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270] 북중, 북러관계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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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1-09 18:5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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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270] 북중, 북러관계의 변화와 우리의 과제 ⑧
(이어서)
3) 철학 전쟁
수십 년 지속된 북한과 미국 대결에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북한과 미국은 대외 정책이 다르고 역사도 다르며 체제도 다르지만 더 근본에는 사람에 관한 철학이 다르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은 사람에 관한 철학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 미국의 철학
미국은 사람을 나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로 본다. 이런 관점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영국의 청교도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이 1620년 정착해 만든 나라다. 물론 그 13년 전인 1607년과 1609년 영국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보낸 영국인들도 건국의 뿌리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일종인 청교도가 미국에 큰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1900년대 초 미국의 인구조사에서 미국인의 98%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하였으며 2007년 조사에서도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78.4%를 차지하였다.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해도 기독교는 미국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얹는 전통도 있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구원이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있기에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지만 예수를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다. 원죄란 신이 만든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죄를 말한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원죄로 인해 사람은 죄를 지을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계속 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이런 기독교의 관점에서 사람은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다. 신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신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신에 의해서만 죄를 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힘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더 강한 존재를 찾게 되고 거기에 기대야 안정감을 찾는다. 신앙의 세계에서 강한 존재는 ‘신’이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권력’, ‘돈’, ‘핵무기’ 등이 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람은 강한 존재, 힘이 센 존재에 굴복하고 순종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 따라 미국은 힘으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긴다. 정치 체제도 힘 있는 사람이 주도해야 하고, 약소국은 강대국에 복종해야 하며, 세계 질서도 가장 힘이 센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미국의 견해다.
따라서 미국은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고 경제 제재로 압박하면 당연히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 여겼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부터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했다.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1950년 11월 30일(현지 시각, 아래 동일) 기자회견에서 “언제나 핵폭탄 사용에 관해 적극적으로 고려해 왔다”라고 하여 한국전쟁에 핵폭탄을 사용할 수 있음을 선언했다. 이런 미국의 핵위협은 전황이 불리할 때마다 반복되었다.
미국은 단순히 위협용으로만 핵무기 사용을 언급한 게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6월 25일 저녁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서 열린 첫 전시 고위 고문 회의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 극동 공군기지를 제거할 수 있는지 물었고 호이트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핵폭격을 하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트루먼 대통령은 구체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로저 딩만(Roger Dingman), 「한국전쟁 중의 핵외교(Atomic Diplomacy during the Korean War)」, 『국제 안보(International Security)』 13권 3호(겨울, 1988-1989), The MIT Press, 55~56쪽.) 소련을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한국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후 미국은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북한을 대상으로 핵공격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1950년 7월 28일 전략핵폭격기 B-29를 괌에 전진 배치했으며, 12월 24일에는 아서 맥아더 사령관이 26개 목표 지역이 담긴 핵공격 계획안을 제출했다. 1951년 10월에는 신형 핵폭탄 조립, 투하 능력을 갖추기 위한 허드슨항 작전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B-29가 북한 상공에서 모형 핵폭탄 투하 훈련을 진행했다. (「미국, 6·25 당시 핵공격 최소 20차례 논의했다」, 노컷뉴스, 2021.6.25.)
정전협정 체결로 한국전쟁이 중지된 후에도 미국은 북한을 겨냥한 핵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1953년 8월 20일 미 전략공군사령부가 공군사령부에 보낸 계획(OpPlan 8-53)에는 북한이 적대행위를 재개할 경우 중국, 만주, 북한에 대량의 핵폭격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1956년 1월 6일 국무부-국방부 합동회의에서 맥스웰 테일러 육군참모총장은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도 있다”라고 발언했으며 같은 달 30일 라이먼 렘니처 유엔군 사령관은 “남북 군사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갖는 게 매우 바람직하다”라고 미 육군부에 전문을 보냈다. 같은 해 9월 아서 래드포드 미 합참의장이 찰스 윌슨 미 국방부 장관에게 “핵무장이 지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극비 전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1956년 11월 1일 작성된 ‘극동군사령부 운용절차’에는 의정부와 안양 2곳이 핵무기 예비기지로 지정되었고 일본에도 12곳이 지정되었다.
