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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원 9천만 명, 중국공산당을 모르면 중국이 보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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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03 15: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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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원 9천만 명, 중국공산당을 모르면 중국이 보이지 않아요

오늘의 중국을 만든 공산당 1세대, 세기의 드라마 마오와 중국혁명사’ 50

금영재 이산아카데미 기획본부장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과 장정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가 시중쉰 習仲勳이다. 마오쩌둥이 홍군 紅軍을 이끌며 18개의 산맥을 넘어 12,500km의 장정을 마쳤을 때 남아있던 사람은 8천여 명에 불과했다. 출발할 때 86천여 명이었으니, 말이 좋아 장정 長征이지 실제론 도망전투였다.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거 스노 Edgar Snow가 소비에트 근거지를 찾아가 장정 자료를 얻어 보곤 이렇게 평가했다. “한니발의 알프스 원정 따위는 장정에 비하면 휴일의 소풍에 지나지 않는다.”

 

장정이 산베이(섬북) 지역에서 끝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류즈단 劉志丹과 시중쉰 習仲勳 때문이다. 거지꼴이 다된 홍군을 이끌고 산베이에 도착한 마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류즈단과 시중신은 자체적으로 홍군을 조직해 이미 산베이 22개현을 공산당 천지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중앙 홍군은 먹고 자며 병력을 확충하고 전열을 정비했다. 25천 리 장정이 5만 리 장정으로 되지 말라는 법이 없던 시절 얘기다. 근거지 살림과 지역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었던 시중쉰과 류즈단은 서북인민해방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팽덕회)를 매료시켰다. 펑더화이, 류즈단, 시중쉰은 서북야전군단의 연전연승을 이끈 아삼육이 된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마다 장제스 군을 격파해 홍군을 구원했던 펑더화이를 당시 마오는 나의 유일한 대장군이라고 추켜세웠다. 건국 후 중국 10대 원수 중 한 사람이며 부주석, 국방부장이었던 펑더화이는 군부 실력자였다. 심지어 한국전쟁 출병을 당 지도자들이 모두 반대할 때 펑더화이만 마오와 뜻을 같이 했다. 마오는 큰아들 마오안잉 (毛岸英)을 펑더화이 곁에 붙여 참전시켰다. 마오안잉은 미군의 네이팜탄 투하로 사망했고 마오는 시신을 북한에 묻으라고 한다.

 

왼쪽부터 펑더화이, 류즈단, 시중쉰

왼쪽부터 펑더화이, 류즈단, 시중쉰ⓒ바이두

신중국 건국 후 인민군 시찰을 갈 때마다 위대한 영도자, 마오 주석 만세 萬世!” 구호를 들은 펑더화이는 백 년도 못살면서 만 년을 살라고 한다. 허풍 떨지 말고 개인숭배 좀 하지 말라고 말하고 다녔다. 어쩌면 그때부터 펑더화이의 몰락은 예정된 건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준비기간을 줄이겠다며 실시한 대약진 운동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강철생산량을 늘린답시고 시골 대장간에 농기구, 쇠 젓가락까지 모아 아무데도 못 쓸 철을 제련했고, 집안세간을 모두 거둬 <인민공사>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장시성에선 치수 治水를 한답시고 농민들이 14만㎥ 의 흙을 나라 산을 옮겼다. 우공이산 愚公移山은 고사에만 존재했던 게 아니다. 비가 쏟아지자 산사태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준비 없이 시작한 대약진운동과 마오의 1인 독주를 비판하자 마오로부터 반당 군사구락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몰락한다. 문화대혁명 때 젊은 애들에게 쥐어터지며 집회장에 끌려 나왔을 때 그의 나이 68세였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의 운명도 비슷했다.

 

시중쉰은 덩샤오핑이 부활하자 복권된다. 광둥성 성장을 하며 <선전 경제특구>를 제안, ‘붉은 자본주의를 열었다. 아들 시진핑은 후진타오 총리 시절 동북3성을 낡은 공업지대에서 상전벽해의 첨단산업지대로 바꿨다. 지금은 일대일로 一帶一路로 160여 국을 줄 세우고 있다. 인프라 사업은 시진핑의 주특기다. 아버지나 아들 모두 벼락출세한 관료가 아니다. 지방현장에서 정치력을 검증받아 중앙으로 치고 올라간 실사구시형 지도자다.

