 언제나 정연한 논리와 일관된 소신은 정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함께 실천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고 조용하면서도 힘 있고 소신 있는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낸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이번 문집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글들을 추려 펴낸 <인권을 다지며 자주통일의 길로 - 권오헌 선생님 고희 기념 글 모음집>(2006)에 이은 두 번째의 글 모음집이다. 지난 번 책을 엮어낸 이후인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5년 동안의 활동 전모를 망라한 정치, 경제, 사회, 역사문화, 시사평론 및 논설집이다. 문집은 3권으로 구성돼 있다.
제1권 평화/통일 편, <자주없이 통일없다>(700p)
제2권 인권/국가보안법 편, <양심수도 국가보안법도 없는 세상>(890p)
제3권 활동사진집, <살아온 발자취가 역사가 되어2>(250p)
올 여름 폐암4기 판정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니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택을 찾았다. 권 선생은 지하철 수유리역에서 마을버스로 5분 거리인 북한산 인수봉 자락 밑 홍익파크빌라 2층에 살고 계셨다. 자택에 들어서니 온 벽이 책과 자료들로 가득했다. 아래는 권 선생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사람들이 선생님을 ‘평생 청년’이라고 하던데요.
“회원들이 그렇게 붙인 것 같아요.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쉬지 않고 한다고 그렇게 비유한 것 같네요. 양심수후원회를 30년을 같이한 사람들이니까. 회원들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후원회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에서도 거의 다 젊은 사람들이고, 양심수 가족들이나 양심수 관련된, 사회연대 활동을 통해서 젊은 사람들 만나고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 하고 같이 활동하고 그러니까 젊어보이겠지.
사실 이 사회에서 나이가 많든 적든 나보다 선배는 없어요. 60년대부터 활동했으니까. 감옥 갔다온 것밖에는 쉰 적이 없어요. (기자: 감옥가셔야 쉬시는 거군요.^^) 내 윗세대들은 지금 별로 없어요. 많이 돌아가셨고, 또 (북에)올라가신 분들도 거의 다 돌아가시고 해서 우리 윗세대들이 손으로 꼽을 정도예요. 통일광장 선생님들, 사월혁명회, 민자통 이런 분들이 계시는데 얼마 안되요. 스무 분도 안될 거야.
우리 사회 현실이, 주변 환경이 나이와 관계없이 정년이라는 것 없이 일을 하게끔 주어진 거죠. 분단이라든가 또 그 동안의 군부독재를 비롯한 권위주의체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싸울 수밖에 없어요. 자연적으로 나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살게 된 거죠. 양심수후원회 행사에서도 “양심수후원회 임기는 있어야 되지만, 사회운동 통일운동에서 정년은 없다”고 말했죠.”
- 요즘 치료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지난 7월5일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는데 처음 진단 받았을 때 ‘올 게 왔구나’ 했지 특별한 건 없었어요. 80이면 살만큼 산 거고. 활동도 계속하고 있어요. 암진단 후에도 800미터가 넘는 산행도 했지요. 치료는 약을 먹는 방법으로 하는데 암세포만 표적공격하는 약이라고 하더군. 주사치료를 했으면 벌써 누워야 할 판인데, 약으로 하니 좀 나아요. 약이 독해서 피부발진, 탈모, 소화장애 등 부작용도 있는데 견뎌내야지. 활동하다가 무리가 생기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자만하다가 암이 썽내면 안되니까 열심히 관리하고 있어요. 진단 후에는 목요집회하고 통일, 한미군사동맹 이런 거, 양심수 문제 등만 줄여서 활동하고 있어요.”
- 이번에 문집을 내신 동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2006년에 고희 문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일부 어른들하고 회원들이 그 책을 내고 난 후 팔순에 또 책을 내자고 하더라고. 작년이 팔순이었는데 내가 너무 바빠서 못 냈지요.
올해 들어 건강이 악화되어 책 내는 것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살아있을 때 내는 게 좋겠다 싶었죠. 책 내는데는 우리 회원들이 열성적이었지요. 3권이 사진집인데, 내가 사진이 장정이 들어도 한 짐될 정도로 많이 있어요. 회원들이 사진을 다 고르고 했죠.
책에는 사회에 다 나왔던 글을 실었어요. 분단체제,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내가 맞닥뜨려 활동하는 과정에서 나온 역사의 현장을 모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민족성원으로서 민중의 시각으로 본 그대로를 써낸 겁니다. 우리 얼굴이고, 우리 모습이고 살아가고 싸워가는 우리 자신들의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죠. 특별한 이론을 가지고 체계화시킨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외침을 글로 표현한 것이고 사회현상들이 내 몸을 거쳐 반영되어서 나왔다고 할 수 있죠.”
- 이번 문집에서 주로 말씀하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주통일 문제죠. 분단체제, 분단시대을 만든 장본인이 외세이고, 그 외세는 미국입니다. 미국에 의해서 분단이 되었고 동족상잔까지 겪었고, 또 재통일을 방해받고 있는 것이 미국 때문입니다. 우리가 휴전선 남쪽에 있었기에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미국은 우리 적이고 우리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만악의 근원입니다. 미국은 침략외세이기 때문에 침략외세는 물러가야 한다, 이것이 글을 쓴 줄거리라고 보면 됩니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와 인권, 국가보안법, 양심수 이런 문제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인권인데, 이 인권이 어떤 특정한 정파나 세력, 권위주의 체제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을 그냥 둘 수가 없는 겁니다. 기본인권을 지키는 것 없이는 민주주의도 이뤄질 수도 없는 거고 인권과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발 더 나가면 우리 사회의 과제를 자주·민주·통일이라고 자주 말하는데, 자주통일세상을 위해서라도 우리 내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성숙돼야 하는 거죠.