1957년 5월 14일 존 덜레스 미 국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더욱 현대적이고 더욱 효과적인 무기를 남한에 배치할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고 윌슨 장관은 “이 무기에는 재래식 성능과 핵능력을 겸비한 이중 성능 무기들이 포함”된다고 하였다. 즉,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공개한 것이다.
1957년 7월 15일 주한미군이 핵무장에 착수한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1958년 1월 29일 핵무기를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그해 2월 3일 주한미군 1군단 비행장에서 핵대포와 MGR-1 어네스트존 핵미사일을 공개했다. 이후 주한미군에 배치된 핵무기 수량은 계속 늘어 1967년 무렵 950개로 정점을 찍었다. (「핵무기, 평택·군산·대전·오산 등에 950개 배치」, 노컷뉴스, 2021.9.27.)
미국은 한반도에서 실제 핵무기 사용을 위한 실전 훈련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예를 들어 군산에 주둔한 태평양공군 제7공군 예하 제8전술비행단이 1991년 1~6월 훈련한 내용을 담은 미 공군 비밀문서에는 공대지 핵공격 훈련을 했다고 나온다. 훈련 내용은 조종사들이 여러 종류의 핵공격 수단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기초 훈련과 조종사 1명이 공군기를 타고 단독으로 핵무기를 투하하는 훈련이었다. (노컷뉴스, 위의 기사)
핵공격 훈련을 했다면 당연히 핵공격 계획도 수립했을 것이다. 미국의 일급비밀 보고서인 「1959년에 대비한 핵무기 소요 연구」에는 미 전략공군사령부가 1956년 분류한 공격 목표가 나오는데 북한에는 총 28개 도시 90개 이상 타격 지점이 있었다. 여기에는 공격 대상으로 분류한 근거와 구체적인 좌표, 어떤 핵무기를 얼마나 사용해야 하는지 등 상세한 계획이 들어있어 즉각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미국의 ‘일급 비밀’ 북한 핵공격 계획…90개 타격목표 갖고 있어」, 중앙일보, 2017.9.11.)
미국은 북한을 핵공격 대상으로 명시한 여러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0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핵태세보고서(NPR)에는 북한을 ‘비핵국가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 대상에서 제외해 북한을 핵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다.
또 미국은 시시때때로 전략핵폭격기를 북한 인근까지 날려 보내 북한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십 년 동안 미국은 북한을 핵으로 위협했지만 미국의 기대와 달리 북한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북한이 미국과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북한의 철학
북한은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 있는 강한 존재로 본다. 이런 관점은 주체사상에 나타나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이 있는 존재라고 한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말은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뜻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라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주성과 세상을 자기 요구에 따라 변화시키려는 창조성을 가진 존재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과 달리 사람을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물론 북한도 ‘돈’, ‘핵무기’ 같은 물질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존재는 모두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므로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북한은 자기 힘으로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는 자립을 강조한다.
특히 북한은 사람에게 있어서 사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행동은 다른 동물과 달리 본능보다는 사상의 작용이 결정적이며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되는 것도 사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사상, 신념을 통해 사람이 자기 목숨도 걸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존재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북한은 사상교육과 의식화, 조직화를 중요하게 본다.
