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열 박사, 6.15공동선언 16주년 기념 동경토론회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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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6-19 04:2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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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공동선언 16주년 기념 동경토론회
정기열 박사, 6.15 16주년 기념 동경토론회에서 발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이하, 7차당대회)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 중
III.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세계자주화를 위하여”에 대한 분석, 해석에 기초한 2016년 6월 오늘의 지구촌정세, 조미대결사, 조국통일운동 현주소
들어가는 말
서울 소재 <우리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곽동기 박사 같은 새세대 국제정세분석가는 최근 <자주시보>에 기고한 자신의 7차당대회 분석글에서 향후 조선이 “동북아정세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녘의 한층 더 높아진 국제적 지위가 “세계정세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게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곽 박사의 전망은 남녘과 해외 그리고 이웃과 세상 많은 사람들에겐 여전히 무슨 꿈나라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혹자는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라고까지 핀잔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 판단에 곽 박사 전망은 틀리지 않다. 타당하고 일리있다.
필자는 그의 전망보다 오히려 훨씬 더 앞서나간 전망을 하고 있다. 아래는 7차당대회 전후 조선을 둘러싸고 더욱 급변하는 오늘의 지구촌정세, 조미대결사, 조국통일정세에 대한 분석, 해석, 전망의 글이다. 곽 박사가 핀잔을 들었다면 필자 글은 아마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믿고 끝까지 소개한다.
세상 특히 제3세계 많은 나라들은 조선의 국제연대지원활동과 그에 따른 영향력이 동북아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익히 잘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 시작된 일이다. 1948년 9월 국가건설 직후부터 오늘까지 쉼없이 계속되는 일이다.
몇가지 대표적 예를 들자. 신생국가로 갓 태어난 직후부터 조선은: 1) 중국혁명 막바지(1948-49년) 미국에게서 현대적 무기를 지원 받는 장개석에게 고전을 겪던 혁명군에게 무기, 탄약을 선뜻 지원한 것을 시발로; 2) 1960-70년대 베트남민족해방전쟁; 3) 반세기 넘게 계속되는 쿠바혁명; 4) 1980년 이슬람혁명 뒤 오늘 중동의 반제자주군사강국으로 일떠선 이란혁명; 5) 지난 4년 나라의 2/3가 피바다에 잠기면서도 러시아, 이란, 레바논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으며 한편에선 비록 제한된 역량이지만 지난 수십 년 꾸준히 키운 자신의 반제자주역량에 기초하여 미국이스라엘 주도의 침략전쟁을 멈춰세우고 있는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국제연대와 지원활동, 영향력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의 제3세계 나라들에게 계속됐다.
2차대전 뒤 제3세계나라들에서 제대로된 민족해방운동과 반제자주사회주의투쟁을 전개한 나라(혁명정당, 혁명무장조직 포함)치고 조선의 직간접 지원(군사역량, 무기, 탄약 등)과 지도(교육, 과학, 농업기술 등)를 받지 않은 나라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90년대 중반 김일성 주석 생존 때까지 국제(반제자주)비동맹운동권에서 조선의 역할, 지위, 영향력이 한껏 높았던 것은 익히 세상이 잘 아는 이야기다.
서방세상은 그러나 이에 대해 전혀 몰랐다. 세상언론이 조선의 범세계적 국제연대지원활동과 반제자주사회주의투쟁사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신 끝없는 왜곡, 거짓, 조작으로 북에 대한 악마화선전을 일삼았다. 그러나 조선의 국제연대활동과 지원, 영향력은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잠시 주춤했던 때를 빼고 범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된 조선의 반제자주위업 곧 “세계자주화위업”을 위한 투쟁은 의연히 계속됐다.
혹 누군가는 6.15시대 자주평화통일문제를 논하며 왜 조선의 반제자주사회주의투쟁사 이야기부터 대화를 시작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세상언론이 70년 철저히 입다문 조선의 세계반제자주사회주의위업이 7차당대회를 거치며 온세상에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옹글게 드러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최고지도자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를 언급하며 왜 동시에 ‘세계자주화위업을 위하여’란 또 하나의 옹근 주제를 갖고 길게 발언했는지 세상은 많이 의아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둘이 서로 무슨 관계를 갖는지 궁금했을 수 있다. 아마도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일 것이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와 ‘세계자주화를 위하여’
세상은 조국통일운동과 세계자주화문제가 서로 무슨 관계인지 그것이 왜 서로 연결되어 함께 등장한 것인지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 남북해외코리안들의 자주평화통일운동이 범세계적 차원에서 70년 계속된 조선의 세계자주화위업과 서로 직결된 것임을 세상은 아마도 처음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평화통일은 물론 세계자주화위업을 위해 북녘동포들이 70년 어떤 희생을 치르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세상은 더더욱 알 길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세상은 7차당대회를 통해 남북해외코리안들의 자주평화통일운동과 북녘동포들의 세계자주화위업이 어떤 상관성을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비로소 조금이나마 더 깊이 깨닫게 된 기회로도 되었을 것이다.
