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원장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상대로 벌인 재판거래 중 ‘1호 협상카드’로 제시한 사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0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본 양승태 사법농단의 본질과 해법 토론회’에서는 법원행정처가 일부 공개한 ‘사법농단’ 문건을 토대로 두 사건과 관련한 박근혜 청와대-양승태 사법부 유착 의혹을 집중 조명했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발제자로 이재화 변호사, 조지훈 변호사, 토론자로는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 오동석 아주대 헌법학 교수,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사회는 김재연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민중당 대변인)이 맡았다.
조지훈 변호사 “‘국가관’이 없어야 할 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그 국가관을 같이 했다”
조지훈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시절 법원행정처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재판에 관여한 정황이 담긴 문건들을 소개했다.
2015년 7월 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면담할 때 준비한 ‘말씀자료’ 문건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혼돈‧경시돼온 국가관의 바른 정립 노력’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언급하고 이석기 전 의원에게 내란선동죄로 중형을 선고한 바를 대통령에 강하게 피력했다. 특히 ‘내란선동죄로 중형을 선고’했다는 부분은 굵은 글씨와 밑줄까지 표시돼 있다.
이에 대해 조 변호사는 “‘국가관’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국가관’이 없어야 할 법원이 박근혜 정부와 그 국가관을 같이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2015년 11월 19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도 언급했다.
해당 문건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에 ‘압박 카드’로 사법부가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적혔다.
특히 조 변호사는 이 문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 가장 먼저 언급된 부분을 주목했다. 이 문건에는 내란음모 사건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사건, KTX 승무원 정리해고 관련 사건,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에 비해 비중 있게 언급돼 있다.
조 변호사는 ‘내란음모 사건’의 시기적 배경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당시 공개수사가 됐을 때인 2013년 8월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소속직원들로 하여금 박근혜를 지지하는 등의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게 해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혐의로 진상규명 요구가 높아지고 있던 시점이었으며, ‘간첩조작’ 사건의 기획자로 평가받아온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란음모 사건’ 공개 이후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규탄 목소리는 일거에 여론에서 사라지게 됐고, 이후 헌정사상 최초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참석자들의 발언 자체만으로는 국헌문란의 목적이 인정되기도 어렵고, 발언 내용이 내란이라는 목적에 대한 집단적 의사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도 아니었다”며 이에 따라 ‘내란죄’ 적용은 무리라는 것이 당시 법조계 중론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이 전 의원 등 피고인들에 대해 모두 중형을 선고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조 변호사는 이 사건 형사 절차가 부적절했다는 점도 조목조목 되짚었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제116조는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는 타인의 비밀을 보장하여야 하며 처분 받은 자의 명예를 해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채널A’, ‘조선TV’ 등 종편방송 기자들과 동행해 이석기 전 의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고 이는 종편채널 뉴스를 통해 하루 종일 실시간 생중계됐다.
또한 내란음모 사건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의 인사과정도 수상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조 변호사는 “항소심 사건은 2014년 2월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로 새롭게 구성된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에 배당됐다. 이민걸 재판장은 법원행정처 주요 요직들을 맡아온 인물이었는데, 2014년 2월 해당 재판부 재판장으로 발령돼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이재화 변호사 “법관은 거래에 따라 정치적으로 심판한다”
아울러 이재화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제기된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재판에 양승태 사법부가 개입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며 “일부 공개된 사법행정처 작성 문건을 보면 이들은 해당 규정을 ‘법관은 정무적 판단과 권력과의 거래에 따라 정치적으로 심판한다’고 읽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문건에서 실제로 드러난 △비례대표 지위확인 소송에 사전 관여 △지역구 지방의원 의원직 상실 재판공작 모의 △정치적 이용도구로 활용한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 등을 언급하며 그 문건의 내용과 의미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청와대와의 합작품’, ‘재판공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선물’ 등의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 변호사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위확인 소송에 관여하거나 당사자를 사주해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등, 재판을 정치적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 사례는 비단 통합진보당과 관련한 사건만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양승태와 그 일당의 사법농단의 실체를 발본색원하고 관련자를 엄발할 때 사법부는 거듭날 수 있다”며 문무일 검찰총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비상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자로서 발언권을 가진 원희복 선임기자는 “양승태 사법농단은 곧 김기춘, 박근혜 정권의 본질과 같다. 사법부는 박근혜의 진보정당 말살에 적극 가담, 동조한 공동정범”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재판 거래는 동등하다는 느낌이 든다. 재판 거래가 아니라 양승태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에 ‘굴종했다’”고 규탄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대체적으로 두 발제자의 이야기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의 해법 모색과 관련한 의견을 내놨다. 박 대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는, 특별재판부와 특별 조사위설치,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오동석 아주대 헌법학 교수는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사법개혁과 관련, 결단을 내려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책 ‘저주 받으리라 법률가여! Rodell, Fred(로델, 프레드, 1986)’를 언급하며 “법률가들은 박근혜, 김기춘, 양승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 등의 낙타를 법이라는 바늘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다. 바늘구멍을 낙타로 만들려하지 않고, 낙타를 바늘구멍이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형법 상 국정농단 사범들에게 직권남용죄를 넘어서는 혐의를 적용할 수 없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법률가들이) 지금은 법이 아니라 주권자에게 복무할 때”라며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 사법개혁을 이뤄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