북한은 국방력에서도 무기보다는 무기를 사용하는 병사의 사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사상강군’을 가장 강조한다. 북한이 ‘핵무기보다 강한 것은 일심단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면 북한이 미국과 전혀 다르게 북미 대결을 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은 핵무기, 돈 등 물질적 힘으로 북한을 이기려고 하지만 북한은 반대로 사람의 힘으로 미국을 이기려고 한다. 미국이 핵무기로 북한을 위협하고 경제 제재로 압박을 가할수록 북한은 국민의 사상을 동원해 대응해 왔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북한은 미처 대국민 사상교양을 충분히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11월 30일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자 북한 국민 속에 핵폭격 소문이 돌았다. 불과 5년 전 핵폭격을 당한 일본의 참상을 떠올린 사람 중 일부는 핵폭격을 피해 1.4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에서 사상운동이 충분히 진행되자 미국의 핵위협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이 핵위협을 하면 오히려 반미 궐기대회를 하며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군대에 탄원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올해 3월에도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자 북한에서는 수많은 청년의 입대와 복대(제대 후 다시 군대에 가는 것) 탄원이 이어졌다. 당시 노동신문은 “핵전쟁 도발 책동(한미연합훈련을 지칭)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적개심이 전국 각지에서 활화(불꽃이 세고 잘 타는 불)처럼 폭발되는 속에 (입대를 탄원하는) 청년들의 대오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라며 입대 탄원 열풍을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17일 하루에만 80여만 명이 탄원했고 19일까지 총 140여만 명이 탄원했다고 한다.
북한은 대북 제재 역시 사상의 힘으로 대응했다. 사상 최고 수준의 경제 제재를 장기간 겪다 보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은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 혼란을 겪는다. 그러나 지금껏 북한에서 민심이 동요한다거나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는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갈수록 단결하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2019년 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자 북한 내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그리워하며 귀국에 맞춰 ‘승리의 보고’를 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직장에 나와 일을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에서는 자기 단위를 모범 단위로 만들어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를 받는 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 있는 보도다.
● 철학 전쟁의 결말
북미 철학 전쟁의 결말은 인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철학은 금방 전파될 수 있어 누가 이기냐에 따라 향후 철학의 흐름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 체제의 변화를 부르며 인류 역사도 바꿀 수 있다. 마르크스 철학이 20세기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만약 미국이 승리한다면 세계는 물질을 중시하는 사회, 힘을 중시하는 사회,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갈 것이다. 이는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가 더욱 강화되는 방향이다.
반대로 북한이 승리한다면 세계는 사상을 중시하는 사회,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로 갈 것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전 세계에 더욱 퍼질 수도 있다. 1970년대 아프리카와 동남아 지역에는 북한의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재현되고 남미, 유럽 등 다른 지역까지 확대할 수도 있다. 또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타협하고 복종하는 노선을 버리고 북한을 따라 대미 강경 노선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는 더욱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북한의 승리는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과도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소련의 정치 철학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물질 중심의 철학이었다. 사회를 바라볼 때도 물질적 토대가 사상 등 상부구조를 규제한다고 보았으며 역사 발전의 동력을 생산력의 발전에서 찾았다. 따라서 소련은 체제 대결도 생산력의 대결로 이해했다.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다는 것을 보여주면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로 바뀔 것이라 본 것이다. 쉽게 말해 국내총생산(GDP) 수치 경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미소 대결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세계적으로 인간은 나약하고 물질에 굴복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한국에서도 진보적인 인사들조차 소련의 패배를 보며 이런 생각에 동조하였다. 당시 대표적인 진보 인사였던 리영희 선생은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할 때 크게 낙담하며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다. (정범구, 「치열하되 인간적이었고, 비판적이되 냉소적이지 않았던…」, 리영희재단, 2023.2.1.)
소련과 달리 북한은 강국의 징표도 사람을 중심으로 새롭게 규정하였다. 북한은 “인민의 웃음, 인민의 행복”이 국력의 척도라면서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국방력, 경제력이 강해도 “인민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면, 인민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나 이익도 주지 못한다면” 국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강국, 공산주의 사회는 인민들이 무탈하여 편안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라고 하였다. (「북한이 말하는 ‘강국의 징표’란?」, 통일뉴스, 2021.5.7.)
만약 북미 철학 전쟁에서 북한이 승리한다면 이런 북한의 철학이 세계에 강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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