 

누가 우릴 한솥밥 먹은 사람들이라 보겠느냐?”

 

중국지

중국지ⓒ인물과사상사

대란대치 大亂大治란 말이 있다. 크게 어지러워야 크게 다스린다. 지난 봄 홍준표 대선후보가 사용해서 그 뜻이 어지럽게 읽히지만, 원래는 천하대란 천하대치라고 마오가 좋아했던 문구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자 주석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마오는 사령부를 포격하라며 군중을 선동했다.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사회주의를 위한 연습 정도로 생각했다. 아내 장칭에게 쓴 편지에서 본심이 드러난다. “우파를 타도해야 한다. 7, 8년 이후에 또 한 차례 마귀, 요귀를 쓸어버리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후 또 여러 차례 쓸어버려야 한다.”

 

농민에게 군복을 입혀 나라를 얻었던 마오는 군대의 힘을 잘 알았다. 말과 글을 하는 지식인은 우습게 봤지만 군사정변은 극도로 경계했다. 우파 요귀를 쓸어버리려면 종규 鍾馗, 즉 거대한 귀신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봤다. 이 거대한 귀신은 중국을 개미지옥으로 끌어내렸던 문화대혁명, 바로 군중동원 사상투쟁을 뜻했다.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수정주의자로 숙청하는 마오의 모습에 질려버린 중국공산당의 대부 주더(朱德, 주덕)가 탄식했다.

누가 우릴 한솥밥 먹은 사람들이라 보겠느냐?”

 

장제스와 천하를 놓고 겨뤘을 때 싸움 귀신이었던 중국공산당. 건국 후엔 사회주의 판타지를 꿈꿨고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주자파로 몰려 맞아죽거나 자살해야 했다. 피해자는 중국당국도 집계하지 못할 만큼 많았다. 청일전쟁부터 문혁이 끝난 1976년까지 중국은 정상국가가 아니었다.

 

1949101,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은 건국을 선언하며 중국 인민은 일어섰다고 외쳤다. 그때의 일어남(站起)이 제국의 침략과 군벌지배로부터 떨쳐 일어선 중국을 의미했다면, 지금의 굴기崛起 (굴기:산과 같이 떨쳐 일어섬)는 세계패권을 다투는 초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을 의미한다. 오욕의 세월을 1세기나 견뎌 얻은 초강국의 기회를 중국인들은 놓치지 않는다. 중국의 애국주의 광풍엔 지금의 중국을 만든 곡절의 세월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 이 고단한 행군을 성공시킨 주인공은 어찌 됐건 중국 공산당이다.

 

세기의 드라마 중국지동영상 강좌로 탄생

 

질 수 없는 전쟁에서 진 장세스,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한 마오쩌둥,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덩샤오핑의 부활. 혹 『중국지』를 기억하는가? 중국공산당 창건 90주년을 맞아 짧은 시기 비밀 해제된 문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인도 잘 모르는 중국공산당의 기록이었다. 방대한 자료를 검증하며 쓴 책이『중국지』(현이섭. 2014)였다. 러시아 혁명은 알아도 중국혁명에 대해선 잘 몰랐던 대학생들과 중국진출을 하던 기업인의 필독서였다. ‘저주 받은 걸작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모두 팔렸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고 만다.

 

『중국지』가 동영상 강좌로 재탄생했다. 책으론 알 수 없었던 입체감 넘치는 세부적인 전투지도, 풍부한 사진 자료가 압권이다. 동영상 강좌 마오와 중국 혁명사’(50)는 본지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의 새 강좌다. 중국의 근현대사의 장면을 치밀하게 추적해 유려하고도 박진감 넘치는 동영상 강좌로 만들었다.

 

강사이자『중국지』의 저자인 현이섭 선생을 만났다. 언론인 현이섭은 광주민중항쟁 관련 검열에 반대해 해직되었다가「한겨레신문」민권사회부 인권 기자,「미디어오늘」대표이사를 거쳐 중국「헤이룽장신원(흑룡강신문)」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마오와 중국혁명사를 강의한 언론인 현이섭