7차당대회 기간 40여개 넘는 나라들에서 모두 170여 명이 넘는 외신기자들이 평양으로 몰려왔다. 대영제국 시절부터 제국주의최대최장언론인 BBC을 선두로 CNN, CCTV, RT, NHK 등 동서양을 대표하는 주요 최대주류기업언론들과 인터넷언론시대 중요한 독립언론매체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내노라는 언론은 모두 몰려온 것 같다. (참고로 평양 순안비행장 도착 때부터 공항직원들에게 안하무인으로 행세하며 체류 기간 내내 왜곡과 악마화를 일삼던 영국BBC 기자가 취재 도중 쫒겨난 사건은 익히 세상에 잘 알려졌다. 그는 추방되기 전 ‘사과문’을 썼다. BBC 같은 대표적인 서방언론매체들의 오만방자한 제국주의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천지 어디서도 그와 같은 대접을 받은 적이 아마 익히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기를 빈다.)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는 따라서 가히 온 세상이 숨죽이며 지켜봤다 평가해서 무리가 없다. 과언이 아니다. 이것 역시 아마도 세계언론사에 전대미문 사건이 아닐까 싶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세상 그 어느 정당도 세상 거의 모든 주류언론들로부터 그런 ‘초미의 관심대상’(?)이 된 적이 없었을 것 같아서다. 악의에서건 선의에서건 세상주요매체들이 7차당대회에 보인 높은 관심과 반응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는 그들에겐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 같다. 3시간이 넘는 긴 연설이었다. 쿠바 카스트로 위원장 연설도 길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카스트로 위원장 연설은 7차당대회 기간 온 세상이 지켜본 김 위원장 연설과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 연설은 조그마한 어느 제3세계국가 지도자의 연설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 연설은 오늘 수소탄보유국으로 70년 조미대결사를 완결시켜가는 우주핵강국 최고지도자의 연설이었다. 세상은 무엇보다도 사업총화보고서에서 조선의 최고지도자가 왜 자주평화통일과 세계자주화문제를 동시에 언급했는지 무척 궁금했을 것 같다. 한편 세상 대부분 언론은 3시간 넘게 계속된 사업총화보고가 김 위원장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온 세상에 널리 각인시킨 사건이었다는 평가에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세상천지에 그 사실을 제일 먼저 확인시켜준 사람은 그런데 다름아닌 중국국가주석이었다.
김 위원장 연설은 자신의 위상을 세상에 각인시킨 것은 물론 세계반제자주사회주의투쟁에서 세상이 익히 모른 조선의 70년 세계사적 역할, 지위, 위용, 영향력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깊이 깨달아 알도록 확실히 도왔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동시에 70년 천겹만겹의 상상키 어려운 도전과 시련을 뚫고 오늘 7차당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조선로동당’의 모습에서 세상 그 누구도 함부로 범접못할 조선의 한껏 높아진 위상, 존엄 또한 경험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5월 8일 8시 제일 먼저 도착한 중국국가주석의 축하문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축하문사건 약 한달 뒤인 6월 1일 인민대회당에서 조선고위급 대표단을 맞은 시 주석의 환한 얼굴을 통해 조선의 한껏 높아진 국제적 지위와 위상은 온 세상에 다시 한번 더욱 깊게 각인됐다.
6차당대회 이후 36년 특히 쏘련방-동구권사회주의 붕괴 뒤 사반세기 인간이 상상키 어려운 천겹만겹의 엄혹한 정세를 뚫고 7차당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조선의 위용은 오늘 동북아는 물론 지구중심에 우뚝 선 모습이다. 과언이 아니다. 정녕 그렇다. 7차당대회 앞서 진행된 “70일 전투”와 함께 조선이 (사업총화보고에 언급된 것처럼) “총결(36년) 기간 … 특히 자주의 기치,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반제반미투쟁의 전초선을 지켜선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한 “미제국주의자들”을 세상면전에서 완벽하게 무릎 꿇린 사건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다.