우리가 인권을 말할 때 정부에서 말하는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관계없습니다. 지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한미동맹을 강화한다’고 합니다. 이런 민주주의하고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 양심수 문제는 어떤 문제입니까?
“인권이라는게 기본권 아닙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죠. 그것이 어떤 정권이나 체제에 의해 짓밟혀질 때는 무한투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점은 좀 덜 하다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한투쟁을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성숙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그날까지 투쟁하는 것이죠.
그런 과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양심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양심수 개념은 개인이나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서 자기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양심수가 감옥에 있는 한 민주주의가 아니고 인권이 보장되었다고 할 수 없지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립하는 것이 기본 투쟁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양심수 석방, 양심수를 잡아가둔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입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민중들의 생존권, 이게 다 인권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거권, 건강권 등이 다 포함된 거죠. 그런 부분이 다 엮어져서 인권이라는 범주 속에 다 있다고 봅니다.”
- 문재인 정부의 인권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이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상당한 소신을 가지고 활동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국정농단과 사대매국 행태에 대해서 가장 앞장서서 그걸 막고 새로운 노동인권을 비롯한 여러 투쟁을 해왔던 전형적인 피해자, 양심수들을 방치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이석기와 한상균이죠.
양심수는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고 주장하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해 앞장서서 희생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박근혜와 같이 감옥에 놔둔다고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냥 4년마다 있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천만촛불로 이룬 민주주의 아닙니까? 그런 것에 걸맞는 개혁을 하려면 혁명적 발상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기존의 법체계, 제도 이것을 넘어서 정말 혁명적 발상을 가지고 해야 하는 거죠. 사면권 이런 문제가 아니라 국정농단과 외세에 앞장서 싸운 사람들은 다 풀려나야 된다, 이런 걸 안하고 있는 거죠.”
- 지금 인권 영역에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면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일말의 얘기가 있어야 되는데 일체 얘기가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국정원 개혁 얘기가 나옵니다. 국정원 내 적폐청산에 대해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국정원 조작사건입니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종북논리를 펴기 위해서 진행한 조작사건인데 이걸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12명 해외식당 종업원 사건입니다. 이른바 ‘집단입국’이라고 했죠. 우리는 ‘기획탈북’이라고 봅니다. 사건 초기에는 ‘기획탈북 의혹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은 의혹 자체를 빼고 얘기하는 겁니다. 분명히 국정원이 저지는 반인권 반인륜 범죄입니다. 이것을 국정원 개혁위원회에서 빼놓고 한다는 것이죠. 아주 중요한 이 두 가지는 빼놓고 손쉬운 것들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뿌리를 보면 남북간의 동족대결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종북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문재인 정부가)동족대결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박근혜 이명박이 했던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게 얼마나 대결정책입니까?
저도 문재인 대통령과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입니다.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청와대 있었을 때도요. 당시 한총련 합법화 문제로 대화도 했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놓고 결국 못했죠. 지금도 ‘우리민족끼리 통일 하는 거’ 이런 걸 못해요. 우리민족끼리라고 하는 것은 외세와 동조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어쩌자고 세상에서 막말과 미친 트럼프하고 제일 가까이 지내려하고, 세계에서 최고 망나니 아베하고 가까이 지내려고 합니까? 말이 안되는 거죠.”
- 곧 촛불혁명 1주년입니다. 이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시작은 박근혜 국정농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로 시작된 것이죠. 그런데 이명박근혜 정권의 더 큰 범죄행위는 뭐냐? 바로 동족대결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만약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 10.4선언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지금 남북간에는 통일까지는 안 된다 하더라도 연합이든 연방이든 동족으로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평화번영시대를 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못 하게 하고 거꾸로 돌린 것, 이것이 큰 범죄인 거죠.
그런데 지난 촛불에서도 그런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표자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촛불에서 이 문제를 충분히 이뤄내지는 못했죠. 그러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민족과 통일문제, 인권양심수, 국가보안법 문제에 손도 대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남아있는 한 촛불을 들어야 할 이유 역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촛불을 누가 언제 어떻게 드는가 하는 것은 특정한 사람, 기층의 다양한 이해, 이런 것을 뛰어넘는 국민 전체의 공감을 얻어야겠지요.”
- 전쟁위기가 깊어지는데 이 문제를 인권 측면에서 말씀해 주시죠.
“전쟁만큼 반인권적 상황은 없습니다. 전쟁은 대량살륙을 부르니까요. 트럼프는 인권에 대해 아예 생각이 없어요. 그런 사람이 미국의 최고 우두머리가 되어 있습니다. 트럼프 개인도 문제이지만 미국 자체가 제국주의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패권주의까지 하고 있잖아요. 미국은 침략과 국가이익에 반하는 어떤 양심세력도 무시하고 파괴하고 망하게 합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를 침공하고 그 나라 통치권자까지도 다 죽였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제국주의, 패권주의, 침략주의 나라입니다. 지금 이런 것을 하는 트럼프가 온다는데 반대해야죠.
‘완전한 파괴’라든가 ‘분노와 화염’, ‘폭풍전야의 고요’니 하는데, 이것은 대량살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저쪽(한반도)에서 난다는 거죠, 자기 나라에서는 안 난다는 거예요. 자기들만 죽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전쟁과 살육을 할 수 있는 나라, 현대판 홀로코스터의 주인공이 미국입니다. 이걸 반대하고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권입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