마오와 중국혁명사를 강의한 언론인 현이섭ⓒ이산아카데미

질문 중국공산당 90주년 되던 해에 풀린 각종 자료를 기반으로 『중국지』를 집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답변 그때 전 하얼빈에 있는 흑룡강신문에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중국의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신화사통신, 공산당신문 등 이런저런 매체들을 검색하다 중국혁명과 관련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종전에 제가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 흥미롭게 봤어요. 처음에는 재밌어 그냥 읽기만 했지요. 그러다 관련 책자들도 사 보고요. 한국에 와서도 계속 자료 검색을 해 출력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A4 용지로 1만 장의 분량이 되더라고요. 책으로 쓸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고 그냥 보관만 하다 중국에 갈 때마다 자료 속 지역과 역사적 사실을 추적했죠. 중국을 15차례 갔다 왔어요. 그러다 어느 날 혼자 알기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능력도 생각지 않고 201171일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을 앞두고 부랴부랴 <미디어오늘>하나의 불씨 중국을 태우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어요. 그러다 주변에서 책으로 엮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중국지로 펴낸 겁니다. 최근에 애초 상-, 2권을 상--3권으로 분판해 개정판을 냈는데 마오쩌둥과 중국혁명 평석이란 부제를 달았어요.

 

질문 요즘은 젊은이들도 중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대중국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 공산당을 알아야 중국인과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답변 옆 나라에 체제가 다른 대형국가 사회주의 중국이 굴기(崛起)하고 있잖아요. 현재 미국과 함께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21세기 중반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초일강 국가로 발돋움한다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어요. 대형 국가로 떠오른 오늘의 중국을 알기 위해선 그들이 걸어온 과정을 들여다보면 중국의 실체를 좀 더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어요. , 이런 말도 있잖아요. 지피지기는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자신과 남을 정확히 알 때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이에 대처할 수 지혜와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당이 지배하고 통치하는 중국 정치시스템은 중앙지도자들은 음수사원(飮水思源), 즉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원천을 생각합니다. 근본을 잊지 않겠다는 겁니다. 신중국을 만든 혁명투쟁의 생성과 과정인 중국 현대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죠.

 

질문 무려 2달간 <마오와 중국혁명사> 강의하셨습니다.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답변 수강생들의 중국에 대한 이해와 지식수준이 높더라고요. 중국을 안 가본 사람들이 없고, 단순 관광에서 자신의 기호에 맞는 테마 관광을 즐기고 중국 현지에서 사업하시는 도전적인 분들도 계시고. 몇 분들은 중국 전문가들을 뺨칠 정도로 식견을 갖추고 있더라고요. 강의 내내 진지하게 경청하시고 깊이 있는 질문으로 되레 제가 배워야 할 처지에 놓일 때도 있었어요. 수강생 대부분들이 더 넓고 깊게 중국을 알아야겠다는 열정과 학습 태도로 강의 내내 빠지지 않고 참석해 놀랐어요.

 

하지만 워낙 방대해 짧은 시간 안에 핵심을 정리해 간단명료하게 말을 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해 무척 힘들었어요. 나중 동영상 편집된 자료를 보니 사진과 그래픽이 들어가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마오와 중국혁명사를 강의한 현이섭

마오와 중국혁명사를 강의한 현이섭ⓒ이산아카데미

질문 모든 정치권력의 다툼이야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그 스케일이나 기간, 양상을 보면 경악을 하게 됩니다. 이미 당내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마오가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답변 마오쩌둥은 소련의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인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소련을 마르크스-엥겔스-레닌 등이 지향하는 본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탈해 자본주의 길을 걷는 사회주의 수정 국가로 몰아쳤어요. 마오는 당시 중앙 지도부 1선에서 국가를 통치하고 있던 류사오치나 덩샤오핑 등의 국가운용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공산사회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과도노선의 통치 철학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극도로 경계하고 의심하게 된 겁니다. 중국의 얼굴이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한 거죠.

 

그럴 경우 간난신고의 혁명투쟁의 역경을 딛고 창립한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아류에 불과한 사회주의 수정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수정주의를 반대하고 방지하자는 판슈방슈(反修防修)에 목을 맨 거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혼신의 힘을 쏟아 몰아붙이다 실패한 삼면홍기 운동의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난 뒤 점차 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일종의 권력 금단현상의 포로가 되지요.

 

권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붙이와도 쉽게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무수히 볼 수 있어요. 무서운 권력의 양면성이죠. 마오쩌둥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마오가 천하대란 천하대치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워 자신의 특기인 대규모의 군중을 동원해 주자파로 낙인찍은 류사오치나 덩샤오핑 등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회수한 거죠. 마오는 애초 문화대혁명을 3년 안에 끝내려고 했어요.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발전되면서 되레 마오를 붙잡고 늘어진 거죠. 결과적으로 10년대 동란의 중국 최대의 비극이자 국가발전을 엄청 후퇴시킨 겁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죠.