동북아는 물론 21세기 지구촌정세에서 조선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따라서 크게 무리가 없다. 틀리지 않다. 4반세기 중러가 갈지자행보하는 동안 발생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1세기 지구촌정세 현주소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그러나 중국에서만 나타나고 있지 않다. 70일 전투 기간 케리 국무장관이 극비리에 조선을 찾고 이어 리수용 당시 외무상과 뉴욕에서 극비회동 했다는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7처당대회 개최 직전엔 미국가정보국장까지 서울에 쫒아나가 평화협정체결을 언급했을 정도다. 최근 몹시 바빠진 북경, 워싱턴 모습에서 세상은 보다 더 구체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유여하를 막론코 오늘 국제무대에 우뚝 선 변화된 조선의 위상은 오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 모습은 이미 21세기를 대표하는 중요한 시대상징 가운데 하나다.
7차당대회는 70년 극한의 엄혹한 정세를 뚫고 오늘 의연히 지구중심에 우뚝 선 조선의 높아진 국제적 지위와 국력을 웅변하는 위대한 시대상징이었다고 생각된다. 조선의 위상은 오늘 그 누가 부정한다고 부정되는 춤추는 위상이 아닌 것이다. 그 위상은 조미대결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최근 동북아정세 핵심에 우뚝 선 조선수소탄시대가 안받침하는 위상이다. 세상 모든 정세변화는 힘에 기초한 것이다. 그렇다. 오늘 격동하는 지구촌정세와 맞닿은 동북아정세는 인류사 현존한 최극강의 힘 곧 조선수소탄이 강제하는 정세변화다.
오늘 전략적 차원에서 전혀 새로운 단계로 빠르게 발전하는 조러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그 또한 조선의 변화된 위상과 무관치 않다. 90년대 초 패망한 뒤 2-3류 국가로 전락했던 조국을 4반세기 만에 존엄 높은 지구촌강대국으로 우뚝 일떠세운 3선의 푸틴 대통령이야기가 대표적 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시작된 김-푸의 특별한 인연을 말한다. 오늘 급부상한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와 위상은 2000년 7월 시작된 김-푸의 특별한 ‘선군인연’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편 개혁개방 시기 끝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여전히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중국공산당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 언급했듯 6월 1일 조선고위급 대표단을 맞이한 시 주석의 환한 얼굴 역시 7차당대회 전후 한껏 더 높아진 조선의 국제적 지위, 위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 중러미일과 서방국가들을 포함 세상 많은 나라들의 조선에 대한 태도변화는 7차당대회 전후 더욱 바빠지고 있다. 조선 또한 고위급대표단을 세상 여러 곳에 동시다발로 내보내고 있다. 7차당대회 뒤 달라진 조선의 위용과 모두 무관치 않은 움직임들이다. 달라진 조선의 위상 관련 오늘 물밑에서 제일 바삐 움직이는 것은 그러나 예상대로 미국이다.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여전히 미국눈치 보느라 바쁘지만 조일관계 문제에서 ‘낙동강오리알’ 신세 되지 않으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 또한 엿보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뒤 정치경제사회군사과학문화예술자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양국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 강화하려는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노력이 낳은 하나의 구체적인 결과가 있다. 아주 최근 예다.
4월 말 3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발사 뒤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의 역학구도 변화
대기권재진입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특히 미국에 알리기 위해 조선은 4월 말 3차례에 걸쳐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발사를 비공개리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상대로 워싱턴, 동경 특히 서울은 ‘무수단’이니 뭐니 주장하며 북의 ‘탄도미사일’ 실험발사가 모두 “실패했다”는 엉터리보도로 대응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들의 “실패설” 보도를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수백 개에 달하는 미국의 최첨단 군사위성 중 그 어느 것도 자신들의 실패주장을 규명할 근거를 내놓지 못한 것이다. 최첨단우주공학시대에 “실패”라는 추측이 그들의 유일한 근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4월 당시 의장국인 중국을 부추겨(혹은 꼬드겨/속여) 안보리의장 차원 규탄성명서 채택을 밀여부쳤다.
그때도 중국은 미국속임수에 넘어가 또 다시 선뜻 규탄성명서 채택에 동의하는 또 하나의 전략적 우(愚)를 범했다. 그러나 규탄성명서는 당시 안보리 의제로조차 상정되지 못했다. 러시아가 제동을 건 것이다. 성명서 초안은 당시 러시아대표부 설합에 오래 잠겨있었다고 한다. 미국이 한가지를 동의하면 성명서채택에 동의하겠다며 러시아가 버틴 것이다. 즉 성명서에 조선의 주장도 함께 실려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면 조선도 핵실험을 중지하겠다고 제안했는데 미국이 들은 체도 않고 핵전쟁연습을 강행했다는 사실도 포함시켜야 안보리성명서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이라며 버텼다는 것이다.
