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노총 총파업 수도권 대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소리 높여 강조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3권이 봉쇄돼 있는 100만 교원과 공무원, 노조로 단결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250만 특수고용노동자, 노조는 고사하고 근로기준법 적용조차 배제돼 있는 400만 중소사업장 노동자가 있다”며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가 노조로 단결하고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ILO 핵심협약 비준 쟁취와 노동법 개정을 위해 일손을 멈추고 투쟁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국회를 향해 물었다.
“정부와 여당은 청와대는 과연 약속한 국정과제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고 있나?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나?”
“이번 정기국회마저 빈손으로 끝내선 안 돼”
“절박함으로 결단한 총파업”
이날 국회 앞 의사당대로엔 1만여 노동자가 일손을 멈추고 모였다. 언제 겨울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우비를 입고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국회와 정부에 차일피일 지연되고 있는 제도개혁과 적폐청산을 촉구했다.
이들은 주요 국가들이 자국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입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과 비정규직 철폐를, 노후소득보장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연금개혁을 촉구했다.
이날 총파업대회에서 외친 요구들은, 이미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를 위한 요구가 아니라, 그러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한 요구였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이들의 총파업을 이기적이라고 폄훼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국회까지 다다르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총파업 총력투쟁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몰두하고 있는 정부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기에 결단한 투쟁이다. 이번 정기국회마저 빈 손 국회로 끝내게 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결단한 총파업이다”
최경진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지부장과 용순옥 민주노총 서울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총파업 결의문을 통해 “노동존중은 점점 내팽개쳐지고, 대통령 약속도 하나 둘씩 휴지조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노동자의 요구가 여태껏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음에 분노한다”고 외쳤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분노한 노동자들
“노동자 요구는 수십년, 재벌기업 요구는 신속”
이날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경영계와 보수·경제매체의 말이 왜 거짓인지 설명했다.
먼저 나 위원장은 지난 10월 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조선, 건설, 정유화학 업체 등 노동시간 단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직후, 곧바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기로 한 점을 언급하며 “노동자들이 요구눈 수십 년이 걸려도 해결하지 않더니, 재벌 기업이 요구하니 신속하게 처리해 준다. 그러면서 선진국은 1년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실시한다고 얘기한다”고 꼬집았다.
이어 나 위원장은 한국과 선진국의 노동환경을 비교하며 선진국의 탄력근로제를 따라할 상황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300시간 내지 1700시간이다. 1일 10시간을, 주 52시간을 넘지 말아야 하는 등 월·연 단위 상한제 법들이 있다. 1일 11시간 휴식권이 보장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 노동시간이 2100시간에 이른다. 제대로 된 상한제나 휴식권조차 보장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진실을 감추며 사용자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나 위원장은 “우리 보건업은 (법으로 장시간노동을 허용하고 있는) 노동특례 사업장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병원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환자들의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동특례를 무력화 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가 탄력근로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사용자들이 주춤하기 시작했다”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린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뒷걸음질 치는 정규직화 정책에 분노한 노동자들
“제대로 된 정규직화 시행하라”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제대로 된 정규직’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전면파업에 나서고 있는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강사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섰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잡월드에서 아이들에게 직업 체험을 시켜주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간접고용을 통한 ‘무늬만 정규직 전환’이 아닌, 직접고용을 통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 측이 노동자 동의 없이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강행하고 있다. 41명의 비정규직 강사들은 이날부로 청와대 인근에서 집단 단식 농성을 시작하기로 했다.
최 위원장은 “오늘 조선일보가 와 있는지 모르겠다”며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언급했다.
“한국잡월드 상황과 관련해 조선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정규직이 고작 50명인 한국잡월드에서 무려 340명이 정규직을 요구하는 폭력을 쓰고 있다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다르게 얘기했어야 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의 진로설계를 담당하는 유일한 공공기관에서 고작 50명만 정규직으로 있었다니, 340명 모두 직접고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 대회 참가자들 무리에서 동의를 표하는 “네”라는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 최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은 돈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에게 똑같이 흘러간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위험한 일을 해야하나? 왜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차별받아야 하나?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해고의 고통에서 하루하루 아파해야 하나?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거짓정책을 깨부수는 것이어야 한다. 일터에서 자유롭게 노조를 할 수 있고, 다치지 않게 일 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고 일 할 수 있어야 하는 투쟁. 그래서 내 삶과 국민의 삶이 행복해지는 투쟁이어야만 한다!”
소외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하라”
홍순관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우리 주변에 노동자지만, 노조를 할 수 없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한탄했다. 그는 그 원인으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덤프트럭, 굴삭기, 화물, 그리고 학습지 노동자들이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된다”며 “특수고용직도 노조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권고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와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한 사안이다. 하지만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조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건설현장에서 덤프트럭과 굴삭기 노동자들은 툭하면 임금체불을 당하고, 화물 노동자들은 과로노동을 하지 않고선 대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제한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그럼에도 연장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은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고 노조를 만들어 봐야 소용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우린 특수한 권리를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마땅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 총파업에는 16만 조합원이 참가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한국GM,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현대모비스 등 전국 109개 사업장 12만8천여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했다.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등 1만여 명 노동자와 보건의료노조, 민주일반연맹, 비정규교수노조도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대회는 전국 14개 지역에서 열렸으며, 약 4만여 조합원이 파업대회에 참가했다. 수도권대회 대회에 앞서서는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등이 사전대회를 열고 보건의료인력법과 제대로 된 정규직화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