 

질문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이 스스로 붕괴하거나, 쿠데타, 내전 등으로 전복되어 왔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땅덩이와 인구, 일당독재와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같은 모순점을 안고 있음에도 공산당은 여전히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합니다. 또 중국인의 애국주의나 시진핑 주석에 대한 지지도 열광적입니다. 이처럼 강한 중국이 태동하게 된 원인이랄까요?

답변 정치시스템, 역사, 문화, 사회구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죠. 현재 중국 인구 135천만 명에 공산당원이 9천만 명이 넘어요. 공산당원이 우리나라 인구 두 배 가량 될 정도로 공산당원이 사회 곳곳에 있어요. 보이지 않는 엄청난 통제사회입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면서 중앙집권제를 도입한 이래 청나라 때까지 2,000여 년 동안 봉건왕조가 이어져 오면서 이런 통치체제가 인민들에게 익숙해졌어요. 이런 정치제도와 함께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의 반식민지가 되면서 100년 동안 겪은 온갖 수모와 멸시, 이 시기를 빼면 지구촌 생성 이래 중국이 세계에서 최강의 선진국이었다는 자긍심의 훼손 등에 대한 반면교사도 체제유지에 한몫 하고 있을 겁니다.

 

시진핑 주석이 내세우고 있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하자는 중국몽()으로 대변되는 신 실크로드 국가발전 전략인 일대일로 등 정책을 실천하면서 국민정서를 한 대 묶는 애국주의 등도 가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중국공산당 통치가 분출하는 인민들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욕구, 인권문제, 소득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격차 해소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요.

 

마오와 중국혁명사를 강의한 현이섭

마오와 중국혁명사를 강의한 현이섭ⓒ민중의소리

질문 강의 초반에 중국을 감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실체를 그대로 직시해야 한국의 미래가 열린다는 말씀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유라시아와 관련한 질문입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규모와 최근 러시아의 움직임을 보면 한국만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답변 그럼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남북문제 정책에서 폐쇄적으로 운용해 대륙진출의 북방정책 발판, 그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중국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개발계획은 미래 경제발전의 보고입니다. 유라시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국가발전의 낙후를 면치 못할 겁니다.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을 내세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남북관계를 악화시켜 경의선 철도 연결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사라졌죠. 유라시아인푸라투자은행의 주요 참여국이지만 80국이 참여한 이들 국가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대륙에 연결되지 못하고 한반도 남단, 한구석에 고립된 섬처럼 갇혀있어요. 하루빨리 미래의 먹을거리인 유라시아 진출 사업에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질문 시 주석이 2014년 방한 시 연설을 보면 한 중간의 역사적 공통분모 찾기에 골몰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통일신라의 문장가 최치원 언급을 3차례나 했고, 또 조‧명 연합으로 왜에 대항했다는 대목에선 좀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수의 한국인은 불과 66년 전 펑더화이를 지원군 총사령관으로 한국전쟁을 치른 사실을 상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일제에 맞서 중국인민과 함께 독립항전을 했던 조선인 이야기가 양 국민 모두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중국과 한국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요?

답변 중국 4대 명산 중 하나인 주화산의 지장보살로 중국 사람들이 떠받들고 있는 신라시대의 왕손 김교각 스님을 들 수 있어요. 신라인 해상왕 장보고, 혜초 스님, 백제 사람으로서는 흑치상지, 그리고 당나라의 강역을 톈산 산맥을 넘어 획정지은 원정 왕 고선지 장군 등이 있어요. 일제 강점기 때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동북항일운동의 선봉장 양세봉, 주덕해 등이 있어요. 또 영화 황제 김영,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한락연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질문 마오가 지금의 중국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평할까요?

답변 글쎄요. 자본주의 보다 더 자본주의인 붉은 자본주의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면서 미국과 함께 세계를 경략하고 있으니 세계 최강국을 꿈꿨던 마오로서는 자신이 창건한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수정주의를 막는다는 미명아래 수천만 명이 죽는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만큼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할 겁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걷는 자들, 즉 주자파들을 원수로 생각한 만큼 자괴감도 클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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