4월 말 안보리의장 차원 규탄성명서 논란 관련 제일 큰 충격을 받은 국가는 중국이었다고 한다. 조선문제에서 중국이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누린 배타적(독점적) 영향력(leverage)이 순간에 러시아로 넘어가버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에 놀아나 조선문제에서 또 다시 줏대, 원칙없이 놀다 결국 혼자 ‘나쁜놈’ 혹은 ‘바보’처럼 되고만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5월 8일 7시 7차당대회에서 새롭게 선출된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 앞으로 정확히 1시간 뒤인 8시 중국국가주석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뜨거운 축하문을 보낸 배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4월 말 비공개실험발사 관련 몇가지 의문이 뒤따를 수 있다. 미국이 문제 삼은 3번에 걸친 조선의 4월 말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발사가 만약 성공이었다면 “조선은 왜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다. 답은 그러나 비교적 간단할 것 같다. 복잡하지 않다. 비공개실험은 무엇보다 먼저 중국을 배려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공개가 아니었을 경우 그것은 이유여하를 막론코 지난 3월 2270호 결의안 채택에 앞장서며 조선과 궁색한 처지에 빠진 중국을 또 다시 미국쪽으로 더욱 밀어부치는 하여 결과적으로 미국의 조중러이간책과 그들의 동북아각개격파전략을 돕는 조선 자신의 전략적 우(愚)가 또한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더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조선에게만 아니라 인류전체에 그보다 더 큰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문제에서 오늘 비록 전략적으로 미국과 함께 잘못서있다 하더라도 중국을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끝없이 견인하고 설득해야할 책임, 역할은 누구보다도 중국의 이웃형제들인 조선, 러시아에게 있다. 중국을 배려한 것이 조선이 4월 말 3번에 걸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발사를 비공개로 진행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비공개실험은 중미대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국을 돕고 한편 조중관계에서 궁색한 처지에 있는 형제의 낯을 세워주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비공개실험은 당시 꼬일대로 꼬인 조중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 다른 한편으론 어려워진 조중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도 활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개실험은 한편 중국만 아니라 조러관계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충분했었다. 따라서 큰 소란없이 미국에 보낼 메시지만 정확히 전달하는 비공개방식이 최선의 방안이었을 것이다. 4월 말 이후 전개되는 동북아정세는 비공개실험이 당시 조선이 목적한 모든 것을 달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일한이 세상에 내보낸 “무수단미사일 실험발사 모두 실패”라는 엉터리거짓보도와 다른 정반대 현상이 이후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 현상은 먼저 미국정부 쪽에서부터 나타났다. 4월 말 실시한 비공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발사가 모두 실패했을 경우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미국정부에서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실패보도가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조작된 정보들에 기초한 거짓보도였던 것이다. 미국정부가 보인 일련의 행태는 대기권재진입기술과 동시에 EMP(핵전자기기탄) 폭발실험까지 보여준 조선이 실험한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정보판단을 가능케 한다. 비공개 “퍼포먼스”(Performance)를 통해 조선이 미국에 보낸 모든 메시지가 그들에게 확실하게 가닿았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참고로 4월 말 비공개실험 관련 정보들은 5월 중순 경 세상에 처음 흘러 나왔다. 첫 정보는 비공개실험 한달 전인 3월 말 케리 국무장관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했다는 정보다. 물론 이에 대해 아직 양국정부 다 아무런 논평이 없다. 비공개미확인 정보는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3월 말 케리의 극비방문과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또 다른 정보가 5월 중순 세상에 흘러나왔다. 4월 18일-20일 케리가 리수용 당시 외무상과 뉴욕에서 극비회동했다는 정보다. 그러나 이후 조미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면 3-4월 조미간 두차례 진행된 고위급 극비회동에선 평화협정체결 관련 아무런 결과도 도출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4월 말 3차례의 비공개 대륙간탄도탄미사일실험이 3-4월 진행된 두차례의 극비 조미고위급회담 결렬에 대한 조선의 후속타였다는 해석은 따라서 틀리지 않다.
