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이미 설정된 방향으로 계속 추진하면 잘될 것이지만, 손쉬운 지름길을 택하게 되면 한반도 내 전력의 준비태세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난 8일 말했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동맹 현대화’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현직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 기자들을 만나 ‘전작권 전환 문제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주한미군사령관으로 공식 취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내놓은 공약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 기반 위에 전작권 환수 추진’을 명시했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은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 유엔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까지 4개 지위를 겸하는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반도 유사시 전작권을 행사하고, 주한미군 선임장교 자격일 때는 미 합참의장이나 미 국방부 대표 권한을 부여받는다.
브런슨 사령관은 “미래를 보는 수정 구슬이 없기 때문에 언제 전환될지 모른다”는 농담으로 전작권 전환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는 “공동으로 합의된 조건을 기초로 한 전작권 전환 계획이 있다”며 “기본운용능력(IOC)에서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까지 달성하는 데 충족해야 하는 특정 조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미는 완전운용능력을 검증하는 단계에 있다
그는 이어 “(전작권 전환을) 이미 설정된 방향으로 계속 추진하면 잘될 것이지만 손쉬운 지름길을 택하게 되면 한반도 내 전력의 준비태세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전환은 조건의 변화를 주지 말고 그동안 진행하던 방식대로 그대로 하자는 것이다.
한·미는 노무현 정부(2012년 4월17일)와 이명박 정부(2015년 12월1일) 시절 구체적인 전작권 전환 시기를 합의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등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 내용을 수정했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조건에 ‘정성적인 기준’이 담겨 미국 마음대로 조건을 까다롭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국내 전문가 사이에서는 미국의 국방예산 증액 요구 등에 대응해 조건 자체를 고쳐 전작권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광고
하지만 브런슨 사령관은 “이를 이행해 나가면서 그 조건들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 조건들은 설정한 이유가 있었고 지휘통제, 탄약, 능력 관련 조건들 모두 여전히 유효한 조건들”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외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인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군 전작권을 계속 갖고 있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