분명한 것은 비공개실험 직후 미국정부가 무슨 이유에서건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조선의 3차례 비공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이 모두 성공했다는 분석은 무엇보다 워싱턴의 부산한 움직임에서 감지됐다. 4월 말 비공개실험 직후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뉴욕타임즈>였다. 5월 2일 자 기사를 통해 미국의 대표적인 주류매체가 행정부에게 일종의 난데없는 훈시를 둔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조선이 평화협정 대화 제의시 미국이 응해야 한다”고 훈시한 것이다. 정확히 이틀 뒤 5월 4일 (그러니까 5월 6일 7차당대회 개최 직전) 이번엔 제임스 클레퍼 미국가정보국장이 부랴부랴 서울을 극비 방문했다. 그가 한 일은 평화협정체결 관련 구두통보를 한 것뿐이다. 조미대결 관련 3월부터 5월 7차당대회 직전까지 발생한 일련의 모든 움직임은 4월 말 비공개리에 진행된 대륙간탄도탄 발사실험이 모두 성공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4월 말 조선의 비공개실험발사는 따라서 대단히 지혜롭고 슬기로운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이 만약 공개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미일한을 선두로한 세상 모든 반북세력은 두손 들고 환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불문가지다. 그들이 손뼉치고 좋아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봐라, 우리가 맞지. 조선이 지역과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제일 위험한 존재지, 그러니까 또 다시 유엔제재해야지’ 등 외치며 더욱 기세등등해졌을 것이 정녕 눈에 선하다. 공개실험이 또 다시 세상과 이웃을 요동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7차당대회 개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 주변 모든 환경을 더욱 곤란케할 것이 명백한 조건에서 공개로 실험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계속)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와 “세계자주화를 위하여”에 대하여
2016년 6월 16일
I. “사업총화보고” 중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에서 요약, 발췌
“장장 70여년 동안이나 외세에 의하여 분렬의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민족의 수치 …·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평화보장과 련방제실현, 이것은 조국통일3대헌장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우리 당의 투쟁방침 …
조국통일3대원칙과 6. 15공동선언, 10. 4선언…
조국이 통일되면 우리나라는 8천만의 인구와 막강한 국력을 가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민족의 강의한 정신과 뛰여난 슬기로 세계를 앞서나가는 선진문명국, 동북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정의의 강국...”
“세계자주화를 위하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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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국주의자들은 특히 자주의 기치,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반제반미투쟁의 전초선을 지켜선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 자주정치, 선군혁명령도로 …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반공화국압살책동과 지배주의자들의 압력을 단호히 짓부시고 …
수소탄까지 보유한 … 책임있는 핵보유국, 주체의 핵강국… 사회주의의 보루, 반제자주의 성새, 정의와 진리의 대변자 …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로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자위적인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것이며 …
사회주의기치, 반제자주의 기치… 세계자주화위업실현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 세계혁명을 추동하는 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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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주변관계가 어떻게 바뀌든 자주, 선군, 사회주의의 불변침로를 따라 곧바로 나아갈 것이며 자주와 정의의 수호자로서 세계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
II. 최근 동북아정세 관련 조선, 중국, 미국정부 주요인사들의 조미대결 관련 동향 정보들
2016년 3월 말 미국 대북지원단체 중 하나인 <유진벨재단>이 결핵약지원품을 싣고간 화물비행기를 이용 케리 국무장관 평양 극비 방문했다는 미확인 비공개 정보가 방문 약 한달 뒤인 4월 말 경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4월 21일 유엔기후협약 연설 일정에 앞서 4월 18일 뉴욕에 도착한 리수용 당시 외무상을 공항에서 케리 국무장관이 직접 맞아 공항귀빈실로 이동한 뒤 이후 이틀간 이름 불명의 호텔로 이동 극비 회동했다는 미확인 비공개 정보 역시 4월 말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상 대부분 언론의 미사일실험발사 실패보도와 달리 조선은 비공개리에 4월 말 3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모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 그것의 주요한 목적은 ‘조선에 대기권재진입 기술 있다, 없다’는 세상의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3발 모두 시험에 성공”했다는 메시지는 그런데 미국에 정확히 전달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시험발사한 탄도미사일 3발 중 1발은 핵전자기기탄(EMP)이었다. EMP탄은 파괴력이 제일 크다는 위치인 “35km(?)” 상공에서 폭파시키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4월 말 3발의 성공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뒤] 5월 2일 <뉴욕타임즈> 북이 “평화협정 대화 제의시 미국 응해야할 것”이라는 기사를 게제했다;
제임스 클레퍼 미국가정보국 (NSA) 국장5월 6일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개최 직전인 5월 4일-5일 이틀간 서울 방문 조미간 “평화협정체결” 가능성 “통보”;
2013년 5월 최룡해 당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의 공식방중 뒤 3년 만에 처음으로 5월 30일 – 6월 1일 리수용 조선로동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한 ‘고위급 대규모(40명) 대표단’ 중국 공식방문(국가정상급초대소인 조어대[낙시터] 체류);
리 부위원장은 5월 30일 중국공산당 신임 쑹타오 대외연락부장과의 대담에 이어 다음 날6월 1일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시진핑 주석과의 대담에서도 조선의 “병진(경제, 핵)로선”에 대해 재천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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